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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딸의 혼례 준비 - 비용 마련을 위해 백방으로 알아보다
1616년 3월 20일, 김택룡은 둘째 딸의 혼사에 쓰려고 쌀을 내다 팔았다. 그리고 네 장의 편지를 써서 명금이를 예안으로 보내 아들 김숙 · 생질 정득 두 곳과 영천 이영도 · 유사 이의적에게 전하도록 했다. 또
청송 부사
박이장(朴而章)
에게도 편지를 써서 일부러 사람을 보내 혼인에 쓸 재물을 청했다.
4일 후 3월 24일, 김택룡은 딸 혼사가 진행 중이며 또 27일날 예식을 올려야 하는데 여지껏 혼례 비용을 마련하지 못해 내심 불안하였다. 그는 부득이하게 영천(榮川, 지금 榮州) 군수에게 부탁의 편지를 썼다. 더불어 ??, ?? 등에게도 편지를 보냈다. 그리고 또 편지를 써 노비 풍종이에게 주며 군(郡) 내 김효선(金孝先)에게 가 꿩을 구해보도록 시켰다. 그런데 모두 일이 잘 풀리지 않았다. 더욱이 군수는
국기일(國忌日)
이라 출근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개요
배경이야기
원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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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이야기
출전 :
조성당일기(操省堂日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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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김택룡(金澤龍)
주제 : 가족과 친족, 자녀의 혼인
시기 : 1616-03-20 ~ 1616-03-24
동일시기이야기소재
장소 : 경상북도 안동시, 경상북도 영주시
일기분류 : 생활일기
인물 : 김택룡, 명금이, 풍종
참고자료링크 :
웹진 담談 3호
웹진 담談 3호
조선왕조실록
◆ 조선시대 혼례비용
조선시대에도 자식의 혼례는 막대한 경제적 지출을 감당했어야 했나 보다. 현재에도 남자는 집, 여자는 혼수와 예단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지 않은가? 혼담이 오간 후부터 결혼식을 치르고 신혼여행에서 돌아온 신혼부부가 처가와 시댁을 차례로 들른 후 자신들의 가정을 완전히 꾸려나가기 시작할 때까지, 그 부모들은 온갖 고민에 노출되는데 그 중에서도 경제적인 문제가 가장 크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16,17세기를 살았던 김택룡도 그랬던 모양이다. 3월 20일의 기사에서 딸의 혼사에 쓰려고 쌀을 내다 팔아 비용을 마련하는 모습이나, 주변의 지인들에게 비용을 부탁하는 모습 급기야 인맥이 닿는 지방의 수령에게까지 특별한 청탁을 하는 모습 등은 그가 부모로서 혼례비용에 대해 꽤 깊은 고민을 하고 있으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 사방으로 노력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정작 어느 정도의 경비를 필요로 했고, 이것을 어떻게 조달했는지 까지의 자세한 기록은 없어서 아쉬운 면이 있다.
후대의 사례이긴 하지만 19세기 충청도에 거주했던 한 몰락양반 조병덕이라는 사람이 자식에게 보낸 편지에 다른 아들의 혼례비용을 걱정하는 부분이 매우 구체적으로 나오므로, 인용해 본다. 조병덕은 이 편지에서 셋째아들의 결혼 비용으로 200냥이나 예상하고 있는데, 이 돈은 그가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큰돈이었다. 결국 종계(宗契)에서 100냥을 빌리고 나머지 100냥도 어떻게 변통할지 매우 고민하는 모습이 드러나 있다.
“신례(新禮)는 저쪽 집에서 내년 봄에 올리기를 바란다는 말이 있다. 꼼짝달싹할 방법이 전혀 없지만 내년 봄에 반드시 하겠다고 먼저 말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10월 10일 논문서를 잡히고 종계전 100냥을 빌리는데, 갚기 전의 도지(賭地)에 대해서는 타작을 하여 종계(宗契)에 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그러나 100냥이 또 부족한데, 네가 50냥 가량을 빚 좀 낼 수 있겠느냐?”
(하영휘의 『양반의 사생활』 중 인용)
◆
원문 이미지
◆ 원문 번역
1616년 3월 20일 흐리고 혹 맑음. 바람.
날이 밝을 무렵 풍종이 (중간 탈락). □□의 집에서 답장이 왔다. 혼사에 쓰려고 쌀을 내다 팔았다. 김경익金景益이 그 아들 정선廷善에게 갔는데, (중간 탈락) 기성基城에서 지체하며 머물기 때문에 가서 만난다고 한다. 편지를 전달하지 않고 돌아왔다. 명금이 예안으로 가서 아들 김숙·생질 정득 두 곳과 영천 이영도(자는 성여)·유사 이의적에게 편지를 썼다. 그리고 청송 부사 박이장朴而章에게도 편지를 쓰고 사람을 보내 혼인에 쓸 재물을 청했다. 이여함李汝馠이 들러서 완심당에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김시성이 도촌에서 와서 권호신(자는 백무)을 만났더니 그가 결정된 혼인 날짜를 듣고 싶어 했다고 말했다. 그 때 권준신(자는 사영)은 흑동黑洞에 있어서 아직 돌아오지 않고 있었다고 한다. 운심이 읍내로 가서 장모와 송 좌수宋座首·별가·좌수 이수·기장 이정견의 아내 등에게 소식을 전했다. 종남이 부석사에서 돌아와 아들 김각의 답장을 받았다. 이 날 대나무 지팡이를 손에 짚고 짚신을 신고 당塘 가로 걸어 나갔다. 때마침 비가 막 개어 물 흐르는 맑은 소리에 생기가 넘쳤으며, 사방의 산엔 붉은 꽃이 피고 앞 시내엔 버드나무가 푸르렀다. 굽어보고 올려다보며 이리저리 거닐고 있자니, 황연恍然히 몸이 편안하고 가벼워져 마치 태화太和로부터 불어오는 봄바람을 타고 초연히 물외物外로 벗어나 오르는 것과 같았으니, 가히 증점의 연주에 화합할 만한 경지였다. 장남헌(張南軒 : 南軒 張栻)의 <풍우정사風雩亭辭>를 읊으며 오래도록 돌아갈 것을 잊고 있었다.
1616년 3월 21일 맑음
김흥남金興男을 통해 권호신(자는 백무)에게 혼인 날짜가 27일로 정해졌다고 알렸다. 풍종이 생선을 사러 봉화의 장에 갔다. 춘금이 구고에서 와서, 세미를 실어 납부하였다. 단양丹陽에 말이 없어서 빌리러 온 것이다. 부득이하게 빌려 주었다. 답장을 쓰고 끌고 가게 했다. (중간 탈락) 사위를 맞을 일을 의논하고 돌아갔다.
1616년 3월 24일 비
혼례 비용을 마련하지 못해 부득이하게 주쉬에게 편지를 보냈다. 또 □□…□□에게도 편지를 보냈다. 풍종이 군으로 들어가 김효선金孝先에게 편지를 보내 꿩을 구했다. 모두 일이 잘 안되어 돌아왔다. [주쉬는] 국기國忌로 출근하지 않았다. 김□□은金□□隱이 풀려났다고 한다. 좌수 김경익金景益이 답장을 보냈다. 그 아들인 새로 급제한 생원 정선廷善의 병이 깊어 구미龜尾에 머물고 있어서 오지 않는다고 한다. 황성(자는 이경)이 콩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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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행길, 《단원 풍속도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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