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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가한 딸의 와병 소식에 잠을 설친 아버지
1612년 5월 20일, 오천(烏川)의 사위 집에서 김택룡에게 편지를 보내왔다. 편지에는 딸의 병이 아직 낫지 않았다는 말이 있었다. 김택룡은 걱정스런 마음을 담아 답장을 보냈다.

5월 25일, 김택룡은 오천(烏川)에 가서 아픈 딸을 만나볼 계획을 세웠다.

5일 뒤 5월 30일, 김택룡은 오천으로 가기 위해 식사를 마치고 출발했다. 오천에 도착해 판사(判事) 김지(金址)와 상사 김평 · 김령(金坽)을 만난 다음, 탁청정(濯淸亭)에 내려가니 좌수 김호(金壕) 어른과 사위 김광찬이 나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김택룡은 집으로 들어가 딸을 보고 병에 대해 물었다. 오늘부터 소뿔로 배꼽에 뜸을 떴다고 하였다. 김택룡은 저녁을 먹고 나가서 김부생(金富生) 과 사위 김광찬과 함께 정사(亭舍)에서 머물렀다. 그리고 여독 탓인지 아픈 딸에 대한 근심 탓인지 매우 피곤하여 밤새도록 뒤척였다.

6월 7일, 오천에서 김택룡에게 편지를 보내왔다. 김택룡의 아내가 먹을 사물탕(四物湯) 네 첩을 함께 보내왔다. 그리고 김택룡에게 삼약(蔘藥)을 부탁하였으므로 마련해서 보내며 답장도 썼다.

6월 22일, 오천 사람이 김택룡을 찾아 와서 사위 김광찬의 편지를 전해 주었는데, 딸의 기운이 아직도 평안하지 않다는 내용이었다.

다음 날 23일, 김택룡은 춘금을 정서(井墅)로 보내, 서울에서 온 박참봉(朴參奉)의 문안 편지와 아들 김숙과 오천(烏川) 딸의 병록[病錄, 병의 증세를 적은 기록]을 가져오게 했다. 그 곳 마을 사람이 가지고 왔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었다.

6월 25일, 김택룡은 어제 받은 명약(命藥)을 오천(烏川)으로 보냈다. 서울에 부탁하여 구한 것이었다. 저녁에 오천에 갔던 춘금과 일춘이 함께 돌아 와서, 김서방의 답장과 김좌수(金座首)의 편지를 받았다.

7월 21일, 김택룡이 오천에 편지를 보냈다. 갔던 하인이 돌아와 딸아이의 병이 왔다 갔다 하며 낫지 않아 온 집안이 걱정하고 있다고 전해주었다.

7월 24일, 오천(烏川) 사람이 와서 김광찬 일가의 두 편지를 받고 딸의 증세가 점차 평상을 회복해 간다는 것을 알았다. 곡식을 보내 궁한 사정을 도왔다. 답장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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