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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여 년 동안 쓴 『해주일록(海洲日錄)』은 전감으로 삼을 만하다
1930년 6월 5일, 남붕은 며칠 동안 읽은 『중용혹문(中庸或問)』 등사본의 후지(後識)를 작성하려다가 붓을 멈췄다. 등사했던 날짜를 쓰려고 했는데 기억이 나지 않아서였다. 남붕은 날짜를 확인하기 위해 『해주일록(海洲日錄)』을 가져와 꼼꼼히 살펴보았는데, 아들 원모(元模)가 죽기 전인 기유년(1909) 봄에
난고정(蘭皐亭)
에서 원모가 등사한 것임을 비로소 알게 되었다. 남붕은 아들이 등사한 『중용혹문』에 발문을 짓고 점심 때 발문을 다시 베껴 썼다.
이렇게 오래전의 일이 기억나지 않을 때 『해주일록』을 살펴보면 마치 어제 일처럼 기억이 역력하니 40여 년 동안의 기록이 지난 일을 살피고 증거로 삼을 수 있으니 여간 큰 도움이 되는 게 아니었다.
한 달 정도 지난 윤6월 4일 아침을 먹은 뒤에 남붕은 『해주일록』을 처음 쓰기 시작한 병술년(1886) 조 부터 살펴보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40여 년이고 해마다 기록한 것이 거의 50여 권이니,
전감(前鑑)
이 될 만하다고 생각되었다.
개요
배경이야기
원문정보
멀티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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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전 :
해주일록(海洲日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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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남붕(南鵬)
주제 : ( 미분류 )
시기 : 1930-06-05
동일시기이야기소재
장소 : 경상북도 영덕군
일기분류 : 생활일기
인물 : 남붕
참고자료링크 : (참고자료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 근대 재지 유생 남붕의 40여 년간의 기록, 『해주일록(海洲日錄)』
현재 남붕이 남긴 일기와 서간, 시문은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료총서 57집에 『海洲日錄』·『海洲素言』·『海洲日課』으로 간행되어 있다. 원서는 한국국학진흥원,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성균관대학교 존경각, 안동대학교 도서관 등에 소장되어 있다.
『해주일록(海洲日錄)』은 근대와 일제강점기를 살며 벼슬하지 않았던 영남지역 재지유생의 삶을 자세히 살펴 볼 수 있는 자료로 제목대로 지은이의 일기며 『해주일과』는 서한과 시문、『해주소언』은 일기·서한·서문을 수록한 저작이다. 남붕은 성실하게 일록을 남겼는데, 1930년 6월 5일 『해주일록』의 내용에서 “병술년(1886)부터 지금까지 40년 넘게 일기를 써왔다”고 회고했다. 그러나 현재 남아 있는 그의 일록인 『해주일록』과 『해주소언』은 1922년부터 1933년까지의 기록만 남아 있다.
『해주일록』을 통해 본 남붕의 삶은 평이하고 단조로웠다. 특별한 일이 없는 한 그는 날마다 일찍 일어나 책을 읽고 사람을 만나고 계사와 조문으로 대표되는 의례를 수행하고 편지·만사(輓詞)를 비롯한 이런저런 글을 쓰고 농사 등의 가사를 감독하거나 관리했다. 그가 쓴 일기의 많은 부분은 이런 반복적 일상으로 채워져 있다. 그 반복적 기록의 갈피에는, 두드러지지는 않지만, 현실에 대한 나름의 고민이나 처방이 드문드문 박혀있다.
남붕의 일상에서 가장 두드러진 풍경은 늘 책을 읽고 공부하는 학인의 모습이다. 그는 길을 가면서도 언제나 책을 암송할 정도였다. 남붕은 여러 책을 읽었지만 여느 유학자와 비슷하게 『논어』·『맹자』·『대학혹문』·『중용혹문』·『주자어류』 같은 중국 경서를 가장 자주 되풀이해 읽었다. 이 가운데 가장 중시한 책은 역시 『논어』와 『맹자』, 그리고 주자의 저작이었다. 그는 이 책들을 거의 매일 읽고 또 읽었다。
남붕의 일기에서는 생활인으로서의 그의 모습도 잘 드러나 있다. 그는 농업사회를 사는 생활인으로서 상당한 경제관념을 지니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는 『일록』이나 『소언』을 한권씩 묶을 때마다 해당 기간의 주요 경제상황을 기록했다. 『일록』 6권 끝에는 그 기간 동안 사용한 금액의 내역을, 『일록』 8권 끝에는 들어오지 않은 소작료를, 『일록』 11권 끝에는 道齋의 재정상황을, 『일록』 12권과 『소언』 3권 끝에는 해당 기간에 사용한 금액과 내역을, 『소언』 5권 끝에는 해당 기간의 수확량과 사용한 금액 및 내역을 꼼꼼히 적어놓았다. 그 전해에 수확한 곡식 분량과 빌린 금액을 계산해 기록하기도 했다.
또한 일제 강점기라는 시대적 분위기를 읽을 수 있는 대목도 있다. 이를테면 관리가 나와 동네 주민들을 강제로 삭발시키고, 마을 사람이 소유한 삼림을 일본인이 모두 사들였으며 어떤 이의 선산에 일본인이 금광을 파려고 했다는 기록 등이다. 이런 사건을 겪으면서 그는 ‘반일’이라고까지 평가하기는 어렵지만 생활인이자 유자로서 분노를 표출했다.
남붕은 40년이 넘게 자신의 일상을 기록으로 남겼다. 그는 성실과 인내를 요구하는 그 작업을 그렇게 오래 수행한 까닭을 “인간의 도리가 자신에 힘입어 세워지기를 바라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말년에 들어서는 이룬 것도 없으며 평생 공부했지만 능력이 부족하다고 탄식하기도 했다.
특출난 인물의 기록이 아닌 근대 지방 지식인의 삶이라 단조로울 수는 있지만, 남붕의 기록은 근대 생활사를 엿보기엔 좋은 자료라 할 수 있다.
◆ 원문 번역
경오년(1930, 대한민국임시정부12) 6월 5일 신해. 점심부터 비 내리다 저녁에 갬. 새벽에 일어나 치성을 드리고 잠 외우기를 전과 같이 하였다. 『중용혹문』을 27장부터 편말까지 외웠다. 닭이 울기 전에, 잠시 눈을 붙였다. 창이 밝을 무렵에 일어나 어머님께 문안드리고 사당에 배알하였다. 『중용혹문』을 편수부터 ‘지론야至論也’까지 세 번째 외웠다. 아침을 먹은 뒤에, 일을 살펴볼 것이 있어서 『해주일록』을 자세히 점검하였다. 대개 병술년(1886)에 시작하여 지금까지 40여 년인데 지난 일이 마치 어제처럼 역력하니, 기록이 살피고 증거로 삼는 데 도움 되는 것이 이와 같다. 지금 내가 『중용혹문』 등사본의 후지後識를 작성하고 싶으나 가아家兒가 살아 있을 때 등사한 연월이 아득하여 기억나지 않았다. 그래서 『해주일록』에서 그것을 살펴보고 기유년(1909) 봄에 난정蘭亭에서 등사한 것임을 비로소 알았다. 가아 원모元模가 등사한 『중용혹문』에 발문을 지었다. 점심 때 발문을 다시 베껴 썼다. 저녁에 『중용혹문』을 ‘차기칭중니왈此其稱仲尼曰’부터 17장 끝까지 외우고, 밤에 18장·19장까지 외웠다. 윤6월 4일 경진. 맑음. 새벽에 일어나 치성을 드리고 잠 외우기를 전과 같이 하였다. 「위정」 편을 다 외웠다. 닭이 울기 전에, 잠시 눈을 붙였다. 창이 밝을 무렵에 일어나 어머님께 문안드리고 사당에 배알하였다. 「팔일」·「이인」 편을 외우는데 부여귀장富與貴章까지 외웠다. 아침을 먹은 뒤에 병술년(1886)부터 갑오년(1894)·을미년(1895) 조의 『해주일록』을 살펴보았는데, 지금까지 40여 년이고 해마다 기록한 것이 거의 50여 권이니, 전감前鑑의 하나라고 할 만하다. 『두율』 상편을 「숙부宿府」까지 외웠다. 대묘大廟의 고천제苽薦祭에 참여하였다. 오후에 산곡의 시를 보고, 『두율』 상편을 「서곽만청西郭晩晴」부터 편말까지 외웠다. 옥금에 가서 권후경權厚卿을 조문했다. 이때 권후경의 아들 4명이 신학문을 배우는 학생으로서 동경에서 살다가 병들어 죽어서 고향에 옮겨와 장사를 지낸 지 며칠 되었다. 저물녘에 내려 왔다. 밤에 『두율』 하편을 「정부마잠요택鄭駙馬潜曜宅」까지 외웠다. 오늘 묘곡의 권영우權永禹가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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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용혹문(中庸或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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