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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세차게 불고 파도가 크게 이는데 병선(兵船)을 타고 노량을 건너 남해로 가다
1751년 9월 12일, 맑음. 조재호는 아침 식사 후에 길을 떠나 60리 길 노량(露梁)에서 점심을 먹었다.
주자(廚子)
를 거느린 곤양군수(昆陽郡守) 김연(金椼), 사람과 말을 거느린 소재찰방(召材察訪) 이서오(李敍五), 그리고 남해현령(南海縣令) 조광진(趙光鎭)이 달려 함께 들어와 배알하였는데 소재찰방은 뒤에 남으라고 하였다. 오후에 바람이 세차게 불고 파도가 크게 일었다. 병선(兵船)을 타고 노량(露梁)을 건너 40리 길 남해(南海) 숙소에 이르렀다. 조재호를 배알하러 온 남해현령 조광진은 남해가천암수바위에 얽힌 전설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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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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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이야기
출전 :
영영일기(嶺營日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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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조재호(趙載浩)
주제 : 지방행정, 수군, 항해
시기 : 1751-09-12 ~
동일시기이야기소재
장소 : 경상남도 남해군
일기분류 : 생활일기
인물 : 조재호, 김연, 이서오, 조광진
참고자료링크 :
승정원일기
조선왕조실록
◆ 노량
노량(露梁)은 조선 말 곤양군(昆陽郡) 금양면(金陽面)에 속했던 지역으로, 남쪽으로 이웃한 남해군 설천면과의 사이에 좁은 통로 모양의 바다 목이 있어 노들 또는 노량(露梁)이라 하였다. 이순신 장군 최후의 전투인 노량해전이 노량리 앞 바다에서 이루어졌다. 노량해협(露梁海峽)은 하동군 노량리(금남면)와 남해(南海) 사이를 흐르는 바다이로서 수심이 깊고, 조류가 빠르다. 지금은 1973년에 개통된 높이 80m, 길이 660m의 남해대교가 있지만 이전에는 두 지점 간을 오가는 나루터가 있어서 배로 건너다녀야 했다. 남해는 임야면적이 67%로 우리나라 섬 중 산의 비율이 가장 많은 지역이어서 농지는 22.3%에 불과하다. 반면 바다자원은 풍족하여 어업 의존도가 높을 수밖에 없다. 조재호를 배알하러 온 남해현령 조광진에게는 특별한 일화가 있는데 경남 민속자료 13호인 남해 가천 암수 바위에 얽힌 이야기다. 전설에 의하면, 조선 영조 27년(1751) 이 고을의 현령 조광진의 꿈에 한 노인이 나타나 “내가 가천에 묻혔는데, 우마(牛馬)의 통행이 잦아 일신이 불편해서 견디기가 어려우니 나를 파내어 일으켜 세워 주면 필히 좋은 일이 있을 것이다.”라고 하여 현령이 현몽에 따라 가천에 가서 땅을 파게 했더니 이 암수바위가 나왔다. 이에 현령은 암수바위를 미륵불로 봉안하고 논 다섯 마지기를 헌납하여 이 미륵이 발견된 음력 10월 23일을 기하여 매년 제사를 지내게 하였다고 한다. 제의의 목적은 마을의 무사태평과 풍농풍어의 기원이다. 전에는 이 미륵불의 영험함을 믿는 사람들이 미륵계를 만들어 제를 주관하였고, 어부들은 처음 잡은 고기를 이 바위 앞에 얹고 빌면 고기가 많이 잡히며, 해난사고를 당하지 않는다고 기원을 하였다. 조재호 경상감사 일행이 남해에 도착한 때는 1751년 9월 12일이고 가천암수바위가 발견된 시점은 1751년 10월 23일이니, 대략 40일 후에 벌어진 일이 될 것이다.
◆
원문 이미지
◆ 원문 번역
1751년 9월 12일 맑음. (…) 아침 식사 후에 길을 떠나 60리 길 노량(露梁)에서 점심을 먹었다. 주자(廚子)를 거느린 곤양군수(昆陽郡守) 김연(金椼), 사람과 말을 거느린 소재 찰방(召材察訪) 이서오(李敍五), 그리고 남해현령(南海縣令) 조광진(趙光鎭)이 달려 함께 들어와 배알하였는데 소재 찰방은 뒤에 남으라고 하였다. 오후에 바람이 세차게 불고 파도가 크게 일었다. 병선(兵船)을 타고 노량(露梁)을 건너 40리 길 남해(南海) 숙소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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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 가천 암수바위 원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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