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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산에서 신비한 불상(佛像)의 이야기를 듣다
1696년 7월 5일부터
이시선(李時善)
은 가야산 여행을 시작했다. 산에 오르기 위해 몸과 마음을 깨끗이 하는 의식(
재계(齋戒)
)도 하지 않은 채 어린 심부름꾼 하나만 데리고 말을 타고 나섰다. 시내와 계곡을 건너 산으로 들어갔다. 예전에 유람하던 곳은 좁은 협곡 안에 약간 넓은 공간이 있는 곳이었는데 이번 여행에서는 그곳에 사람이 들어와 농사를 짓고 있었다.
가야산 아래에는 조카인 이욱(李頊)이 살고 있는 산장(山莊)이 있다. 그러나 이욱은 마침 자리에 없었다. 이욱의 아들인 이공부(李公溥) 등이 이시선을 안으로 맞이하였다. 점심을 먹은 후 이공부와 함께 40리쯤 걸어서 보림암(寶林庵)이라는 암자로 갔다. 여기서 하루를 머물기로 하였다. 점심을 먹은 후에 걷기 시작하였으나 보림암에 도착한 것은 해가 저물기 전이었다. 이시선이 말을 타지 않고 걷기로 하였던 것은 그동안 먼 거리를 여행한 것이 아니었고 또 다리의 힘이 얼마나 남아있는지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그동안 공부를 하느라 앉아있는 시간이 많았기 때문이다.
보림암에 도착하니 건물이 매우 오래되어 보였다. 오랫동안 승려들이 머물지 않았는데 최근에야 들어와 살기 시작하였다고 했다. 이시선이 이곳을 찾은 이유 중 하나는 보림암이 신령하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승려에게 자세한 이야기를 물어보았다.
승려가 말하기를, 이 암자의 법당에 있는 석불은 땅속에서 솟아났는데 원래 법당의 위치는 석불이 솟아난 장소인 계단 아래쪽이었다고 한다. 이 당시에는 석불이 매우 영험하였는데, 잘 모시지 않으면 재앙이 내리고 기도를 드리면 원하는 바가 이루어졌다고 한다. 그러나 당시 법당이 있던 장소는 호랑이가 자주 지나다니는 곳이라 호랑이밥이 되는 승려가 많았다. 그래서 법당을 위로 옮겼더니 병에 걸리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후일 중국 당나라 출신의 점쟁이가 법당의 위치를 좀 더 위쪽으로 올리라는 조언을 하였다. 그랬더니 호랑이의 피해도 없고 질병도 발생하지 않았으나 기도에 대한 효험은 전일보다 못하다고 하였다.
다음날 승려를 거느리고 산을 유람하려고 하였다. 행관(幸寬)이라는 승려가 “이 산은 바위가 가파르고 길도 막힌 곳이 있습니다. 그래서 산을 오를 때 잡고 의지할 장소도 부족한 데 괜찮겠습니까?”라고 주의를 주었다. 이시선은 이 말을 듣고 기분이 상했다. “나는 바위산을 많이 유람했다.
청량산(淸凉山)
,
속리산(俗離山)
, 금강산에 다 내가 오른 자취가 있다. 이 산은 그 산들에 비하면 작은 언덕에 불과한데 너는 이 산을 크다고 생각하느냐?” 라며 이시선이 호통을 치자 승려는 입을 다물었다.
개요
배경이야기
원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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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전 :
유가야산기(遊伽倻山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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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이시선(李時善)
주제 : 옛 이야기, 민간신앙, 불교
시기 : 1696-07-05 ~ 1696-07-06
동일시기이야기소재
장소 : 경상남도 합천군
일기분류 : 유산일기
인물 : 이시선, 이욱, 이공부
참고자료링크 :
승정원일기
◆ 이시선의 여행경험
이시선은 젊은 시절 전국 방방곡곡을 여행하였다. 그는 평양·개성·경주 등의 옛 도읍과 청량산·태백산·주왕산·금오산·속리산·삼각산·구월산과 금강산 등의 명산, 그리고 동남해안에 이르는 넓은 지역을 섭렵하였다. 그의 여행기는 문집인 「송월재집(松月齋集)」 권5에 여러 편이 실려 있다. 유람기 외에도 산행을 떠나는 동기와 목적 등을 말하면서 상대방에게 좋은 시를 요청하는 글이나 조카 이선의 금강산행을 축하하는 글 등이 있는데, 이시선의 여행에 대한 관점을 나타내고 있다. 또한 이시선은 튼튼한 신체를 가지고 있었던 듯하다. 80세가 넘도록 정신과 시력이 온전하였으며, 91세까지 장수하였다. 임종시에도 여러 유학 경전을 입속으로 암송할 정도였다고 한다. 이시선이 가야산의 등반의 어려움을 경고한 승려 행관에게 호통을 쳤던 것은 그러한 경험에 따른 자신감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또한 여러 차례의 여행에서 각 지역에 남아있는 전설들을 전해 들었고 그에 대한 흥미를 가지고 있었기에 이름 모를 암자를 굳이 찾아가서 이를 확인하려고 했을 것이다.
◆ 원문 번역
7월 5일 정미일에 산에 들어가기 전에 재계도 하지 않고 갑자기 한 동자와 함께 필마로 산을 향하여 길을 나섰다. 내와 계곡물을 거슬러 올라가 아름다운 산에 들어갔다. 옛날에 노닐던 곳은 궁벽진 협곡에 조금 트인 공간인데, 사람과 밭과 바위가 있었다. 지금 다시 좁은 협곡을 따라 올라가니 십리도 가지 못하여 다시 조금 트인 공간이 있고 또한 사람과 밭이 있다. 우러러 가야산(伽倻山)을 바라보니 신선이 사는 산이라고 칭할 만하다. 이곳은 조카 욱(頊)이 거처하는 산장이다. 말을 여기에 세웠는데 욱은 마침 있지 않고 종손인 공부(公溥) 등이 나를 안으로 맞이하였다. 점심을 먹고 공부와 함께 걸어서 보림암(寶林菴)에 가서 잠을 잤다. 여기까지의 거리가 사십 리 쯤 되었으나 날이 아직도 저물지 않았다. 그 행차가 가까운 땅을 간 것이기에 쉬웠던 것 뿐만 아니라, 내 다리 힘을 알고자 해서였다. 정좌한 지 오래라 다리가 매우 약해졌기 때문이다. 긴 숲이 앞에 펼쳐져 있으나 암자는 보이지 않았다. 몇 걸음 걸으면 문득 쉬었다. 숲을 다 지나서 법당에 들어가니 서쪽에 옛 암자가 남루하게 서 있었는데, 기초 또한 아름답지 못했다. 승려가 오래 들어오지 않다가 근래에 많이 들어왔다 한다. 나는 이곳이 신령하다고 들어서 승려에게 물으니 대답하길, “법당의 석불은 본래 땅속에서 솟아나왔습니다. 법당이 처음에는 계단 아래에 있었는데 석불이 매우 신령하였지요. 조금이라도 삼가지 않으면 반드시 재앙이 따랐으며, 기도만 하면 곧 효험이 났습니다. 그러나 제자 승려들 중에 호랑이 밥이 된 이가 많으므로 중간에 계단 위로 옮겼더니 질환이 많이 생겨났습니다. 후에 당나라 출신 점치는 사람의 말에 따라 또 위로 옮긴 것이 바로 지금 있는 곳입니다. 이제 질환도 없고 호랑이에게 물려가는 일도 없으나 영험은 전만 못합니다.”라 하였다. 내가 다음날 승려를 거느리고 산을 유람하려고 하였는데 승려 행관(幸寬)이 말하기를, “이 산은 바위가 가파르고 길도 막혀 있어서 비록 오르고자 하여도 잡고 당길 것이 없으니 어찌 하시겠습니까?” 라고 하였다. 그래서 내가 말하기를, “나는 험한 바위산을 많이 유람하였다. 청량(淸凉), 속리(俗離), 금강산(金剛山) 등은 모두 내가 자취를 남긴 곳이다. 이 산은 그 산들에 비하면 작은 언덕에 불과하다. 너는 이 산을 크다고 여기느냐?” 라고 하였다. 승려는 곧 입을 다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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