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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어(銀魚)를 진상하라
1587년 8월 1일, 대구부사 권문해의 움직임이 분주하다. 올해도 어김없이
공납(貢納)
해야 할 진상품을 챙기느라 바쁘다. 1584년 대구부사로 부임한 이후 올해로 4년째 매년 해오는 일이지만 공납일이 다가오면 늘 걱정과 근심이 생긴다. 특히 공납품 중에 하나인 ‘
은어(銀魚)
’를 챙기는 일은 쉽지 않았다. 지난해에는 은어가 한 마리도 없고 민간에서도 거두지 못하여 진상하는데 애를 먹었다. 결국 상주에서 올라온
은어(銀魚)
와 식염(食鹽) 그리고 목면과 필을 겨우 챙겨 진상할 수 있었다.
1588년 6월 9일, 올해도 역시 은어가 문제였다. 진상할
은어(銀魚)
를 잡지 못하였다. 마음이 급해진 권문해는 밀양, 청도 등으로 절간(折簡)을 보내었고 어렵게 구하였다. 매년 권문해에게 은어를 진상하는 일은 걱정과 근심거리가 되었다.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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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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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이야기
출전 :
초간일기(草澗日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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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권문해(權文海)
주제 : 예천, 정치관계, 조세제도, 은어
시기 : 1587-08-01 ~ 1588-06-13
동일시기이야기소재
장소 : 대구광역시
일기분류 : 생활일기
인물 : 권문해
참고자료링크 :
웹진 담談 14호
조선왕조실록
한국역대인물 종합정보 권문해
◆ 조선시대 공납제도
조선 왕조가 개창된 뒤에 마련된 공납제는 1392년(태조 1) 10월에 공부상정도감(貢賦詳定都監)을 설치하여 조선시대 공납제의 기초를 놓았다. 공납제는 각 지방의 토산물을 기준으로 공물의 품목과 수량을 정하고, 그 장부인 공안(貢案)을 마련하여 전국적으로 실시된 것이다. 1408년(태종 8) 9월에 제주, 1413년 11월에 함경·평안도에서 내야 할 공물의 품목과 수량을 정함으로써 전국에 걸친 공납제가 마련되었다. 각 지방의 공물의 품목과 수량을 정할 때는 토지 면적을 기준으로 하여 그 지방의 생산물로 부과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되, 중앙정부의 1년 경비를 참작하도록 하였다. 공납이 이루어지는 과정은 먼저 중앙정부에서 각 군현에 공물의 품목과 수량을 적은 장부인 공안을 보내면 각 지방에서는 부과된 공물을 백성에게 직접 징수하거나 향리 장인(匠人) 및 지방관청 소속 노비 또는 상번한 군사 등을 사역하여 마련하였다. 대개 민간에서 쉽게 마련할 수 있는 직물류·수산물·과실류·목재류 등은 일반 백성이 내게 하고, 모피류·수육류 및 재배해야 하는 약재 등은 지방관청에서 마련하여 공물 상납하는 일을 맡는 하급관리인 공리(貢吏)에게 정부의 관청에 직접 내게 하였다. 공납제는 그 제도 및 운영과정에 몇 가지 문제점을 내포하였다. 공물의 품목과 수량이 장기적으로 고정되어, 다음해의 것을 앞당겨 징수하는 인납(引納) 및 본래의 용도와 달리 사용하는 별용(別用) 등이 이루어졌고, 또한 여기에 별공이 이용되기도 하였다. 특히 그 지역에서 생산되지 않는 물품이 공물로 지정되기도 하여, 심한 경우에는 산간지대에 해산물을 배당하거나, 평야지대에 사냥한 짐승과 그 가죽 등을 배당하기도 하였다. 이리하여 공안의 개정을 통하여 그 지역에서 생산되지 않는 공물을 조정하는 것이 당면한 과제였다. 이 밖에 공물을 상납하는 과정에서 관리가 여러 가지 트집을 잡아 그 지방에서 마련한 공물을 받지 않거나[點退], 관리와 상인이 결탁하여 대신 납부하고 농민으로부터 높은 가격을 받아내는[防納] 등의 비리행위가 자행되었다. 그리하여 중종 대에 조광조(趙光祖)가 개혁의 필요성을 주장하였으나 구체적인 대안이 마련되지 못하였고, 그 뒤 선조 대에 이이(李珥)가 공물을 쌀로 대신 거두는 방법을 제안하기도 하였다. 본래 현물을 납부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 공납제는 자연경제가 지배적인 전 근대사회에서 국가재정 및 지배계층의 소비를 충족시키기 위한 수단으로서 수공업의 일정한 발달을 전제로 한 것이면서도 아직 상품화폐경제의 발달이 미숙한 단계에서 실시되다가, 상품화폐경제가 어느 정도 발달한 16세기에 가서는 공물을 당시 교역의 수단이던 물품화폐, 즉 쌀·베로 거두는 대동법(大同法)으로 전환되었다.
◆
원문 이미지
◆ 원문 번역
1587년 8월 1일 맑음. 차례(茶禮)를 지냈다. 밀양 교수(密陽敎授) 정자(正字) 홍순각(洪純慤)이 실관(實官, 실제 직무를 맡음)에 들어 올라가면서 부(府, 대구부)에 들렀는데, 저녁에 나가 서헌(西軒)에서 만나 보았다. 홍공(洪公)은 청주(淸州) 사람이다. 병자년(1576년)에 내가 서원(西原, 청주)의 목사(牧使)로 있던 그 해에 생원시에 합격하여 경연(慶宴)을 베풀려고 하였는데, 내가 뜻하지 않게 파직되어 왔기에 만나보지 못하였었다. 그 뒤로 급제를 하여 지금은 운각(芸閣, 校書館)의 정자(正字)가 되었다. 저녁에 관청(官廳)으로 나가 상주(尙州)의 은어(銀魚)와 식염(食鹽)을 봉하여 진상(進上)하였다. 금년에는 은어가 한 마리도 없고 민간에서도 거두지 못하여서 이전의 은어를 대신 봉(封)하였다. 또 목면(木棉) 몇 필을 공급하기 위해 찾아서 들이도록 하였다. 저녁에 황산 찰방(黃山察訪) 신석린(申石粼)이 서울에서 내려왔다. 밤에 나가 하서헌(下西軒)에서 만나보았다. 1588년 6월 9일 구름이 끼어 흐리다가 비를 뿌렸다. 연일 비가 내려 물이 불어났다. 진상할 작은 은어[小銀魚]를 잡지 못하여 밀양(密陽)·청도(淸道) 등으로 절간(折簡, 온 종이를 둘로 접은 편지)을 보내어서 구하였다. 김응현(金應鉉)이 청도에서 돌아와 머물러 묵은 후 금산(金山)으로 돌아갔다. 1588년 6월 13일 구름이 끼어 흐렸다. 작은 은어[小銀魚]를 봉하여 진상하였다.
이미지
경상도의 진상품 내역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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