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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그만 고향으로 돌아가 학업에 전념하시오 - 3차 상소를 준비하던 유생들에게 내린 임금의 하교
1792년 5월 16일, 소청에 모여 소록을 등사하였다. 막 칙교를 받았을 때는 비록 도리에 구애되어 상소하는 일을 잠시 멈추었지만 다사들의 체류가
재일(齋日)
이 지나면 충심으로 호소하는데 지나지 않으니 22일 후에 다시 세 번째 상소를 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므로 한편으로는
소초(䟽草)
를 작성하고 한편으로는 소록을 작성하였다.
5월 19일, 소록 작성을 다 마쳤다. 모두 11,365명이다.
5월 20일, 소초가 완성되었다. 소두 권 감찰·김시찬이 각각 한 본씩을 작성하였으나 봉사대부가 지은 것이 가장 적절하여 사론이 반드시 이것을 사용하려고 하였다. 장로들의 소견(所見)이 일치하지 않아 더하고 뺀 것이 많아서 다른 곳에 물어보고 다시 다른 조목을 넣었다.
5월 21일, 이 날은 곧 우리
경모궁(景慕宮)
[
사도세자
]의 제삿날이다. 우리 성상(聖上)의 그립고 애통한 마음 어찌 다함이 있겠으며 우리들이 두렵고 피가 끓는 것은 과연 어떠하겠는가? 제사를 마친 뒤에 즉시 상소를 하려고 하였으나 첫째는 차마 못하겠고 둘째는 감히 못하겠으니 우선 다음 날을 기다려보기로 하였다.
5월 22일, 주상이 김한동(金翰東)을 불러 하교하기를 “지금은 의리가 분명하게 결판이 났으니 영남 유생들은 더 체류할 필요가 없다. 아까 경연에서 좌의정이 주청한 바가 있었다. 물러나가 좌의정을 보고 상세히 물어서 영남 유생에게 전달을 하라. 일전에 체류 식량을 받지는 않았지만 지금
회량(回糧)
을 주면 반드시 감히 받지 않을 수가 없을 것이다. 또 들으니 유생들이 물러나 학업을 닦으라는 비답을 듣고자한다고 하니 모름지기 비답을 내리는 법식에 의하여 말로 하교를 전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하였다. ...... 중론이 마침내 상소를 정지하자는 의논을 주장하였다.
그 중에 불충에 죽더라도 남쪽으로 돌아갈 뜻이 없는 자는 다만 2~3명뿐이었다. 그러나 일이 이미 이에 이르렀으니 다시 무엇을 하겠는가? 아! 애통하구나. 우리들이 천리를 와서 일만 명이 한목소리로 30년간 꽉 막혀서 감히 말하지 못한 일을 말하는 것이 과연 얼마나 큰 의리이며 큰 행사인데 다만 우리의 정성이 부족하고 의견이 일치하지 않아 끝내 유시무종(有始無終: 시작은 있으나 결과가 없음)의 탄식으로 돌아가니 애석함을 이길 수 있겠는가? 그러나 우리 성상이 꾹 참고 있는 본 뜻은 중천에 뜬 태양같이 밝으니 우리영남의 모든 유생들의 윤리는 죽더라도 거의 눈을 감을 것이다. 이날 서울인사로서 문안인사를 온 자가 매우 많았으나 다 힘없이 돌아갔다.
개요
배경이야기
원문정보
멀티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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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전 :
천휘록(闡揮錄)
전체이야기보기
저자 :
권방(權訪)
주제 : 분쟁과 조정, 국정운영의 갈등
시기 : 1792-05-16 ~ 1792-05-22
동일시기이야기소재
장소 : 서울특별시
일기분류 : 분쟁일기
인물 : 김한동
참고자료링크 :
승정원일기
◆ 조선시대 상소의 처리과정 - 추가 상소의 만류
5월 7일에 올라온 영남사림들은 1차 영남 만인소에 정조가 깊이 공감하자 10,368명이 연명한 2차 상소를 올렸다. 2차 상소후 정조는 이런 류의 소를 금하고 사도세자가 무함당했으나 선왕 당부로 그대로 묻어두겠지만, 원수들은 모두 설욕하겠다고 하교하고 상소를 만류한다. 그러나 영남사림들은 1차 2차 상소를 통해 어느 정도 정치적 목적을 이루었지만 사도세자의 신원과 토역(討逆)이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하여 정조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3차상소를 준비하게 된다.
5월 19일 소록 작성을 다 마쳤는데 이때 또 모두 11,365명으로 2차보다도 인원이 100여명이 증가하였다. 21일 상소를 하려하였는데 사도세자의 제삿날이라 하지 못한다. 그런데 다음 날 정조가 “지금은 의리가 분명하게 결판이 났으니 영남 유생들은 더 체류할 필요가 없다. ”하며 적극 만류한다. 이에 따라 중론이 마침내 상소를 정지하자고 의논하였다. 결국 3차 상소를 준비하던 도중 유생들은 정조의 간곡한 설득으로 귀향하게 되었다. 아직 사도세자의 복권문제를 더 크게 다룰 때가 아니라고 판단한 정조의 판단에 따라 강력하게 상소의 중지를 권유하므로 임금의 칙명을 받아 경상도 일대에 교지를 두루 설명하기로 하고 상소를 중지하게 된 것이다.
영남유생들의 상소는 공론정치라는 새로운 정치문화를 형성하고, 정치참여층을 크게 넓히는 효과를 가져왔다. 또한 그들이 형성한 공론은 노론집단이 정국을 독점적으로 운영하는 것을 견제했다. 결국 두차례의 영남의 만인소는 정조가 노론의 포위국면을 해결해 나가기 위한 추진력을 얻는 계기가 되었다. 그래서 다음해에 채제공이 사도세자의 억울한 죽음을 해결하기 위한 임오의리를 제기할 수 있었다. 또한 노론 강경파인 경주 김씨.풍산 홍씨들로 짜여진 정국을 영남 사람들을 등용하여 명실상부 탕평책을 실시할 수 있었다.
◆
원문 이미지
◆ 원문 번역
5월 16일
소청에 모여 소록을 등사하였다. 막 칙교를 받았을 때는 비록 분의分義에 구애되어 상소하는 일을 잠시 멈추었지만 다사들의 체류가 재일齋日이 지나면 충간을 호소하는데 지나지 않으니 22일 후에 다시 세 번째 상소를 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므로 한편으로는 소초䟽草를 작성하고 한편으로는 소록을 작성하였다. 윤행철尹行喆이 와서 문안을 하였고, 이지순李之淳이 편지로 문안하였다. 이이상李頥詳의 아내가 이상頥詳이 남학소(南學䟽: 남학에서 올리는 상소)에 들어간 것 때문에 신문고申聞鼓를 쳐서 원통함을 호소하였다고 한다.
5월 19일
소록 작성을 다 마쳤다. 모두 11,365명이다. 강침·홍의호洪義浩·홍낙민·이지현·이은유·장수초張守初·홍낙문·홍낙현洪樂玄·신구·허충許种·윤행철이 와서 문안하였다. 강계江界 권엄權이 50냥을 보내왔다.
5월 20일
소초가 완성되었다. 소두 권 감찰·김시찬이 각각 한 본씩을 작성하였으나 봉사대부가 지은 것이 가장 적절하여 사론이 반드시 이것을 사용하려고 하였다. 장로들의 소견所見이 일치하지 않아 더하고 뺀 것이 많아서 다른 곳에 물어보고 다시 다른 조목을 넣었다. 한치응韓致應·윤기尹愭·권이강權以綱·이지광李趾光·홍인호·이욱연李郁延·이후李㷞·권철權徹·권휘權徽·신〇·신병申秉·윤수한尹秀漢·이인회李寅會·홍명기洪命基가 와서 문안하였다. 좌규(左揆: 좌의정)가 돈 50냥을 보내오고, 채홍리蔡弘履가 남초(南草: 담배40근)을 보내왔다. 권응전權應銓이 와서 소청에 유숙하였다. 이 사람은 도장 찍는 일을 잘하였다. 전후 두 차례의 소첩䟽帖이 모두 이 사람의 손을 빌렸다. 그의 마음 씀이 매우 고맙다.
5월 21일
이 날은 곧 우리 경모궁[사도세자]의 제삿날이다. 새로 지은 사당이 지척간이니 오르내리는 혼령이 와서 흠향하리라. 우리 성상聖上의 그립고 애통한 마음 어찌 다함이 있겠으며 우리들이 두렵고 피가 끓는 것은 과연 어떠하겠는가? 제사를 마친 뒤에 즉시 상소를 하려고 하였으나 첫째는 차마 못하겠고 둘째는 감히 못하겠으니 우선 다음 날을 기다려보기로 하였다. 소유들이 모두 소찬(素饌: 고기붙이나 생선이 섞이지 아니한 반찬)을 먹고 음주를 끊었다. 들으니 남학 유생이 재소(再䟽: 2번째 상소)를 올리려고 하자 주상이 정창순鄭昌順을 불러 엄한 전교를 내렸다. 창순이 물러나와 그들로 하여금 재소를 즉시 철회하도록 하였다고 한다. 정인鄭·이경명·신사오·권평·윤행철·유효신·이치훈·홍낙문·우승모·유석명·정송·권급·권영석·한석민·이종하·유휘·심계화·허욱·김경무·홍이만·홍현·이원모·이원임·심식·허원·송섬이 와서 문안하였다.
5월 22일
새벽에 교리 김한동·정언 강세륜이 패초牌招를 받고 대궐에 가니 대신大臣과 재상 이하 모두 문안 인사차 입시(入侍: 대궐에 들어가서 임금을 뵘)를 하였다. 임금의 위엄이 쩌렁쩌렁 울리어 신하들이 감히 잠시 듣지 못하는 말씀이 있었고, 대신 이하 모두 모자를 벗고 대궐문 밖에서 처벌을 기다리고 있었다. 주상이 김한동을 불러 하교하기를 “지금은 의리가 분명하게 결판이 났으니 영남 유생들은 더 체류할 필요가 없다. 아까 경연에서 좌의정이 주청한 바가 있었다. 물러나가 좌의정을 보고 상세히 물어서 영남 유생에게 전달을 하라. 일전에 체류 식량을 받지는 않았지만 지금 회량回糧을 주면 반드시 감히 받지 않을 수가 없을 것이다. 또 들으니 유생들이 퇴수학업(退修學業: 물러나 학업을 닦으라)하라는 비답을 듣고자한다고 하니 모름지기 비답을 내리는 법식에 의하여 말로 하교를 전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하였다. 또 하교 하기를 “옥당(玉堂: 홍문관)이 비록 단번單番이지만 이 유신들의 출송出送에 구애받지 말고 소유들을 치송治送하는 게 좋겠다.” 이어서 많은 하교가 있었다. 김한동이 대궐에 간 뒤에 혹 다시 칙교가 내려올까 유생들이 걱정하여 그가 나오기 전에 반드시 대궐에 가서 엎드려 상소하려고 하였다. 상소문 중에 다른 조항을 넣은 곳이 말이 천박하고 조밀하지 못하여 중론衆論이 분분하여 중도에서 주저하고 있을 무렵 엄교가 느닷없이 내려졌다. 좌의정의 충의직절忠義直截한 성격으로 아직 감히 한마디도 다시 올리지 못하였는데 하물며 엄교가 내려옴에 있어서이겠는가? 중론이 마침내 상소를 정지하자는 의논을 주장하였다. 그 중에 불충에 죽더라도 남쪽으로 돌아갈 뜻이 없는 자는 다만 2~3명뿐이었다. 그러나 일이 이미 이에 이르렀으니 다시 무엇을 하겠는가? 아! 애통하구나. 우리들이 천리를 와서 일만 명이 한목소리로 30년간 꽉 막혀서 감히 말하지 못한 일을 말하는 것이 과연 얼마나 큰 의리이며 큰 행사인데 다만 우리의 정성이 부족하고 의견이 일치하지 않아 끝내 유시무종(有始無終: 시작은 있으나 결과가 없음)의 탄식으로 돌아가니 애석함을 이길 수 있겠는가? 그러나 우리 성상이 꾹 참고 있는 본 뜻은 중천에 뜬 태양같이 밝으니 우리영남의 모든 유생들의 윤리는 죽더라도 거의 눈을 감을 것이다. 이날 서울인사人士로서 문안인사를 온 자가 매우 많았으나 다 힘없이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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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조친필비답』
『장조친필비답』
『장조친필비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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