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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족의 필수교양, 활
금난수와 그 벗들은 젊을 적부터 간간이 활을 쏘며 놀았다. 활쏘기는 사족들이 반드시 익혀야 할 교양 중 하나였다. 나라에서도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에도 향사례(鄕射禮)를 「군례(軍禮)」 의식으로 규정하여 매년 3월 3일과 9월 9일에 여러 도, 주, 부, 군, 현에서 행하도록 하였다. 하지만 성종 때까지도 제대로 시행되지 않다가, 이후 향촌사회의 안정을 도모하는 정책이 논의되면서 향사례가 시행되었다. 활쏘기는 단순히 화살로 과녁을 맞히는 데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뜻을 바로 하는 예의와 덕과 선을 권하는 데 의의가 있었다.

그리하여 금난수를 비롯한 사족들은 젊을 때부터 활을 쏘는 데 익숙하였다. 비록 평소엔 붓보다 무거운 것은 들지 않는 백면서생이라 할지라도 모두 활은 쏠 줄 알았던 것이다. 금난수는 활쏘기를 구경하는 것도 좋아했는데, 11월 20일에는 이성여의 집으로 가서 활쏘기를 구경하였다. 활을 쏘는 사람들은 젊은이들이 아니었다. 젊은이들은 왜적에 대항하기 위해 의병으로 나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지금 향촌을 지키고 있는 것은 노인들이었다. 노인들은 오랜만에 활을 들어 보았다. 모인 사람들은 금응훈, 이공숙, 박몽담 등 10여 명이었다.

활쏘기 구경만 하고 돌아왔던 금난수는 12월 29일에는 직접 아들들을 거느리고 집 뒤 정자에서 활쏘기를 익혔다. 오랜만에 활을 든 이유는 둘째 아들 금업이 두 손자 정일(貞一)과 일생(一生)를 데리고 왔기 때문이었다. 어린 손자들과 세 아들 앞에서 금난수는 노익장을 가감 없이 발휘하였다. 손자들은 과녁에 화살을 꽂아 넣는 할아버지의 모습을 보며 천진하게 박수를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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