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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염병으로 절이 북적북적하다
1755년 12월 24일, 전염병이 심상치 않다. 올해는 지극한 흉년이라 그런지 민심이 흉흉했다. 추수를 한지 얼마 지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먹을 것이 없어 떠도는 백성들이 적지 않았다. 그러한 사정은 권상일이 거주하고 있는 고향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담을 사이로 두고 있는 이웃이 전염병이 의심스러운 조짐을 보이면 지레 겁을 먹을 수밖에 없는 것이 어쩔 수 없는 현실이었다. 들으니, 도처에 전염병이 수그러든 곳이 한 곳도 없다고 한다.
동네 사람인 이응(二應)이 오랫동안 대승사(大乘寺) 청심전(淸心殿)에 거처하다가 비로소 돌아왔다. 그는 권상일에게 대승사의 소식을 전해주었다. 전염병이 좀체 수그러들 기미를 보이지 않자, 대승사로 거지는 물론, 양반과 상놈까지 모조리 모여들었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절에서는 이들을 모두 내칠 수 없었다고 한다. 대승사 중들이 두세 동이의 죽을 끓여서 각각 한 국자씩만 주었는데도 턱없이 부족하다고 했다.
권상일의 손자 또한 어제부터 두통이 생겼는데, 두통조차 전염병으로 의심스럽다는 생각에 손자를 이웃에 보낼 수밖에 없었다. 권상일도 또한 이웃으로 옮겨서 거처했다. 결국 권상일이 사는 마을에 전염병으로 크게 혼란이 발생하고 말았다.
개요
배경이야기
원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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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이야기
출전 :
청대일기(淸臺日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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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권상일(權相一 )
주제 : 전염병
시기 : 1755-12-24 ~ 1755-12-27
동일시기이야기소재
장소 : 경상북도 상주시
일기분류 : 사행일기
인물 :
참고자료링크 :
승정원일기
조선왕조실록
◆ 전염병에는 사찰 피접
전염병은 흉년이 들면 자주 발생했다. 그것은 곧 먹고 사는 것과 전염병이 깊은 연관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반대로 풍년이 들면 전염병은 잘 발생하지 않았다. 흉년이 들면 으레 곡물이 부족해지므로 체력에 문제가 발생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한번 전염병이 돌기 시작하면 체력과 면역력이 약한 아이들이나 노인들이 먼저 발병하게 된다. 흉년은 한 지역만이 아니라 전국에서 거의 동시에 발생하게 되므로, 전염병이 발생하면 전국으로 퍼지는 것은 대개 시간문제였다.
전염병이 돌면 대처 방법으로 부적을 쓰거나 민간요법을 사용하기도 하지만, 가장 확실한 방법은 피접(避接), 즉 피해서 도망가는 것이었다. 피접은 대개 전염병이 아직 돌지 않은 청정 지역으로 옮기기도 하였으나 대개는 산으로 피했다. 산에 거주할 수 있는 공간은 사찰밖에 없었으므로, 전염병이 발생하면 으레 사찰로 피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
원문 이미지
◆ 원문 정보
二十四日. 二應久寓大乘淸心殿, 日昨始還頓. 聞本寺大不淨, 流丏人無論兩班常漢, 無數來會, 僧輩煮粥數三東海各給一勺, 而亦不足云. 賢孫自昨頭痛可疑, 入送于渠家, 卽移寓于[⋆芿+叱⋆]龍家.
二十七日. 丹婢痛數日, 又移寓于萬延家.
◆ 원문 번역
1755년
12월 24일
이응(二應)이 오랫동안 대승사(大乘寺) 청심전(淸心殿)에 거처하다가 일전에 비로소 돌아 왔다. 들으니 본사가 전염병이 크게 수그러들지 않자 걸인은 물론이고 양반과 상놈까지도 무수히 와 모여서, 중들이 두 세 동이[東海]의 죽을 끓여서 각각 한 국자씩만 주었는데도 부족하다 한다. 손자 현(賢)이 어제부터 두통으로 전염병을 의심할 만하여 그 집으로 들여보내고 나는 곧바로 넛용(⋆芿+叱龍) 집으로 옮겨가 임시로 거처한다.
12월 27일
계집종 단(丹)이 여러 날 아파서 또 만연(萬延)의 집으로 옮겨 머무른다.
이미지
대승사 금동보살좌상
대승사 금동아미타여래좌상
대승사 극락전 삼존좌상
대승사 아미타삼존다라니
대승사 금강계만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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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승사 아자범자원상태장계...
대승사 아자범자원상태장계...
귀주머니 향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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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상일 간찰
그래픽
전염병에 걸린 사람들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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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전염병 치료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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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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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안에 몹쓸병이 돌다
1581-01-27
충청남도 공주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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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고의 곡식을 확인하러 가다
1581-05-21
충청남도 공주시
7
권문해의 아내가 운명하다
1582-05-08
경상북도 예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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