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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관아에서 신라 왕이 자취를 느끼다
1560년 가을, 홍성민은 경상도의 안무사로 임명되어 경주에 도착하였다. 어릴 적부터 들은 이야기로 경주는 신라의 옛 도읍으로 과거의 유적이 아주 많이 남아있다고 하였다. 말을 타고 경주 관아로 들어가면서 본 풍경은 과연 그 말이 틀리지 않았다.
옛 신라의 유적이 남아있는데, 혹 완연하게 형체가 남은 것도 있고, 혹 의연하게 자취가 남은 것도 있으며, 혹 형체가 남아있으니 반쯤 무너진 것도 있고, 혹 자취가 남아있으나 조금 변화된 것도 있었다. 혹은 빈 터만 남아있거나, 구릉으로 변화한 곳도 있으니 산하가 갖은 풍파를 겪어 옥 옮겨지거나 변화된 것도 있었다. 어느 곳을 찾아 감상하는 사람들은 거주하는 사람들의 말을 듣고 나서 알게 되고, 거주하는 사람들은 옛날부터 전해오는 것을 듣고 말해주는 것이었다.
신라의 여러 자취는 비단 밖의 풍경만이 아니었다. 관아에 도착하여 사무를 볼 공간에 들어섰는데, 그곳에 구리로 만들어진 책상이 하나 있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신라왕이 일찍이 책상으로 쓰던 것이라 한다.
그 옆에는 쇠로 만든 지팡이가 하나 있는데, 이 역시 신라왕이 짚던 것이라고 한다. 옥피리도 하나 남아있었는데, 이것도 신라왕이 일찍 어루만지던 것이라고 하였다. 관아의 건물 곳곳에도 신라의 자취가 완연하게 남아있으니, 과연 천년의 고도였던 고을이라 할 만하였다.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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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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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이야기
출전 :
계림록(鷄林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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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홍성민(洪聖民,)
주제 : 명승유람
시기 : ( 미상 )
장소 : 경상북도 경주시
일기분류 : 유산일기
인물 : 송성민
참고자료링크 : (참고자료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 조선 왕실의 혈통을 바로잡은 신하 홍성민
이 이야기는 홍성민이 경상도 안무사로 경주에 부임하여 옛 고도의 자취를 느끼는 장면이다. 이야기의 주인공인 홍성민(1536~1594)은 본관이 남양(南陽)이고 자는 시가(時可), 호는 졸옹(拙翁)이다. 아버지는 관찰사를 역임한 홍춘경(洪春卿)이다. 서경덕, 이황 등에게 학문을 배웠다. 1564년(명종 19) 29살의 나이로 과거에 급제하여 관직에 나아갔으며, 1567년에는 총면한 문신에게 업무를 맡는 대신 학문수학에 전념하도록 하는 사가독서(賜暇讀書)의 대상자로 선발되었다. 이후 대사간직을 거쳐 1575년에는 호조참판에 제수되었다. 이 해 사은사로 명나라에 가서 종계변무에 힘썼다. 종계변무란 조선 건국초기부터 선조때까지 200년간 중국 명나라에 태조 이성계에 관한 잘못된 기록을 고쳐 달라고 주청하던 일이었다. 그 후 부제학, 예조판서, 대사헌 등의 직책을 역임하였고, 1590년에는 종계변무에 힘쓴 공으로 광국2등공신에 책록되었다. 1591년에는 판중추부사가 되었다가, 세자 책봉을 둘러싼 문제로 서인들이 실각하자, 홍성민도 그 일당으로 몰려 함경도 북변으로 유배되었다. 1592년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특사로 유배에서 풀려나 대제학에 올랐다가 부친상으로 사직하였다. 1594년 사망하였고, 문정(文貞)이란 시호를 받았다.
◆
원문 이미지
◆ 원문 번역
경신년 가을에 안무사安撫使로서 계림鷄林에 도착하였다. 계림은 신라의 옛 도읍으로서 그 유적이 남아있는데, 혹 완연하게 형체가 남은 것도 있고, 혹 의연하게 자취가 남은 것도 있으며, 혹 형체가 남아있으나 반쯤 무너진 것도 있고, 혹 자취가 남아있으나 조금 변화된 것도 있다. 혹 빈터이거나, 혹 구릉이 된 곳도 있으니, 산하山河가 갖은 풍파를 겪어 혹 옮겨지거나, 혹 변화되었다. 무릇 그곳을 찾아 감상하는 자는 거주하는 사람의 말로 인하여 알게 되고, 거주하는 사람들은 옛날부터 전해오는 것을 인하여 말해준다.
구리책상이 있는데, 신라왕이 일찍이 책상으로 쓰던 것이다. 쇠로 만든 지팡이가 있는데, 신라왕이 일찍이 짚던 것이다. 옥피리가 있는데, 신라왕이 일찍이 어루만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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