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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군인들의 강무
본문에서 사행단이 관람한 것은 마상재이다. 마상재(馬上才)는 달리는 말 위에서 사람이 행하는 갖가지 재주로, 농마(弄馬), 희마(戱馬), 마희(馬戱), 곡마(曲馬), 원기(猿騎), 무마(舞馬), 표기희(驃騎戱), 마기(馬技), 마기(馬伎), 입마기(立馬技), 마술(馬術) 또는 말광대, 말놀음 같이 다양한 용어로 불린다. 이들 용어 가운데 훈련된 말에게 여러 기예를 익히게 하는 무마(舞馬)를 제외하고, 그 나머지 용어는 기수가 달리는 말 위에서 여러 가지 동작을 취하여 재주를 부리는 기예를 뜻하는 말이다. 특히 마상재는 조선시대에 이르러 붙여진 명칭으로 민간에서는 주로 마기(馬伎)라 불렀다. 하지만 마기가 아니라 희마(戱馬)가 옳다는 주장이 『무예도보통지(武藝圖譜通志)』에서 확인되는 것으로 미루어 희마가 옳은 표현으로 보인다.
마상재는 기마술의 일종으로 행해지기 때문에 별도로 때를 가리지는 않았다. 다만 조선 후기에 들어와 마상재가 관무재라는 무예 시험의 종목으로 시행되면서 봄과 가을에 주로 많이 행해졌다.
마상재에는 키가 크고 빛깔이 좋으며 훈련이 잘된 말을 골라서 썼으며, 암말보다도 수말이 적당하다고 했다. 특히 부루말(흰말)을 높이 쳤으며, 가라말(검정말) 중에도 네 발굽이 흰 것은 무방하게 여겼다. 이러한 말에 온갖 치레를 갖추었으며 마상재를 하는 사람은 전립 또는 투구를 썼다. 옷은 민소매로 만들어진 붉고 노란 호의(더그레)에 같은 색의 바지를 입었으며 목화나 짚신을 신지 않고 버선발로 말을 탔다.
『무예도보통지』에 의하면, 마상재의 기예는 말을 기준으로 두 가지 형태로 구분된다. 말 한 마리로 재주를 부리는 단마식과 두 마리로 재주를 부리는 쌍마식이 있다. 단마식과 쌍마식의 기예는 각각 여섯 가지로 구성된다.
제1자세는 입마(立馬)로서 말 위에 선 채로 달리는 동작이다. 달리는 말 위에 서거나 혹 왼손으로 고삐를 잡고 오른손에 삼혈총을 높이 들어 공중을 향해 쏜다. 또 기수는 고삐를 약간 늦추고 몸을 공중으로 솟구쳐 체중을 조금 덜어주면서 말이 내닫는 속도를 빠르게 하다가 다시 고삐를 약간 당기고 체중을 더하면서 말의 속도를 늦추기도 한다. 이렇게 말의 달리는 속도를 조절하면서 다음 동작으로 넘어간다.
제2자세는 초마(超馬)로서 말의 등 넘나들기이다. 안장 앞쪽 언저리를 두 손으로 짚고 몸을 뒤로 쫙 펴서 말 등에 엎드리는 자세를 취한다. 배가 말 등이나 안장에 닿지 않게 하면서 몸을 말의 왼쪽으로 넘긴다. 이때 발은 땅에 닿을 듯 말 듯한 정도로 내려오며, 다시 몸을 들어 말 등을 닿지 않은 채 오른편으로 넘어간다. 오른편에서도 발이 땅에 닿을 듯하다가 다시 왼편으로 넘어가며 이러한 동작이 여러 번 반복된다. 이러한 동작을 좌우칠보(左右七步)라고도 한다.
제3자세는 도립(倒立)으로 말 위에서 거꾸로 서는 재주이다. 안장의 앞부분을 두 손으로 잡고 상반신을 말 왼쪽으로 떨어뜨린 채 하반신을 공중으로 쫙 편다. 이때 기수의 오른편 어깨는 말의 왼쪽 앞죽지에 닿을 듯 말 듯하게 내려오며 공중에 뻗친 다리가 휘청거리는 순간에 몸을 빠르게 돌려서 다음 동작으로 넘어간다.
제4자세는 횡와(橫臥)로서 말 위에 가로눕는 동작이다. 말을 가로타고 두 다리를 한쪽으로 모으며 두 손으로 안장의 앞뒤 쪽을 잡고 눕는데, 반듯하게 눕기도 하고 엎드려 눕기도 한다. 이것은 적탄에 맞아 죽은 것처럼 하여 상대를 속이기 위한 방법이다.
제5자세는 장신(藏身)으로 몸 숨기기이다. 오른편 오금을 안장에 걸치고 오른손으로 안장 뒤쪽을 잡고 몸을 말의 왼쪽으로 떨어뜨린다. 기수의 등이 말의 왼쪽 옆구리에 달라붙고, 왼다리는 말의 머리 쪽으로 뻗치므로 사람이 말의 옆구리에 달려서 거꾸로 끌려가는 자세가 된다. 이때에는 왼손으로 땅의 모래를 쥐어서 흩뿌리며 적진으로 들어간다. 몸을 말의 오른쪽으로 옮겨서 같은 동작을 반복한다. 이러한 동작을 등리장신 또는 마협장신이라고 하는데, 모두 말 옆구리에 몸을 숨긴다는 뜻이다.
제6자세는 종와(縱臥)로서 뒤로 눕는 동작이다. 보통 때 말 타는 자세를 취하고 두 발을 등자에 건 채로 뒤로 누워 기수의 머리를 말의 엉덩이 쪽으로 가져간다. 이때 한 손으로는 말꼬리를 잡기도 한다. 앞의 여섯 동작 중에서 두 번째 동작인 말의 등 넘나들기와 다섯째 동작인 몸 숨기기를 좌우 각각 헤아려서 모두 여덟 동작으로 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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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 밖의 백일원에서 즐기는 놀이 - 군복입은 기녀가 말 달리는 광경을 구경하다 테마스토리 이동

1803년 11월 17일(무신) 아침은 흐리고 저녁에는 맑음. 이해응과 사행단은 용만관에 유숙하였다. 이날 백일원(百一院)에서 놀이를 했다. 백일원은 의주성의 서문 밖에 있는데 어떤 사람은 강무당(講武堂)이라고도 했다. 당은 그리 크지 않은데 섬과 뜰은 평탄하고 넓어서 말 달리고 활 쏘는 장소로 합당하다. 먼저 무인(武人)의 무리들이 말 위에서 재주 부리는 것을 시험하여 보고, 그 시험이 끝나자 여러 기녀 중에서 말 잘 타는 자 5, 6인을 뽑아 각기 군복을 입히고 말을 달리게 했다. 말들은 다 재갈을 물고 우쭐거리는데 대(臺) 앞의 병졸이 호각을 한 번 불자 다들 안장을 두드리며 앞을 다투었다. 마치 전진에 나가 돌격하는 것같이 하는 것이었다.
다음날 1803년 11월 18일 저녁에 진변헌(鎭邊軒)에 들어갔다. 진변헌 곁에 망신(望宸)이라는 누각이 있다. 여러 장교들이 그 앞에서 활쏘기를 시험하였고 여러 기녀들을 시켜 화살 쏜 것의 적중 여부를 알리게 했다. 그것이 끝나자 기녀는 또 대부분 떼를 지어 투호(投壺)를 했다. 병 아가리는 넓고 화살은 미친 듯하여 승부를 가지고 잘하고 못하는 것을 논할 수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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