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이야기는 <신주무원록>을 참고로 한 창작물입니다.
사또 김서인은 옆 고을에 사건이 생겨 복검관으로 가게 되었다. 밤은 늦고, 함께 가는 의생도, 아전도 모두 지쳐 보여, 차마 길을 재촉할 수 없어 주막에서 하룻밤 묵어가기로 한다. 긴 시간을 걸어온 터라 서인도 피곤해 얼른 잠자리에 들려고 하는데, 한 남자가 술상을 갖고 들어온다. 목이 타던 차에 잘 됐다 싶어 얼른 술을 따라주길 기다리는데, 남자는 머뭇거리며 이상한 내기를 제안한다.
“사또께서 재미난 이야기를 들려주시면, 그 이야기를 들은 후에 따라 드리겠습니다.”
순간, 서인은 어이가 없지만, 갑자기 승부욕도 발동한다.
‘그래, 기필코 저 술을 마셔야겠다!’
골몰하던 서인은 마침 며칠 전에 해결한 사건이 생각이 났다. 사건은 포목점 주인의 막내아들이 고발장을 접수하며 시작됐다. 고발장의 내용은 포목점을 하는 아버지가 하룻밤 사이에 급사했는데, 그 죽음이 석연치 않다는 것이었다.
마침 서인은 <무원록>을 접한 후, 미궁에 빠진 살인사건을 해결하고 싶은 욕망이 있던 터에, <무원록>을 지참하고, 포목점 주인의 집으로 향했다. 갑작스러운 서인의 등장에 장례를 치르던 사람들은 놀라는 눈치였다.
“이미 환갑도 지나셨고, 하룻밤 사이 돌아가셔도 이상한 나이가 아닙니다.”
큰아들이 나서 서인을 만류하듯 이야기했고,
“환갑을 넘기셨지만, 고뿔 한 번 걸리지 않을 만큼 정정하셨습니다.”
고발장을 접수한 막내아들이 반론하듯 나섰다. 그렇게 서인이 형제의 다툼을 지켜보는데, 의생이 슬며시 귓속말을 한다.
“집안 분위기로 봤을 때, 독살을 의심해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서인 역시 독살을 의심하며 망자를 살핀다. 만약 독살이라면 안색이 푸른색을 띠어야 한다고 <무원록>에 나왔는데, 오히려 자연사에 가까운 황색을 띠고 있다. 은비녀 같은 법물을 사용해 독살의 흔적을 찾으려 했지만, 그 또한 나타나지 않았다.
사람들은 막내아들이 형과 재산을 놓고 다투고 있는 가운데, 형을 무고하는 것이라고 생각을 하기에 이르고, 그러자 막내아들은 자신의 억울함을 항변하듯 자해소동까지 벌인다.
소란스러운 가운데 서인은 다시 시신을 살펴본다. <무원록>에 시신은 머리부터 관찰을 하고, 은밀한 부분까지 살펴야 한다고 했다. 놓친 것이 없는지, 더욱 자세하게 시신의 정수리 부분을 살피던 서인은 작은 점을 발견한다. 그리고 그것이 점이 아님을 확인한다. 그것은 바로 침이다! 사람을 아무 흔적 없이 살해하기 위해서 누군가 불에 달군 침을 정수리에 꽂은 것이다! 막내아들의 말대로 포목점 주인은 살해를 당한 것이다! 서인이 죽음의 이유를 밝혀내자 큰아들은 당황하고, 이어 포목점 주인이 죽던 밤, 큰아들이 방으로 들어간 것을 목격한 간증까지 나온다. 이어 서인이 추궁하자, 결국 큰아들은 재산을 가로채기 위해 범행을 저지른 것이라고 자백을 하게 된다.
그렇게 서인은 사건을 해결한 자신의 무용담을 남자에게 신이나 들려준다. 그러자 남자는 환한 미소를 짓는다.
“이제야 안심이 됩니다. 사또시라면 분명 저의 한을 풀어주실 수 있을 겁니다. 이 술은 그때 따라드리겠습니다.”
술 한잔하겠단 생각에 긴 이야기를 했건만, 술도 못 얻어먹고, 서인은 어이가 없다. 그렇게 입맛을 다시는 서인을 아전이 흔들어 깨운다. 그제야 꿈임을 서인은 깨닫는다.
기이한 꿈이라고 생각을 하며 사건 현장에 도착한 서인, 양반집 노비 박돌석이 서까래에 줄을 걸어 목을 매고 죽은 자액 사건이다. 시신은 이미 초검을 마친 후라 거적으로 덮은 후 주위에 회를 뿌려 봉해져 있는 상태였다. 서인이 오작을 시켜 거적을 거둔 후 검험을 시작하려 하는데, 남자의 얼굴이 낯이 익다. 바로 자신의 꿈에 나타난 남자가 아니던가! 서인은 꿈에까지 나타난 것으로 보아 뭔가 사연이 있음을 짐작한다.
처음 박돌석을 발견한 이가 낫을 가지고 줄을 끊어버렸고, 사람들이 오가고 소란스러운 와중에 줄의 행방은 묘연해졌다. 시신의 줄을 끊고 내리고 하는 와중에 이미 서까래의 먼지는 어지럽게 흩어져 있는 등, 현장은 많이 훼손된 상태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서인의 지휘 아래 아전이 사건 현장 등을 시장에 꼼꼼히 기록해 나간다. 그리고 멀리서 지켜보던 박돌석의 상전은 서인의 태도가 못마땅한 얼굴이다.
망자의 나이가 몇인지, 신장이 얼마인지, 얼굴과 몸의 색깔이 어떠하며, 피부나 살은 움푹 꺼져 있는지 아닌지, 두 손과 다리를 쭉 뻗었는지 아니면 주먹을 쥐고 있거나 팔다리가 굽었는지 등등. 게다가 급소와 은밀한 부분까지 모두 세밀하게 관찰을 하며 시장에 꼼꼼하게 기록해 나가는 서인. 그런데 그렇게 시신의 상태를 보면 볼수록 초검 결과처럼 자액이라고 하기에 의심스럽기만 하다.
시신이 입과 눈을 크게 뜨고, 손은 흩어져 있고 목을 매단 흔적이 있지만, 피맺힌 검은 자국이 없다. 혀가 나오지 않았으며, 혀가 이에 닿지 않고 목 졸린 흔적이 깊이 들어갔지만, 푸르고 검붉은 색이 아니라 흰 빛깔이다.
만약 스스로 목을 매게 되면 목을 맨 흔적이 숨통 위에 있으니 입은 다물고 이를 꽉 문 채 혀가 이에 닿아있어야 하는데, 박돌석의 시신은 그렇지 않다. 그때 검험을 지켜보던 박돌석의 처가 훌쩍이다 의미심장한 말을 한다.
“이상하네, 나리께 맞아 멍들었던 자국이 어디로 갔지? 분명 있었는데….”
박돌석 처의 말을 듣고 서인은 시신을 확인해 보는데, 어디에도 구타의 흔적은 없다. 만약에 구타를 당한 후 죽었다면? 그리고 목을 맨 것처럼 위장이 됐다면? 서인은 구타를 의심하고, 박돌석 처의 말대로 상처가 있어야 할 부분을 만져본다. 부어오르거나 단단하지 않으면 위장의 흔적으로 보아야 한다고 했다. 만져 본 결과 단단하지 않은 것으로 보아 상처는 위장됐다.
“자액이 아니라 살해당한 후 목을 맨 것처럼 위장된 조액이다!!”
그때 같이 온 아전이 걱정스럽게 서인에게 말한다. 초검의 내용과 복검의 내용이 같지 않으면 서인이 곤란해질 수 있다며, 초검의 시장을 그대로 베끼는 것이 어떻겠냐고 하는 것이 아닌가. 초검을 한 사또 역시 복검을 예의주시하고 있는 터. 복검의 결과가 다르면 자신을 기만하는 것이라는 내색까지 한다. 게다가 박돌석의 상전 또한 빨리 끝내도록 재촉을 하는 가운데, 자액이 아니라 조액인 상흔을 보여 달라며 더욱 서인을 압박한다.
그러자 서인은 이런 상황에 어떻게 대처할지, <무원록>에 나와 있다며, 의기양양하게 상처가 있는 것으로 의심되는 부분을 감초즙으로 닦아본다. 이제 위조된 상처가 드러나야 한다! 그런데, 아무 반응이 일어나지 않는다! 수세에 몰린 서인. 당황하는 서인을 상전이 더욱 압박한다. 만약에 검험이 길어져 자신이 죽였다는 누명이 더해져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게 되면 무고죄로 자신도 가만있지 않겠다며 엄포를 놓는다.
“의심스러운 부위가 있으면 그 부위에 물을 뿌려 적신 후에 파의 흰 뿌리를 짓찧어 넓게 펴 바르고 초에 담가두었던 종이를 그 위에 덮어둔 채 한 시간여가 지난 후 이를 걷어내고 물로 씻으면 상흔 여부를 바로 확인할 수 있다고 <무원록>에 나와 있소.”
그렇게 해 보이는 서인. 그런데 다시 상흔이 잦아들어 관찰하기 어렵게 되자, 역시 <무원록>에 나온 방법대로 백매를 찧어 짓이긴 후 그 부위에 덮어 상흔이 나타나게 해본다. 하지만, 이 역시 상흔이 온전하게 보이지 않자, 백매의 과육을 파, 산초, 소금, 지게미 등과 함께 갈아 떡을 만들어 불 위에서 구워 뜨겁게 한 후 손상된 부위를 지지면 잘 드러난다는 방법까지 시도해 본다.
결국 그렇게 다양한 방법을 시도한 끝에 구타로 의심되는 상흔을 찾아낸다. 그리고 이는 필시 누군가 상처가 드러나지 않게 위조한 것임을 짐작한 서인은 초검을 한 오작인을 불러 추궁한다. 그리고 그 결과, 오작인은 상전이 시켜 어쩔 수 없었다며 순순히 자백한다.
“상흔이 드러나지 않게 하려고 갯버들 나무껍질을 상처 부위에 덮어두면, 상흔이 안으로 짓무르고 상하여 검은색이 되는 등 구타의 흔적을 위조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검험을 한 결과, 박돌석은 상전에게 구타를 당해 죽임을 당한 후 자액으로 위장되었지만, <무원록> 덕분에 조액인 것이 밝혀진 것이다.
“그래 봤자 노비는 내 재산! 내가 어찌하든 상관없는 일이오!”
“그렇다면 왜 굳이 자액으로 위장을 한 겁니까?”
그러자 상전은 아무 말도 못 한다. 이유는 임금께서 하신 말씀 때문이었다.
“상주고 벌주는 것은 임금 된 자의 대권(大權)이건만, 임금 된 자라도 한 사람의 죄 없는 자를 죽여서, 선(善)한 것을 복 주고 지나친 것을 화(禍) 주는 하늘의 법칙을 오히려 함부로 하지 못하는 것이다. 더욱이 노비는 비록 천민이나 하늘이 낸 백성 아님이 없으니, 신하 된 자로서 하늘이 낳은 백성을 부리는 것만도 만족하다고 할 것인데, 그 어찌 제멋대로 형벌을 행하여 무고(無辜)한 사람을 함부로 죽일 수 있단 말인가. 구타하여 죽인 자는 장(杖) 1백 대의 형에 처하고, 죄 없는 노비를 죽인 자는 장(杖) 60대에, 도(徒) 1년의 형에 처하며 당해 노비의 처자(妻子)는 모두 석방하여 양민(良民)이 되게 한다.”
이러한 사실을 알고 있던 상전은 자신도 처벌받을 것을 염려해 자액으로 위장한 것이었다. 서인은 이 같은 사실을 밝히고 상전을 관아에 넘긴다. 그리고 초검을 오작인에게 시켰던 고을 사또도 찔리는 것이 있어 서인의 뜻에 따라 상전을 장 100대 형에 처하며, 사건을 마무리 짓는다.
그리고 며칠 후, 서인의 꿈속에 박돌석이 찾아온다. 그리고 술잔에 가득 술을 부어주며 미소를 짓는다. 서인은 사람의 목숨을 앗아갔는데, 고작 상전이 받게 될 벌이 장 60대, 100대밖에 되지 않는 것이 어이가 없다고 하자,
“노비의 억울한 죽음에 아무도 책임지는 자가 없었습니다. 비록 억울하게 죽임을 당하였지만, 사또 덕분에 원통함은 풀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억울한 죽음이 없는 그런 세상이 반드시 올 거라고 믿습니다.”
서인은 박돌석이 따라준 술을 마시고 잠에서 깬다. 동이 트지 않아 어두운 방 안, 서인은 만백성에게 ‘무원(無寃)’의 세상이 하루빨리 도래하기를 기원하며 그렇게 새벽을 맞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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