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정용연
창로가 돌아왔다. 겨울 해가 시커먼 산등성이 너머로 사라질 무렵이었다. 마부가 우렁찬 목소리로 일행의 도착을 알리자 가장 먼저 뛰쳐나온 이는 창로의 할아버지 김대락이었다. 햇볕에 그을리고 거뭇한 수염이 자란 창로가 기세 좋게 마차에서 뛰어내렸다.
“살아 돌아왔구나. 살아왔어.”
대락이 손자의 등을 세차게 껴안았다. 한 달이면 충분하다며 기세 좋게 떠난 아이는 두 달이 넘도록 소식이 없었다. 그사이 식구들은 항도촌에 정착했고 창로의 처는 아기를 출산했다. 아기는 집안의 기쁨이 되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가족들은 눈치껏 창로의 이름을 입에 올리지 않았다. 각자 머릿속에 나쁜 상황이 그려졌다. 대락의 부인은 그때 아이를 그렇게 보내는 것이 아니었다고 남편을 원망하였고 대락 또한 어린 손부에게 면목이 없었다. 만삭의 몸으로 만주까지 온 것도 모자라 도중에 남편과 헤어졌으니 안타깝고 애처로운 일이었다.
창로는 압록강을 건너 만주 단동에 도착하자마자 다시 조선으로 돌아갔다. 그것을 허락한 것이 대락은 내내 마음에 걸렸다. 나라가 백성의 안위를 걱정하고 보호해주던 시대는 이미 오래전에 사라졌고 상황은 더욱 나빠졌다. 조선 사람은 국적을 잃었다. 나라 없는 이들에게는 타국인 청나라도 위험했지만 고향땅은 더욱 그랬다.
전 재산을 처분하고 갑자기 사라진 대부호의 자제라면 더더욱 일본의 의심을 살터였다. 때가 되어도 돌아오지 않자 해괴한 소문이 대락의 귀에까지 이르렀다. 그 속에서 창로는 일본순사에게 잡혀 달아나다 맞아 죽거나 기차에 치여 죽거나 감옥에 갇혀 고문당했다. 귀를 닫아 걸어보아도 결국 똑같은 장면이 대락의 머릿속을 돌아다녔다.
그림 정용연
떠나오지 말았어야했다.
대락은 빈 방에 혼자 앉아 같은 문장을 속으로만 되뇌었다. 마음속의 생각이 발화되는 순간, 단어가 문장이 되어 세상 밖으로 이동하는 순간, 말은 정확히 자신이 갈 길을 향해 달려간다. 대락은 후회하는 두려움보다 결심이 끝내 실패로 가라앉고 말까봐 말을 조심했다. 만주로의 이주. 그것은 나중을 위한 양보였다. 나라를 되찾기 위한 힘찬 결의였다. 안동에서 유학자이자 대부호로 살던 대락이 전 재산을 처분하고 제 집을 떠나온 것은 이제 스무 살이 된 창로와 나중에 올 아이들을 위해서였다. 당장은 버틸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라 없는 아이들의 미래는 없다고 보았다. 대락은 69세의 늙은 노구를 이끌고 경의선 기차에 올랐다. 북쪽나라. 그 광활한 대지에서 자유를 향한 꿈을 펼치리라. 뜻 있는 자들을 모아 독립운동을 지원하고 내 나라를 되찾아 당당하게 다시 돌아오리라. 대의. 그것을 위해 고향을 떠나온 대락은 타지의 어느 촌가에서 무너졌고 손자에게 들켰다.
그게 다 이불 때문이었다.
신의주를 향해 달리던 경의선 기차는 도중에 대락의 가족만 내려주고 떠나갔다. 조선인의 이주가 잦아지자 신의주 쪽에서 검문이 강화되었다는 소식 때문이었다. 일정에 없던 백마역에 내렸을 때는 저녁 여덟시가 넘어있었다. 겨울밤은 캄캄했고 눈송이가 휘날렸다. 기차 안에서는 느끼지 못했던 겨울이 갑작스레 달려들었다. 역 근처 어딘가에 여관이 있을 것이라며 호언장담한 안내인은 자꾸만 말을 바꾸며 식솔들을 이리저리 끌고 다녔다. 대식구였다. 만주로 이주를 계획하면서 대락은 노비문서를 모두 불살라 노비를 양민으로 만들어주었다. 최씨와 양씨네 가족들은 자기들도 가겠다며 따라나섰다. 낯선 이국으로의 여행길에 대가족은 서로가 서로에게 기댈 수 있어 좋은 면도 있었지만 끼니때마다 여러 몫의 먹을 것을 챙기는 것도 일인데다 저마다 보행속도가 달라 이동이 느렸다.
창로가 보기에 여관은 애초부터 없어보였다. 작은 마을이었다. 제대로 닦인 길은 없었고 발 닿는 곳마다 얼음 밭이었다. 식솔들은 동상을 피하기 위해 그 자리에서 폴짝폴짝 뛰기 시작했다. 이가 저절로 딱딱 부딪쳐 소리를 냈고 어깨는 자꾸만 움츠러들었다. 두터운 누비옷을 입었는데도 차가운 바람 속에 눈송이가 끼어 들어왔다. 계속 이렇게 걷다가는 거리에서 얼어 죽을 판이었다.
“할아버님, 저기 불빛 보이시지요? 가까이 마을이 있는게 분명합니다. 어디나 사람 사는 정이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니 이방인이라 하여 매몰차게 쫓아내지는 못할 것입니다.”
창로가 앞장서서 걸어가자 나머지 식솔들이 뒤따랐다. 창로와 최씨가 짝이 되어 대가족 모두를 재워줄 집을 물색하기 시작했다. 불빛이 흘러나오는 곳이면 아무 집이나 문을 두드리고 사정을 이야기했다. 최씨가 옆에서 가격을 흥정했다. 그렇게 하기를 수차례 마침내 방 두 칸을 얻어냈을 때 대락의 발가락은 동상으로 얼어붙었다. 장거리 여행을 하기에 좋은 계절도 좋은 시절도 아니었다. 낯선 집에서 겨우 저녁을 먹고 자리에 누웠을 때 밖에서 새벽닭이 울었다.
닭 우는 소리는 어디나 같구나. 대락은 이불속에서 그렇게 생각하며 잠을 청했다. 옆자리에 누운 창로가 잠꼬대를 하며 모로 돌아눕자 이불이 훌렁 벗겨지며 창로의 몸에 돌돌 말렸다. 얇은 요에 등이 배겼고 이불은 턱 없이 모자라 두 셋이서 나누어 덮어야했다. 구들이 덜 데워진 탓에 방바닥은 찼고 손자가 끌어안은 이불을 다시 당기자니 체면이 안 섰다. 잠이 오지 않았다. 두 팔로 어깨와 팔을 감싸고 무릎을 가슴으로 당겼다. 늘 대자로 뻗고 자는 습관이 든 터라 문득 자신의 모습이 부끄럽고 창피했다. 대락은 다리를 주욱 뻗어보았지만 창호지 사이로 들어온 바람에 더는 버티지 못하고 다시 웅크렸다. 창로의 이불을 조심스레 끌어당겨 이불의 끄트머리에 자신의 오른발을 슬쩍 집어넣었다. 이불속에서 아이의 온기가 느껴졌다. 세 채도 되지 않는 이불속에서 식구들은 저마다 어깨를 겹치고 웅크린 채 잠들어 있었다. 바깥에서 윙윙 세찬 바람소리가 들렸다. 창호지 사이로 스며든 바람이 어린 손녀의 머리칼을 쓸었다.
다 가졌다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아무것도 없었다. 평생을 학문하며 살아왔다. 자신의 몸과 마음을 닦음으로써 남을 다스리고자 했다. 이상적 세상을 만들고자했다. 진리구현. 유림의 삶 속에 진리는 어디에 있던가. 허름하고 얇은 이불 밑에서 떠는 자에게는 어떠한 명분이 숨어있는가. 옆에서 자는 손자의 숨소리가 쌕쌕 거렸다. 작은 방에 다닥다닥 붙은 가족들에게서 열기가 나오고 있었다. 홑이불로 대충 덮은 몸들은 매순간 살아있음을 증거 했다. 몸과 몸 사이의 공간마다 숨결과 뜨끈한 온기가 들어차 있었다. 그 익숙한 몸들의 사이에서 대락은 왈칵 울음이 쏟아졌다. 그의 몸뚱이는 사람들에게 대의를 외치고 명분을 가르치는데 써왔다. 이제는 다른 몸뚱이들 속으로 들어가 섞이고 부딪치고 의지하며 살게 될 것이었다. 대락은 손자의 이불속으로 파고들었다. 그제야 몸이 뜨끈해졌고 잠이 왔다.
날이 밝자 창로는 자신은 국경을 넘기 전에 해야 할 일이 있다고 고했다.
“저는 다시 서울로 돌아가겠습니다. 두고 온 세간살이를 챙겨와야겠어요. 북쪽으로 올라갈수록 이불 한 채 값이 조선의 두 배가 넘는 답니다.”
창로의 입에서 이불 이야기가 나오자 대락은 얼굴이 화끈거렸다. 아이는 간밤에 할아비와 이불싸움 한 것을 아는 것일까.
“이불이야 정착지에서 돈을 주고 사면 될 것을. 네 아비도 먼저 길을 떠나는 바람에 흩어졌는데 너까지 잃을 수는 없다.”
혼자서는 여행하기 이른 나이였다. 늙은 할아비 대신 가장노릇을 해내는 모습은 기특했지만 아직은 어린애에 불과하지 않은가.
“아마 만주에 도착하면 값을 치른대도 구하지 못할 우리 물건이 많을 것입니다. 지금 찾아오지 못하면 때를 놓치고 말거예요. 이국땅에서 살아가자면 추억할 물건 또한 필요한 법이고 그것이 곧 버텨주는 힘이 되지 않겠습니까.”
창로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이치에 맞는 말이라 대락도 더는 반대하지 않았다.
값도 값이지만 고향에서 온 이불속에는 집 냄새가 날 것이었다.
창로는 알뜰한 살림꾼이었다. 마차는 낯익은 세간살이로 그득했고 그 안에는 미처 생각지 못했던 할아버지의 겨울신발과 고민 끝에 할머니가 벗어두고 온 털조끼가 포함되었다. 절반이 이불이었다. 부피와 무게 탓에 두고 온 것을 창로가 모조리 거두어왔다. 창로가 낑낑대며 이불 보따리를 나르자 대락이 옆에서 거들었다. 고향이 통째로 새 집에 들어오는 기분이 들었다. 그깟 이불이 뭐라고. 속으로는 그렇게 생각했지만 자꾸 웃음이 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대청에 들어서자 방안에서 아기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창로의 얼굴이 환해졌다. 뜨끈한 온돌에 누운 아기는 어머니의 젖을 빠는 중이었다.
“쾌당이라 지었구나. 우렁차고 힘이 있어. 삼 일간 진통하고 낳은 아이다. 네 할미가 삼신에게 비느라 손이 얼어 터졌었지. 이렇게 모자가 건강한걸 보니 조상님들이 멀리서도 아이를 돌보신 게지.”
창로는 몸을 낮추고 살금살금 아이에게 다가갔다. 가져온 이불을 자리에 펼쳤다. 요위에 누운 아이가 창로를 마주 보았다. 새카만 눈동자에 창로의 얼굴이 그대로 비쳤다. 분홍색 작은 손가락이 꼼지락거리며 다가와 창로의 검지를 잡고 빨았다. 증조할아버지는 솜이불을 아이의 발위에 덮어주었다. 이불에서 집 냄새가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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