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월로 접어들면서 볕 바른 자리에 눈 녹은 물이 질척거렸다. 낮게 엎드린 초가지붕에서도 고여 있던 지지랑물이 흘렀다. 바람이 가벼워지면서 사람들의 얼굴에는 발그레 혈색이 돌았지만 까맣게 입술이 탄 사람들의 눈빛은 두려움으로 차 있었다. 마을 사람들은 유난히 추웠던 지난겨울을 떠올리며 가볍게 몸을 떨었다.
“입춘이 지났어도 볕이 어린 계집애가 짠 무명처럼 거칠고 투박하게 닿는구나.”
마루 끝자락에 걸리는 햇빛을 밟고 선 김령(金坽)이 눈을 가늘게 뜨며 말했다. 요형(耀亨)이 한 걸음 뒤에 서 있다가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고는 “차츰 결을 찾겠지요.”하고 말을 끊었다. 요형은 아까부터 서쪽 언덕으로 눈길을 던져두고 있었다. 요형의 눈 끝에 증조부가 심었다는 감나무 두 그루가 허공을 향해 마른 가지를 뻗어놓고 있었다. 요형은 겨우내 감나무 가지 끝에 까치밥 서너 개가 별처럼 걸려 있던 것을 생각했다.
‘까치밥이 설을 넘기도록 남아 있다면 그해는 풍년이 든다고 했던가!’
설날 아침까지만 해도 단단하게 매달려 있던 까치밥이었다. 그러나 요형은 향교로 세배를 다녀오던 길에 문득 서쪽 하늘이 휑한 것을 깨달았다. 집을 나설 때만 해도 작은 등불처럼 매달려 있던 까치밥이 보이지 않았다. 언젠가는 땅에 떨어지거나 굶주린 새의 밥이 될 줄 알고는 있었지만, 막상 까치밥이 사라지고 나자 요형은 마음 한자리가 싸늘했다. 평소 같으면 그런 일에 애써 마음을 두지 않는 요형이었지만, 추운 겨울을 함께 견뎌온 까치밥이 사라지자 큰 상실감과 함께 알 수 없는 불안감이 닥쳤다.
“그깟 까치밥 때문에 대장부의 눈빛이 흐려지다니, 허 참.”
아버지 김령이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지만, 김령도 께름칙한 기분으로 마음이 불편했다. 설을 앞둔 어느 날, 안동의 손 씨 일가가 서북쪽 언덕에 투장(偸葬)을 한 것이었다. 그 바람에 마을 사람들 모두 뒤숭숭하게 설을 보냈는데, 최근 손흥겸(孫興謙)이 죽자 그의 묘를 또다시 서쪽 언덕에 쓰겠다고 기별해왔다. 그 일로 정월 초이튿날부터 문중 사람들의 회의가 계속되고 있었다. 손 씨 사람들에게 묘를 쓰지 말 것을 정중하게 부탁한 후, 집안의 종들을 보내 번갈아 서북쪽 언덕을 지키게 해두었다. 그러나 손 씨 일가가 밤중을 틈타 몰래 묘를 써버렸다.
“손 씨 사람들의 기세가 심상치 않습니다.”
“정중하게 부탁을 드렸는데도 투장이 가당키나 한 일이더냐. 소장(訴狀)을 내서라도 이 일은 반드시 바로잡아야 할 것이다. 수령이 불가하다고 경고를 했음에도 손 씨 사람들이 막무가내로 투장을 했으니 나라의 법도가 지엄하다는 것도 보여줄 필요가 있다.”
서쪽 능선으로 향하는 김령의 눈길이 파랗게 곤두섰다. 요형이 한 걸음 앞으로 나서며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서쪽으로 해가 기울고 있었다.
백호(白虎)의 기세로 마을을 지켜주던 서쪽 능선에 손 씨 묘가 들어서면서 마을에 좋지 못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었다. 겨우내 많은 눈이 내렸음에도 마을 우물이 바닥을 드러내면서 붉은빛을 띠었다. 서쪽 능선에 기댄 여염집에서는 닭들이 알을 낳지 못했고, 한겨울에 때 아니게 나타난 구렁이 때문에 사람들이 혼비백산하는 일도 있었다. 마을 사람들은 서넛만 모이면 모두 손 씨 무덤을 손가락질했다. 김령이 여러 차례 관청을 찾아다녔지만 투장 사건이 해결될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어르신, 큰일 났습니다. 손 씨 사람들이 지금……”
늙은 종 양금(良金)이 허연 입김을 뿜어내며 다급한 걸음으로 대문을 들어섰다. 양금의 이마에서 뜨거운 김이 피어올랐다.
“……돌과 흙을 져 나르고 있습니다.”
말을 마친 양금의 입술이 바르르 떨렸다. 김령의 어깨가 살짝 흔들렸다. 그 순간 요형은 태산처럼 여겨지던 아버지 김령의 어깨가 사태 나듯 와르르 무너지는 것 같았다. 요형이 양금에게 자세한 이야기를 재촉했다.
“봉분을 올리는 중입니다.”
양금의 말을 들으면서 요형은 무릎이 꺾이는 것을 느꼈다. 우려했던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남의 땅에 몰래 장사를 지내는 투장은 그 긴박함이나 비밀스러움으로 인해 투장 당시 봉분까지 올리는 경우는 드물었다. 일단 땅을 파고 관을 내려놓고는 거칠게나마 흙을 덮어두기만 하면 땅 주인이라고 해도 함부로 무덤을 파헤칠 수 없었다. 그런 탓에 파묘한 자리는 좋은 투장 장소가 되었다. 원래의 무덤이 옮겨가면서 파놓은 자리는 힘들여 땅을 팔 필요가 없었다. 투장 하는 사람들은 손쉽게 무덤을 쓰고는 손을 탁탁 털었다.
“이 사람들이…… 기어이……”
김령이 댓돌로 내려서면서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러는 사이 대문 밖으로 마을 장정들이 오십여 명이 모여들었다. 요형은 거무칙칙하게 뻗어 있는 감나무 가지로 눈길을 돌렸다. 지난겨울 까치밥이 매달렸던 자리를 눈으로 짚으며 요형은 그 자리가 꼭 백호의 별자리 가운데 하나인 묘수(昴宿)를 닮았다고 생각했다. 묘수가 백호의 몸을 이른다고 했던가? 그러나 정확치 않다고 요형은 생각했다.
“사람들이 지금 몰려가겠다고 저렇게 모여들었습니다.”
김령은 양금의 말뜻을 알아들었다. 아무래도 앞장을 서야 할 것 같았다. 요형이 손을 앞으로 모아 잡았다.
“아버님……”
“가자.”
김령이 굳은 얼굴로 무연히 하늘을 올려다보고는 짧고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웅기중기 둘러 서 있던 사람들이 김령의 뒤를 좇으며 서쪽 언덕으로 올라갔다. 위쪽에서 일꾼들이 힘쓰는 소리가 들렸다. 요형이 조심스럽게 입을 뗐다.
“아버님, 불미스러운 일이라도 벌어지면 큰일입니다. 차라리 제가 나서겠습니다.”
그러나 김령은 꼿꼿하게 목을 세우고는 한 치의 흐트러짐 없는 걸음으로 언덕을 올라갔다. 숲이 우거진 곳에는 아직도 잔설이 단단하게 남아 있었다. 저만치 손 씨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벌써 봉분을 반 넘게 올려놓은 상태였다.
“당장 멈추어라.”
김령이 허리를 꼿꼿하게 세운 채 호통을 쳤다. 그 바람에 흙을 져 나르고 봉분을 올리던 일꾼들이 일제히 손을 놓았다. 서로 눈길을 주고받더니 덩치 큰 장정 서넛이 김령을 향해 천천히 다가왔다. 요형이 김령 앞으로 한 걸음 나서며 만약의 사태에 대비했다. 마을 사람들이 진을 치듯 김령을 중심으로 간격을 벌려 펼쳐 섰다. 잠시 사나운 눈길이 오갔다. 그러다가 별안간 손 씨 일꾼 중 손이 솥뚜껑처럼 크고 검은 사내가 마을 사람의 멱살을 틀어쥐고는 끙, 하고 힘을 쓰며 저만치 내동댕이쳤다. 아이쿠, 나 죽네. 졸지에 일격을 당한 마을 사람이 허리를 부여잡고 주저앉았다.
“괜히 나서서 분란을 일으키지 마라. 저자들이 노리는 것이 그것이다.”
김령은 손을 들어 마을 사람들을 제지했다. 당장이라도 패싸움이 날 것처럼 일꾼들과 마을 사람들 사이에 긴장감이 돌았다. 서로 기세를 세우느라 눈을 부라리고 콧김을 씩씩댔다.
“저들이 노리는 바가 그것이니라. 싸움을 하게 되면 분명 송사를 걸어 일을 어렵게 만들 터이니, 함부로 나서서 빌미를 만들지 말라.”
마을 사람들이 주먹을 쥐었다 놓았다 하는 사이, 상복을 입은 손 씨 사람들 몇이 바위 뒤에서 몸을 드러냈다. 그와 동시에 일꾼들이 뒷걸음으로 물러났다. 김령은 한 발 앞으로 나서며 손 씨 사람을 향해 정중하게 말을 붙였다.
“수령이 분명 불가하다고 했음에도 이렇듯 무례를 자행하는 이유가 무엇이오? 나라에서 금하는 일을 벌이고도 뒷일이 무탈하기를 바란단 말이오.”
요형은 아버지 곁에 바짝 붙어 서서 손 씨 일가를 예의주시했다. 수령의 경고를 무시할 만큼 대담하고 무도한 사람들이라 무슨 짓을 할지 몰랐다. 상복을 입은 손 씨 사람들은 김령의 말을 듣고는 입술을 비틀어 물었다.
“지금 이렇게 몰려들어 패악질을 하며 망자를 욕보이는 짓을 서슴지 않는 당신들이야말로 어찌 무탈하기를 바란단 말이냐?”
상주로 보이는 젊은 사내가 삿대질을 하며 언성을 높였다. 그리고는 입고 있던 상복을 자기 손으로 북북 찢어댔다. 그러자 다른 사람들도 상복을 쥐어뜯으며 아이고, 하며 곡을 시작했다. 상주가 곡을 하자 일꾼들은 쌓던 봉분을 다시 파헤치며 돌과 흙을 사방으로 흩뿌려댔다. 김령과 마을 사람들은 느닷없는 사태를 바라보며 어찌할 바를 몰라 주춤주춤 뒷걸음을 놓았다.
“저 사람들이 떼로 달려들어 상복을 찢어발기고 무덤을 파헤친다. 천지가 두렵지 않고서야 사람의 탈을 쓰고 어찌 극악한 패륜을 저지를 수 있단 말인가.”
손 씨 사람들이 입을 모아 합창을 했다. 그리고는 상주들이 타고 왔던 말에 올라 내달렸다. 그들은 일부러 상복 자락을 찢어발기며 큰 마을을 돌며 “오천(烏川) 양반이 친히 종들을 거느리고 무덤을 파헤쳤다. 그 패악한 무리들에게 맞아서 옷이 이렇게 찢어졌다.”라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댔다.
“아버님, 저들의 계략에 말려들고 말았으니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요형이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마을사람들이 김령 곁으로 모여들었다. 김령은 함부로 파헤쳐진 무덤을 두려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일꾼들도 어딘가로 모두 흩어지고 없었다.
“천지가 무심하지 않은데 무슨 일이야 있겠느냐.”
김령이 끙, 하고 된숨을 쉬고는 성큼 걸음을 내디뎠다. 마을 사람들이 주춤거리며 길을 터주었다. 요형은 아버지 뒤를 따를까 하다가 몸을 돌려 파헤쳐진 손 씨의 무덤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일꾼들은 약속이나 한 듯 평토까지만 헤집어놓았을 뿐 더는 파헤치지 않았다. 요형은 손 씨 일가의 치밀한 계략에 혀를 내두르면서, 혹시나 이번 일로 김 씨 문중에 대한 세간의 인심이 나빠질 것을 걱정했다.
해가 기울면서 숲으로 어둠이 스며들었다. 요형은 조금씩 몸을 덮어오는 어둠을 바라보았다. 죽음이 이렇지 않을까? 요형은 생각했다. 하루가 저물어가듯 한 생애도 이렇게 어둠의 한 가운데로 스며들 것 같았다. 마침내 어둠이 숲을 가득 채우자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았다. 우람한 나무가 하늘을 가린 탓에 달빛 한 점 스미지 않았다. 숲이 무덤 속 같았다. 눈을 감아도 눈을 떠도 온통 어둠이었다. 그때 까마귀 한 마리가 까악까악 울며 어둠의 골짜기로 날아갔다. 요형은 까마귀 날아간 자취를 더듬듯 허공으로 눈을 들었다. 저만치 손바닥만큼 터진 하늘로 겨우내 감나무 가지에 매달려 있던 까치밥처럼 별 몇 개가 보였다. 묘수라……. 요형은 뒷골이 서늘해지는 것을 느꼈다. 별이 선 자리가 머지않아 큰 변괴가 일어날 조짐처럼 보였다. 요형의 직감은 한 달 만에 현실이 되었다. 감나무 가지에 새잎이 돋고 감꽃이 하얗게 맺히던 3월 어느 날, 능양군이 광해군을 몰아내고 왕위에 등극했다.
오랜 세월이 흐른 후, 요형은 해갈이를 하느라 감이 하나도 맺히지 않았던 계해년 그해를 생각했다. 그리고는 광해군 15년이라고 썼던 일기의 간기(刊記)를 먹물로 지우고는 인조 1년이라고 새로 써넣었다.
시기 | 동일시기 이야기소재 | 장소 | 출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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