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23년 3월 5일 경상북도 종사관(從事官)으로 근무하던 김자중(金子中)의 아들 곡(?)은 예안현 김령의 집을 찾는다. 아버지의 편지를 가슴에 품고. 그러나 한식제와 또 다른 제사가 겹쳐 김령이 출타 중이었기에 김곡은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1616년 8월 24일 경상북도 예안의 김택룡의 서재에 비단을 곱게 입혀 장황(裝潢)을 마친 책이 도착했다. 지난 5월 김택룡은 당나라 시대에 인쇄된 《통감(通鑑)》, 《송감(宋鑑)》, 《성리대전(性理大全)》등 40여 책을 도산면에 사는 이운에게 보내어 장황을 맡겼다.
대구 달성에 사는 젊은 선비 서찬규는 어려서부터 책을 읽고 삶의 이치를 논하기를 좋아했다. 22세인 1846년에 진사에 올랐으나 벼슬을 버리고 오로지 자신을 수양하고 학문을 탐구하는 데 온 힘을 쏟았다. 더욱이 이 시기의 조선은 서양의 사상과 문물이 유입되면서 사회적으로 큰 변화와 혼란의 시기를 맞이하고 있었기에
충청북도 옥천에 살던 김교준은 몇 년째 작고 낮은 책상 앞에 다리를 접고 앉아 허리를 숙이고 책만 보았다. 그는 책을 볼 수 있음에 행복해하며 독서에 매진하였다. 그러나 스물셋이 되던 해에 그에게 이상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