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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로 본 역사이야기

<血의 淚 (혈의 누)>를 흘리는 자 누구인가

홍윤정


왜 나는 갑자기 인터넷 포털 검색란에 ‘억울해서 못살겠다’를 치게 되었을까. 아무튼 ‘억울해서 못살겠다’ 여덟 글자를 치자 수많은 기사와 사진들이 주르르 올라왔다. 지난 지방선거 때 네거티브 선거운동에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하는 광역단체장 당선인부터, 재벌 사모님의 갑질에 인간 이하의 취급을 당하며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인 사람들, 분명 시작은 미투운동이었는데 결국 누가 가해잔지 피해자인지조차 알 수 없게 된 어지러운 상황 속의 남과 여, 각종 범죄의 피해자들은 물론이고, 심지어 온 나라를 들었다 놨다 한 최순실씨조차 ‘억울해서 못살겠다, 빨리 사형시켜 달라’고 울부짖을 정도니 온 나라 안에 억울하지 않은 사람이 과연 있기나 한 건가 싶다.

여기서 우리에게 익숙한 장면 하나를 상상해보자.
새로 부임한 젊은 사또의 첫날밤이다. 이 사또, 잠도 자지 않고 밤이 이슥하도록 등잔불을 켜고 책을 읽노라면 갑자기 어디선가 휘이잉 바람이 불어오며 등잔불이 꺼진다. 그리고는 끊어질 듯 이어지는 곡소리와 함께 스르르 방문이 열리며 소복을 입고 머리를 풀어헤친 여자가 나타나 “사또오, 억울하옵니다아, 사또오~” 하고 호소하는 바로 그 장면 말이다. 주로 전설의 고향에서 많이 보았던 그림이다. 억울함의 강도가 센 귀신의 경우 피눈물까지 흘리고 있으니 여기서 심장이 약하거나 지병이 있거나 연로한 사또는 바로 황천길행이다. 하지만 우리의 주인공 사또들은 “사람이냐 귀신이냐, 사람이면 모습을 드러내고 귀신이면 썩 물렀거라!” 호령을 한다. 그러나 귀신들은, 귀신 주제에 물러가지도 아니하고 줄줄이 자신의 억울한 사연을 호소한다. 물론 사또는 이들의 말을 끝까지 들어준다. 기민한 수사를 통해 가해자를 밝혀내 엄중 처단하고, 피해자의 억울함을 해소해준다. 그리고 이런 극의 마지막 장면엔 으레, 어딘가 묻혀있는 피해자의 시신을 발구해 양지 바른 곳에 묻어주고 제를 올린다. 그리고 그 시신은 그때까지, 원한으로 인해 조금도 부패하지 않았다는 게 공식이다.


<전설의 고향>은 한반도 지역에 걸쳐 전해지는 전설, 민간 설화 등을 바탕으로 KBS 드라마 제작국에서 제작된 고전형식의 공포드라마다. 1977년부터 1989년까지 총 578부작이 제작‧방영되었다. 1977년 <전설의 고향> 메인화면(좌)과 당시 ‘구미호’편에 출연한 한혜숙(구미호 역)의 모습 ⓒKBS


이렇게 다양한 억울한 사연을 들어주고 해결하는 주체는 원칙적으로 지혜로운 왕이다. 왕이 모든 백성의 원한을 풀어줄 수 없으니 그 일을 대신 맡아줄 이가 필요하다. 이들은 주로 관리, 수령들이며 때로는 암행어사가 등장하기도 했다. 그러나 제아무리 지혜로운 이라 할지라도 객관적 검증 없이 사건 해결은 불가능한 법. 그래서 이제는 미디어에서도 사건 해결을 다루는 방법의 변화가 눈에 띈다. 원혼이 직접 자신의 사연을 줄줄이 읊어대는 ‘호러’의 시대에서, 검시대 위에 누운 시신의 흔적에 따라 사건을 해결하는 ‘미스터리, 스릴러’의 시대로 변화한 것이다.


MBC드라마넷에서 2007년 방영한 <조선과학수사대 별순검>(시즌1) 검시장면.
ⓒMBC드라마넷


검시 장면이 시청자들의 눈에 인상적으로 기억되기 시작한 드라마는 아마도 2003년의 MBC 드라마 <다모>가 아닐까 싶다. 이후 2005년, <조선과학수사대 별순검(이하 별순검)>이라는 시리즈물이 등장하면서 이제는 사극에서의 검시 장면은 더 이상 특별한 장면이 아니게 되었다. 특히 별순검의 검시 장면은 미국 드라마 CSI 만큼은 아니더라도 제법 정교한 CG를 사용하여 더욱 흥미로운 볼거리를 제공해주고 있다. 순검들도 각자 분담된 역할이 있다. 지휘관이 있고, 행동이 민첩한 순검과 머리가 좋은 순검, 넓은 인맥이 자랑인 순검이 있다. 증거분석을 하는 순검 듀오와 검시관까지 완벽한 호흡을 자랑하며 매회 사건을 해결해나간다. 별순검이 미국 CSI와 다른 점이라면 역시 한국인의 정서를 대변하는 ‘보통 사람들의 억울함’에 천착하고 있다는 것이다. 별순검의 등장인물들은 백정, 과부, 객주, 궁녀, 고리대금업자, 선비와 고관대작에 이르기까지 매우 다양하다. 가난하고 못 배운 백성들은 ‘선’, 가진 자 혹은 양반들을 ‘악’으로 규정하는 데서 벗어나, 각자의 상황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저지른 범죄를 보여준다. 빈부귀천을 막론하고 인간의 본성은 결국 비슷하다는 깨달음과 함께.

조재호의 ‘영영일기(嶺營日記)’를 보면 조선 시대의 사법제도와 법의학의 일면을 엿볼 수 있다.

1751년 7월 10일, 지난 윤5월 24일에 독용산성별장(禿用山城別將) 박문두(朴文斗)가 소장한 놋그릇 등의 물건을 다수 도둑맞은 뒤에 성 아래에 살고 있는 유기장인 조수업의 행동거지가 의심스럽다고 하여 잡아 와서 가두는 일이 발생하였다. 같은 달 29일 곤장 10대를 때려 풀어 보냈는데 곤장을 맞은 조수업이 다음 날인 30일에 죽으니, 그의 동생 조대만(趙大萬)이 소장(訴狀)을 올려 관청에 고발하였다. 초검(初檢)과 복검(覆檢)에서는 실인(實因)이 모두 곤장을 맞았기 때문이라고 기록하였는데 가족들의 이야기를 종합하여 보면 본래 지병이 있는 데다 곤장 10대를 맞고 관아 문을 나서다가 넘어져 가슴을 다치면서 죽게 된 것이다. 당초에 도둑맞은 물건에서 이미 찾아낸 장물(贓物)이 없는데, 별장이 그의 행동이 의심스럽다는 이유만으로 곧바로 곤장형으로 처단한 것은 법에 어긋나는 일이다. (중략) 이에 조재호 경상감사는 독용산성별장 박문두를 먼저 파면하여 쫓아내고, 그가 가지고 있는 인신(印信)은 독용진(禿用鎭)의 절제사(節制使)인 성주목사 신준에게 이첩시켰으며 임시 별장을 차송(差送)하여 성을 지키게 하였다는 것을 장계로 보고하고 있다. 또한 박문두의 죄상을 형조(刑曹)에서 처리하도록 의뢰하였다.



죽은 조수업은 복검을 거쳐 사인이 곤장 때문임이 밝혀졌다. 곤장을 때린 이야 10대가 죽을만한 횟수가 아니라고 항변했겠지만, 조수업이 평소 가슴의 울혈 같은 지병이 있었다는 것이 가족들에 의해 밝혀졌다. 허약한 조수업으로서는 곤장 10대도 치명적이었다. 이렇게 의심스러운 사안에 대해서는 초검, 복검, 삼검까지 거치게 되는데, 때로는 이미 장례를 치른 사람의 묘를 파헤쳐 다시 시신을 꺼내 검시하는 경우도 있었다. 정약용의 [흠흠신서]에서는, ‘평산 박조이 살인사건’을 예시로 다루고 있다. 재검에서조차 자살로 판명 난 사건을 정조가 보낸 암행어사 이곤수가 다시 수사해 ‘타살’로 뒤집게 된 사건이다.

2016년 방송된 드라마 <옥중화>는 살인사건의 피의자로 누명을 쓴 등장인물이 ‘복검’을 통해 누명을 벗게 되는 과정이 잘 드러나 있다. 옥중화는 옥에서 태어난 영특한 소녀 ‘옥녀’가 옹주의 신분을 되찾기까지의 파란만장한 행로를 그리고 있는데, 옥녀는 단순히 옹주로의 신분 상승에 행복해하는 신데렐라가 아니다. 의금부 옆의 중앙감옥인 ‘전옥서’에서 태어난 옥녀는 그곳에 수감되어 있는 죄수들 중 숨은 고수들을 만나게 된다. 그리고 그들을 친구로 혹은 스승으로 삼아 천재성을 발휘하게 되는데, 글과 무술, 주역은 물론 장사 감각까지 익혀, 훗날 이복오빠로 밝혀지는 명종을 돕는 인물로까지 그려진다. 흥미로운 것은 옥녀가 ‘외지부’로 활동하는 에피소드다. 오늘날의 변호사에 해당하는 외지부는 소송을 끔찍이도 터부시하는 조선의 분위기 때문에 그리 양성화되지 못했고, 특히 관직을 가진 사람은 외지부가 될 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옥녀는 전옥서에서 자신을 키워준 양아버지 지천득을 구하기 위해, 소격서 일까지 그만두고 기꺼이 외지부를 자임한다. 지천득은 이미 살인사건의 피의자가 되어 참형을 선고받은 상황. 옥녀는 이 사건을 형조로 가져가 새로운 증거를 통해 지천득의 무죄를 입증하려 한다. 여기서 가장 어려운 대목이면서 가장 필요한 것이 시신의 재검시였다. 하지만 이미 시신은 장례까지 치러진 상황이었다. 옥녀는 무덤을 파헤쳐 시신을 재검시 해달라 당당하게 외치고, 그녀의 청이 받아들여져 복검이 치러진다.

시신의 입에 백반을 넣어 검시한 결과, 지천득의 칼에 자상을 입고 죽은 것으로 결론이 난 초검을 뒤엎고, 사인은 독살로 밝혀진다. 재판관인 형조 참의는 포도청 종사관이 지천득에게 갖다 씌운 죄명들이 하나만 빼고는 전부 사실이 아님이 밝혀졌다고 하면서 죄의 경중이 분명치 않을 때는 가벼운 죄를 적용한다는 ‘죄의유경(罪疑惟輕)’에 따라 판결을 한다. 참형을 면한 지천득은 옥녀와 얼싸안고 기쁨의 눈물을 흘린다.


2016년 MBC에서 방영한 드라마<옥중화> 중 참형을 면한 지천득(정은표)과
옥녀(진세연)이 얼싸안고 있응 장면. ⓒMBC


이 장면 후에 이어진 형조참의의 대사는 이러하다.

“한 가지 더. 나는 이번만큼 포도청의 무능이 드러난 사건을 보지 못했다. 포도청은 제대로 된 증좌를 확보하지 못했고, 수사가 끝나지 않은 사체의 장례를 치르게 했다. 해서 이번 사건을 이끈 종사관에게 그 죄를 물어 전라감영의 판관으로 그 직을 강등한다. 포도청은 반드시 이번 사건을 면밀히 재조사하고 조사를 방해하고 끔찍하게 진수명을 살해한 범인을 밝혀 내거라!”

비록 드라마지만 이 순간 느껴지는 카타르시스는 제법 크다. 이런 쾌감은 영화 <조선명탐정> 시리즈에서도 맛볼 수 있다. 임금이 직접 임무를 하사한 탐정 김민(김영민)이 백성(이 시리즈에서는 특히 연약한 여자나 어린아이가 피해자로 곧잘 등장한다)의 억울함을 풀어주기 위해 서필(오달수)과 콤비를 이루어 종횡무진 뛰어다니며 사건을 해결한다. 뒷맛까지 산뜻한 완벽한 해결이다.

반면 영화 <혈의 누>의 주인공 군관 이원규(차승원)는 ‘장부의 명예는 목숨보다 중하다’며, 진실을 밝히기 위해 애쓰지만, 그 진실의 칼끝이 자신의 아버지를 겨누게 되자, 결국 자신의 신념을 바다에 빠뜨려버리고 만다. 동화도에서 일어난 사건을 해결하는 방법으로 시종일관 ‘과학수사’를 신봉했던 그가, 죽은 원혼이 내린 듯한 핏빛 비를 맞고 혼란에 빠지고, 결국은 전근대성, 야만성으로 회귀한 것이 아닐까. 그 결론이 더욱 씁쓸했던 이유는, 이원규의 모습이 우리에게 너무도 익숙했기 때문이다.

억울한 이들이 기댈 최후의 보루라 할 수 있는 사법부가, ‘재판거래’ 논란으로 시끄럽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대법관들이, 재판거래는 없었다는 셀프결론을 내놓은 것이 참으로 흥미롭다. 자신들 외에 그 누구도 자신들의 잘잘못을 논할 수 없다는 그들의 오만은 필연적으로 누군가의 피눈물을 전제로 한다. 그리고 어쩌면 그건 신의 눈물일지도.





작가 소개

홍윤정
홍윤정
1999년에 KBS 시트콤 작가로 데뷔, 드라마와 시나리오 작가로 활동 중이다.
대표작은 영화 <수상한 그녀>, <반창꼬>, <블랙가스펠>, <최강로맨스> 등이며, <수상한 그녀>로 춘사영화상 각본상을 수상했다.
“기질이 억세고 싸움하기 좋아하는 안음현에서 살인사건이 나다”

조재호, 영영일기, 1751-06-18 ~

1751년 6월 18일, 오후 3~4시경 안음현(安陰坼) 고현면 기찰(譏察)인 김태건(金太巾)과 북리면 기찰인 구운학(具云鶴)이 살인사건이 났음을 신고하였다. 그들의 말에 의하면 도기찰(都譏察) 김한평(金漢平)과 사후(伺侯) 김동학(金東鶴)과 더불어 지대면(知代面) 수망령(水望嶺)을 넘어 관가(官家)에 들어오던 중, 행차가 장수사(長水寺) 뒤에 이르렀을 때에 갑자기 도적 10여명이 불쑥 나타나 도기찰과 사후를 난타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김태건과 구운학 두 사람은 몸을 피해 달아나 사건을 고할 수 있었으나, 아마도 그 사이에 도기찰 등은 분명히 운명할 지경이 되었을 것이라고 말하였다. 이 말을 들은 안음현감은 매우 놀라 위의 변고(變故)를 고한 김태건과 구운학 등을 우선 잡아가둔 후에 사실을 조사하기에 이른다. 한 명도 아니고 두 명이 함께 죽은 데다, 죽은 사람이 민간인이 아닌 군관인 도기찰이란 점에서 예사롭지 않으며, 더욱이 도적 10여 명이 출몰하였다 하니 큰 사건으로 예상되는 것이다.

“은비녀와 흰밥을 이용해 시험하니 독살은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조재호, 영영일기, 1751-06-19 ~

1751년 6월 19일, 검시결과 김한평(金漢平)과 김동학(金東鶴) 두 사람 모두 시험으로 은비녀를 사용하니 비녀의 색깔이 변하지 않았다. 또한 흰밥 한 덩어리를 입 안에 넣었다가 도로 꺼내어 닭에게 먹였는데 닭이 또한 죽지 않았다. 이것으로 보아 독살은 아니라는 것이 밝혀졌다.

“신주무원록에서 밝힌 격식에 따라 시장에 검시 내용을 기록하다”

『신주무원록』
(출처 :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재호, 영영일기, 1751-06-19 ~

1751년 6월 19일, 처음에 덮었던 포대 2장을 제거하니 다음으로 베적삼 하나, 다음으로 무명 바지 하나 등의 옷이 입혀져 있었다. 머리를 동쪽으로 하고 발을 서쪽으로 하고 전면(前面) 이 되도록 눕히고는 오작(件作) 양인(良人) 하순걸(河順乞)로 하여금 차례차례 벗기고 돌려 눕혀 법물(法物)로 몸을 씻기게 하고 여러 가지 사항을 검시하였다.
나이는 35, 36세가량 남자. 신장이 5척이고 머리털 길이가 2척이고 두 눈이 반쯤 열렸고 입이 반쯤 열렸고 혀가 이[齒] 밖으로 나오지 않았고 온몸에 색깔이 엷은 황색이다. 두 손은 조금 쥐었고 두 다리는 곧게 뻗었고 음경[莖物]과 음낭[腎囊]은 아래로 늘어졌다.
전면[仰面]의 상처는, 머리 부분 오른쪽에 칼자국이 있는데 길이가 1촌 1푼이고 넓이가 3푼이고 깊이가 2푼이고 혈액이 흐르고 부드럽다. 이마(顖門) 두 곳에 피부 찰과상이 있는데 색깔이 자줏빛이고 모양이 작은 팥알 조각 같고 매우 단단하다. 눈썹[眉叢] 왼쪽에 피부 찰과상은 색깔이 자줏빛이고 부드럽다. 오른쪽 눈꺼풀[眼胞]에 찰과상이 있는데 사선의 길이가 2푼 5리이고 넓이가 7리이고, 색깔이 자줏빛이고 부드럽다. 왼쪽 눈동자[眼睛] 아래에 찰과상이 있는데 사선의 길이가 3푼이고 넓이가 2푼이고 색깔이 자줏빛 이고 매우 단단하다. 위아래 입술[脣]은 조금 부었고 색깔이 엷은 청색이고 부드럽다. 왼쪽 아랫입술 아래에 찰과상이 있는데 길이가 6푼이고 넓이가 1푼이고 색깔이 조금 검붉고 매우 단단하다. 아랫입술 아래는 많이 부었고 색깔이 엷은 청색이고 부드럽다. 오른쪽 결분 뼈[缺盆骨]에 피부 찰과상 한 곳이 있는데 직경이 4푼이고 색깔이 엷은 검은색이고 매우 단단하다.

“살인사건이 나면 관할 수령과 인근 수령이 직접 시신의 검안을 실시한다”

『검요』
(출처 :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재호, 영영일기, 1751-07-10 ~

1751년 7월 10일, 성주목(星州牧)에서 죽은 유기장(柳器匠) 조수업(趙守業)의 시신(屍身)을 관할 수령 성주목사(星州牧便) 신준(申晙)이 초검(初檢)을 실시하였으며, 인근 수령인 고령현감(高靈縣單) 정창유(鄭昌兪)가 전례대로 복검(勸僉)을 실시하였다. 그 결과를 전임 경상감사(前慶尙監司) 민백상(閔百祥)이 이임(離任)하여 올라가는 길에 보고하였으며, 또 신임감사 조재호가 부임한 초에 등본(謄本)으로 하여 보고하고 있다.

“말도둑과 도둑을 죽인 자, 누구의 잘못이 더 큰가?”

김택룡, 조성당일기
1616-07-11 ~ 1616-07-14

1616년 7월 11일, 택룡의 큰 아들 김숙이 ‘말도둑 사건’ 처리 문제로 다시 관아에 들어가 현감을 만났다. 그리고 잡히는 과정에서 막복이 쏜 화살에 상처를 입었던 춘금이가 밤사이 숨을 거두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미 현감은 춘금의 어미와 친족들을 모두 불러 이 사실을 전달하였으며, 관찰사에게 보고할 준비를 갖추고 있었다. 김숙은 일이 간단치 않음을 직감하고 현감을 설득하려하였으나 그는 고집을 꺾지 않았다. 달리 방도가 없어 이 날은 그냥 돌아와 아버지인 택룡에게 걱정만 늘어놓았다.
다음 날 택룡의 큰 아들은 수심에 찬 채로 다시 현감을 만나러 갔다. 현감은 더 강경하게 나왔다. 활을 쏜 막복을 살인자라고 감옥에 가두고, 이웃의 영천 군수에게 춘금의 검시까지 요청하였으며, 관찰사에게 보고해서 처리하겠다고 하였다. 말도둑 사건은 관심이 없고, 춘금의 죽음을 살인 사건으로 몰아 법적 절차대로 해결하려 했다. 택룡의 큰 아들이 수 차례 설득하고 상황을 설명했지만, 현감은 듣지 않았다. 결국 이 날도 합의를 보지 못했다. 택룡과 그의 큰 아들은 다른 대책을 세워야만 했다.

“노비를 죽인 것은 재산을 줄인 것이니 살인죄에 해당하지 않는다”

자매문기(自賣文記)
(출처 : 세계유교문화재단)

조재호, 영영일기, 1752-03-17 ~

1752년 3월 17일, 진주(晉州)의 토호(土豪)인 하수륜(河壽崙)이 병인년(1746) 2월 17일 밤에 그의 계집종 만단(萬丹)의 남편인 유대은악(劉大隱岳)을 구타하여 그 자리에서 죽이고 시신의 목을 매달았다가 만단의 방 안에다 끌어다 두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그러다가 유대은악의 형인 유봉안(劉奉安)의 고소장으로 인하여 전례에 따라 사건의 진상이 밝혀진다. 그러나 유대은악은 노비로서 주인이 식구를 줄이려 계획한 것이니 하수륜의 죄악은 전례에 따르면 살인(殺人)은 될 수 없고 독란(瀆亂)의 죄에 해당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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