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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로 본 역사이야기

인싸 코레아

지금은 연락이 끊어졌지만 내게도 일본인 친구가 있었다. 첫 아이를 낳은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남편 회사에서 부부동반으로 함께 떠난 여행에서 만난 50대의 부부로, 나는 그들을 ‘신타쿠상’이라 불렀다. 아내 되는 분은 미국에서 유학한 경험이 있어 영어도 유창했고, 당시 나보다 20년 이상 연장자였지만 매우 예의 바르고 이야기도 잘 통해, 서로 각각의 나라에 돌아와서도 연락을 주고받았다. 신타쿠 부인은 나와 어린 딸을 위해 잔잔한 꽃무늬의 커플 내복이라든지 테디베어 인형같이 센스있고 정성 어린 선물을 준비해 보내주기도 했다. 남편이 일본에 출장 갔을 때나, 그들이 우리나라에 방문했을 때 함께 식사도 했다. 한복에 관심이 많다는 말에 신타쿠 부인을 위한 한복을 구입해 보냈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조금씩 친분이 쌓여가면서, 참 괜찮은 사람들이구나 생각했던 것 같다.

요즘 같은 때에 종종 신타쿠 부부가 생각나곤 한다. 일본과 우리나라의 정치적 관계가 어떻게 되든 나와 그들의 관계는 변하지 않을 것이다. 사실, 사석에서 중국이나 일본인들을 만나면, 우리와 생각보다 훨씬 많은 부분에서 정서적 공감대를 느낄 수 있다는 데에 놀라곤 한다. 어쨌든 우리나라와 중국, 일본의 관계는 아주 오래전부터 끈끈한 애증으로 얽히지 않을 수 없었다.

새로운 세상은 결국 새로운 사람을 만남으로 해서 열린다. 혀로 맛본 좋은 음식, 눈으로 보았던 좋은 광경은 소화되어 없어지고 기억에서 사라져도, 내 인생에서 만난 누군가에게 받았던 좋은 느낌과 자극은 뇌리에 남아서 나라는 사람의 무엇인가를 변화시키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자극은 아무래도 같은 지역의 같은 문화를 소유한 사람들보다, 전혀 다른 낯선 환경, 낯선 문화의 사람들에게서 받는 것이 크다. 그래서 젊은이들에게 여행을 권장하는지 모르겠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나오는 우리나라의 과거 모습은 폐쇄적이거나, 주변국에 고초를 당하는, 주로 피해자의 이미지일 때가 많다. 그러니까 사람으로 표현하면, 교실에서 항상 말도 없고 조용하지만, 예의범절 잘 지키며 공부 잘하는 아이인데, 불량스럽고 체격 좋은 동급생이 툭툭 건드리면 아프다 소리도 제대로 못 해보고, 마음 한구석에 분노만 간직한 채 매점에서 빵을 사다 불량 친구에게 고이 갖다 바치는, 소위 빵셔틀인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가 늘 그랬던 것만이 아니다. 자존감을 포기하지 않는 빵셔틀이 아니라, 복도를 지나가면 모두가 친해지고 싶어 말을 걸고, 친구들끼리 싸우면 그 아이들을 “이리 나와!” 불러 화해도 도맡아 시키고, 파티도 열고 하는 소위 ‘인싸’(아웃사이더의 반대말로 인기 좋은 중심인물)이기도 했다는 뜻이다. 그리고 그런 이미지를 상징하는 장소가 바로 벽란도다.

벽란도는 알다시피 고려의 국제 무역항이다. 교과서에서 배운 것처럼, 우리나라가 처음 ‘코레아’로 불리게 된 장소이기도 하다. 고려가요 쌍화점에 나오는 ‘회회아비’가 쌍화(만두 혹은 증편)를 팔던 곳이 벽란도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글로벌, 세계화를 부르짖는 지금보다 훨씬 더 국제화 된 곳, 이 벽란도는 영화나 드라마 속에 종종 등장한다.


영화 <해적, 바다로 간 산적> 포스터, 2014


2014년에 나온 영화 <해적 – 바다로 간 산적>의 주 무대가 바로 벽란도다. 명나라에서 내린 조선의 국새를 고래가 삼켜버렸다는 상상력에서 출발한 이 영화는, 바다 위에서 벌어지는 시원한 액션과 더불어, 여름방학 특수를 맞아 866만을 동원했다. 특히 산이 주 무대인 산적들이 생전 본 적도 없는 바다에서 싸우기 위해 ‘음파음파’하며 수영을 연습하는 장면은 많은 이들의 웃음을 자아냈다.

이 영화에서의 벽란도는 이국의 많은 상인들이 모여 산처럼 물건을 쌓아놓고 시끌벅적 자유롭게 장사를 하는 모습인데 CG로 구현된 코끼리와 기린, 고릴라의 모습까지 보인다. 혹자는 이런 장면이 고증 덜 된 퓨전 사극을 보는 듯한 느낌이겠지만, 실제로 벽란도가 이보다 더 자유롭고 국제적이었을지, 누가 알겠는가.


영화 <해적, 바다로 간 산적> 속 벽란도의 모습


이 벽란도는 고려 광종 시기 후주에서 귀화한 쌍기의 건의로 만들어졌다는 설이 있다. 하지만 이렇게 외국 출신이 우리나라의 중요한 인재로 쓰이는 경우는 흔치 않았다. 장영실 역시 그 아버지가 원나라에서 귀화한 사람이었다. 관기와 결혼해 낳은 아이가 장영실이었기 때문에, 관노로 키워졌다. 일찍이 탁월한 재주를 인정받아 한양에 가서 일했고, 세종 3년, 북경에 가서 관성대(13세기 원나라 곽수경이 만든 동양 최대의 천문대)를 둘러보고 와서, 이 경험을 바탕으로 많은 천문기기를 제작할 수 있었다. 세종이 장영실에게 벼슬을 내리려 하자 ‘천출’이라는 이유로 수많은 반대에 부딪혀야 했다. 그럼에도 세종은 그를 끝내 면천시키고 궐에서 자신의 재능을 맘껏 펼칠 수 있도록 해주었다. 장영실이 수시로 명나라를 오가며 새로운 과학기술을 흡수하고 이를 적용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세종이라는 든든한 지원자가 존재했기 때문이다. 곧 개봉하는 영화 <천문>은 세종과 장영실의 이런 특별한 관계를 다루고 있다.


영화 <천문, 하늘에 묻는다> 포스터, 2019


2009년에 방송된 드라마 <탐나는도다>는 금발, 벽안의 영국청년 윌리엄이 제주 바다에 표류하게 되면서 일어나는 일들을 다루고 있다. ‘하멜표류기’를 참고한 정혜나 작가의 동명만화를 원작으로 하다 보니 상황, 이름, 설정 등이 만화적이다. 특히 주인공 윌리엄 스펜서가 과도한 오리엔털리즘에 푹 빠지다 못해, ‘요강’을 신비한 도자기라 믿고, 알고 싶어 하는 부분부터 그렇다. 드라마는 처음부터 끝까지 경쾌하고 상큼하다. 그러나 안에 담긴 이야기들은 가볍지 않다.


MBC 드라마 <탐나는도다>, 2009


윌리엄, 조선 해녀 버진, 거만한 선비 박규의 삼각관계나, 너무도 다른 윌리엄과 박규가 서로 이해하고 친구가 되어가는 과정, 제국주의 첨병인 네덜란드 동인도회사의 함선을 물리치는 조선의 해녀들, 신분의 차이를 극복한 박규와 버진의 사랑 등, 한마디로 하자면 ‘다름을 극복하고 새로운 길을 개척’하는 이야기랄까.

이역만리 낯선 환경에 내동댕이쳐진 인간이 자신의 길을 개척하고 끝내 그곳에서 성공하는 이야기로 드라마 <기황후>를 빼놓을 수 없다.


MBC 드라마 <기황후> 2013~2014


기황후에서 나오는 고려는 ‘인싸’라기보다는 ‘아싸’에 가깝다. 벽란도에서 불리던 인싸 코레아는 어디 가고, 원나라라는 대국 옆에서 끊임없이 착취당하고 억압받는다. 기황후는 실존 인물로 원래 귀족의 딸이었는데 드라마에서는 아버지도 모른 채 어머니와 공녀로 끌려가다 도망쳐, 어머니를 잃은 뒤 사내로 위장하고 살아가는 굴곡진 인생의 여인으로 그렸다. 사실 이 드라마도 역사 왜곡 논란으로 상당히 시끄러웠다. 공녀 출신으로 황후까지 되었다는 드라마틱한 소재만 차용했을 뿐, 완전히 다른 이야기를 창조했다고 봐도 무방하다. 후일 기황후가 되는 승냥이가 사랑한 고려 왕 ‘왕유’가 드라마에선 자나 깨나 고려만을 생각하는 성군으로 그려져 있지만, 실제로 기황후 때 고려의 왕은 폭군 중의 폭군으로 불리는 ‘충혜왕’이었다.

대륙의 패권을 차지한 역대 왕조들은 하나같이 한반도의 우수한 인재들을 데려가려 했다. 특히 고려 여인들이 상당히 아름답고 빼어나서 중국 황실에도, 귀족들 집안에도 고려 출신 후궁이나 환관, 궁인, 하인들을 확보하기 위한 쟁탈전이 벌어졌다고 한다. 드라마 <기황후> 속 원나라와 고려는 언어의 장벽도, 풍습의 차이도 거의 없지만 실제 공녀로 끌려간 이들의 삶은 어땠을까. 자신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이토(異土)에 뿌리박아야 하는 괴로움은 짐작조차 하기 어렵다.

타의에 의한 새로운 세상과의 만남이 비극을 초래한 대표적인 경우가 소현세자일 것이다. 심양으로 끌려간 소현세자는 <기황후>에 나오는 ‘왕유’의 모델이 아닐까 싶을 정도다. 그는 청 황실의 신뢰를 얻으면서도, 그곳에서 얻은 정보를 조선에 알려, 조선을 이롭게 하기 위해 애썼다. 특히 청나라에 노예로 끌려온 조선백성들을 구출해서 농장에서 일하게 하고, 거기서 얻은 작물을 파는 시장 거리도 만들었다 한다. 조선의 외교 현안에 대한 청의 힐난에 언제나 조리 있게 답하는 외교 수완을 보여 주기도 했다. 그런데 항상 문제는 같은 편끼리의 싸움이다.


드라마 <추노> 속 소현세자
출처 : 네이버블로그_역사와 자연은 또하나의 스승


소현세자가 아버지 인조에게 정적으로 인식되기 시작하면서 끝내 석연치 않은 죽음을 맞아야 했던 것이다. 소현세자의 죽음에 여러 가지 설이 있다. 청에서 가져온 벼루를 아버지 인조에게 자랑했는데, 인조가 벼루를 던지는 바람에 머리를 맞아 상처가 덧나서 죽었다는 설도 있고, 아담 샬(Adam Schall) 신부와 교류하고 천주교에 관심을 가진 세자가 성상이나 서학서를 가지고 들어와 인조의 노여움을 샀다는 말도 있다. 그것이 가장 흔히 알려진 독살설을 뒷받침하고 있다. 인조실록에는 다음과 같은 기록도 있다.

소현세자가 죽은 뒤에 어떤 요망스러운 무당이 말하기를 “세자가 북경에서 올 때에 금수(錦繡, 수놓은 비단)를 많이 구입해 왔는데, 이 물건이 빌미가 되어 흉화를 당하게 된 것이니, 이것들을 빨리 물에 띄워버리거나 불에 태워서 신(神)에게 사죄하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흉화가 또 그치지 않을 것이다” 하였다. 애란이 이 말을 듣고 강빈에게 고하자, 강빈은 그 말을 믿고 그 금수(錦繡)를 모조리 찾아내어 애란에게 주면서 무당의 말과 같이 하도록 하였다. 1645. 7. 22


드라마 속 죽어가는 소현세자
출처 : 네이버블로그_역사와 자연은 또하나의 스승


그 어떤 설에서든 엿보이는 건 새로운 것에 대한 두려움이다. 두려움을 넘어서서 한바탕 진통을 겪고 나면 이내 익숙함으로 체화되고, 새로운 우주가 열리는데, 그것을 견디지 못한다면 새로운 우주 따윈 없다. E.T를 처음 만난 지구인은 떨리겠지만, 스타워즈의 우주선을 탄 지구인은 외계인들 전용 바에서 함께 초록빛, 보랏빛 음료를 마시며 춤을 춘다. ‘다름’을 인정하고 끝내 건설적인 방향으로 화합하는 지혜가 필요한 요즘이다.




집필자 소개

홍윤정
홍윤정
1999년에 KBS 시트콤 작가로 데뷔, 드라마와 시나리오 작가로 활동 중이다.
대표작은 영화 <수상한 그녀>, <반창꼬>, <블랙가스펠>, <최강로맨스> 등이며, <수상한 그녀>로 춘사영화상 각본상을 수상했다.
“청나라 새 황제에 대하여 묻다”

옹정제 (출처: 위키백과) 황정, 계묘연행록, 1723-10-10 ~

1723년 10월 10일, 황정은 요동에 있었다. 사행의 임무를 모두 마치고 조선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오늘은 신요동이란 곳에 도착하여 유숙하였는데, 추운 날씨에 객사의 온돌이 따뜻하지 않아 민가를 찾아 유숙하였다.
그런데 민가의 주인은 정치에 대한 관심이 매우 많은 사람이었다. 역관을 통해서 이번에 새로 등극한 황제가 새로운 정치를 시행하면서 내리는 여러 가지 명령이 그전 황제에 비하여 나은지 아닌지를 묻는 것이 아닌가. 사행단의 역관이 웃으면서 말했다.
“너희 나라 황제의 정치 시행에 관한 것인데 어찌 우리 조선 사람들에게 묻는가?”
그러자 주인이 대답하였다.
“당신들이 황제가 계신 북경에서 오신 길이시니 묻는 것입니다”
그러자 역관이 대답하였다.
“먼저 황제와 크게 다른 것이 없다”
그러자 주인이 말했다.
“어찌 그렇겠습니까. 새로 등극한 황제는 오직 은자(銀子)만 아끼고 좋아한다 합니다”
황정은 이 이야기를 잠자코 듣고 있었다. 비록 변방의 늙은이라고 하나, 새로운 황제에 대한 인상이 이러하니, 새로운 황제가 탐욕이 많고 어질지 않음을 미루어 알 수 있었다.

“황제의 행차를 맞이하면서 태국 사신들을 보다”

1860년 자금성의 정문 – 오문(午門)
(출처: 위키백과 중국어판)
이기헌, 연행일기계본, 1801-12-29 ~

1801년 12월 29일, 이기헌(李基憲)은 사신단의 서장관 신분으로 명나라 수도에 와 있었다. 한 해가 이틀밖에 남지 않은 오늘, 조선의 사행단은 오문 밖 조방에서 황제의 출타를 기다리고 있었다. 황제가 오늘 태묘에 행차하였다가 돌아와서 신하들의 조회를 받겠다고 하여서, 궁을 떠나는 황제를 전송하기 위해 명나라의 관료들과 외국에서 온 사신들이 모두 나와 기다리던 참이었다.
이윽고 황제가 나타났는데, 황색 지붕을 얹은 작은 가마를 타고 있어서 실제 황제의 용안을 보지는 못하였다. 기대했던 것보다 황제의 의장물은 매우 간단하였다.
황제의 어가는 오랫동안 머물면서 신료들을 돌아보다가, 태국에서 온 사신들을 지나쳐 갔다. 그는 아래 반열에 자리한 채로 어가를 맞이하고 서 있었다. 이기헌은 태국 사신들의 옷차림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그가 입은 조복(朝服)을 보니 얼룩얼룩한 무늬의 비단에 소매가 없는 긴 도포를 입었고, 쓰고 있는 관은 반자쯤 되는 길이에 동으로 만들고 그 위에 도금을 하여 그 형태가 마치 뿔과 같았다. 머리카락은 자르고 땋아 내리지 않았다. 조회를 마치고 태국 사신들에게 가 이것저것을 물어보았는데, 그들은 사석에서는 의관이나 허리띠, 신발 모두 청나라의 제도를 따르지만, 조회를 하고 어가를 맞이할 때에는 본국의 의관을 따른다고 한다.

“필담으로 교류하는 사신들”

미상, 계산기정, 1804-01-24 ~
왕자정(王柘庭)ㆍ유인천(劉引泉) 및 모든 사람들과 오늘 약속하고 낙지헌(樂志軒)으로 갔는데, 경암(絅菴)과 추양(秋陽)이 차례로 이르렀다. 그 문에 들어서니 주인이 나와서 맞아들이고, 접장(蝶莊) 및 효렴(孝廉) 진범천(陳範川)은 이미 먼저 와 있다. 진범천이 붓을 들고 수작하기를,
“전부터 귀국의 인물과 문장의 훌륭함을 들었소. 저 스스로 보잘것없는 학문으로 감히 제대로 받들어 모시지 못함이 부끄럽습니다만, 귀하의 성명(姓名)은 어떻게 부르나요? 천생(賤生, 주로 남자가 자기를 낮추어 이르는 일인칭 대명사)의 이름은 홍치(鴻治)이고 호는 범천(範川)입니다. 효렴(孝廉)으로 발탁되었으나 아직까지 관직을 받지 못하고 있지요.”
하기에, 이해응은 읍하고 쓰기를,
“그 진 효렴 선생이 아니십니까? 일찍이 자정(柘庭)과 인천(引泉) 두 선생을 통해 높으신 성화를 사모하고 있었습니다. 다행스럽게도 오늘 모시게 되었군요. 저의 성은 모(某), 이름은 모(某), 호는 모(某)라 합니다. 그리고 귀하의 본 고향은 순천부(順天府)입니까?” 했다.

“청나라의 조참례에 참여하다”

1901년 자금성의 정문 – 단문(端門)
(출처: 위키백과 중국어판)
정태화, 임인음빙록, 1622-09-25 ~

1662년 9월 25일, 정태화(鄭太和)는 아침 일찍부터 자금성으로 갔다. 오늘은 청나라 조정의 조참(朝參)례가 있는 날이었는데, 조선 사신도 여기 참석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정태화 일행은 자금성의 승천문을 경유하여 오문을 지나 단문 밖에 이르렀다. 단문 안으로 들어가 서반의 앞 행렬 끝에서 동쪽을 향하여 서서 황제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윽고 음악이 울리면서 황제가 등장하였다. 3번의 호령소리가 울리더니 황제가 용상에 앉았다. 청나라 관리들 중에서 새로 관직을 제수 받은 사람과 새로 상을 받게 된 사람들이 뜰의 동서로 나누어서 북쪽을 향해 3번 무릎을 꿇고 9번 머리를 조아리는 삼배구고두례를 행하고 나서 각각 자기의 반열로 돌아갔다.
홍로시 관원들이 청나라에 들어온 사신 일행을 이끌고 다시 삼배구고두례를 행하였는데, 정태화의 일행도 이에 참석하였다. 례를 마치자 정사와 부사, 서장관 3명의 사람을 인도하여 황제가 있는 황극전의 계단 위로 올라가게 하여 서쪽 기둥 밖에 앉게 하였다.

“인삼이 없다고 예단을 받지 않은 요동 도사”

황중윤, 서정일록, 1620-05-10 ~

1620년 5월 10일, 황중윤은 아침 일찍부터 요동을 떠날 준비를 하면서 도사 왕소훈(王紹勳)에게 인정으로 바칠 예단을 챙겼다.
쌀 3가마, 흰 명주 4필, 황모필(黃毛筆) 10자루, 먹을 받치는 그릇 10접시, 비옷 5벌, 활 2자루, 기름 먹인 부채 10자루, 흰 부채 10자루, 초도(鞘刀=칼집이 있는 작은 칼) 10자루, 평양에서 생산되는 은현도(隱現刀) 5자루, 꽃모양이 새겨진 벼루 2개, 화문석(花文席) 3장, 백지(白紙) 5묶음, 말린 노루 포 1마리로 예단을 챙겨 바쳤다. 그런데 왕 도사가 받지 않았는데, 아무래도 인삼이 없어서 서운해 하는 듯하였다.
그렇게 시간을 지체하고 황중윤은 사하포를 향해 길을 나서는데, 군사들이 사청(射廳)에서 전차로 진법을 익히는 모습을 보았다. 진의 형세가 원형이나 방형을 만들어 철통과 흡사하였다. 창과 조총을 든 병사를 전차 안에 흩어서 세우니, 비록 철기병이 치고 들어오더라도 쉽지 않아서, 적을 막는 데 상책인 듯하다. 지난날 우리나라도 전차 십여 대를 처음 만들어 모화관(慕華館)에서 진법을 익혔는데, 제도가 맞지 않을 뿐 아니라 그 진법을 익히는 모습이 참으로 어린애 장난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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