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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의 말

집단지성으로서의 문화,
그리고 상상을 통한 창작자와 대중들의 만남

공병훈

신화, 전설, 민담은 초자연적인 존재에 대한 서사 또는 이야기입니다. 역사와 공간을 가로지르는 신화와 종교, 꿈, 그리고 예술에서 도깨비와 구렁이에서 구미호와 용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고 형태로 구체적인 이미지와 상징으로 나타납니다. 심청과 바리데기, 설문대할망, 선녀와 나무꾼 같은 내용들의 중요성은 특정한 문화 집단에 의해 공유되고 그 집단을 정의하는 신념과 가치를 표현하고 구체화해주기 때문입니다. 문화의 상징과 표상이 개인의 컴플렉스보다 더욱 깊은 무의식의 영역에, 개인을 넘은, 집단이나 민족, 인류의 마음에 보편적으로 존재하는 선천적인 원형을 구조화 하는 과정을 카를 융은 집단 무의식이라고 설명합니다.

“문화(culture)”라는 단어는 식물을 북돋워 기르는 “배양” 또는 “경작”을 뜻하는 단어인 “cultivate” 에서 비롯되었습니다. 땅에서 싹을 틔우고 경작하는 의미가 문화에 담겨 있지요. 레이먼드 윌리엄스(Raymond Williams)는 문화를 평범하면서도 보편적이고 일상적인 사회적 상호작용을 통해 창출되는 사람들의 삶의 경험에에 찾았습니다. 문화에는 특정한 집단이나 계급, 사회가 공유하는 가치인 잠정구조나 역사적 현실을 이끌었던 실천의 과정이 고스란히 스며들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사회의 전통 문화, 역사적 기록, 문화 원형들은 우리 민족의 집단적 무의식과 집단지성을 구성하는 내용물입니다. 집단적 상상력과 무의식은 신화, 전설, 민담이라는 시간과 공간을 넘나드는 집단 창작의 결과를 만들어 공동체의 무의식을 형성하며 공유되고 전달됩니다. 구미호와 처녀귀신에 대한 수많은 전설에는 전통 사회에 여성들이 겪었던 집단적 고통과 실천의 자취가 배어있고 도깨비, 몽달귀신, 구렁이, 두꺼비에는 민중들의 집단적 상상과 창작이 그대로 드러납니다.

톨킨(J. R. R. Tolkien)은 유럽의 고대와 중세 언어 연구자로서 신화와 민간전승 그리고 역사적 사실들을 접합니다. 뿐만 아니라 제1차 세계대전에 영국군으로서 참전하여 삶과 죽음을 넘나드는 경험을 합니다. 유럽의 고대와 중세의 문화 원형과 두 차례 벌어진 세계대전에서의 민중들의 비극적 역사, 그리고 톨킨이 접한 역사적 사실을 『반지의 제왕』 삼부작과 『호빗』이라는 판타지 소설로 창작된 것입니다.

우리는 한반도와 만주, 연해주라는 공간에서 오천년이 넘는 오랜 역사를 통해 다양하게 축적된 문화와 전통, 역사적 사건, 신화, 전설, 민담 등 전통문화 등 풍부한 이야기 소재를 가지고 있습니다. 게다가 그 역사와 문화원형들은 아시아라는 확장된 공간과 문화, 역사와 맞물려 있습니다. 신화, 전설, 민담에서 우리는 공동체의 집단적 경험의 원형이 녹아들어 있는 지혜의 보고(寶庫)를 만나게 됩니다.

이 소재들은 창작자들의 새로운 상상력과 제작 기술이 결합되어 소설, 동화, 웹툰 음악, 영화, 게임, 뮤지컬, 애니메이션, 등 창작 콘텐츠로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지혜의 보고를 열고 들어가 우리 공동체의 집단적 상상과 실천을 접하고 이해하기 위한 재미있고 손쉬운 방법이 창작자의 콘텐츠에 몰입하는 것입니다.

독자들이 가장 사랑하는 창작자들과 함께 ‘한국형 판타지의 상상력의 닫힘과 열림’를 주제로 2018년 전통문화 창작 콘퍼런스가 열렸습니다. 11월 웹진 담談은 콘퍼런스 내용들을 담고 있습니다.

조정미 작가는 2개 세션으로 이루어진 콘퍼런스를 스토리텔러이자 역사 콘텐츠 연구자의 시각에서 다루어 주었습니다. 사실과 픽션, 역사와 콘텐츠의 멋진 만남이 한국형 콘텐츠를 통해 이루어지는 현장을 이야기하면서 결국 역사 콘텐츠가 창작 소재를 위한 지식 공유지로서 작용한다는 사실이 콘퍼런스를 통해 어떻게 설명되는지를 생생한 현장 르포 방식으로 펼쳐 줍니다.

송동근 작가님은 콘퍼런스 현장을 그림으로 표현하여 한국형 판타지 작가와 작품, 캐릭터들이 참여 청중들에게 얼마나 큰 감동과 재미, 기쁨을 주었는지 표현해 주었습니다. 콘퍼런스에 참여하지 못한 웹진 독자들을 위해 1세션과 2세션의 녹취록 내용을 송동근 작가님의 그림과 함께 실었습니다.

한국형 판타지의 가장 큰 독자군이기도 한 대학생들은 콘퍼런스를 어떻게 느끼고 이해하고 있는지를 보여주기 위해 이지원과 신솔 학생 기자가 현장 취재 기사를 마련하였습니다. 학생기자들은 과학자인 동시에 괴물 수집가, 그리고 다양한 장르의 소설가이기도 한 곽재식 작가님과 ‘선녀와 나무꾼’의 변주인 돌배 작가님과 특별 인터뷰를 진행하였습니다.

콘퍼런스와 함께 준비된 참여형 전통문화 창작 콘퍼런스 홍보 부스의 생생한 현장도 정유정, 최준호 학생 기자들이 취재하였습니다. 직접 참여하는 스탬프 투어 방식으로 국사편찬위원회, 규장각한국학연구원, 동북아역사재단, 한국고전번역원, 한국국학진흥원, 한국콘텐츠진흥원, 한국학중앙연구원을 돌고 나면, 안전가옥과 온우주출판사, 위즈덤하우스가 준비한 콘퍼런스 발표자들의 창작물들을 살펴보는 부스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이번 콘퍼런스에 이어서 전통의 의미를 되새기는 자리이자 ‘과거와 현재를 잇는 상상력’을 경험할 수 있는 뜻 깊은 행사가 열릴 예정입니다. 11월 3일 오전 11시에서 오후 5시까지 건국대학교 새천년관 우곡국제회의장에서 열릴 ‘제4회 스토리테마파크 창작 콘텐츠 공모전’이 웹진 담 독자 여러분들의 참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1차 기획안 심사와 2차 면접 심사를 통해 공모전에 지원한 총 53개 팀의 기획안 중 8팀이 선정되었으며, 5개월 동안 각 분야의 전문 창작자의 교육을 통해 최종 작품 기획안을 완성하였습니다. 예비 창작자들의 다양한 도전과 실험, 그리고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하오니 많은 관심과 참여 부탁드립니다.

푸른 날들이 잎사귀에 붉은 물이 들고 낙엽이 지는 가을이 깊어가고 있습니다. 벌레소리들이 곡식처럼 여무는 11월 들판의 농민들은 호미와 낫을 씻어두고 추수동장(秋收冬藏)의 느긋한 분위기에서 하루를 질탕하게 놀기도 할 것입니다. 학생들은 학기말 시험 준비를 한달여 앞둔 짧은 시기에 창밖을 멍하니 바라보거나 친구들과 밤이 새도록 이야기를 나누고 싶을 것입니다. 현장에서 일하는 분들은 연말에 밀려올 격한 업무를 앞두고 숨고르기를 합니다. 멀리 있어 만나지 못하는 친구를 보고 싶은 마음 간절하여 편지를 쓰거나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며 햇살이 지는 늦은 오후에는 낙엽이 지는 거리를 방황하듯 거닐게 되는 시기입니다. 언제나 웹진 담談을 아껴주시는데 감사드리며 2006년에 새로 발굴된 다산 정약용과 그의 벗이던 문산(文山) 이재의가 주고받은 시 2편을 공유합니다.

소나무 단에 하얀 돌 평상은(松壇白石牀)
바로 나의 거문고 타는 곳(是我彈琴處)
산객이 거문고는 걸어두고 가버렸지만(山客掛琴歸)
바람이 불면 절로 소리를 내네(風來時自語) - 茶山 丁若鏞


외로운 소나무가 절개를 안 고치니(孤松不改節)
은둔자가 이리저리 노니는 곳 되었지(隱者盤桓處)
그 곁에는 작은 단이 하나 있으니(傍有小壇築)
이 맘을 누구에게 말할 수 있으랴(此心誰與語) - 文山 李載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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