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하신년 謹賀新年!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Happy New Year!
연말연시에는 여기저기에서 새해를 축하하거나 축복하는 인사말들을 보고 들게 됩니다. 이런 인사말을 나누고 새해에 첫 출근날 시무식(始務式)까지 하게 되면, 새해가 되었다는 것이 실감 납니다. 조선시대에도 시무식은 있었는데, 조정의 시무식은 왕과 신하들이 신년을 축하하는 자리였습니다.
임금이 면복(冕服) 차림으로 백관(百官)을 거느리고 황제의 신정(新正)을 하례하였다. 원유관에 강사포를 입고 조하(朝賀)를 받은 다음, 여러 잔치를 베풀었다…올량합(兀良哈) 5인이 모피(毛皮)와 전우(箭羽)를 바치고, 왜인(倭人) 9인도 또한 하례(賀禮)에 참예하였다. (조선왕조실록 태종 2년 1월 1일)
위의 기사에서는 조선의 왕과 신하들이 신년을 축하할 뿐만 아니라, 조선국왕이 중국황제의 신년을, 올량합과 왜인들이 조선국왕의 신년을 축하하고 있습니다. 신년을 축하하고 축하받는 관계가 마치 중국황제를 정점에 둔 동심원 같기도 하고, 삼각형 같기도 합니다. 태종 2년 정월 초하루의 풍경이지만, 조선왕조실록의 어느 정월 초하루 기사에서나 볼 수 있는 광경이기도 합니다. 조선의 왕은 한양의 궁궐에서 중국황제의 신년을 축하할 뿐만 아니라 중국황제의 궁궐에도 축하할 사절을 보냈습니다.
정월 초하루 북경의 자금성에도 비슷한 광경이 펼쳐집니다. 중국황제를 둘러싸고 왕, 신하, 이웃나라 사신들이 신년을 축하합니다. 그 이웃나라 사신들 속에 조선 사신들도 있습니다. 신년을 축하하는 자리는 중국, 조선, 올량합, 왜라는 각각의 세상이 만나 서로의 관계와 차례를 확인하는 자리입니다. 중국황제는 이 자리에서 외국사신과의 만남을 통해, 책력을 반포하거나 일람하는 행위를 통해, 자신이 이 세상-공간과 시간-을 다스리고 있음을 보여 줍니다. 중국의 이웃나라들은 이 자리에 참석하는 것을 통해 이 세상에서 자신들의 위치를 확인하게 됩니다. 그래서 조선에서 중국에 보내는 사신 중에 중요시했던 사신이 신년을 축하하러 보내는 사신-정조사, 원조사, 정조사 겸 동지사-이었습니다. 이는 조선뿐만 아니라 중국에 사신을 보내는 이웃나라들도 마찬가지였기 때문에, 정월 초하루의 자금성에는 수많은 나라의 사신들로 북적였습니다.
“만국래조도(萬國來朝圖)”라는 그림을 보면, 위아래로 중국 황제와 조선 사신이 있지만, 조선의 위아래에는 다양한 나라의 사신들이 있습니다. 그림 속에서 중국황제와 조선 사신의 수직적 만남뿐만 아니라, 조선과 같은 선상에서 앞뒤로 서 있는 다른 나라 사신들의 수평적 만남을 읽어봅니다. 사신들이 사행을 다녀오면서 남긴 기록(사행록, 조천록, 연행록 등)에서 그들과 나눈 이야기들을 읽어봅니다. 이 그림과 글 속의 행간에서 중국이 구축한 세상과는 또 다른 세상을 읽을 수 있습니다. 조선의 사신들은 중국의 하정례 자리에서 새로운, 또 다른 세상을 만났습니다. 담談 2020년 1월호에서는 하정례(賀正禮)를 통해 조선인들이 또 다른 세계를 만나는 과정과 그 세계에 대한 이해를 이야기해 보고자 합니다.
정은주 선생님은 [북경 자금성의 신년 조회와 만국래조도]에서, 정월 초하루 청나라 건륭제에게 신년을 하례하는 의식을 그린 “만국래조도(萬國來朝圖)”란 그림을 설명하면서, 그림 속에 함축된 청나라와 각 나라 간의 상하관계, 청나라의 다른 나라에 대한 이해를 읽어 주셨습니다. 이 글을 통해 건륭제의 신년을 축하하러 간 조선의 사신단이 어떤 의식을 경험하고, 어떤 처우를 받았으면 어떤 교류를 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다른 나라 사람들과 교류를 한다고 해도 말이 통하지 않기 때문에 동행한 역관의 도움을 받아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매번 모두가 역관의 도움을 받을 수는 없기에, 손짓발짓을 하거나 글-한문-로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글로 나누는 대화는 필담(筆談)이라고 했습니다. 사신들이 사행을 가서 나누었던 필담들은 사행록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조창록 선생님은 [필담을 나누는 조선판 비정상회담-한조각 돌덩이에서 천하대세를 엿보다]라는 글에서, 필담으로 이뤄진 교류를 소개해 주셨습니다. 필담을 나누었던 홍대용과 엄성은 “천애지기(하늘끝에서 자기를 알아주는 벗)”가 되었고, 박규수와 심병성은 “진정한 벗”이 되었다고 합니다. 한편, 한필교와 박지원은 사행에서의 교류를 통해 당시의 현실을 인식하고 다양한 정보를 얻기도 했는데, 박지원은 이를 “한 조각 돌덩이로 천하의 대세를 엿볼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비록 한두 글자의 필담밖에 나눌 수 없다고 해도 박지원은 상대에게 깊은 인상을 받기도 했습니다. 열하로 가는 길에 만나 회회국 사절에 대해 그들이 한문을 몰라 깊은 대화를 나눌 수는 없었지만 그들의 겸손한 태도에 감명을 받은 것으로 ≪열하일기≫에 기록하고 있습니다. 또 이기헌은 북경에서 만난 태국 사신들의 복색을 보면서 그들의 문화가 다르다고 해 가벼이 볼 수 없다는 것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 에피소드를 정용연 작가님께서 [이달의 일기]에 담아 주셨습니다. 중국이란 일원적 질서와 가치관 속에 있다 해도 선조들이 “다름의 가치”를 이해하고 언급하는 대목이라 생각됩니다.
이웃나라와, 이웃나라 사람들과 잘 지낼 수 있는 것은 “다름”을 인정하는 데서 비롯됩니다. 홍윤정 작가님의 [미디어로 본 역사이야기-인싸 코레아]에서 소개해 주신 여러 작품 속에는 바로 “다름의 가치”를 실천하여 “인싸”가 된 이들의 모습들이 있었습니다. 그들 모습 속에는, 역사 속 벽란도의 고려인, 표류한 서양인들을 품어줬던 바닷가 사람들, 먼 이역에 끌려와서도 나라를 생각했던 이들의 모습이 보이는 것 같기도 합니다.
[나무에 새긴 이름, 편액]에는 ≪조천일록≫이란 사행록을 남긴 김중청의 “반천정사(槃川精舍)”를 소개합니다. 조선 시대 사행의 여정, 사신들의 교류, 다른 나라에 대한 정보나 이해 등은 사행을 다녀온 선조들이 남긴 사행록을 통해 알 수가 있습니다. 김중청이 남긴 ≪조천일록≫은 명청교체기라는 중대한 시기에 사행 기록인 데다가 그 내용의 정확성과 충실함으로 사행록의 모범이 될 만한 자료라고 합니다.
[스토리 이슈]에서는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한국의 유교책판 순회전시를, “온전하게 간직된 것들의 순회”로 소개하였습니다.
시기 | 동일시기 이야기소재 | 장소 | 출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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