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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이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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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왕실의 안동 방문

(Visit Andong of Royal Family)

1999년 엘리자베스 여왕은 김대중 전 대통령의 초청으로 방한해 안동 하회마을과 봉정사 등을 찾았다. 여왕의 방문으로 세계인이 주목하는 한국적인 여행지가 된 안동시는 방문 당시 여왕의 발자취를 그대로 따라가는 ‘퀸스로드(Queen’s Road)‘를 만들었다.


(출처 : www.koreatimes.co.kr / Korea Times file)


오는 5월 14일 영국의 여왕 엘리자베스 2세의 둘째 아들 요크 공작 앤드류 왕자가 안동을 방문한다. 앤드류 왕자의 안동 방문은 1999년 4월 21일 73회 생일을 맞아 안동을 찾은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이 걸었던 길을 다시 걷기 위해서라고 한다.

‘한국 정신문화의 수도 안동’은 앤드류 왕자의 방문에 앞서, 4월 26일 안동문화예술의전당 국제회의장에서 안동 로열관광포럼을 개최하여 영국 왕실의 안동 방문의 의미를 강화하고, 그를 통한 지역의 도약을 모색했다.

안동 로열관광포럼은 기존 안동정책포럼이 발전한 것으로 한국문화관광연구원 이원태 박사, 경희대학교 김태희 교수, 앤시스 강동훈 이사가 주제 발표를 했다. 이원태 박사는 '안동의 전통문화자원,'구슬이 서 말' 어떻게 꿸 것인가?', 김태희 교수는 '종가음식의 가치를 높이는 관광', 강동훈 이사는 'CHANGE! 문화관광도시 안동'으로 발제했으며, 한국국학진흥원 조현재 원장을 좌장으로, 이재갑 시의원, 김길건 전 인천관광공사 사장, 김명효 한국관광기념품협회 회장, 김상태 박사(문화관광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박상청 한국관광공사 대구경북지사장, 손상호 경상북고 관광마케팅과 팀장, 한진수 경희대학교 교수 등 총 7명이 안동 관광에 대한 종합토론을 나누었다.

안동시는 1천만 관광객 달성을 위해 영국 왕실의 대를 이은 방문을 관광 상품화할 방침이며, 앤드류 왕자가 방문하는 5월 14일 여왕이 걸었던 길을 ‘로열웨이(The Royal Way)’로 명명하고 충효당에서 이를 알리는 행사를 진행할 예정이다.

또한, 경북도와 함께 ‘영국 여왕 방문 20주년 기념행사’를 마련한다. 11일부터 닷새간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이 방문했던 하회마을, 봉정사, 농수산물도매시장에서 펼쳐질 기념행사에는 다양한 프로그램이 진행될 예정이다.


(출처 : www.koreatimes.co.kr / Korea Times file)


안동시 관계자는 “여왕이 방문한 하회마을과 봉정사는 각각 2010년, 2018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돼 지역을 대표하는 문화유산이자 관광자원으로 발돋움했다”며 “올해 영국 여왕 방문 20주년을 맞아 ‘1천만 관광도시 안동’으로 도약하는 원년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또한 앤드류 왕자의 일정에 따라 세계기록유산 “유교책판”을 소장하고 있는 한국국학진흥원 방문 가능성을 시사했다.







“건장한 91세의 조모, 수령인 아들에게 바른 다스림을 할 것을 훈계하다”

김령, 계암일록, 1608-08-24~

1608년 8월 24일, 오시쯤 박율보(朴栗甫)가 김령을 찾아왔다. 어제가 그의 조모 생신이기 때문이다.
그의 조모는 연세가 91세인데, 여전히 시력과 청력이 쇠퇴하지 않았고, 치아와 모발도 건강하다. 조모는 매번 수령 아들을 이렇게 훈계했다.
“아주 삼가해서 민간에 폐해를 끼치는 일이 없도록 하여라. 네가 잘못 다스리면 읍민들이 반드시 ‘저 늙은 할망구가 죽어야만 우리 수령이 떠날 텐데.’라고 할 것이니, 두렵지 않겠느냐.”
친절하고 간절한 뜻이 사람을 경복(敬服)하게 한다.

“백곡 할아버지의 이야기에서 꾸준함의 중요성을 배우다”

류의목, 하와일록, 1800-12-24 ~

1800년 12월 24일, 맑은 날씨였다. 오늘은 명동에 사는 백곡 할아버지가 류의목의 할아버지를 보러 왔다. 류의목이 인사를 올리자, 백곡 할아버지는 반가워하며 안부를 물었다. 그리곤 요즘 무슨 공부를 하고 있는지, 어떠한 책을 읽고 있는지 등등을 물으셨다. 류의목이 대답하자, 백곡 할아버지는 고개를 끄덕이며 웃으셨다. 그리곤 류의목에게 이러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모든 일을 할때는 그치지 말고 꾸준히 해야 성취가 있는 법이니라. 예전 계미년에 온 고을에 천연두가 번진 일이 있었다. 내가 천연두를 피하여 정동으로 옮겨 갔는데, 그곳에는 내가 아는 사람도 없고, 마을을 터놓고 이야기할 벗도 하나 없었다. 하루 종일 책을 읽는 일 외에는 할 일이 없어 무료하였는데, 무엇인가라도 해 보아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지. 그래서 아는 사람에게 부탁하여 버들 수십 묶음을 얻어 새벽에 일어나 저물때까지 자리를 짰다. 처음 해 보는 것이라 서툴기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는데, 3일이 되어서야 겨우 하나를 다 만들 수 있었지. 이후에 이와 같이 여러 번 반복하였다. 나중에는 제법 속도도 붙었지. 이리하여 꽤 많은 자리를 만들 수 있었는데, 마침 식량이 다 떨어지지 않았겠는가. 그래서 만든 자리를 장에 가서 내다 팔아서 쌀과 보리를 얻었는데, 이 식량이 꽤 많아서 천연두가 가시고 집으로 돌아갈 즈음에는 오히려 남는 것이 있을 정도였지. 또 그 마을에서는 여인들이 매일 밤마다 모여서 삼을 꼬는데, 내가 보니 밤새 일을 하고 다음날 아침에 삼을 꼬다 남은 자투리가 버려지고 빠진 것들이 꽤 많았다. 이리하여 내가 아침 나절에 일어나서 버려지고 빠진 것들을 줍기를 여러 날 게을리 하지 않았다. 돌아갈 무렵에 모은 양을 보니 열 묶음 정도가 되었는데, 이것을 가지고 베틀로 중포를 짜니 세 필이나 되었다. 일이란 모두 이와 같아서, 하루하루 할 때는 그것이 별것 아닌 것 같지만, 꾸준히 해가다 보면 그 하루하루가 모여서 큰 것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 이야기를 듣던 할아버지도 고개를 끄덕이며 ‘과연 그러하다’ 라고 감탄하셨다.

“공부를 게을리하다 할아버지께 지팡이로 맞다”

류의목, 하와일록, 1801-09-17 ~

1801년 9월 17일, 맑은 날이었다. 오늘 류의목은 『서경』 문후지명을 읽었다. 밤에 법산 아저씨가 찾아왔는데, 오랜만에 만난 사이라 무척 반가웠다. 보통 밤시간에는 독서를 하며 공부하였는데, 오늘은 책 앞에 앉지 못하고 칼로 감을 깎으며 법산 아저씨와 대화를 나누었다. 그런데 평소부터 익살이 많던 법산 아저씨인지라, 이야기를 듣다가 곧 웃고 떠들면서 대화를 하게 되었다.
평소 할아버지는 이 시간이 되면 늘 밤을 틈타 몰래 엿들으며 류의목이 공부를 하는지 여부를 살피고 있었는데, 오늘도 어김없이 문틈으로 류의목의 방안을 살폈다. 그러다가 법산 아저씨와 류의목이 웃고 떠드는 모습을 보자, 문 밖으로 류의목을 부르더니 가지고 다니던 지팡이로 매질을 하였다. 아울러 법산 아저씨를 향해 크게 책망하였는데, 그 기세가 매우 엄준하였다. 할아버지께서는 ‘너희들이 웃고 떠들며 하는 말이 서경에 있는 내용이냐?’ 라며 심하게 질책하셨다. 질책을 받는 동안 법산 아저씨는 방안의 벽 모퉁이에 움츠리고 있으면서 떨며 한 마디도 하지 못했고, 나는 고개를 숙이고 명을 들을 뿐이었다.
한참 훈계를 하신 할아버지가 떠나시자, 비로소 법산 아저씨와 류의목은 다시 자리에 낮을 수 있었다. 한참 혼인 난 후라 바로 책을 펼치고 읽기 시작하였다. 법산 아저씨는 류의목에게 매우 미안해 하였는데, 실상 류의목 역시 같이 재미나게 어울렸던 터라 법산 아저씨를 원망할 마음은 들지 않았다. 법산 아저씨는 이 이야기가 사람들이 알게 될까봐 ‘내가 내일 어찌 사람들을 보겠는가’ 라며 자괴감을 떨치지 못하였다. 류의목은 비록 할아버지께 혼이 났지만, 큰 일은 없을 거라 법산 아저씨를 위로하였다. 한편으로는 아직도 공부 시간에 잡담을 나누는 본인에게 큰 실망을 느끼며 밀려드는 자책감에 민망하였다.

“6살 아이가 성리학을 묻다”

朱子大全 (출처 : 국립중앙도서관) 장흥효, 경당일기, 1624-01-07 ~

1624년 1월 7일, 제자들이 몇 년째 자신을 찾아오면서 혼자 하는 공부를 넘어 함께 하는 공부로 발전하였다. 무릇 공부는 혼자 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모든 것을 혼자 다 알 수는 없는 것이다. 똑같은 논어와 맹자를 읽는다고 하여도 읽는 사람마다 각자 의견이 다를 수 있었다. 그래서 공자와 맹자 이래 여러 유학자들이 주석서를 내었고 주자는 그것을 자기 관점으로 다시 정리해 놓았던 것이다.
장흥효도 나름의 성리학적 관점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이황의 관점을 가지고 있었으며 그러한 관점을 제자들에게 자주 이야기하곤 하였다. 그런데 사달(四達)이라고 불리는 이제 겨우 6살 밖에 되지 않은 아이가 그를 찾아왔다. 그는 와서 묻기를 “땅은 어디에 붙어있습니까?”라고 하기에 그는 “하늘에 붙어있다”고 말하였다. 그것은 단순하게 땅의 위치를 묻는 것이 아니라 우주관을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어린 것이 이런 질문을 하다니, 질문 자체가 놀라웠던 것이다.
아이는 장흥효의 답변을 듣고 다시 물었다. “그러면 하늘은 어디 붙어있습니까?” 장흥효는 “땅에 붙어있다”라고 대답했다. 물론 이 말의 의미를 아이가 알아들었는지 못 알아들었는지는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그는 앞서 말했듯이 질문 자체만으로도 대단하다고 판단했으니까 말이다. 그는 일기에 총명한 아이가 아니라면 이런 질문을 할 수 없다고 못 박았다. 그 아이는 바로 자신의 외손자인 이휘일로 이황 이후 최고의 성리학자로 불리는 이현일의 형이 된다.

“책을 널어 말리다”

김광계, 매원일기,
1607-05-25 ~ 1607-05-27

1607년 5월 25일, 요 며칠 날씨가 계속 맑았다. 김광계는 오전에 기제사를 지낸 후에 방으로 들어가 방안 곳곳에 있던 서책을 모두 마루로 가지고 나왔다. 그동안 벼르고 있던 책 말리기를 하려는 것이다. 꺼내 온 책을 마루며 마당이며 곳곳에 펴서 널어놓기 시작하는데 덕유(김광업) 형이 와서 찾아 왔다. 덕유는 김광계가 펼쳐 놓은 책을 간간히 넘겨가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돌아갔다.
이틀 뒤에는 집에 있는 옛날 책을 모두 점검하였다. 한동안 펼쳐보지 않은 책들이라 얼룩이 지거나 벌레를 먹은 곳이 없는지 꼼꼼히 살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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