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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이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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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회 스토리테마파크 창작 콘텐츠
공모전 면접심사

지난 5월 18일 토요일에 스토리테마파크 콘텐츠 공모전
2차 면접 심사를 진행하였습니다.

특히, 올해에는 지난해 53개 팀보다 2배가량 늘어난 105개 팀이 지원을 했습니다.

1차 기획안 심사를 통해 18개 팀을 선정하였고,
2차 면접 심사를 통해 최종 8팀이 가려졌습니다.

면접 심사는 지난 5월 18일 토요일,
광화문에 있는
콘텐츠코리아랩 기업지원센터에서 진행되었는데요,

최종 8팀의 명단은 다음과 같습니다.



작품명 팀명 학교
경복궁 인턴생활 다산관 유생들 한림대학교
공릉 (비어있는 무덤) 4·19 건국대학교
도래솔 : 영혼을 보는 기생 삼룡이 나르샤 고려대학교
도화선(導火線) 누리빛 숙명여자대학교
상명대학교
봉선화 상상도 못한 충남대학교
비원(悲園), 사라진 여자들 희망찬 고려대학교
역(譯), 칼보다 강한 진심 IdeaL 건국대학교
제칠성전(第七星傳) 일조 건국대학교

(작품명의 가나다순)



주제로 보나, 형식으로 보나 다채롭고 흥미로운 주제의 기획안들이 많았었는데요.
8팀만이 합격한다는 것이 안타까웠습니다.

공모전에 응모해 주셨던 팀들 정말 수고 많으셨습니다!




그럼 최종 8팀을 만나볼까요?


선정된 8팀 가운데 첫 번째 팀은 ‘다산관 유생들’입니다!

한림대학교 학생들로 구성된 팀으로,
기획안 제목은 "경복궁 인턴생활"이며 장르는 웹드라마입니다.




조선 제22대 임금 정조와 정약용의 브로맨스를
옴니버스 형식으로 재미있게 꾸민다고 합니다.

정조와 함께한
정약용의 경복궁 인턴생활 이야기!

과연 정약용은 무사히 퇴직할 수 있을까요?




두 번째 팀은 ‘4·19’ 팀입니다!

건국대학교 학생들로 구성된 팀으로,
기획안 제목은 "공릉(비어있는 무덤)",
장르는 영화입니다.




임진왜란 당시에 있었던 정릉 도굴 사건을 중심으로
얽혀있는 음모와 갈등을 추리극 형태로 풀어낸다고 합니다!

역사 기록상 ‘시신의 진위 여부에 대한 논란’이라는 스토리에
흥미를 느껴 중종 시신 도굴 사건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한다고 합니다.

누가? 왜? 중종의 묘를 도굴했을까요?




세 번째 팀은 ‘삼룡이 나르샤’ 팀입니다.

고려대학교 학생들로 이루어진 팀으로,
기획안 제목은 "도래솔 : 영혼을 보는 기생",
장르는 웹드라마입니다.




조선시대 각자의 사연을 품은 네 명의 기생을 중심으로
눈물겹고 통쾌한 한풀이가 시작된다고 하는데요.

가슴 속 맺혀있는 깊은 한을 어떤 식으로 풀어나갈지 궁금해집니다.




네 번째 팀은 ‘누리빛’팀입니다.

숙명여자대학교 & 상명대학교 학생들로 구성된 유일한 연합팀입니다.

기획안의 제목은 "도화선(導火線)"이며,
장르는 웹툰입니다.




일본이 조선을 식민지화하기 위한 강한 야욕을 드러내던 시기에 일어났던​
의병을 다루고 있습니다.

때마침 올해 2019년은 3.1운동 및 대한민국 임시정부수립 100주년을 맞은 해입니다.
의병 활동 이야기를 어떻게 다루게 될지 기대가 됩니다.




다섯 번째로 만나볼 팀은 ‘상상도 못한 팀’입니다.

충남대학교 학생들로 이루어진 팀으로,
기획안의 제목은 "봉선화"이며 장르는 영화입니다.




분홍색 상의를 맞춰 입은 모습이 기획안 제목과 잘 어울렸던 것 같습니다.

문란한 폐빈으로 역사에 남은 문종의 두 번째 세자빈인 순빈 봉씨의 일생을
그녀의 입장에서 재해석하여 이야기를 풀어나간다고 합니다.

여러분~ ‘봉선화’의 꽃말을 아시나요?
바로.. ‘나를 건드리지 마세요’ 라고 하는데요.
‘상상도 못한’ 팀이 재해석한 순빈 봉씨의 이야기가 궁금해집니다.




여섯 번째 주인공은 ‘희망찬’ 팀입니다.

고려대학교 학생들로 이루어진 팀으로,
기획안의 제목은 "비원(悲園), 사라진 여자들"이며, 장르는 영화입니다.




조선시대 가부장적이었던 사회 속에서
여성들의 삶을 집중 조명하여 이야기를 풀어나간다고 합니다.

여성 원귀가 등장하는 괴담의 형식을 빌려 풀어나가는 이야기!
사라진 여인들의 숨겨진 이야기가 벌써부터 궁금해집니다.




일곱 번째 팀은 ‘IdeaL’ 팀입니다.

건국대학교 학생들로 구성된 팀으로,
기획안의 제목은 "역(譯), 칼보다 강한 진심"이며, 장르는 영화입니다.​




조선시대 역관 홍순언을 주인공으로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임진왜란 당시 명나라를 설득해 파병을 이끌어 낸 홍순언을 통해서 본
역관의 삶과 노고를 재조명하는 이야기!

벌써부터 기대가 됩니다.




드디어 마지막 여덟 번째 팀은 ‘일조’ 팀입니다!

건국대학교 학생들로 구성된 팀으로,
기획안의 제목은 "제칠성전(第七星傳)"이며 장르는 게임입니다.
유일하게 게임을 기획한 팀이네요~

면접에서는 제일 먼저 심사에 참여한 팀이었어요.
긴장이 많이 되는 첫 번째 팀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최종 팀에 선정된 것을 축하드립니다. ​




조선 최악의 대재난이었던 "경신대기근"을 소재로
3D 3인칭 슈팅 게임으로 기획하였다고 하는데요,

과연 이 이야기를 게임으로 어떻게 풀어냈을지 정말 궁금하고 기대가 됩니다.​



“최참봉 일가가 피난을 오다”

오희문, 쇄미록, 1597-09-17 ~

1597년 9월 17일, 오늘 저녁 오희문의 집에 참봉 최형의 온 집안 식구들이 찾아왔다. 최형의 4남매를 비롯하여 25명의 식구들과 소와 말 7마리를 데리고 왔는데, 전란을 피하여 피난을 온 것이라 한다. 강원도로 오긴 했는데, 달리 머물 곳이 없어서 오희문의 집으로 찾아온 것이었다. 오랜만에 만나는 반가운 지인이라 우선 아들 윤해의 집으로 들어가게 했다. 윤해의 집에는 윤해의 장모가 머물고 있었는데, 우선 오희문의 집으로 옮겨 머물도록 하였다.
오희문의 집에는 오희문의 어머니와 윤해의 장모가 와 있어, 식사는 쌀 1말과 반찬거리를 윤해의 집으로 보내서 거기서 밥을 지어 대접하도록 하였다. 마침 집에 술이 1병 있어서 이걸 가지고 최참봉을 대접하였다.

“배고픔에 처자식을 길에 버리다”

오희문, 쇄미록, 1593-07-15 ~

1593년 7월 15일, 오희문은 일가를 데리고 전라도로 피난을 가는 길이었다. 오늘은 고부군 앞을 지나는데, 문득 길가의 좌우를 둘러보니 밭과 들이 모두 절반이나 황폐해 져 있었다. 비록 땅을 일구고 씨를 뿌린 곳도 간간히 있었으나 모두 곡식이 제대로 여물지 않을 것으로 보였다. 어떤 땅에는 호미로 김매기를 한 흔적도 있었으나, 이미 7월 중순인데도 자란 것이 겨우 두어 치 높이에 불과하였다. 호남은 예부터 넓은 들판으로 조선 제일의 곡식 생산지였는데, 이제 천리나 되는 기름진 들판이 거친 풀로만 덮여 있는 것을 보니, 올해와 내년 굶주린 백성들이 어떻게 지탱할지 벌써부터 큰 걱정이었다. 아마 내년이 오기 전에 시체들이 구덩이를 가득 메울 것을 생각하니 식은땀이 흘렀다.
이런 걱정으로 길을 재촉하고 있는데, 문득 길가에 7-8세 가량 된 아이가 큰 소리로 통곡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 옆에 여인도 한명 있었는데, 그 역시 길가에 앉아 얼굴을 가리고 슬피 울고 있었다. 괴이하게 여겨 까닭을 물어보니, 여인의 말이 남편이 굶주림을 견디지 못하고 우리 모자를 버리고 갔다는 것이다. 그리곤 우리 모자는 장차 굶어죽게 되었다며 슬픈 목소리로 통곡하는 것이 아닌가! 이 말을 들으니 슬프고 불쌍한 마음을 이길 수가 없었다.
아버지와 아들은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사이요, 부부는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사이로 비록 짐승이라 하더라도 서로 사랑하고 아끼며 불쌍히 여기는 것인데, 심지어 사람의 탈을 쓰고 처자식을 길에 버리고 돌아보지 않다니! 그 배고픔이 얼마나 컸으면 어찌 이런 지극히 괴이한 일이 벌어졌겠는가! 정녕 조선의 백성들이 모두 이러한 배고픔으로 모두 없어질 지경에 이를 것인가! 오희문은 울고 있는 모자를 쳐다보며 거듭 탄식이 배어나오는 것을 숨길 수 없었다.

“무주에 남아있는 동학농민군이 다시 일어나서 지례읍으로 향해 오다”

여중룡, 갑오병신일기

1894년 10월 어느날, 여중룡은 난리를 피하여 지례읍(知禮邑)에 들어가서 친척인 호운(湖雲)과 같은 집에 있다가 10월 11일에 식구를 다 데리고 이사를 하였다. 한편, 무주(茂朱)의 동학도는 계속 존속할 우려가 있었다. 이런 이유로 고을의 수령이 대구부(大邱府)에서 병사 20명을 청하는 등 동학농민군을 막을 채비를 갖추었다. 어느날 보니 무주 근방의 동학군이 정황을 살펴보니 몇 천 명이나 되는 무리가 지례읍을 향해 오고 있다고 하는 소식이 들려서 포수와 창잡이를 보냈다.

“항도촌 첫 정착지에서의 생활”

만주로 가기 위해 압록강을 건너는
이주한인들 ⓒ독립기념관
김대락, 백하일기,
1911-01-15 ~ 1911-01-24

1911년 1월 15일, 김대락은 서간도의 첫 조선인 정착지인 항도촌에 도착했다. 하룻밤을 보내는데 방에는 커튼처럼 가리는 가리개도 없어 추위가 매우 심하였다. 다른 사람들, 특히 울진에서 온 사람들은 방 하나에 여러 사람이 기거하여 그 비좁음은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이런 와중에 조선에서 온 사람들은 뜻이 통하면 가문과 성씨가 다르더라도 이제 더 이상 구분하지 않았고, 모든 일을 협동하여 처리하였다. 김대락이 보기에 이역 땅에서 이렇게 하는 것은 참으로 다행이었다.
그러나 이역의 중국 땅은 김대락이 보기에 예가 무너진 나라였다. 김대락은 우연히 결혼식을 보았다. 그들은 통소를 불면서 떠들썩하게 길을 지나가고 있었다. 이것은 신부의 결혼 행차를 앞장서서 이끄는 것이었다. 김대락에게는 이것이 이국의 낮선 풍경으로 다가오는 것이 아니라, 예가 무너진 중국으로 보였다. 김대락은 전통의 유학자들이 그랬던 것처럼 다시 옛날 도와 예가 행해지던 때를 그리워하였다.

“이역만리에서의 고깃국 파티”

김대락, 백하일기, 1911-06-22 ~

김대락과 그 가족들은 이역타국의 삶에서 먹을 것을 제대로 먹지 못하였다. 넉넉한 식량이 없어서도 잘 먹지 못해서이지만, 타국의 낯선 음식들이 입에 맞지 않아 먹지 못한 적도 많았다. 1911년 6월 22일, 김대락의 식솔들이 청나라 사람의 집에서 개를 한 마리 사왔다. 개의 가격은 중국돈으로 7각이었다.
김대락은 이를 조선에서 쓰던 돈으로 환산해보니 2냥8전이었다. 매우 싼 가격이다. 중국은 물가가 모두 비쌌는데, 이것은 매우 쌌다. 이것이 이렇게 싼 이유는 청나라 사람들은 개를 즐겨 먹지는 않기 때문이다. 마침 신흥강습소 기숙사에서 황서방(황병일)이 왔다. 마침 개장국이 있자 마음속으로 매우 기뻐하였다. 이날 식구들은 오랜만에 조선의 방식으로 개장국을 끓여 입맛에 맞게 먹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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