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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씨와 권씨의 400년 묵은 자리싸움
오랜만에 고향에서 올라온 편지에는 안동에서 있었던 큰일이 적혀 있었다. 안동에는 세 명의 태사를 모시는 사당인 태사묘(太師廟)가 있다. 이 태사묘를 둘러싼 분쟁이 발생한 것이다. 김선평(金宣平), 권행(權幸), 장정필(張貞弼)이 태사묘에 모셔진 안동 출신의 태사인데, 고려 초 견훤의 난이 있을 때 공을 세운 일이 있어서 고려 태조가 이들 중 권행에게 권씨를 하사했다고 전해진다.
사당 안에는 좌측에 김 태사, 가운데에 권 태사, 오른쪽에 장 태사의 위패가 모셔져 있었다. 옛날에는 예를 행할 때 가운데가 가장 상석이어서 제사를 지낼 때 권 태사를 주향으로 삼아 가운데에 술을 두고 축문을 읽곤 했다. 그런데 조선이 세워진 지 약 300년이 지난 시점에 김상헌(金尙憲)이 말하기를, 예로부터 가장 상석으로 치는 곳은 동쪽이니만큼 김 태사가 마땅히 주향이 되어야 한다고 한 것이었다. 김상헌은 김 태사의 후손이었기에 이러한 주장을 한 것이다. 권씨가 가만히 있을 리가 없었다. 권씨와 김씨가 서로 소장을 올리니, 결국 선대왕인 영조대에 이르기까지 결판이 나지를 않았다. 거의 100여 년 가까이 끌어온 소송이었다. 선대왕은 결국 제사를 지낼 때 권 태사와 김 태사 양쪽에 동시에 술을 올리도록 명하였다.
그런데 다시 몇십 년이 지난 지금 다시 김씨가 책자 하나를 만들어서 김 태사가 주향이 됨이 마땅하다는 취지를 널리 알렸다. 이 사실을 알게 된 권씨는 반발하여 이에 맞서는 책자를 만들었는데, 이 책자 이름을 변무록(辨誣錄)이라 하였다. 두 성 사람들은 당색을 상관하지 않고 자신의 성씨에 따라 마구 헐뜯고 싸웠다. 노상추는 두 성씨의 오랜 다툼을 듣고 별일이 다 있다며 헛웃음을 웃었다. 어차피 세도 있는 두 성씨의 일이다. 앞으로 어떻게 되든 노상추 자신처럼 세력 없는 사람과는 상관없는 일이었다.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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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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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이야기
출전 :
노상추일기(盧尙樞日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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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노상추(盧尙樞)
주제 : 제사
시기 : 1791-05-12
동일시기이야기소재
장소 : 서울특별시 중구
일기분류 : 생활일기
인물 : 노상추, 김선평, 권행, 장정필, 견훤, 왕건, 김상헌, 영조
참고자료링크 :
웹진 담談 121호
조선왕조실록
한국역대인물 종합정보 권행
한국역대인물 종합정보 견훤
한국역대인물 종합정보 김상헌
한국역대인물 종합정보 영조
한국역대인물 종합정보 김선평
한국역대인물 종합정보 노상추
한국역대인물 종합정보 왕건
◆ 안동 명문가문들의 뿌리가 있는 곳, 태사묘
이 이야기는 김수흥이 안동을 지나면서 태사묘에 참배한 내용을 담고 있다. 태사묘는 고려 건국에 큰 공을 세운 안동권씨의 시조 권행(權幸), 안동김씨의 시조 김선평(金宣平), 안동장씨의 시조 장정필(張貞弼)을 제향하고 있는 사당이다. 문헌에 의하면 신라 말엽에 김행이 고창군(古昌郡 : 지금의 안동)을 지키고 있을 때 후백제왕 견훤(甄萱)이 반란을 일으켜 경주로 쳐들어와 왕을 죽이고 왕비를 능욕하였으므로 고려 태조 왕건이 견훤을 토벌하고자 신라로 내려왔다. 왕건의 군대와 견훤의 군대가 팔공산을 중심으로 대치하고 있을 때 김행이 김선평, 장정필과 상의한 끝에 고려를 도와 신라의 복수를 꾀하였다. 뒤에 왕건이 삼국을 통일한 뒤에 김행의 용기를 칭찬하여 권씨로 개성(改姓)하게 하고 김선평과 장정필을 모두 태사에 봉한 뒤 안동을 부로 승격시키고 사당을 지어 부민이 제사를 지내도록 하였다. 이후 안동부민이 3태사의 업적을 추모하여 사당을 세우고 제사를 지냈으며, 사당 건물은 1561년(명종 16)에 중수하였다. 당시부터 천여 년간 안동권씨 측에서 묘사를 주관하였으나 영조 때 왕명으로 3공신의 자손은 동일한 것이니 3태사의 자손이 공동 관리할 것을 명하여 오늘날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묘우 안에는 묘정비·보물각·숭보당·경모루 등이 있어 유물과 유적을 보관하고 있으며 3태사의 자손들이 모여서 봄과 가을에 제사를 지낸다. 또한, 3공신묘는 지방의 사우 중 가장 오래된 것이며 고려건축의 방식을 그대로 답습하여 중수 때에도 제도를 변경하지 않았다.
◆
원문 이미지
◆ 원문 번역
신해일기 1791년(정조15) 5월 12일(병술) 볕이 남. 내일은 어머니의 기일이라서 재계하고 소식素食하였다. 들으니 안동安東의 태사묘太師廟에 대한 일 때문에 김씨金氏와 권씨權氏의 다툼거리가 생겼다고 한다. 이 일의 전말은 다음과 같다. 안동의 삼태사三太師 중에서 권씨權氏의 경우에는 고려 초 견훤의 난이 있을 때 큰 공훈을 세웠기 때문에 고려 태조가 기미를 살펴서 권도權道에 통달하였다고 하여 권씨 성을 하사한 것이다. 태사 김선평金宣平·태사 권행權幸·태사 장정필張貞弼은 모두 안동 사람이었기에 그후에 고을 사람들이 사당을 세워서 제사를 지냈는데, 그 공덕을 사모하였기 때문이다. 사당 내의 위판의 좌차는 김 태사를 동쪽에 두고, 권 태사를 주벽으로 하고, 장 태사를 서쪽에 두었다. 옛날에는 사당 내에서 예를 행하는 절차에서 가운데를 상석으로 여겨서 그곳에 술을 올리고 축문을 읽었기 때문에, 권 태사를 주향主享으로 삼았다. 그런데 중간에 청음淸陰 김상헌金尙憲이 옛날에는 동쪽을 상석으로 하는 규례가 있었으니 김 태사가 당연히 주향이 된다고 하였다. 청음은 김 태사의 자손이었는데 당시에 대신으로서 논의를 꺼낸 것이다. 그 후에 권씨와 김씨 두 성姓에서 서로 소장을 올리니, 선대왕 때에 이르러서는 동시에 술을 올리는 것으로 기준을 삼도록 규칙을 정하였다. 그런데 지금에 와서 김씨가 책자 하나를 만들어서 세상에 간행하여 권씨의 고사古事를 현혹시켰기 때문에 권씨 측에서도 책자 하나를 만들었는데 변무록辨誣錄이라 하였다. 권씨와 김씨의 두 성姓 사람들은 당색에 관계없이 모두 다투고 있으니, 앞으로 일이 어떻게 변할지 알 수가 없다. 들으니, 훈련대장 조심태趙心泰가 파직당하여 도제조인 좌의정 채蔡□□가 겸하여 살피게 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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