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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 스토리테마파크에서 놀자!”의 마당에서
제대로 놀았던 학생들을 기억하며

토요일의 이른 아침. 홍대입구역 9번 출구를 오르니 왠지 설렌다. 11월인데도 너무나 화창하고 따뜻한 날씨에 대학생들의 풋풋함과 싱그러움까지 더해진 듯하다. 홍대입구역의 아침은 전쟁 같았던 지난 금요일 밤의 열기가 식지도 않는 채 그대로 아침을 맞이한 듯 아직은 어수선하다. 다시 어둠이 내려앉으면 토요일 밤의 젊은 열기로 다시 한번 불태워질 홍대입구역. 젊음. 그 자체를 표현하듯 거리는 활기차게 술렁일 것이다.

두리번거리며 심사위원의 집합 장소를 찾았다. 바로 지척에 있음을 확인하고 100여 미터도 채 되지 않을 짧은 거리를 걸으며 잠시 만감이 교차했다. 수십 년 전 합정동의 어느 한 여자 중학교에 다녔던, 검정 교복에 흰 칼라를 달고 갈래머리 나풀거리며 친구들의 팔짱을 끼고 깔깔거렸을 아담한 소녀(나)의 모습이 아련하게 스쳤음에 잠시 미소 지었다. 당시 이곳에는, 친구의 집도 있었고, 학교도 지척에 있었기에 우리는 방과 후 대부분을 이곳에서 곳곳을 누비며 미래를 얘기했을 것이다.

오랜만이어서인가. 너무도 변화한 홍대입구역 서교동 일대는 낯선 분위기 속에서 근처에 있었던 친구의 집이 그립기까지 하다. 아주 짧게나마 추억의 시간이 스쳐 지나가고 어느새 약속 장소에 도착하였다. 누군가가 나를 알아 봐주고 환하게 인사를 건넨다. 조금 더 안쪽으로 들어가니 반달 같은 작은 두 눈에 친절함 가득 담은 미소로 나를 맞이해 주는 신경미 선생님의 얼굴이 너무나 반가웠다.

간단히 심사위원 회의를 마치고 위원들은 리허설을 끝내고 설렘 반, 떨림 반으로 기다리고 있을 학생들의 발표 장소로 걸어 올라갔다. 홍익대학교 바로 앞 하얀 건물 지하층에 내려가니 안면이 있는 몇몇 선생님들의 반가운 인사가 또 나를 맞이한다.

마음속으로야 어찌 긴장하지 않았겠느냐만 이 아이들, 이 파릇파릇한 청년들이 서로의 팀을 응원하며 격려하고, 또 자신의 팀을 위해 파이팅을 다지며 크게 웃어 보이는 모습들이 어쩌면 낯설기까지 했을까? 여느 일반 공모전이나 지원 사업을 심사할 때 보았던 광경과 사뭇 다른 모습들에 기분 좋게 놀랐음이다.



〈한국국학진흥원에서 진행하는 전통 기록문화 활용 대학생 콘텐츠 공모전
“청춘, 스토리테마파크에서 놀자!”〉


발표일 3주 전쯤 최종 8팀의 기획서를 받았다.
2, 3일 일정이 있어서 부산을 다녀오느라 파일을 미처 열어 보지 못했었다.
그런데 아뿔싸!! 이런!! 와우!!






〈사부랑 사부랑 팀의 ‘열매달 아흐레 도깨비 주막’〉


마침내 열어 본 첫 번째 기획서 사부랑 사부랑 팀의 ‘열매달 아흐레 도깨비 주막’ 115페이지. 한 팀당 3∼40페이지 정도이려니 조금 여유를 부렸던 나는 일단 그 분량에 압도당했다. 그리고 한 장, 한 장, 또 한 장, 그 치밀한 기획서의 나열에 또 한 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세 명의 팀원이 얼마나 많은 회의 시간을 가졌을지, 얼마나 많은 전통 자료들 속으로 들어가 역사의 한 장, 한 장을 파헤쳤을지, 멘토님의 애정 어린 조언과 충고로 얼마나 성장했을지, 그리고 마침내 구현한 소통의 장소 도깨비 주막에서 시작할 신주 찾기 프로젝트의 완성이 경이롭게 느껴졌다. 스토리의 높은 완성도는 최종 발표의 시작을 여는 작품으로서 충분한 매력을 발산하였다. OTT 분야답게 넷플릭스를 패러디한 오프닝 아이디어가 기발했고, 드라마 트레일러를 제대로 감상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전통주와 캐릭터를 연결하고, 소통의 부재를 해소할, 긍정적 도구로 술을 활용한 점도 신선했다. 드라마로서의 기획 이전에 사업화의 시작점이 될 웹툰 분야에서의 출발이 몹시 기대되는 작품이었다.






〈태.진.아 팀의 ‘계추: 당신은 나의 동반자’〉


이른 시간 출발로 인해 아침을 거른 탓에, 살짝 허기짐을 느끼고, 다소 기운이 약해지고 있던 순간, ‘계추: 당신은 나의 동반자’ 태.진.아 팀의 등장은 달곰하게 익은 열량 가득한 바나나 하나를 건네받은 행복감이었다. 기획서에서부터 울림과 울컥의 순간을 넘나들며 내가 살아오면서 이토록 비둘기가 사랑스럽게 느껴졌던 때가 있었던가 했던, 그 작품의 프레젠테이션이 시작된 것이다. 발표자의 구수한 입담이 더해진, 판소리 마당놀이와도 같은 구성은 얼쑤!! 하는 추임새가 절로 나왔다. 조선시대에도 반려동물을 키웠고 그것이 비둘기였다는 소재는 이전에는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던 설정이기에 그 자체로 호기심과 흥미로움이 발동한 작품이었다. 비둘기를 키워 하늘에 바치면 죽었던 사랑하는 사람을 다시 만날 수 있다는 소문으로 키운 비둘기는 차마 그 본래의 쓰임을 다하지 못했지만 어쩌면 그 이상의 위로와 안정감을 전해 주었으리라…. 반려동물 천만 시대에 걸맞게 공감을 높일 수 있는 작품이라는 평가가 여러 심사위원의 공통 의견이었다.






〈극한만남 팀의 ‘투전: 뒤틀린 뿌리’〉


이어서 극한만남 팀의 영화 분야 ‘투전: 뒤틀린 뿌리’가 긴장된 투전판을 펼친다. 영화 프로듀서로서 어쩌면 가장 큰 관심을 가졌을 작품이다. 제목도 좋았다. 흡사 영화 정보 프로그램의 스토리 소개 같은 형식의 다소 단조로운 발표였지만, 전통 소재 속에서 끌어낸 투전판 명루관의 이야기는 스팩터클했고, 섬뜩했고, 이야기의 전개는 흥미진진했다. 소재의 활용 아이디어는 좋았으나 굳이 타임슬립의 형식을 빌려 조선시대를 다녀온 주인공이 만들어 낸 결말은 다소 카타르시스가 약했던 것 같다. 하지만 이야기의 구성과 상황의 설정 등은 이미 상업영화의 틀을 갖추고 있는 작품이었다.







〈작전명 청춘 팀의 ‘광화(光華): 사행역사축전’〉


이제 축제를 즐길 시간이다. 작전명 청춘 팀의 ‘광화(光華): 사행역사축전’이 시작되었다. 서울 광화문 광장의 브랜드 강화를 위한 빅아웃도어 몰입형 체험 축제를 펼치겠다고 한다. 나라 간의 소통 창구이며 국가 간 평화 관계 유지의 임무를 수행한 사행단의 발걸음을 축제로 재현해 보고자 한다는 기획적 의도와 그 구성이 대단히 체계적이다. 퍼포먼스 과정 중에 약간의 이슈가 발생하였지만, 한겨울의 신년 축제를 소개하는 발표자들의 열정은 뜨거웠고, 침착했으니 오히려 좋은 평가 결과를 얻지 않았을까?







〈생로병사의 비밀 팀의 ‘륜: 조선 악귀 퇴치사’〉


전통 소재를 끌어와 게임을 기획했다니 흥미로웠다. 생로병사의 비밀 팀은 불교 교리를 쉽게 전달하기 위해 서산대사가 고안해 낸 보드게임의 성불도놀이를 소재 삼아 ‘륜: 조선 악귀 퇴치사’라는 게임의 스토리텔링을 구상하였다. 게임의 개발까지는 다소 멀어 보이는 기획이지만 연민의 정서를 통해 지옥에서 탈출할 수 있다는 그 설정이 여느 게임들의 폭력적이고 파괴적인 정서에서 벗어나 있으니 그것만으로도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었다. 각기 다른 전공자들이 전공에 맞게 역할 분담을 잘하여, 환상의 팀을 이루었다고 짐작된다.







〈소.세.지 팀의 ‘오작오작’〉


소.세.지 팀은 세 명의 같은 전공자들로 구성된 웹툰 팀이었다. 전공자들답게 꽤 매력 있는 그림체와 캐릭터 설정으로 일단 심사위원의 호응을 끌어냈다. 제목 ‘오작오작’의 발상 또한 유쾌하다. 시간여행이라는 장르와 빙의라는 설정 자체는 그다지 새로울 것이 없어 보였다. 그러나 현대의 여성 법의관과 죽은 자의 몸을 살펴 진실을 밝힌다는 조선 시대 남성 오작인이 한 몸이 되어 풀어가는, 진실의 문을 여는 스토리가 꽤 흥미로웠다. 사업화가 무난히 진행될 만한 그림체의 매력으로 어쩌면 드라마 기획까지도 노려볼 수 있지 않을까….

긴장된 발표의 현장에서는 당사자들 외에 심사위원들도 꽤 진지하게 집중을 유지하느라 당 충전마저 필요한 순간이 있다. 목도 마르고, 장시간 앉아 있어 허리도 뻐근하다. 커피가 고프고 각성이 필요한 순간에 휴식 시간이 허락되었다. 짧았지만 충전의 시간은 소중했다.







〈무도회 팀의 ‘비선검무’〉


무도회 팀의 ‘비선검무’가 화려하게 비상한다. 신라 시대의 원화와 그들의 검무는 한때 드라마에서 많이 다루던 소재였다. 그러나 무도회 팀은 타임슬립을 통해 현대로 온 주인공들이 최고의 춤꾼을 찾는 방송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된다. 그로 인해 벌어지는 사건들이 우리를 예상치 못한 세계로 이끌었다. 반복된 시간여행이 다소 식상한 부분이 있겠지만 검무가 접목된 주인공의 춤 솜씨는 요즘 트렌드를 잘 반영하여 시청자층에 큰 호응을 얻을 수도 있으리라. 극작과에 재학 중인 3인의 무도회 팀이 8부 분량의 대본도 직접 쓴다고 하니 더더욱 기대치가 올라간다.







〈성수정 팀의 ‘화목’〉


드디어 발표의 피날레를 장식할 ‘화목’의 성수정 팀이 그 무거운 긴장의 막을 열고 등장했다. 임진왜란 후의 피폐한 백성들의 삶과 단오제를 소재 삼아 다소 무거운 공포의 장르로 이야기를 구성하였다. 앞으로 영화감독을 꿈꾼다는 어느 구성원의 연출 감각이 돋보이는, 한 편의 영화와도 같은 영상물이 상영되었는데 꽤 진지한 전개가 몰입도를 올려주었다. 하지만 단오제라는 소재 활용이 조금 무리수였다는 심사위원들의 의견이 있었고, 극의 결말에 대해서도 아쉽다거나 의미 있다거나 하는 의견이 엇갈렸다. 그러나 아직 대본을 집필하지 않은 기획의 단계에선 지적이 아닌 개선안을 제안한 것이니 대본 집필에 큰 도움이 되리라 생각해 본다.






심사위원 아홉 분의 의견과 점수가 취합되어 대상이 정해지고 각 팀의 활약상에 걸맞은 상이 결정되었다. 모두가 인정한 결과였다. 모든 참여자와 멘토님들의 노고를 위로하고 본선 진출 8팀 모두의 수상을 축하하는 저녁 식사와 뒤풀이 자리가 있었다. 50여 팀의 경쟁 팀 중에서 본선 진출한 8팀의 발표는 놀라울 정도로 수준 높았고, 타 공모전에서 볼 수 없었던 기발한 퍼포먼스 또한, 흥미로웠기에 나는 뒤풀이 자리마저 참석해 학생들과 아주 재밌고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내며 행복한 기분으로 막걸리 잔을 부딪쳤다.

대상을 차지한 소.세.지 팀을 비롯한 일곱 팀 모두에게 전하고 싶다. 이번 공모전 진행 과정과 피칭은 여러분에게 큰 경험을 넘어 경력이 될 수 있을 만큼 의미가 있으리라, 이번 과정에 함께한 다른 팀의 구성원들과 각 멘토님 그리고 여러분을 뒤에서 도와준 한국국학진흥원의 여러 선생님의 응원은 큰 자산으로 남을 것임을 믿으라고 말하고 싶다.

처음 심사위원으로 참여했던 나에게도 이번 공모전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2024년 유난히도 하늘이 맑았던 11월의 그날은 오래도록 나의 기억에 있으리라….

2024년 11월 15일




집필자 소개

박미정
박미정
서울예대와 단국대학교에서 영화 연출과 영화 기획을 전공하였다. 1986년 흔히 말하던 충무로라는 영화판에서 연출부로 시작한 영화인의 길. 십여 년간 조감독의 시간을 거쳐 2000년 밀레니엄을 여는 시기에 영화 ‘조폭 마누라’의 프로듀서를 시작으로 기획자의 길에 들어섰다. ‘대한민국 1%’ ‘덕수리 오형제’ ‘나는 아빠다’ 등의 작품에 프로듀서로 활동하였으며, ㈜기억속의매미의 총괄 프로듀서로 영화 ‘데시벨’의 공동제작에도 참여하였다. 곧 개봉될 영화 ‘어른동화(가제)’에서는 제작지원총괄의 업무를 수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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