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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풍이 지각한 겨울의 문턱에서

겨울이 들어선지 조금 되었는데 뒤늦게 지각한 단풍이 산과 숲을 물들이고 나뭇가지 끝에 붉은 이파리들이 햇빛에 빛나고 있습니다. 며칠이 지나면 일년 중 눈이 가장 많이 내린다는 대설(大雪)입니다. 대설은 농민들이 한해 농사를 마무리하고 새해를 준비하느라 한가하다는 음력 11월입니다.

하지만 도시에 살고 있거나 직장에 있는 이들은 “분초사회”라는 키워드처럼 마무리하고 새로 준비할 많은 일들이 기다리고 있어서 시간의 밀도가 높아지는 시기입니다. 수습되지 않은 사회적 혼돈이 이 겨울과 함께 할 것 같은 두려움이 느껴집니다. 그럼에도 저희는 보리의 이불이라는 눈 내리는 날을 기다리며 《웹진 담談》을 마련했습니다.

첫번째 글 ‘소.세.지. 각각의 개성이 한 줄로 엮어 작품이 되다’에는 지난 11월 9일, 홍익대학교 H-STAGE에서 열린 《전통 기록문화 활용 대학생 콘텐츠 공모전》 최종 무대 현장의 열정을 담았습니다. 6개월의 대장정을 마친 8팀이 각기 다른 개성으로 빚어낸 창작물을 선보이며 관객을 감동시켰습니다. 대상 수상작 “소.세.지” 팀의 웹툰 『오작오작』은 조선시대와 법의학을 결합한 독창적 스토리와 뛰어난 작화로 주목받았습니다. 전통을 현대와 잇는 이들의 노력은 앞으로도 새로운 길을 열어가기를 기대합니다.

박미정 선생님은 ‘“청춘, 스토리테마파크에서 놀자!”의 마당에서 제대로 놀았던 학생들을 기억하며’에서 공모전 심사에 참여한 하루를 영화 연출자이가 영화 기획자의 관점으로 일기처럼 생생하게 펼쳐 보이셨습니다. 공모전에 참여한 8팀의 기획서와 피팅의 내용과 열정이 눈앞에 보이는 듯합니다. 긴 여정을 함께한 모든 학생들의 노력이 만들어낸 작품들은 단순한 발표를 넘어, 그 자체로 문화와 역사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주는 순간입니다.

서은경 작가님의 ‘독(獨)선생전’ ‘백전백패’는 영조31년 나주괘서사건(羅州掛書事件)을 배경으로 합니다. 미친듯이 공부하고 노력하여도 돈도 가문 배경도 없는 이들이 뜻을 펼칠 수 없어 백전백패하며 혼란의 조선 후기를 감당하던 이의 처지와 마음을 작품으로 그려내어 주셨습니다. 지금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큰 공감을 주는 이유는 어디에서 비롯되는지 궁금해집니다.

이수진 선생님은 ‘과거에 미래를 쓰다’에서 여성국극을 조명한 웹툰 『정년이』와 드라마 〈정년이〉를 평론하며 여성국극단을 어떻게 시작되어 한 시기 대중들의 큰 사랑을 받고 수그러들었는지 역사적 맥락에서 설명해 주셨습니다. 하지만 드라마 〈정년이〉와 〈레전드 춘향전〉처럼 소리와 이야기가 어우러진 국극은 역경 속에서도 그 빛을 잃지 않고 이제 더 많은 관심과 사랑을 받으며, 새롭게 피어나고 있다고 이야기하십니다.

이문영 작가님의 ‘손님이 떠나갔다’는 한적한 시골 마을에 닥친 역병과 그 속에서 펼쳐지는 한 소녀의 용기와 지혜를 담은 이야기입니다. 목금과 불새 불돌이가 함께하는 여정은 마마신이라는 초자연적 존재를 물리치는 활약을 통해, 역경 속에서도 빛나는 인간의 끈기와 희망을 보여줍니다. 전통과 현대적 상상력이 어우러진 이 작품은 묻습니다. “우리는 삶의 재앙을 어떻게 마주할 것인가?”

이번 호의 ‘나무판에 새긴 이름, 편액: 끝에서 시작하는 이야기’에서는 2024년 《웹진 담談》에서 다루어온 편액을 찾아 나선 그 뒷이야기가 펼쳐집니다. 길 위에서 만난 편액은 단순한 나무판이 아닌, 삶의 지혜와 온기를 전하는 이야기꾼이었습니다. 답사 중 길을 잃고 헤매던 순간마다 마주한 편액은 때로는 친구처럼, 때로는 거울처럼 돌아보게 해준 여정을 보여줍니다.

음력 11월인 지금은 한해 농사를 열심히 지은 농민들이 가을 동안 수확한 어린 곡식들을 곳간에 쌓아놓고 당분간은 끼니 걱정을 하지 않던 풍성한 시기였다고 합니다. 눈이 많이 내리면 다음 해에 풍년이 들고 따듯한 겨울을 날 수 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한 해가 저무는 계절에 《웹진 담談》 독자 여러분께 따듯하고 행복한 연말연시를 위한 인사드리며 소당(嘯堂) 김형수(金逈洙)의 농가십이월속시(農家十二月俗詩)의 11월 부분을 시(詩) 선물로 배달합니다.

때는 바야흐로 한겨울 11월이라(時維仲冬爲暢月)
대설과 동지 두 절기 있네(大雪冬至是二節)
이달에는 호랑이 교미하고 사슴뿔 빠지며(六候虎交麋角解)
갈단새 울지 않고 지렁이는 칩거하며(鶡鴠不鳴蚯蚓結)
염교(옛날 부추)는 싹이 나고 마른 샘이 움직이니(荔乃挺出水泉動)
몸은 비록 한가하나 입은 궁금하네(身是雖閒口是累)




편집자 소개

공병훈
서강대학교에서 미디어경제학을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협성대학교 미디어영상광고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연구자와 대중을 연결하는 독립언론 《반디뉴스》 편집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대표 저서로는 『광고는 어떻게 세상을 유혹하는가?』, 『4차 산업혁명 상식사전』 등이 있다. 기술혁신 환경에서의 미디어와 커뮤니케이션의 진화를 주제로 연구 활동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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