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허촌에 역병이 돈 지 보름. 여러 사람들이 앓아누웠고, 몇몇은 벌써 세상을 떠났다. 시작은 마을 입구의 주막이었는데 주막 사람들이 모두 죽을 때까지 아무도 알아채지 몰랐다. 그 사이에 역병이 번지기 시작했고 결국 마을 전체가 공포에 떨게 되었다.
목금은 정약용이 쓴 『마과회통』을 보고 예방법을 시행했다. 덕분에 역병을 끌고 온 마마신을 무서워하지 않아도 되었다. 목금은 집 구석에 몰래 숨어든 불청객을 때려잡은 뒤에 묵직한 서진(書鎭)을 손에 쥐고 제일 먼저 가장 친한 친구 백이네 집으로 향했다. 집 분위기가 심상치가 않았다. 가슴이 덜컥 내려앉은 목금이 후다닥 백이의 방으로 향했다.
“목금이 왔니? 들어가면 안 된다.”
마루 앞을 왔다갔다하던 백이의 어머니가 연신 한숨을 내쉬며 손을 내저었다.
“백이한테 손님이 오셨구나. 당골네를 불렀으니, 좀 기다리렴.”
당골네는 마을 무당 임씨를 말하는 거였다. 목금은 그 말을 무시하고 그냥 방으로 뛰어들어갔다.
〈『무당내력』 가람본 소재 「별성거리」 그림〉 (출처: 규장각한국학연구원)
“목금이 왔어?”
백이가 간신히 눈을 뜨더니 기운 없는 목소리로 인사를 했다. 이불을 뒤집어쓰고 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다. 목금이 고개만 끄덕이고는 급히 말했다.
“예방법 시행했어?”
“아직 못 했어. 미안….”
“그렇다면….”
목금이 예리한 눈길로 방안을 둘러보았다. 천장 귀퉁이에 이상한 그늘이 있었다. 원치 않은 손님, 마마신이 분명했다.
“에잇!”
목금이 서진을 냅다 집어던졌다. 하지만 어둠은 다른 구석으로 잽싸게 도망쳐 서진은 헛되이 천장 귀퉁이에 구멍만 내고 떨어져버렸다.
“꺼… 져… 라… 저… 아이는… 내 것….”
어둠 속에서 심장을 쥐어뜯는 듯한 소리가 흘러나왔다.
〈두창신의 다른 이름인 호구아씨를 그린 그림〉 (출처: 국립민속박물관)
“에이, 팔이 닿질 않네.”
집에 있던 마마신과는 달리 이놈은 기운이 넘친다. 재빨라서 잡기가 쉽지 않았다. 어쩔까 고민하던 목금은 다시 후다닥 방을 뛰쳐나갔다. 뒤쪽 아궁이로 달려간 목금은 불돌이를 불러냈다. 불돌이는 예전에 망허산에서 데려와 아궁이 속에서 키우고 있는 불새다. 목금은 불돌이를 다른 사람 눈에 안 보이게 조심스럽게 그릇에 담아서 백이의 방으로 다시 돌아왔다.
“불돌아, 저거 보이지. 우리 백이를 괴롭히는 손님이니까 네가 좀 잡아주렴.”
불돌이는 곧바로 날갯짓을 하더니 천장 구석의 그늘을 향해 날아갔다. 당황한 마마신은 백이를 향해 날아들었다. 하지만 그 앞에는 목금이 버티고 있었다. 목금은 마마신을 전혀 무서워하지 않고 묵직한 서진을 치켜들더니 그대로 빡 소리가 나도록 내리쳤다. 마마신의 몸에서 검은 가루가 우수수 떨어졌다. 드러난 것은 사람 비슷해 보였다. 발이 보이지 않았지만 도포를 입고 갓을 쓰고 있었는데 서진에 세게 맞아 갓은 찌그러져 있었다.
“아야야, 왜 이렇게 아프지? 넌 대체 뭐냐?”
목소리도 어두운 그늘처럼 보일 때와는 달리 멀쩡하게 들렸다.
“난 역병에 걸리지 않게 된 사람이야. 그러니까 네가 하나도 무섭지 않아.”
마마신이 킥킥 웃었다.
“간혹 그런 사람들이 있지. 하지만 우리도 네가 무섭진 않아.”
“오호, 그러셔?”
목금이 소매를 걷어 올렸다.
“이걸로 좀더 맞아보면 누가 누굴 무서워해야 하는지 알 거다.”
그 말에 마마신은 혀를 끌끌 찼다.
“넌 정말 하나도 모르는구나. 네가 여기서 날 없애버린다 해도 이 마을에서 손님이 나가는 일은 없을 거야.”
“나가지 않아도 돼. 내가 하나하나 찾아서 다 없애버릴 거니까.”
마마신이 다시 킥킥 웃었다.
“그러니까 네가 뭘 모른다는 거야. 우리는 하나면서 여럿이라서 여기서 없어져도 저기서 나타나거든.”
목금이 서진을 번쩍 치켜들었다가 멈칫했다.
“그게 무슨 소리야?”
“넌 우리를 뭐라고 생각하니? 우리 이름은 알아?”
“이름이 뭔데?”
“너희들은 우리를 무서워해서 마마라고 높여 부르지. 또 손님이라고 해서 잘 대접하려는 척하기도 하고.”
“난 그럴 생각 없으니까 안심해도 돼.”
그때였다. 불돌이가 살금살금 마마신 뒤로 다가가 그대로 마마신을 덮쳤다.
“으악! 이건 대체 뭐야? 뜨겁잖아! 뜨겁다고….”
불돌이가 발로 누르자 마마신은 공기 빠진 돼지 오줌보처럼 몸이 줄어들기 시작했다. 불돌이는 그대로 찍어 눌러서는 마미신을 콩알만 하게 만들어버렸다. 그러더니 그걸 꿀꺽 삼켜버렸다.
백이가 눈이 휘둥그레졌다.
“불돌아, 그런 걸 먹어도 돼?”
불돌이는 대답이라도 하는 듯이 끄윽 트림을 길게 했다. 트림과 함께 검은 연기가 한 줄 나왔다가 바로 사라져 버렸다.
〈조선시대 약장. 하단 중앙에는 귀한 약재와 극약을 보관할 수 있도록
열쇠 구멍만 겉으로 보이는 자물쇠가 달려있다.〉
(출처: 국립중앙박물관)
“백이야, 몸은 좀 어때?”
목금이 황급히 몸을 돌리더니 백이의 이마를 손으로 짚었다. 열이 내렸다.
“이제 안 아파. 다 네 덕이야!”
백이가 목금을 와락 껴안았다.
“내 덕은 무슨… 다 불돌이 덕이네.”
백이가 불돌이를 돌아보며 말했다.
“불돌아, 고마워.”
목금이 백이의 손을 잡고 말했다.
“이럴 때가 아니야. 임씨 아저씨네도 위중하다고 하더라고. 나는 빨리 거기 가봐야겠어.”
“나도 같이 가.”
“넌 금방 나았으니 가만히 있어.”
“안 돼. 내가 불돌이 데리고 갈게.”
백이는 바로 이불을 걷어차고 불돌이를 그릇에 담았다. 불돌이가 어쩐지 전보다 좀 무거워진 느낌이었다. 백이는 자기가 아픈 바람에 기운이 없어져서 그렇게 느낀 게 아닐까 의심했다. 둘이 방을 나오자 제일 놀란 건 백이 어머니였다.
“아니, 너 괜찮니?”
“다 나았어. 엄마.”
〈마마배송굿에 쓰이는 짚말〉 (출처: 국립민속박물관)
그때였다. 중문을 열고 무당 임씨가 들어섰다. 백이 어머니의 얼굴이 활짝 폈다.
“어이쿠, 자네가 와서 손님을 쫓아낸 거였구만. 백이가 벌써 자리에서 일어났네.”
임씨의 얼굴에 살짝 어리둥절함이 비쳤지만 금방 너스레 좋게 입을 열었다.
“쇤네가 누군데 감히 마마신이 설치겠습니까? 아무 걱정 마십시오. 이제 마마배송굿만 하면 되는데, 말이에요.”
“그러게 말일세. 자네가 이렇게 용한데, 바깥어른이 영 마음을 안 여시니… 하지만 백이가 자네 덕에 나았다고 말씀드리면 곧 굿을 하게 허락하실 걸세.”
“그럼 믿고 기다리겠습니다.”
백이 어머니와 임씨가 이런 수작을 주고받는 동안 두 소녀는 살금살금 집을 빠져나왔다.
“아까 마마신이 하던 말이 뭐였을까?”
목금이 달음박질을 하며 말했다.
“귀신들이 하는 말을 귀담아들으면 뭐 하겠니. 다 사람을 홀리려는 말이야.”
“그렇긴 하겠지만 뭔가 있는 것 같았어.”
“우선 임씨 아저씨들 구하고 생각하자.”
백이네 소작인이기도 한 임씨 형제는 얼굴에 열꽃이 심하게 피어 생사기로를 헤매고 있는 중이었다. 임씨 형제가 아픈 만큼 마마신의 덩치는 더욱 컸다.
“가소롭구나. 너희들이 감히 날 잡겠다고?”
마마신은 검은 재를 흩뿌리며 껄껄껄 웃어 제쳤다. 하지만 백이가 그릇 뚜껑을 열어 불돌이를 날려보내자 그 웃음은 곧 비명으로 바뀌었다.
“으아아악! 이 괴물은 뭐야? 우리가 가만 있을 것 같으냐?”
“불돌아, 잠깐만!”
목금이 불돌이를 멈춰 세웠다.
“너, 진짜 이름이 뭐야?”
마마신은 고개만 도리질했다.
“이름을 말해 주면 없애지 않고 보내줄게.”
“목금아, 그건….”
“조, 좋다. 우리 진짜 이름은 호구별상이다.”
목금이 미간을 찌푸렸다.
“별상이라고? 그건… 파견 가는 신하를 가리키는 말이 아니더냐?”
마마신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 우리는 집집마다, 즉 호구마다 찾아가는 별상이라서 호구별상이라고 하는 것이다.”
“별상은 명을 받아 움직이는 거다. 너희에게 명을 내리는 자는 누구냐?”
“그야 대별상마마시지.”
“대별상은 어디 있느냐?”
“이 모든 것이 시작된 곳에 계신다. 이제 나 좀 놔주지?”
백이가 말리려 했지만 목금이 먼저 불돌이에게 비키라고 말해버렸다.
“고맙구나, 그래도 약속은 지킬 줄 아는군.”
마마신이 펑 소리와 함께 사라졌다. 동시에 임씨 형제들도 정신을 차렸다.
“으으… 몸이 좀 가벼워졌어.”
백이와 목금은 임씨 형제의 물수건을 갈아주고 물도 떠다 주는 등 수발을 들어준 뒤에 그 집을 나왔다.
“아저씨들이 목숨은 건졌지만 곰보가 되는 건 피할 수 없을 것 같아. 너무 늦게 찾아왔네.”
목금이 혀를 찼다. 백이가 속상해하는 목금의 손을 잡았다.
“목숨을 건진 게 중요하지. 더 늦었으면 영영 못 보게 될 수도 있었을 텐데. 그나저나 대별상은 어디서 찾아?”
“그건 식은 죽 먹기지. 아까 마마신이 다 이야기했어. 이 모든 게 시작된 곳이라고 했잖아. 주막에 있는 거야.”
“그렇구나. 그럼 빨리 가자.”
〈제주큰굿 ‘불도맞이’의 한 장면. 불도맞이는 제주큰굿의 한 종류로 아이를 점지하고 출산·양육을 담당하는 삼승할망,
아이에게 질병을 일으키는 구삼승할망 그리고 마마를 앓게 하는 마마신을 맞이하여 모시고 행하는 제의이다.〉
(출처: 제주일보)
대별상은 정말 주막에서 백이와 목금을 기다리고 있었다.
“아까 호구별상 하나가 와서 너희들이 찾아올지도 모르겠다고 말했는데, 정말 왔구나. 빨리도 여길 찾았구나.”
대별상은 귀신처럼 보이질 않았다. 대관복을 차려입고 위엄 넘치는 각진 사모를 쓰고 있었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그 몸 사이사이에서 검은 기운이 피어오르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백이는 대별상을 보자마자 벌벌 몸이 떨렸다. 겁 먹지 말자고 다짐하고 있었지만 저절로 몸이 떨리는 것을 막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백이는 끝내 온몸의 기운을 끌어모아 호통을 쳤다.
“꺼져요! 우리 마을에서 썩 나가라고요!”
대별상이 빙긋이 웃었다.
“왜 그래야 하지?”
목금이 말을 받았다.
“우리 마을은 좋은 곳입니다. 나쁜 사람이 없어요. 왜 우리 마을에 찾아와서 역병을 퍼뜨리십니까?”
대별상이 허리를 접으며 웃었다.
“나쁜 사람이 없다고? 착한 사람들만 산다는 거냐? 그럼 내가 물어보마. 착한 사람은 죽지 않는단 말이냐?”
“죽…죠.”
“잘 들어라. 질병은 심판이 아니고 죽음은 형벌이 아니다.”
백이가 말했다.
“그게 무슨 말이에요? 착한 사람들을 괴롭히면서 그게 할 말이에요?”
“우리는 별상이다. 저승에서 온 사신이란 말이다. 사람은 누구나 죽지. 병으로도 죽고, 발을 헛디뎌서 죽고, 늙어서도 죽고, 죄를 지어서 죽고, 전쟁에 나가서 죽고, 굶어서 죽고, 목말라서 죽고… 저승에서 원하면 사람들은 죽는 것이다. 저승의 손길은 그 사람의 업보를 가리지 않는다. 그건 염라대왕 앞에 섰을 때나 가려지는 것이다.”
“그, 그렇다고 그게 왜 하필 우리 마을이에요?”
“너희가 그물을 던져 물고기를 잡으면 물고기들이 왜 우리를 잡아요라고 하느냐? 너희가 살을 날려 새를 잡으면 그 새가 왜 하필 날 잡아요 하느냐? 나는 너희가 감히 거역할 수 없는 재앙일 뿐이다.”
목금이 씩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 우린 감히 거역하겠습니다. 이만 물러가 주시죠.”
백이가 그릇을 열었다. 불돌이가 그릇에서 몸을 일으키며 길게 울음을 토했다. 대별상이 처음으로 놀란 기색이 되었다.
“어찌 양수지조(陽燧之鳥)가 인간의 손에 있단 말이냐?”
“그게 뭐 중요한가요? 이건 대별상마마가 감히 거역할 수 없는 재앙일 뿐이죠.”
목금의 태연한 말에 대별상이 다시 껄껄 웃음을 터뜨렸다.
“참 재미난 아이구나. 내 말대로 이번엔 이만 떠나겠다. 하지만 잊지 마라. 곧 다시 오마.”
말이 끝나자 대별상은 마치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흔적 하나 남지 않고 사라져 버렸다.
백이가 털썩 주저앉았다.
“다 끝난 걸까?”
〈종두를 예방하기 위한 백신을 접종할 때 사용되는 바늘〉 (출처: 국립민속박물관)
목금이 고개를 흔들었다.
“그건 아닐지도 몰라. 하지만 마침 내일이 동짓날이네. 동짓날은 음기가 가장 세서 귀신들이 제일 극성을 부리는 날이기도 해.”
“으아, 그럼 어떡해? 마마신들이 또 오는 거 아냐?”
“아냐. 동짓날에는, 팥죽을 쑤어서 귀신을 막을 수 있어. 팥죽을 집안 곳곳에 뿌려두면 귀신들이 못 들어오거든.”
목금은 백이의 손을 잡아 일으켜 주었다. 백이가 말했다.
“지금은 내 뱃속 말고는 아무데도 못 뿌려. 뱃가죽이 등에 달라붙겠어. 빨리 먹으러 가자. 목금이 너도 우리집에서 먹고 가기야!”
“당연하지. 나도 배고파 죽을 것 같아. 아, 아까 대별상이 한 말이 이건가.”
백이와 목금은 서로 죽을 것 같다는 말을 하면서 까르르 웃었다. 사람들은 죽을 것 같다면서도 늘 살아가게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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