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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판에 새긴 이름, 편액

[나무판에 새긴 이름, 편액],
끝에서 시작하는 이야기

“목적지에 도착했습니다.”

내비게이션은 안내를 종료했습니다. 문제는, 여기가 제가 원하는 곳이 아니라는 겁니다. 논길로 안내한 내비게이션 탓을 하고 싶지만 답사 장소를 정확히 파악하지 못한 제 잘못이 큽니다. 흥미로운 점은, 저와 숨바꼭질하듯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던 답사지가 예상치 못한 순간, 거짓말처럼 나타나곤 한다는 것입니다. 모든 편액 답사지에서 길을 잃고 헤맨 것은 아니지만, 종종 이정표가 있어도 허둥대는 저에게 편액은 잃어버린 길 위에서 만난, 옛 친구였습니다.

2024년 웹진 담談, [나무판에 새긴 이름, 편액]에는 1월의 조성당(操省堂), 3월의 영호루(映湖樓), 4월의 전백당(傳白堂), 5월의 사무당(使無堂), 6월의 오헌(吾軒), 7월의 해월헌(海月軒), 8월의 염수당(念修堂), 10월의 하락정(河洛亭), 11월의 제민루(濟民樓) 등 총 9편의 편액 이야기가 실려 있습니다. 지금부터 편액을 찾아 나섰던 그 뒷이야기를 시작하려 합니다.




위로받았던 조성당 편액


1월의 담談 주제는 ‘뜨끈뜨끈 온돌의 맛’입니다. ‘온돌’이라는 주제와 맞는 편액을 찾기가 어려워 고민하다 새해의 시작인 1월, 매년 사람들은 신년 계획을 세운다는 것에 착안하여, ‘항상 마음을 바로잡고[操] 되돌아본다[省]’는 의미의 조성당 편액에 대해 써보기로 했습니다.

조성당 편액의 의미를 찾기 위해 조성당 김택룡이 쓴 『조성당일기』를 읽었는데, 400년 전에 살았던 김택룡의 일기에는 지금의 우리와 다른 듯 비슷한 삶의 모습이 담겨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의 일기 속에서 희로애락이 담긴 에피소드를 뽑아, 연리지락·기인편재·상명지통·등용문의 소제목을 달고 「오늘을 기록하며 삶의 온기를 전하는, 조성당」을 썼습니다.


안동 한천정사 (2023. 11. 30. 조성당 편액 답사)


동시대인이 아닌데도 김택룡의 일기가 저를 위로했습니다. 복닥복닥한 일상 속 행복과 슬픔은 우리에게 뭉근한 온기를 전해줍니다. 저는 조성당 편액을 마무리하며, ‘누군가의 헛헛한 마음을 채워줄 따뜻한 떡국 한 그릇 같은 삶을 살아야겠다’라고 다짐했습니다. 여전히 저는 누군가의 마음 온도 1도를 높여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행복했던 오헌 편액


영주 무섬마을에 오헌 박제연의 오헌 고택이 있습니다. 오헌 편액은 연암 박지원의 손자 박규수가 박제연을 위해 쓴 것으로, ‘오헌’ 양옆의 여백에 오헌이 의미하는 바를 작은 초서로 썼습니다.

저는 도연명의 「독산해경」에서 인용한 ‘새들도 깃들 곳 있음을 기뻐하듯, 나 또한 내 집을 사랑하노라’라고 하는 오헌의 의미가 좋았습니다. 이 구절을 읽는 순간 저는 루시 모드 몽고메리의 소설 『빨간 머리 앤』의 앤이 떠올랐습니다. 오헌은 앤이 사랑한 초록 지붕 집과 많이 닮아 있었습니다. 집 주변의 나무와 꽃들, 오헌 앞을 흐르는 내성천 위의 외나무다리가 우리를 반겨주었습니다. 무섬마을에서 외나무다리를 건너 세상 속으로 갔다 돌아온 긴 세월 동안, 오랜 관직 생활로 지친 박제연을 안아준 오헌이 좋았습니다.


영주 무섬마을 외나무다리 (2024. 05. 10. 오헌 편액 답사)


저는 오헌을 쓰면서 ‘우리 집’이라는 공간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매일 집을 나서는 우리, 가족과 하루 한 끼의 밥도 함께 하지 못할 때가 많지만 하루의 끝에 집으로 돌아와 지친 몸과 마음을 편안히 쉴 수 있는 곳이 우리 집이었습니다. 긴장 속에서 경직된 어깨가 나른하게 풀리는 집, 그래서 안마 의자가 없어도 되는 우리 집이 저는 참 좋습니다. 그래서 저는 ‘오헌’ 이야기를 마무리하며, ‘박제연이 오헌을 생각하는 것처럼 나도 내 작은 아파트를 사랑한다’라고 했습니다. 가족과 나누는 따뜻한 일상의 언어들이 살아가는 힘을 주는 곳, 오헌 이야기입니다.




설렜던 해월헌 편액


7월 담談 주제가 ‘바다를 건너는 사람들’이라니 설렜습니다. 바다가 주는 설렘, 평온함, 경외감, 자유로움이 그리웠습니다. 안동에서 한 시간만 달리면 바다인데 그걸 못가 출장으로 떠나는 바다에 이렇게 유난을 떨고 나니 조금 민망하기도 합니다.

여름 초엽인 6월, 우리는 울진으로 향했습니다. 처음으로 간 곳은 관동팔경 중 하나인 월송정! 월송정 주차장 앞으로 초록빛 벼가 바닷바람에 넘실거리고 있었습니다. ‘월송정 나눔길’ 따라 소나무 숲길을 걸으며 솔향과 바다향을 한껏 들이마셨습니다.

월송정 2층 누각에는 조선의 시인 묵객들이 남긴 시판들이 가득합니다. 때마침 오신 문화해설사님께서 월송정 편액과 시판에 얽힌 이야기를 해주셨습니다. 아계 이산해와 해월 황여일의 인연, 충무공 이순신과 황여일의 짧은 만남에 대한 에피소드까지 들려주셨는데요, 이때 들은 이야기에 추가 자료를 더하여 편액 이야기에 녹여 썼습니다.

월송정에서 북쪽으로 차로 5분 거리에 대풍헌이 있습니다. ‘바람을 기다리는 집’의 대풍헌은 구산포에서 울릉도와 독도로 가던 수토사들이 순풍을 기다리며 머물던 곳입니다. 수토사는 울릉도에 몰래 들어간 주민을 육지로 데리고 나오거나 일본인을 수색하여 토벌하고 울릉도의 토산품을 채취하여 진상하는 일을 했다고 합니다. 대풍헌 옆에 수토문화전시관이 있는데, 이곳에는 영세불망지판이 있습니다. 이것은 울진에 파견된 수토사들이 구산동 주민들의 어려움을 듣고 마을에 수토 경비를 지원해 준 행적을 기리기 위해 제작한 현판입니다. 언젠가 독도 지킴이, 수토사에 관한 글을 쓸 때 대풍헌 이야기를 써야겠다고 생각하며 해월헌을 지나 망양정으로 향했습니다.


울진 대풍헌 (2024. 06. 05. 해월헌 편액 답사)


해월헌에서 20분 더 북쪽으로 올라가면 망양정이 있습니다. 관동팔경 중 하나인 망양정에는 숙종과 정조의 어제시, 송강 정철의 「관동별곡」 등 조선을 풍미하던 문인들의 시가 있습니다. 옛사람이 서 있는 자리에 서서 짙푸른 동해의 파랑이 흰 포말을 그리며 밀려왔다 밀려가는 모습을 보다가, ‘바람 소리길’에서 들려오는 풍경소리에 흩어진 마음을 깨우고 일상으로 돌아왔습니다.

해월헌에서 '거센 파도에도 가득 차거나 줄어든 적이 없는 바다와 차고 기울면서도 끝내 본체에는 결손이 없는 달의 본성’을 생각했습니다. 지극히 평범한 우리는 바람에 흔들리고 파도에 쓰러지지만, 끊임없이 다시 일어나 우리만의 빛을 발하며 자신을 찾아가는 길 위에 서 있는 것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두려웠던 염수당 편액


‘납량 특선’에 맞는 편액이 있을까요? 저는 전통으로 이어져 온 ‘제사’가 지금의 우리에게는 어쩌면 ‘괴담’일 수 있겠다고 생각하며, ‘너의 조상을 생각하지 않느냐, 이에 그 덕을 닦을지어다’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 봉화 구양서원의 염수당 편액에 대해 써보기로 했습니다.

뜨거운 여름 한낮, 구양서원 문이 굳게 닫혀 있어, 구양서원에서 차로 2분 거리에 있는 수온당 고택으로 갔습니다. 대은 변안렬, 백산 변경회, 봉은 변극태의 학문과 덕행을 기리기 위해 건립한 구양서원은 원주변씨 문중에서 관리하고 있었습니다.


봉화 구양서원 (2024. 06. 26. 염수당 편액 답사)


우리가 구양서원을 관리하시는 변재우 선생님을 기다리는 동안, 수온당 고택을 지키고 계시는 종부님께서 더운 날 고생이 많다며 정갈하게 깎은 사과와 참외를 내주셨습니다. 접빈객 문화가 여전히 남아 있는 고택에서 융숭한 대접을 받으니, 고택을 찾은 손님을 향한 종부님의 따뜻한 마음과, 종가에 대한 깊은 자부심이 전해졌습니다.

변재우 선생님께서는 구양서원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 주셨습니다. 가문에 대한 자긍심과 선조에 대한 경외심이 가득한 선생님께서는 우리를 원주변씨 화수회 사무실로 초대해 『구양서원지』를 주셨습니다. 『구양서원지』에 기록된 변안렬, 변경회, 변극태의 이야기는 염수당 편액 이야기를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편액 답사를 통해 뵙는 여러 문중의 어르신들께서는 조상에 대한 사랑과 존경의 마음이 차고 넘칩니다. 그에 비해 그동안의 저는 ‘잘되면 내 덕, 못되면 조상 탓’이라며 수저계급론에 숟가락을 얹곤 했습니다. 그러던 중 문득, 저도 제 자식의 부모임을 깨닫고, 아이들이 흙수저 인생을 탓하게 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편액은 마치 민낯을 보여주는 거울 같아, 그 안에 담긴 선조들의 지혜와 가르침이 지금의 저를 돌아보게 합니다. 그래서 저는 조상을 생각하며 덕을 쌓아보기로, 밥을 짓듯 복을 지어보기로 했습니다.




덕분에


길 위에서 만난 편액은 탁월한 이야기꾼입니다. 저에게 인생에 대한 여러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하지만 편액은 시인이기에 압축적이고 함축적이며 상징적인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저는 편액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한국국학진흥원에서 발간한 국역서, 연구서, 목록집, 도록, 정기학술지, 교양서, 학술자료집 등을 찾거나, 스토리테마파크, 유교넷, 조선왕조실록, 한국고전종합DB, 규장각 원문검색서비스, 우리역사넷 등을 찾아 편액의 의미를 체화하고자 했습니다. 혹 제가 찾은 의미에 오류가 있을까 싶어 논문을 참고하기도 했습니다.

편액을 쓰는 동안 도움받지 않은 이가 없습니다.

한국국학진흥원에 편액을 기탁 하신 많은 문중과 서원에 감사드립니다. 덕분에 ‘한국의 편액’이 전하는 동양의 인문 정신과 서예 미학적 가치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역사 인물 문집을 번역해 주신 한문 번역가 선생님들 감사합니다. 덕분에 선인들의 내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인간다움의 의미를 찾아 끊임없이 연구하는 문학·역사·철학 박사와 인문 교양서적의 작가님들 감사합니다. 덕분에 저의 얇은 인문학적 지식을 확장할 수 있었습니다.

이런 자리를 마련해 준 신경미 전임연구원에게 감사드립니다. 덕분에 저에게 편액이 어떤 의미였는지를 돌이켜볼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여러 해 동안, [나무판에 새긴 이름, 편액]의 자문을 맡아 주신 한국국학진흥원 인문융합본부장 권진호 선생님께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바쁘신 일정 속에서 언제나 꼼꼼하게 원고를 봐주시고, 담談 주제에 맞는 편액을 찾기 위해 함께 고민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엉뚱한 곳에서 헤맬 때, 내비게이션 역할을 해주신 선생님, 덕분에 경로 이탈하지 않고 무사히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권진호 선생님의 『안동의 유교현판』과 선생님께서 자문해 주신 편액 원고


한국국학진흥원 인문융합본부 정재석 선생님께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선인들의 일기장을 엿볼 수 있는 스토리테마파크와 한국국학진흥원의 여러 디지털 콘텐츠를 개발하시고, 선인들의 기록문화를 활용하여 지금의 우리들에게 유의미한 삶의 가치를 전하는 웹진 《담談》을 기획해 주신 덕분에 [나무판에 새긴 이름, 편액]을 소개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선생님과 함께 떠난 편액 답사, 잊지 못할 것입니다.


정재석 선생님과 함께 안동 하회마을 부용대에 올라
(2023. 09. 07. 장판각 편액 답사)


언젠가 종가를 방문했을 때, 저는 종부님을 도와드리려다가 그만 찻상을 엎어 찻잔을 깨뜨린 적이 있습니다. 우리의 인생도 때때로 이렇게 예기치 않게 깨진 찻잔과 같을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그 깨진 찻잔을 그냥 버릴지, 아니면 그 조각들을 모아 새로운 예술 작품으로 만들지는 우리의 선택에 달려 있습니다. 깨진 찻잔을 옻으로 이어 붙이면 세상에 하나뿐인 독특한 찻잔이 됩니다. 금이 가고 깨지기 쉬운 인생 속에서, 저는 종종 편액의 의미를 되새기며 제 삶을 촘촘히 채우려 합니다. 끝으로 [나무판에 새긴 이름, 편액]을 읽어주신 독자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한국의 편액 사이트 (https://pyeonaek.ugyo.net)》   더보기





정      리
이복순 (한국국학진흥원)
자      문
권진호 (한국국학진흥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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