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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에서 콘텐츠로, 콘텐츠에서 산업으로”
ㅡ2025 전통기록문화 창작 콘퍼런스 참관기ㅡ


지난 11월 14일 열린 2025 전통기록문화 창작 콘퍼런스 「전통문화 콘텐츠 동향과 전망」은 전통기록을 기반으로 한 콘텐츠 산업이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하고 있음을 강하게 체감한 자리였다. 이번 콘퍼런스는 단순히 사료를 소개하는 학술행사에 머무르지 않았다. 전통기록문화가 출판·영상·웹·축제·AI 플랫폼으로 확장되는, 하나의 ‘산업 생태계’로 자리매김하고 있다는 사실을 생생하게 보여주었다.

무엇보다 인상적이었던 점은, 기관의 발표와 전문가 발표가 서로 분리된 두 축이 아니라, 전통문화 콘텐츠의 원천–중개–확산의 영역에서 자연스럽게 유기적으로 맞물리고 있었다는 점이다. 이는 ‘자료를 공개하는 시대’를 넘어서 ‘자료를 재해석하고 창작으로 이끄는 시대’로의 이동을 상징한다. 이러한 변화는 유교문화콘텐츠를 연구하는 필자에게 더욱 큰 자극이 되었다. 전통기록물이 더 이상 박제된 유산이 아니라 철학·정서·상징·서사 구조로 재탄생하는 과정에 있다는 사실은 향후 콘텐츠 연구 방향에 새로운 질문으로 다가왔다.




기관 발표: 아카이브에서 플랫폼으로


기관 발표는 마치 여러 기관이 오랫동안 묵혀둔 생각과 고민을 한꺼번에 꺼내놓는 자리처럼 느껴졌다. 발표를 들으며 특히 강하게 다가온 것은, 전통기록을 다루는 기관들이 과거보다 훨씬 더 사용자 중심적 관점을 갖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연구자나 창작자가 실제로 어떠한 자료가 필요하고, 어떻게 활용하는지, 그리고 어떤 방식으로 플랫폼을 구성해야 하는지를 깊이 고민하는 모습이 곳곳에서 드러났다. 또한 여러 기관이 AI 번역, 디지털 고도화, 검색 체계 정비, 메타데이터 업데이트 등 기술 기반 프로젝트에 적극적으로 투자하고 있다는 사실은 전통기록 분야가 단순히 ‘보존’이 아닌 ‘혁신’을 향해 움직이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2025 전통기록문화 창작 콘퍼런스 개회 및 인사말


기관 발표(국사편찬위원회 이주호)


기관 발표(규장각한국학연구원 박성일)


기관 발표(독립기념관 홍동현 )


기관 발표(동북아역사재단 송미경)


기관 발표(한국국학진흥원 신경미)


기관 발표(한국학중앙연구원 김동건)


이런 흐름 속에서 기관 발표는 단순한 소개나 실적 보고가 아니라, 각 기관이 전통문화 생태계를 하나의 공동 프로젝트로 인식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발표자들의 어조 속에는 사명감보다도 ‘함께 더 나은 구조를 만들고 싶다.’는 협력의 의지가 묻어났고, 이를 통해 전통기록문화 분야가 느리지만 확실하게 변화를 만들어가고 있다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즉 기관들이 자신들의 역할을 ‘자료 보유자’에서 ‘문화 창작을 돕는 동반자’로 인식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결국 기관 발표는 전통기록문화의 기반이 ‘과거의 기록’을 넘어 현재의 창작을 가능하게 하는 발판으로 확장되고 있음을 조용하지만 단단하게 알려주는 시간이었다.




전문가 발표: 전통문화가 ‘지금의 언어’로 번역되는 순간들


전문가 발표는 과거의 기록이 오늘의 감정과 상상력 속에서 새롭게 자리 잡는 과정을 생생한 사례와 함께 보여주었다. 첫 번째 발표(박찬수)는 글로벌 시장 속 한국 출판의 방향성을 짚으며 전통문화가 세계 독자에게 어떤 방식으로 이해되고 수용될 수 있을지를 진단했다. 두 번째 발표(김정미)는 영화·드라마 속 전통소재가 단순한 배경이나 시대적 장치가 아니라 감정·기억·상징을 구성하는 문화적 언어로 변화하고 있다는 점을 깊이 있게 설명했다. 세 번째 발표(이영민)는 축제와 공간 콘텐츠를 다루는 발표에서는 전통문화가 지역 공동체의 경험과 일상을 어떻게 비추는지, 그리고 그 경험이 어떻게 도시의 정체성을 만들어가는 지를 보여주었으며, 네 번째 발표(박성환)는 웹툰·웹소설에 대한 발표는 디지털 세대가 전통서사를 얼마나 자유롭고 과감하게 변용하고 있는지를 확인하게 했다.


전문가 발표(책문화콘텐츠연구소 박찬수 대표)


전문가 발표(역사콘텐츠 연구자 김정미 작가)


여러 장르가 서로 다른 길을 걷는 듯 보였지만, 네 편의 발표가 만들어내는 흐름은 놀라울 만큼 일관되었다. 바로 전통문화는 지식을 넘어 감각·정서·경험의 차원에서 다시 쓰이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발표자들은 각자의 분야가 처한 현실적 제약과 가능성을 솔직하게 공유하면서도, 전통문화가 산업적 측면에서 도전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창작의 문을 여는 강한 동력이 되고 있다는 확신을 숨기지 않았다.


전문가 발표(공연연출가 이영민 대표)


전문가 발표(한국영상대학교 박성환 교수)


네 편의 발표 모두 전통을 고정된 의미로 보지 않고, 각자의 삶과 시대감각 속에서 다시 정의할 수 있는 유연한 자원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이 대목에서 자연스레 떠오른 생각은, 전통을 다룬다는 것은 단순히 과거를 보존하는 일이 아니라 미래의 감각을 설계하는 작업에 가깝다는 점이었다. 전문가들은 전통이 지닌 이야기를 오늘의 언어로 번역하는 데서 오는 어려움과 보람을 공유하며, 전통문화 콘텐츠가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확장될지에 대한 기대를 함께 나누었다.

결국 전문 발표는 전통문화가 과거를 되돌아보게 하는 창이면서도, 동시에 지금 이 시대를 새롭게 이해하고 새로운 길을 모색하게 하는 거울임을 다시금 일깨워준 시간이었다. 발표자들의 말과 표정 너머로 전해지는 생생한 현장의 감각은, 전통문화가 앞으로도 끊임없이 변화하고 재창조될 것이라는 기대를 심어주었다.




라운드테이블: 발표의 여운을 깊게 파고든 대화의 시간


라운드테이블은 전문 발표의 여운을 자연스럽게 이어가는 시간이었다. 좌장과 발표자 4인이 서로의 발표 내용을 더 세밀하게 확장해 나갔다. 누군가는 전통소재가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력을 갖기 위해 필요한 서사 전략을 제안했고, 또 누군가는 영상 콘텐츠의 감정적 리얼리즘이 어떻게 전통에서 새로운 상징을 길어올 수 있는지 설명했다. 또한 웹 플랫폼에서의 소비 패턴과 전통서사의 변용, 공간 콘텐츠가 지역성과 결합하는 방식 등도 자연스럽게 연결되었다.


2025 전통기록문화 창작 콘퍼런스 라운드테이블


특히 인상적이었던 점은, 4인의 전문가 모두 전통문화가 ‘정답을 찾아가는 대상’이 아니라 ‘지금 다시 질문할 수 있는 자원’이라고 입을 모았다는 것이다. 서로 다른 분야에서 일하지만, 전통문화가 창작과 연구의 경계를 넘나들며 새로운 장르를 낳는 힘을 가지고 있다는 데에는 공통된 확신이 느껴졌다.


라운드테이블 좌장 대구대학교 임동욱 교수


기념촬영


라운드테이블의 짧은 대화는 발표보다 훨씬 더 생생했고, 발표에서 다 하지 못한 이야기들이 하나의 이미지로 모아졌다. 관람자로서 나는 라운드테이블을 통해 전통문화 콘텐츠의 미래가 단일한 방향이 아니라 여러 층위에서 동시에 확장되는 입체적 장면이라는 점을 더욱 선명하게 이해할 수 있었다.




전통문화, 어떻게 새롭게 읽을 것인가?


전통문화 콘텐츠의 확장은 단순히 오래된 자료를 새롭게 포장하는 일이 아니다. 이는 과거가 품고 있는 질문을 오늘의 언어로 되살리는 과정이다. 유교철학에서 말하는 온고지신(溫故知新)은 낡은 것을 반복하라는 뜻이 아니라, 익숙한 것 속에서 아직 발견되지 않은 ‘새로운 의미’를 찾아내는 능력이다. 지금의 전통문화 콘텐츠 산업이 바로 그 온고지신의 가능성을 실험하는 무대처럼 보였다. 사료 한 장, 옛이야기 하나에도 지금 우리의 삶을 비추는 질문이 숨어 있고, 그 질문을 어떻게 이야기로 만들지는 창작자의 감각과 연구자의 해석이 함께 만들어가는 일이다.

전통문화는 시간이 지났다고 해서 가치가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시간이 쌓일수록 더 많은 층위의 의미를 드러내는 ‘확장형 자원’이다. 따라서 전통은 고정된 과거가 아니라, 오늘의 감정과 감각에 따라 계속해서 다시 쓰일 수 있는 열린 공간이어야 한다. 유교철학 전공자로서 바라는 것은 전통문화 콘텐츠가 단순한 지식 전달을 넘어, 인간과 공동체에 대한 깊은 성찰을 담아내는 자리가 되는 것이다. 기록 속의 인물과 사건이 단순한 정보가 아니라 ‘오늘의 우리’에게 말을 건네는 순간, 전통은 비로소 살아 있는 지혜가 된다. 그런 의미에서 전통문화 콘텐츠는 시대를 잇는 다리이자, 세대를 연결하는 하나의 언어가 되기를 기대한다. 특히 청년 세대가 전통을 옛것으로만 보지 않고, 자신의 삶을 비추는 새로운 거울로 사용할 수 있도록 더 다양한 해석과 상상력이 필요하다. 온고지신의 정신이 전통의 깊이를 지키면서도, 새로운 시대의 감각을 받아들이는 창작으로 이어지기를 바란다. 그 과정 속에서 전통문화는 언제나 새롭고, 언제나 현재적이며, 언제나 미래를 향한 길을 열어줄 것으로 기대한다.




집필자 소개

김아랑
김아랑
성균관대학교에서 유교철학 박사과정을 수료했으며, 현재 유교철학·문화콘텐츠연구소 연구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전통사유의 현대적 해석과 전통문화 콘텐츠의 확장 가능성을 주요 연구 주제로 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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