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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인의 이야기, 오늘과 만나다

이미 번역된 몸짓
ㅡ국립무용단 〈미인〉ㅡ


한국의 전통요소가 이제 한국을 넘어서 세계인의 흥미를 끌고 있는 모습을 보면 격세지감의 직격타를 맞는다. 어리둥절하지만, 기분 좋게 맞고 있다. 2025년 기억에 남는 공연 장르는 춤이다.

오래 전 스쳐 지나가는 질문으로 “말이 있는데 춤은 춰서 뭐해?”라는 질문을 들은 적이 있다. 머릿속에 오만가지 말이 와글거렸지만 실제로는 말문이 막혔다. 수만가지 말 중에 입 밖으로 나올 말이 마땅치 않았다. 끝끝내 대답하지 못했던 그 질문에 대한 답은 지금 생각하면 아마도 “춤을 출 수 있는데 말은 해서 뭐해?”가 아닐까. 춤은 어렵고, 춤은 쉽다. 아무 생각 없이 볼 수 있지만 일단 생각하기 시작하면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이리도 해석될 듯 싶고 저리도 해석될 듯 싶다. 때로는 목적이 궁금하다. 사람은 왜 춤을 추는가? 하는 질문은 사람은 왜 굳이 예술을 향유할까? 하는 질문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그 와중에 전통춤은 더 어렵다. 변명하자면 서구문화가 더 훌륭하다고 여겼던 시절에는 학교 공교육에 전통춤이나 전통음악에 관한 부분이 미진하기도 했었다.


국립무용단 〈미인〉 (출처: 국립극장)


평창 동계 올림픽 개막식의 총연출로 유명한 연출가 양정웅이 국립무용단과 함께 올린 〈미인〉은 여러 가지 면에서 전통춤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또 다른 질문을 던져줌과 동시에 질문에 대한 대답보다 앞서 전통춤이 앞으로 어떻게 될 수도 있겠는가를 보여준다. 평창 동계올림픽 개막식이 그랬듯이 이번 공연도 호평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 공연이 전통춤에서의 여성 몸짓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과 앞길을 밝히는 작품이라는 사실이다. 올해 4월 국립극장 해오름에서 올라간 〈미인〉은 신윤복의 ‘미인도’에서 시작해 ‘신미인도’로 끝나기까지 전부 11꼭지로 이루어진 춤의 잔치다. 〈미인〉은 한국무용의 고유한 신체 문법을 토대로 하되, 극적 구성, 음악, 무대 미학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전통 예술의 현재적 의미를 확장시켰다. 무엇보다 〈미인〉의 목표는 ‘정체성의 보존’이라는 틀 속의 복원이라는 전통 공연의 영역을 넘어서 동시대 관객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함께 호흡하는 예술적 언어로 재탄생이 가능한 전통춤을 제시한다.

무엇보다 양정웅의 〈미인〉 속 신윤복의 미인은 그저 가만히 서서 바라보는 모습을 한 채로 바라봄을 당하는 객체로서만 존재하지 않는다. 〈미인〉은 전통춤의 정체성처럼 여겨지는 정중동(靜中動)의 미감을 손상시킬 의도는 추호도 없되, 흐름·군무·장면 전환의 리듬을 극적 서사처럼 조율해 몰입도를 높였을 뿐만 아니라, 이러한 몸짓에서 여성 무용수의 몸짓에 담긴 유혹을 배제한다. 보는 이를 위한 즐거움 뿐만 아니라 추는 이의 즐거움이 담백하게 합을 이룬다. 이를 위해 전통 소리는 물론 전자음향, 미니멀리즘 사운드, 공간음향 등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온 국립무용단의 흐름도 고스란히 담겼다.



국립무용단 〈미인〉의 부채춤 (출처: 국립극장)


한국인으로 태어나 한국에서 자라난 사람만 온전히 느끼고 알 수 있을 것만 같은 폐쇄성이 더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이러한 의도가 극단적으로 두드러지는 것이 바로 부채춤이다. 알려진 것처럼 부채춤은 전통춤이 아니다. 한복을 입었을 뿐이지 현대춤이다. 하지만 부채춤의 원형은 전통춤에서 가져온 게 맞다. 〈미인〉은 부채춤에 강렬한 사막의 향기를 입혀 새로운 형태를 만들어내며 전통춤이 어떻게 새 안무를 맞이하고 그 안무가 어떻게 미래를 향하는가를 보여준다. 이는 칼춤 역시 마찬가지다. 긴 칼 허리에 차고 작은 칼을 머리 위로 돌리는 여성들의 칼춤은 정교하고, 한 마디로 멋졌다. 이 춤을 어떻게 말로 표현할 것인가. 하지만 이 춤 역시 춤만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LED 스크린, 프로젝션, 공간음향, 인터랙티브 기술, 그리고 전통적인 무대 장치로써의 달등을 통해 스스로를 표현할 보조적인 요소를 고루 거침없이 사용한다. 한 발 앞서가는 무대 테크닉과 전통춤이 이질감없이 어우러질 때 〈미인〉은 언어라는 번역을 필요로 하는 거추장스러운 장벽을 무너뜨리고 음악·미술·기술과의 협업을 통해 전통춤이 세계로 나아갈 수 있음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전통은 더 이상 과거의 기억이 아니라, 미래를 열어가는 가장 강력한 예술적 자원이 될 수 있음을 증명한다.



국립무용단 〈미인〉의 칼춤 (출처: 아트코리아방송 이용선)


게다가 미인의 주제는 ‘한국적 아름다움’으로, 서사가 아닌 이미지·리듬·정서를 중심으로 춤의 장르가 한 장면의 주제다. 그리고 장면은 이야기가 아닌 정서의 흐름에 따른 시퀀스로 이루어진다. 한 명으로 시작한 춤이 한 명 한 명 더해질 때마다 개성이 더해지고 군무가 되어서도 개인의 개성이 사라지지 않으면서도 군무의 질서는 유지된다. 형태는 정립하되 개인의 개성은 살아남는 군무야말로 한국적인 군무의 핵심을 잘 보여준다. 또한 이러한 개성에 교태는 포함하지 않음으로써 보이는 몸으로써 작동하는 타자화의 강을 건너지 않는다. 이러한 경향이 또렷하게 드러나는 칼춤 장면에서 전통적 군무가 지니는 종교·의례적 의미를 비로소 제거하고 현대적 조형성을 강화하되 개인이 개성을 완전히 풀어낼 때 비로소 한 장르를 마스터했다고 여기던 한국전통예술의 결을 살린다.

일사불란을 지양하는 군무에 의해 군무에는 여백이 존재하고 춤과 춤 사이의 멈춤은 멈춤이 아니라 사유의 시간으로 치환되는 빈 공간이 되기도 한다. 마치 한 폭의 그림을 보는 듯한 순간이다. 그 순간, 신윤복의 그림 속의 무희와도 같다. 그리고 그들은 바로 다음 순간 그림 밖으로 생생하게 뛰쳐나온다. 전통춤이 가장 미래적인, 컨템포러리 댄스로 향한다. 한국 전통춤만이 가진 호흡과 몸짓이 주는 차별점이 오히려 신선하고 새로운 미학으로 떠오를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한다. 그렇다면, 이 춤 〈미인〉을 온전히 설명할 수 있는 언어는 미래에나 가능하다.


이머시브(몰입형) 공연 〈슬립 노 모어〉 (출처: 〈슬립 노 모어〉 오피셜 트레일러)


이머시브(몰입형) 공연 〈슬립 노 모어〉 (출처: 〈슬립 노 모어〉 오피셜 트레일러)


최근 폐관한 대한극장에는 매키탄 호텔이라는 간판이 새로 걸렸다. 하지만 투숙객은 이미 정해져 있다. 이곳에서 오픈런으로 공연 중인 이머시브 공연 ‘슬립 노모어(Sleep No More)’에는 백여 개의 방에서 수많은 이야기들이 수많은 인물들에 의해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고 진행된다. 게다가 등장하는 배우들의 절반은 한국어를 하지 못하는 외국인으로 이루어져 있다. 중심 줄거리는 맥배스고, 셋트는 1930년대 풍이며, 구체적으로는 히치콕 감독의 영화들을 바탕으로 재탄생한 맥키탄 호텔이라는 새로운 공간에 묵는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다. 교집합이 없을 듯한 인물들이 얼키고 설킨다. 복잡다단한 내용들이지만 관객들은 직관적으로 이야기를 따라간다. 누구도 주인공이 아닌 인물이 없다. 관객이 따라가는 순간 그는 주인공이다. 그런데 무슨 이야기인 줄 알고 따라간단 말인가.


이머시브(몰입형) 공연 〈슬립 노 모어〉 (출처: 〈슬립 노 모어〉 오피셜 트레일러)


이곳에서의 언어는 춤과 몸짓이다. 때로는 중력을 거슬러 허공을 걷고 벽에서 춤추는 바로 그 춤의 언어다. 하얀 가면을 쓴 관객들은 춤 사이를 가르며 자신의 감정을 부추기는 배역을 따라 세 시간 동안 거대한 공간을 탐험한다. 이 공연이 런던에서 시작해 뉴욕, 상하이, 서울로 이어지며 대륙과 대륙을 건너며 공연이 가능하게 해주는 힘의 근본은 춤이다. 말로 해도 될 걸 왜 춤으로 하느냐 묻는다면, 춤의 언어는 번역이 필요 없기 때문이 아닐까. 매키탄 호텔의 입장권을 뒤집어 보면 그곳에 한 점처럼, 자개문양이 새겨져 있다. 한국적인 스토리를 덧입히지는 않았지만 이곳이 한국임을 알려주는 유일한 힌트다. 말없이 아름답기는 춤과 마찬가지다. 신윤복이 끊임없이 무대 위로 불려나오는 이유와도 얼핏 닮았다. 말없이 아름다운 춤, 2025년 본 가장 즐거운 공연이 한국춤이라 즐거웠다.




편집자 소개

이수진
뮤지컬 〈지킬앤 하이드〉, 〈그리스〉, 〈넌센스〉, 〈에비타〉 등 번역하고, 뮤지컬 〈신과 함께 가라〉 등을 썼습니다.〈뮤지컬 스토리〉 저자 / 더 뮤지컬 어워드 심사위원 역임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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