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복이요!”
골목 끝에서 낯선 이의 외침이 들려왔다. 문복이라. 오희문은 끄응 소리를 내며 돌아누웠다. 시골에 내려온 지도 벌써 네 달이 넘었다. 작고 수수한 마을 양지현은 골목마다 사람 사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오희문이 기거하는 시골집은 크지 않았으므로 주위를 스쳐가는 온갖 말들이 담장을 넘어 집안으로 들어왔다. 때로는 낯선 목소리들이 오희문에게 위로가 되기도 했다. 방안에 홀로 누워있노라면 마을 사람들이 두런두런 나누는 사사로운 잡담과 떠도는 소문들까지 오희문의 귀에 들어왔다. 어떤 것들은 오희문의 호기심을 일으키기도 했지만 문제는 희문이 몸을 일으킬 수 없다는 거였다. 어느덧 마을 사람들과 안면을 트고 인사를 나눌 시기도 지났건만 오희문은 오늘도 이렇게 방안에 누워만 있는 것이었다.
“문복이라.”
오희문은 혼자서 뇌까렸다. 앓아누운 지 100일째 되는 날이었다. 몸을 뒤척일 때마다 뼈마디가 부수어지는 통증이 느껴졌다. 대체 이게 무슨 병인가. 탕약도 이제는 지겨웠다. 용하다는 한양의 의원들이 왔다갔지만 약재만 조금씩 바뀔 뿐 차도는 없었다. 이렇게 대책 없이 앓다가 그냥 죽게 되는 것인가. 저렇게 문복을 외치는 점쟁이에게 자신의 길흉을, 앞으로의 운명을 물어보고 싶은 마음이 턱 끝까지 차올랐다. 오희문은 저도 모르게 끙 소리를 내고 다시 한 번 돌아누웠다.
조선 시대 의원에게 진료 받는 모습(출처: 한국국학진흥원 스토리테마파크)
“시끄럽다고 내쫓을까요, 대감마님?”
옆에서 시중을 들던 늙은 하인이 눈치를 보며 물었다. 오희문보다도 나이 지긋한 석이 아범은 매일 오희문의 몸을 씻기고 끼니마다 직접 수저를 떠서 먹이면서도 지치는 기색이 없었다. 석이 아범은 늙었지만 건강했다. 그의 근육 잡힌 오른 팔과 자신의 비쩍 마른 두 팔을 번갈아 보면서 오희문은 서글퍼졌다. 석이 아범은 어려서 왼팔을 잃었다. 어쩌다 그리됐는지는 묻지 않아 모른다. 한 팔로도 모든 일을 척척 해내는 걸 평생에 걸쳐 보아왔다.
“자넨 안 불편한가? 그 팔 말일세.”
오희문이 석이 아범의 왼쪽 어깨를 가리키며 물었다.
“예에? 이놈이요?”
석이 아범은 자신의 오른팔을 번쩍 들어 올렸다.
“아이고. 없어진 놈 말씀하신 줄을 모르고.”
석이 아범이 히죽 웃으며 자신의 빈 왼쪽 소매를 풀럭거렸다.
“기억이 가물가물한디요, 애기 때부터 없던 놈이라. 저야 괜찮습니다. 보시기에 좀 볼썽사납지요? 대감마님?”
“아니, 아니야. 그 말이 아니네.”
오희문에게 석이 아범의 나머지 팔은 소실된 것이 아니었다. 석이 아범은 처음부터 그렇게 태어난 사람으로 보였다. 그는 한쪽 팔 만으로도 균형이 잡혔다. 이제 와 석이 아범에게 두 팔이 멀쩡히 있다면 도리어 이상해 보일지경이었다.
“두 팔이 있는 내가 자네한테 의지하며 살고 있지 않은가. 자네 몸동작을 보고 있으면 참으로 경이로워. 어찌 그리 해내나 싶고. 아범, 날 좀 일으켜주겠나. 좀 앉아야겠어.”
석이 아범이 가까이 다가와 상체를 받쳐주자 오희문의 몸이 저절로 겹쳐졌다.
“아범은 다 아는구먼. 어떻게 해야 하는지 저절로 다 아는 듯싶어.”
오희문이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지야 뭐. 하라는 대로 하는 거지요. 알기는요.”
석이 아범은 입에서 웃음이 번지는 걸 막을 재간이 없었다. 깐깐하고 기가 세기로 유명했던 오희문이었다. 전에는 칭찬도 다정함도 없었던 사람이 아니었던가. 아프면 사람이 변하기도 하나보다고, 하인들 사이에서 말이 오갔다. 며칠 전에 행랑 아범 용만이 했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천하에 무서울 게 없던 대감마님 아니셨어? 그 크신 분이 시방은 작아지고 약해지셨나. 그저께는 나한테 뭐라 그랬는지 아는가?”
용만은 일부러 거만하게 눈을 치켜뜨고 뜸을 들였다.
“자네들 덕분에 내가 사네. 이러드라니께.”
“옴마야. 시상에.”
용만의 말에 나머지 하인들이 탄성을 내질렀다. 석이 아범도 오희문의 변화를 진작부터 눈치 채고 있었다. 어려서부터 오희문을 보아온 석이 아범이 아닌가. 하인들 중에는 소아마비에 걸려 다리를 저는 영이도 있었고 대장간에서 일하다 한쪽 눈을 잃고 얼굴에 화상을 입은 춘삼이도 있었다. 집안 어른들 중에 그런걸 문제 삼는 이는 없었다. 영이는 누구보다 잘 뛰어다녔고 춘삼이도 한쪽 눈과 건강한 나머지 몸으로 제 일을 척척 해냈다. 그렇다고 이들을 칭찬하는 어른도 없었다. 장애를 가졌건 몸이 아프건 자기 자리에서 제 일을 해낼 뿐이었다.
“이건 내 생각인디 말이여. 대감마님이 우리를 좀 부러워하는 것 같드라고? 이리 건강하니까 말이여.”
용만이 목소리에 힘을 주어 말했다. 그 말을 들은 영이가 까르르 웃음을 터트렸다. 석이 아범은 영이의 웃음소리가 참 듣기 좋았다. 큰소리로 웃고 온몸으로 말하고 어깨를 들썩이며 요란하게 우는 이들이 아닌가. 그럼 됐지. 그게 중요하지.
김홍도, 《단원 풍속도첩》 중 일꾼들이 점심을 먹으며 쉬는 모습(출처: 국립중앙박물관)
석이 아범은 구부정하게 앉아있는 오희문을 보았다. 주인이 아프게 된 후로 석이 아범은 내내 오희문의 곁을 뜨지 않고 상주했다. 걷지 못하고 누운 지가 네 달이 되어간다. 답답한 건 석이 아범도 마찬가지였다.
“문복이요!”
점쟁이의 외침이 한 번 더 바깥에서 들려왔다.
“대감마님!”
오희문이 멍한 눈으로 석이 아범을 보았다. 총기가 빠진 눈이었다.
“저 자가 김자순이라는 점술가인데. 골목을 저리 돌아다닌다고 실없는 자는 아닙니다. 실은 관에서 점복교육을 제대로 받은 용한 점술가입죠. 그를 집안으로 한번 불러봤음 싶어서요.”
“관에서 점복교육을 받은 자가 어찌 저리 장사치처럼 호객행위를 한단 말인가?”
오희문은 자신의 속마음을 석이 아범에게 들킨 것 같아 일부러 말을 돌렸다.
“아침마다 동네를 돌아다니며 문복을 외치는 것은, 그가 마을 사람들에게 복을 전하는 방식이라고 합니다요, 대감마님. 눈이 보이지 않는 자인데 매일 저렇게 동네를 한 바퀴 돌면서 스스로 움직이는 감각을 익힌다고 합지요.”
그래서 매일 아침 그의 목소리가 온 동네를 깨우는 거였구먼. 오희문은 점괘도 그렇지만 김자순이라는 사람이 몹시 궁금해졌다.
“아범이 그리 주장하니 한번 불러보게.”
오희문의 허락에 석이 아범이 신이 나서 밖으로 달려 나갔다. 김자순이라면 당장 병마에서 주인을 구해낼 거라고 석이 아범은 생각했다. 석이 아범이 믿는 바, 맹인 점술가들에게는 보통의 사람들에게는 없는 비상한 능력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치유하는 능력이었다.
맹인점술가가 독경하는 모습(출처: 서울역사박물관 서울역사아카이브)
오희문에게 점술은 처음이었다. 시력을 상실한 이들은 촉각과 청각이 남다르게 발달하여 시력을 가진 자들과는 다른 능력을 보여준다고 들었다. 천명사상을 중시 여긴 탓에 관에서 맹인들을 따로 모아 점복교육을 시키고 관현맹인으로 등용하기도 했다. 많은 양반들이 이들 맹인 점술가에게 점괘를 의뢰하고는 했지만 오희문은 회의적이었다. 이때까지 오희문은 철저하게 이성에 근거하여 살아왔다. 신비한 능력이나 치유력 같은 것은 믿지 않았다. 석이 아범의 말에 호기심이 동하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큰 기대를 품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김자순을 기다리는 내내 오희문은 마음이 조금 들떴다. 병상에 누운 이후 처음으로 느끼는 낯선 감각이었다.
“대감마님, 모시고 왔습니다.”
석이 아범 곁에는 깨끗한 옷차림의 사내가 서 있었다.
“점술가 김자순, 문안인사 드립니다.”
꼿꼿하게 서 있던 김자순이 몸을 낮추었다. 그러는 동안에도 그의 시선은 정확히 오희문을 향했다. 보지 못한다는 자가 저리도 강한 눈빛을 할 수 있는가. 오희문은 온몸이 쩌릿해졌다. 맹인들은 보는 눈 대신 심안을 지닌 존재라더니 그 말이 실감났다.
“제 눈은 대감마님의 모습을 볼 수 없습니다.”
그가 운을 뗐다. 오희문은 잠자코 다음 말을 기다렸다.
“마찬가지로 저는, 대감마님의 미래를 볼 수는 없사옵니다.”
김자순의 당당함에 오희문은 도리어 감탄하며 물었다.
“그럼 왜 온 겐가?”
“대감마님과 대화는 나눌 수는 있겠지요. 어디가 아프십니까. 아픈 곳을 말씀해 보십시오. 우리는 거기에 집중할 수 있을 겁니다.”
오희문은 김자순의 태도에 매료되었다. 그의 눈은 현실의 것들을 보지 못하지만, 그의 귀는 타인의 말을 들을 수 있다. 누구보다 잘 들을 수 있을 것이다. 오희문은 석이 아범을 내보내고 불편하게 앉은 자세를 고쳐 누웠다. 그는 시력을 잃은 자이니 오희문의 흐트러진 자세를 탓하지 않으리라. 오랫동안 말벗도 없이 외롭게 누워 지내던 터였다. 오희문의 말문이 터지기 시작했다. 그가 이야기하는 동안 김자순은 꼿꼿이 앉아 조용히 듣기만 했다. 오희문은 그가 자신이 가진 모든 감각을 총동원하여 집중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어떤 누구도 자신의 몸 앞에서 이토록 집중하지는 못했다. 의원은 그의 맥을 짚었지만 그의 고통은 보지 않았다. 가족들은 그의 병을 걱정했지만 마음의 병은 헤아리지 못했다. 처음 보는 맹인의 앞에서 오희문은 자신의 허물, 추한 모습을 드러냈다. 그러고도 부끄럽지 않았다.
“임진년에 큰 횡액이 있습니다. 이것을 지나면 70살이 넘도록 사십니다. 아침마다 동네를 한 바퀴 걸으십시오. 걸음이 대감님을 살립니다. 몸을 낮추어 이웃을 살피십시오. 누구에게든 마음을 터놓으시면 70 그 이상을 누리실 겁니다.”
김자순은 그렇게 말하고 일어났다. 그는 삐딱하게 누운 오희문을 보지 않았다. 애초에 김자순은 그런 것을 보도록 태어나지 않았다. 덕분에 그는 사람의 다른 면을 보는 재주를 가졌다.
“미래를 보지 못한다더니. 미래를 정해주고 가는 구나.”
혼자 남은 오희문은 껄껄껄 한참을 웃었다.
다음날 아침 “문복이요!” 외침이 들리자 오희문은 석이 아범을 불러 나갈 채비를 챙겼다. 아픈 것은 그대로였다. 오희문은 지팡이를 짚고 절뚝이며 바깥세상으로 나갔다. 마당을 쓸고 있던 용만과 아침밥을 짓던 영이가 놀란 눈으로 주인대감을 보았다. 오희문이 대문을 열어젖혔다. 거기 사람들이 있었다. 아까부터 발밑에 당도한 아침 햇살이 오희문의 눈에 들어왔다. 오희문은 엉덩이를 삐죽거리고 지팡이 쥔 손을 덜덜 떨며 걸음을 내딛었다. 그가 지나가자 마을 사람들이 길을 내주었다. 집 안에서 덩달아 뛰쳐나온 영이가 오희문의 곁에서 엇박자로 비척비척 함께 걸었다. 두 사람의 아침산책을 지켜보다가 이웃들은 뿔뿔이 밭으로, 장터로, 빨래터로 흩어졌다. 하루가 이제 막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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