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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인의 이야기, 무대와 만나다

있지만 없는 듯이, 언제까지?

무대 위에서도 만나기 어려운 사람들


세계보건기구(WHO)에 의하면 ‘장애인’은 선천적, 후천적으로 신체 및 정신능력에 결함이 발생하여 스스로 생활을 영위할 필요조건을 전혀 갖출 수 없거나 부분적으로 갖출 수 없는 모든 사람을 말한다. 한국의 장애인복지법에서 “장애인”이란 신체적·정신적 장애로 오랫동안 일상생활이나 사회생활에서 상당한 제약을 받는 자를 말한다. 한국의 장애인복지법의 장애인에 대한 정의 한 줄만으로도 이 나라의 장애인들의 삶은 제약 속에 있음을 알 수 있다.

한국의 길거리에서는 장애인을 만나기가 쉽지 않다. 그도 그럴 것이 발 한쪽 조금만 삐끗해도 길거리 전체가 거대한 장벽처럼 솟아오른다. 수많은 턱과 계단들 그리고 고르지 못한 보도블럭은 환히 보이는 대낮에도 그들을 휘청거리게 한다. 길거리에도 만나기 어려운 장애인을 무대 위에서 만나기는 더욱더 힘들다. 우선 장애를 지닌 배역 자체가 절대적으로 드물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심봉사가 있다. 효녀로 소문난 심청의 애비로 그의 이름은 심학규지만 아무도 이름으로 부르지 않고 그의 장애를 성 뒤에 붙여 심봉사라고 부른다. 태어날 때부터 장애가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눈이 안 보이게 된 이후 그는 심학규가 아닌 심봉사가 되어버린다. 그 호칭을 통해 그는 이름이 지워진 채 사회적으로 소외되고 존재감 없는 봉사들 중의 하나가 된다.


마당놀이 〈심청이 온다〉 속 심학규(심봉사)의 모습
(출처: 국립극장 마당놀이 심청이 온다 공연 실황 https://www.youtube.com/watch?v=k2XxOxXXtBY) 더보기


이름이 들어갈 자리를 장애가 대체하는 순간 그는 사회적 약자라는 낙인이 찍힌다. 마치 전래동화 속 주인공 ‘혹부리 영감’처럼. 심봉사는 그래도 판소리라는 형태의 꽤 긴 서사의 주인공이 되어 학규라는 이름이라도 알려졌지만 혹부리 영감은 턱에 난 혹 때문에 혹부리 영감으로 불린다. 게다가 혹부리 영감에게는 이웃도 있는데 이 사람마저 턱에 혹이 있다고 해서 욕심쟁이 혹부리 영감으로 불린다. 착한 혹부리 영감은 도깨비와 마주치자 자신의 혹이 노래주머니라고 말한다. 노래주머니가 탐난 도깨비는 착한 혹부리 영감의 혹을 떼어내고 그 대신 금은보화를 준다. 가난하지만 늘 긍정적으로 살아온 착한 혹부리 영감은 흉터도 없고 후유증도 없는 도깨비 성형을 받게 된 것이다. 반면에 욕심만 부렸던 이웃 혹부리 영감은 도깨비에게 늘씬 두드려 맞은 후 착한 (전)혹부리 영감의 혹까지 붙여 돌아온다. 혹 떼러 갔다가 혹 붙여온 벌을 받은 것이다.




장애인 배우가 브로드웨이 무대에 오르다


장애는 특히나 전래동화나 옛날이야기 속에서는 늘 천벌로 작용한다. 그렇기에 하늘이 심청의 효성에 감동하면 그 상으로 전국의 봉사들이 동시에 눈을 뜨고 혹부리 영감은 혹 없는 영감이 된다. 이야기 속에서 장애인들이 비장애인의 눈에 띄는 순간은 바로 이런 순간들이다. 상으로 장애가 제거되거나 장애를 ‘극복’했을 때 비장애인은 마치 그들이 비로소 비장애인이 그어놓은 ‘정상’의 금을 넘을 자격을 획득한 양 축하를 하거나 호들갑을 떨어댄다.

영화 〈말아톤〉에서 자폐성 장애인 초원을 연기했던 배우 조승우는 진짜 장애인보다 더 진짜 같다는 찬사를 받으며 명품배우 반열에 올랐다. 실제 자폐성 장애인을 인터뷰하고 관찰한 그의 장애인 ‘연기’는 찬사를 받았다. 그의 연기는 아름다웠지만 그 반대 경우인, 장애인이 비장애인을 연기하는 일은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아니, 장애인이 비장애인을 연기하는 것은 고사하고 장애인 역할도 장애인에게는 거의 주어지지 않는다.

청각장애를 지닌 배우 말리 매트린(Marlee Matlin)이 1986년 영화 〈작은 신의 아이들〉로 장애인으로는 최초로 아카데미 시상식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이후 36년이 지나서야 영화 〈코다〉의 트로이 코처(Troy Kotsur)가 아카데미 남우조연상을 수상했다. 할리우드를 비롯한 영화계에서 장애인을 캐스팅하지 않는 이유는 그동안 명확했다. 장애인 배우가 등장하는 영화는 인기가 없어서 돈을 벌지 못한다는 통념 때문이다.


영화 〈코다〉, 2021(출처: 판씨네마)


〈작은 신의 아이들〉이 흥행에 성공했어도 그저 컵 속의 태풍이라며 눈을 감았다. 하지만 최근에는 조금 달라진 조짐이 보인다. 시력을 잃어가는 시각장애인이 주인공인 〈그 남자는 타이타닉을 보고 싶지 않았다〉 의 주인공 야코를 연기한 페트리 포이콜라이넨(Petri Poikolainen)은 실제 시력을 잃은 다발경화증 장애인이다. 드라마 〈왕좌의 게임〉에서 카리스마 넘치는 왕자 티리온 라니스터를 연기해서 유명해진 왜소증 장애인 피터 딘클리지(Peter Dinklage)는 왜소증 때문에 사랑을 겉으로 드러내지 못하는 시라노를 연기했다. 지구상에서 가장 큰 상업 영화계인 할리우드에서 이제야 비로소 장애인 배우가 화면 안에 담길 수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있는 듯하다.

브로드웨이에서 가장 사랑받는 뮤지컬 가운데 하나인 〈위키드〉에는 휠체어를 타는 등장인물이 있다. 주인공인 엘파바의 동생인 네사다. 하지만 네사는 전형적인 비장애인의 시각으로 그려진다. 장애를 원망하고 그 장애를 인질로 삼아 자신을 사랑하지도 않는 남자를 곁에 붙잡아 두고 비장애인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인물이다. 강력한 마법을 지닌 언니 엘파바가 어디에나 갈 수 있는 빨간 구두를 만들어 줘서 처음으로 걷게 되지만 그렇게 되자마자 장애를 핑계로 붙잡아 뒀던 보크가 이별을 고한다. 걸을 수 있게 되면 더 많이 사랑받을 줄 알았던 네사는 분노에 차올라 보크의 심장을 자신에게 되돌리려고 엘파바의 위험한 마법책을 열어 잘못된 주문을 외운다. 보크의 심장은 멎고 그걸 본 엘파바는 보크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심장이 없어도 살 수 있는 존재로 만들었고 그 결과 보크는 양철인간으로 다시 태어난다. 네사는 결국 악독한 마녀로 악명을 떨치다 회오리바람과 함께 떨어진 도로시의 날아온 집에 깔려 생을 마친다. 걷지 못하는 네사의 장애는 초록 피부를 지니고 태어난 엘파바의 ‘다름’과 비교되면서 마치 혹부리 영감들처럼 장애를 극복한 장애인과 장애를 극복하지 못한 장애인을 극명하게 비교하는 장치로 작용한다.

21세기가 시작된 후 브로드웨이에서는 장애인이 비장애인을 연기하는 모습을 몇 번 목격할 수 있었다. 2015년에는 시카고의 유서 깊은 장애인 극단 ‘데프 웨스트’가 제작한 뮤지컬 〈Spring Awakenig〉의 리바이벌 공연이 배우 전원 장애인 캐스트로 올라왔다. 이 극단은 2001년에도 〈허클베리 핀의 모험〉을 전원 장애인 배우로 올렸었다. 이 극단 출신의 배우 알리 스트로커(Ali Stroker)는 이후 2019년에 리바이벌 된 〈오클라호마〉의 애니 역으로 장애인으로는 최초로 토니상을 받았다. 토니상 역사상 장애인으로서 배우상을 받은 배우는 현재까지 알리 스트로커 한 명 뿐이다.


73회 토니상 시상식에서 뮤지컬 부분 여우조연상을 수상한 알리스트로커(출처: 게티이미지코리아)





한국의 무대에서도 장애인 배우들을 만나고 싶다


영화 〈맹진사댁 경사〉를 각색한 연극 〈시집가는 날〉을 보면 졸부가 양반에게 딸을 시집보내고 싶어 하지만 혼인날을 앞두고 사위될 사람이 다리를 저는 장애인이라는 소문으로 모든 일이 벌어지는 내용이다. 오냐 오냐 커서 이기적인 부잣집 딸은 장애인에게 시집가기 싫어 울고불고 난리가 나고 착하고 순종적인 하녀가 주인 대신 시집을 간다. 그런데 정작 신랑은 다리를 절기는커녕 늠름하게 걸어 들어오고, 착한 하녀과 결혼한다는 이야기다. 하녀는 주인에게 반항 한 마디 안 하고 눈물만 흘리며 대신 신방에 들어간 덕분에 장애가 없는 신랑을 얻게 된다는 당시 나름의 권선징악 결말이다.


〈시집가는 날〉의 결혼식 장면(출처: 한국소리문화의전당)


하지만 이 작품을 통해 장애가 사람들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지는지 명확하게 알 수 있다. 장애는 계급과 부로도 극복할 수 없다고 여겨진다. 수잔 손택(Susan Sontag)은 자신이 암에 걸린 후 타인의 고통을 사람들이 어떻게 처리해 버리는지에 대해서 〈타인의 고통〉이라는 책을 통해 이야기했다. 사람들은 암이나 에이즈를 일종의 저주로 여기고 그 불운에 옮지 않기 위해 거리를 둔다. 장애 역시 마찬가지다. 장애를 지닌 사람이 비장애인과 같이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고 앞으로 나아갈 거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시각 장애인 심학규는 심청전 속에서 등장부터 눈을 뜰 때까지 끊임없이 민폐를 끼치는 인물이다. 어린 딸을 구걸 내보내 끼니를 연명하고, 본의는 아니지만 그 딸을 팔아 눈을 뜨고자 하고, 딸이 사라지자 딸이 두고 간 돈은 뺑덕어멈에 뜯기며, 마침내 맹인 잔치에 참석하기까지 이리 저리 휩쓸리기만 할 뿐이다. 그가 눈을 뜨고 앞을 보게 되는 것은 순전히 딸인 청이의 지극한 노력 덕분이다. 지금, 우리가 장애인에게 가지고 있는 생각이나 정책도 어쩌면 심청전의 심봉사를 대하던 때로부터 조금도 나아가지 못한 것은 아닐까. 장애인들을 길거리에 나오지 못하게 막고, 이동하지 못하게 막으면서 그들이 일하고 살아갈 권리를 빼앗아 심봉사의 골방 밖으로 나오지 못하게 하는 것은 아닐까.

인간은 비록 큰 병 없이, 사고 없이 늙어 죽는다 해도 반드시 두 번은 누구라도 장애를 겪는다. 갓 태어난 인간은 스스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미약한 존재이다 청춘을 지나고 노년에 접어들면서 몸 여기저기가 고장나면서 장애를 지니게 된다. 때문에 이 사회는 어린이와 노인을 보호한다. 장애인과 같다. 우리는 결국 언젠가는 모두 장애인이 된다. 한국의 무대에서 장애인을 볼 기회는 장애인 극단이나 장애인 협회의 울타리 밖으로 나오지 못한다. 이제는 영화에서도, 무대에서도 하다못해 장애인을 연기하는 장애인을 아무렇지도 않게 보고 싶다. 그 배우들이 지하철을 타고 버스를 갈아타고 함께 무대에 도착하기를 바란다.

맹진사댁 경사  더보기

심청이 온다  더보기

토니상 시상식 쇼케이스 (알리 스트로커)  더보기







집필자 소개

이수진
뮤지컬 〈지킬앤 하이드〉, 〈그리스〉, 〈넌센스〉, 〈에비타〉 등 번역하고, 뮤지컬 〈신과 함께 가라〉 등을 썼습니다.〈뮤지컬 스토리〉 저자 / 더 뮤지컬 어워드 심사위원 역임 등
“조선시대 점과 점쟁이”

예로부터 무당을 궐 안에 두고 나라의 길흉을 예언케 하였으나 점쟁이는 예언자로 전문적 직업인으로 민간에 생겼다. 점을 치는 종류는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생사의 존망을 점치는 사주점과 앞으로 닥칠 일을 점치는 운수점, 한 해의 운이 좋고 나쁨을 점치는 신수점, 단시점(斷時占), 멸액점(滅厄占), 절초점(折草占)따위가 있다. 또한 점을 치는 것으로는 태주가 하는 신점(神占)과 주로 여자 점쟁이가 쌀을 뿌려 점치는 쌀점, 동전을 던져서 점치는 돈점, 새가 물어온 점괘로 점치는 새점, 산통점(算筒占), 역점(易占), 오행점(五行占), 육효점(六爻占), 팔괘(八卦占), 구궁점(九宮)따위가 있다.

옛날 점치는 일을 직업으로 삼는 맹인들은 골목을 돌아다니며 “문복(問卜, 점쟁이에게 길흉을 물음)이요!” 하면서 점을 치고자 하는 사람을 찾아다녔고 자기 집에 ‘점’ 또는 ‘점집’이라 쓴 깃발을 달아놓기도 하였다. 이들은 주역(周易)을 바탕으로 이름 짓기와 관상, 이름, 감정 따위를 보았으며 때때로 액운을 막기 위한 부적을 쓰기도 하였다. 조선시대 중기(中期) 때 민간에 보급된 대표적인 토정비결(土亭秘訣, 이지함 저술)은 생년월일시를 숫자로 풀이해서 그 해의 운수를 달마다 보는 정초의 풍습이 되었다.

“용한 맹인 점쟁이 심군”

맹인점술가
(출처: 서울역사박물관 아카이브)
최흥원, 역중일기, 1763-01-06 ~

1763년 1월 6일. 신미년 새해가 된 지도 며칠이 지났다. 어제는 인근에 사는 김용여가 일부러 사람을 보내어 편지를 전하였는데, 새해가 되었으니 신년 운수를 보지 않겠냐는 내용이었다. 그의 편지에는 맹인 점장이 심옥의 이야기가 적혀 있었는데, 평소 그가 아주 영험하고 뛰어나단 소문이 인근에 자자하다고 한다. 엊그제 김용여가 사는 마을에 왔길래 자신도 점을 한 번 쳐보았는데 맞추지 못하는 것이 없다는 것이었다. 데려다가 점을 한 번 쳐볼 만하니 최흥원에게도 한 번 권한다는 내용이었다. 최흥원은 이 편지를 보고는 둘째 아우를 보내어 그 심옥이란 점쟁이를 데려오게 했다.

오늘 그가 점을 쳐보니, 점괘가 아주 불길하게 나왔다. 심옥은 이것저것을 물어보더니 대뜸 아내 묘소의 이장을 권하는 것이었다. 최흥원은 예전에도 아내 묘의 풍수가 좋지 못하다는 이야기를 들은 터라 심옥의 이야기를 그냥 넘겨들을 수가 없었다. 또 그에게 아픈 아이의 사주를 적어주고 앞으로의 운명을 물어보았더니, 그는 매우 길한 점괘가 나왔다고 알려주었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최흥원은 내친김에 심옥에게 집안사람들의 운명을 두루두루 물어보았다. 매년 새해가 되면 운수를 점치기는 하나, 정확하게 들어맞은 적은 없었다. 막상 심옥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 역시 특별히 용하다는 느낌이 들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 자뿐 아니라 모두가 아내의 이장을 권하니, 그것은 한 번 고려해 볼 만한 것 같았다.

“과거를 꿰뚫어보는 맹인 점술가 ‘김여추’”

권문해, 초간일기,
1584-03-09 ~ 1584-03-15

1584년 3월, 권문해는 추운 겨울을 지나 어서 봄을 만나고 싶었다. 그러나 3월 9일, 바라본 소백산에는 겨울처럼 눈이 내려온 산이 다 하얗게 되었다. 더욱이 연일 서리가 내려 초목의 싹이 대부분 시들어 죽어가는 걸 보니 마음까지도 메마르는 듯하였다. 그러던 중 예천군 성주 류세무와 경상북도 선산부백(善山府伯) 류덕수(柳德粹)가 경상북도 의성군의 대곡사(大谷寺)에 만나기를 청하였다.

3월 14일, 권문해는 집을 나서 대곡사로 향했고 그곳에서 3일을 머무르며 류세무와 류덕수와 이야기를 나누며 여유로운 시간을 보냈다.

3월 15일, 이야기 중 경상북도 선산군의 부백 류덕수에게 자신의 고을에 맹인 점쟁이 김여추(金汝秋)에 대해서 듣게 된다. 앞을 못 보는 맹인이지만 그 누굴 만나도 그가 살아온 과거를 귀신같이 맞춘다는 것이다. 권문해와 류세무는 명경수(明鏡數) 김여추의 이야기에 시간 가는 줄 몰랐다.

김여추의 이야기를 한참 듣던 류세무는 율시 한 수를 쓰는데,
화와 복은 다 이미 정해진 것 禍福皆前定
꽃 피고 시드는 것은 각기 때가 있다네 榮枯各有時
정원의 꽃은 일찍 떨어져 버리지만 花落園中早
산골짝 옆 소나무는 오래도록 산다네 松生澗畔遲
현묘한 이치 원래 수가 있는 것이니 玄機元有數
조물주가 어찌 사사로움을 용납하리오 造物豈容私
모름지기 반계(磻溪) 늙은이를 알아야 할거니 須識磻溪叟
끝내 임금의 스승이 되었네 終爲帝者師

대곡사에 모인 권문해와 류세무, 류덕수는 앞 못 보는 맹인 점쟁이 이야기를 통해 세상의 이치를 논하는 이야기로 밤새는 줄 몰랐다.

“자신의 수명을 점쳤던 점괘가 생각나다”

점괘패 (출처: 국립민속박물관) 오희문, 쇄미록, 미상

1593년 3월, 해가 바뀌자마자 100여 일을 앓았던 오희문은 최근에야 밥을 먹고, 지팡이에 의지하여 운신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 사이 사람들 사이에서는 오희문이 병으로 죽었단 소문도 돌았고, 이로 인해 아들에게는 위문편지가 날아오기도 하였다. 병이 너무나 심하여 오희문 스스로도 이제 곧 죽는구나 생각했던 순간들이 많았는데, 이제 이렇게 다시 살 수 있게 되니 감회가 새로웠다.

문득 15년 전의 일이 생각났다. 그때 오희문은 양지현 농촌에 머물고 있었는데, 죽산에 사는 맹인 김자순이란 자가 점을 잘 친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리하여 그를 불러다가 자신의 운명을 점치게 하였는데, 그때 김자순이 이렇게 이야기하였다. “나이 54세, 그러니까 임진년에 큰 횡액이 있고, 이것을 지나면 70살 넘게 살 수 있다” 그때 오희문은 재미 삼아 친 점이라 특별히 신뢰하지 않고 있었는데, 과연 임진년에 난리가 터져 거의 죽을 뻔하게 되었다. 비록 몸의 병은 해를 넘겨 생겼지만, 김자순이란 자가 이야기한 점괘와 신기하게 맞아떨어진 것이 아닌가! 오희문은 새삼 점쟁이 맹인의 신통함에 감탄하였다.

“풍증(風症)걸린 덕원, 괴상한 말을 늘어놓다”

김령, 계암일록,
1623-05-05 ~ 1624-01-20

1623년 5월 5일, 이직(以直)이 안타까운 소식을 가지고 김령의 집을 방문하였다. 이덕원(李德遠)이 지난 밤 풍증(風症, 미친 증세)이 발병하여 정처없이 계상(溪上)·분천(汾川 : 오늘날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분천리)·부포(浮浦 : 오늘날 경상북도 안동시 예안면 부포리) 등지를 돌아다녔다는 것이다. 김령은 그가 가련하고 애석하여 마음을 가눌 길이 없었다. 김령은 이직이 돌아간 뒤 탁청정에 갔다가 제군들을 만나 냇가 길에서 모였는데, 이때 덕원의 병이 위급하다는 전갈을 받고 여희와 이실이 온계(溫溪)로 급히 갔다. 흥이 싹 가셔서 기쁘지 않았다. 탄식스럽고도 탄식스러웠다.

6월 2일, 비 내리는 아침, 김령은 덕원을 만나러 탁청정으로 나아갔다. 그의 언행을 보니 병은 차도가 없었다. 덕원은 괴상한 말들을 계속 늘어놓았다. 가련하고도 탄식스러웠다. 종종 정상인 것도 같으면서, 말하는 것이나 몸을 움직이는 것이 보통 사람과 크게 달랐다.

덕원의 병은 나아지는가 싶더니, 1624년 1월, 다시 발병하였다. 또 이렇게 고된 병에 걸리다니 안타깝고 애석함이 모두 지극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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