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바로가기본문 바로가기

편견과 성찰의 플랫폼

출근길 지하철에서 장애인 시위대를 만난 적이 있었습니다. 플랫폼에서 한참이나 기다렸던 열차에 올라탔지만 바로 다음 정거장에서 그 열차는 멈춰 서 버렸고 30분이 흐른 뒤에야 다시 움직였습니다. 그 30분 동안 열차 밖은 매우 소란스러웠다지만 열차 안은 기디림만 있을 뿐 큰 동요는 없었습니다. 그날 열차 안팎의 풍경은 장애인에 대한 현대 한국 사회 반응들의 축소판이었습니다.

늦게 연구실에 도착해서, 교정봐야 할 『의방유취(醫方類聚)』 안문(眼門) 국역문 원고를 펴니, “눈이 어두워졌을 때 볼 수 있게 하는 여러 처방들”이란 소제목이 눈에 띄었습니다. 효과에 대한 의문이 들기는 했지만 보이지 않는 것을 치료 가능한 질병으로 보고 있다는 것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질병은 낫기만 하면 언제든 일상을 회복할 수 있기에 차별이나 배제가 끼어들 틈이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장애에 대한 다양한 반응에서 책과 현실 사이, 전통 시대와 현대 사이의 괴리감을 느끼게 되니, 전통 시대에는 장애인들이 어떻게 살았는지 궁금해집니다.

정창권 교수님은 〈조선 시대 장애인은 어떻게 살았을까?〉에서 현대의 장애 인식을 조선 시대로 소급하는 것을 경계하면서 조선 시대 장애인에 대한 인식과 처우에 대해 말씀해 주셨습니다. 조선 시대에는 장애에 대해 주체적․적극적으로 해석했던 실학자들이 있었고, 자립을 전제로 하는 장애인에 대한 정책이 있었습니다. 그러하기에 왕(王)에서부터 관현맹인(管絃盲人)에 이르기까지 자기 자리에서 자기 몫을 하는 각양각색의 시각장애인들이 살아갈 수 있었습니다.

물론 조선이 신분제사회였던 탓에 지배신분에서는 장애로 인한 사회적 제약을 거의 받지 않았지만, 피지배신분에서는 장애뿐만 아니라 신분에 따른 제약까지 있었습니다. 근대와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생긴 장애인에 대한 편견과 차별적인 인식은 오늘날까지 영향을 미쳐, 전통사회의 장애인이라 하면 장애와 신분 속에 갇힌 이들만 떠올리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런 각인과 낙인 효과는 전통 시대 기록물 속에서 장애인을 읽고, 이들을 현대의 창작물 속에서 구현하는 데도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손서은 작가님과 서은경 작가님은 『쇄미록(𤨏尾錄)』 속에서 오희문(吳希文)이 맹인(盲人)과 광인(狂人)에 대해 어떤 인식을 가지고 반응했는지를 소설과 웹툰으로 전해 주셨습니다. 손서은 작가님의 글 〈미래를 보지 못한다더니〉에서 맹인 점술가 김자순을 만난 병석의 오희문은, 그가 앞은 보지 못하지만 더 멀리 더 깊이 볼 수 있다는 믿음으로 그를 존중하고 그의 처방으로 건강을 회복해 보려고 합니다. 서은경 작가님의 스토리 웹툰 〈나는 마님이 불안하다〉에서는 오희문이 광인 송영구를 심질(心疾)을 앓는 이로 보고 그와 그의 가솔에 대한 연민으로 그의 요구를 수용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여기서 심청전(심청가)이 창작되었을 때 심봉사의 모습을 생각해 봅니다. 심봉사의 딸 심청에게 동냥젖을 먹여 준 동네 아낙들, 부처에 대한 공양과 그 은덕으로 눈을 뜰 수 있다고 말한 승려, 앞 못 보는 이들을 위해 잔치를 열어준 왕. 이들은 심봉사를 “앞을 못 보는 것은 병일 뿐이고, 언제든지 나을 수 있지만, 낫지 못해도 자립할 수 있으며, 자립 못하면 도와줘야 하는 이”라고 인식하고 있습니다.

현대의 창작물 속에서 재해석되고 창작되는 심봉사는, 민폐를 끼치고 승려의 말에 현혹되고 뺑덕어미에게 사기당하는 인물입니다. 심학규란 이름을 가지고 주체적으로 살 수 있었던 인물임에도, 현대인들의 편견 속에는 수동적인 심봉사만 있습니다. 설사 심봉사를, 창작되었던 그때 그 인물로 해석하고 그를 연민으로 바라본다고 해도, 무대 위에서, 화면 속에서 심봉사를 연기하는 이들은 여전히 “비장애인”입니다. 이 점을 이수진 작가님은 〈있지만 없는 듯, 언제까지?〉에서 지적하고 있습니다.

이문영 작가님의 산비는 〈가야금 줄의 비밀〉에서 관현맹인을 몰래 해친 자를 찾아냅니다. 전후 사건과 그에 관계된 사람들, 그리고 악공의 말을 듣게 되면서, 산비는 자신의 편견에 대해 성찰하게 됩니다. 비야의 사건일지에서 산비의 성찰을 보게 되니, 이달에 소개된 편액 “성건재(省愆齋)”의 뜻이 마음에 닿습니다.

이복순 선생님은 〈나의 허물을 살피고 고치며, 성건재(省愆齋)〉에서 진주강씨 도은종택의 ‘성건재’와 성건재의 주인인 강찬(姜酇), 그의 아버지 강각(姜恪), 백부 강흡(姜恰) 가족을 소개해 주셨습니다. “성건재”는 이들 가족이 남인들 일색인 영남에 와서 노론과 소론으로 살면서 적응하고 정착해 간 분투가 담긴 편액이기도 합니다. 강찬의 가족에게는 “허물이 있으면 반드시 고치고 허물을 고친 뒤에는 두 번 다시 잘못을 저지르지 않겠다”는 자아성찰의 의지는 한편으로는 다름을 인정하고 같이 살아가는 지혜의 다른 모습이었습니다.

오늘 아침에 “탑승 시위가 있을 예정이고 시위가 있는 곳에서는 무정차 통과하겠다”는 안내방송을 들으면서 출근하노라니 입이 매우 씁니다.




편집자 소개

글 : 조경란
조경란
재밌는 이야기를 좀 더 많이 알고 싶어서, 서강대에서 역사 공부를 하였습니다. 박사과정(한국사전공)을 마치고 나서는 사단법인 세종대왕기념사업회에서 연구원으로 일하면서 계속 역사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공부하면서 알게 된 이야기들을 혼자만 알고 있는 게 아까워서 드라마 역사 자문에 응하게 되었습니다. 참여했던 작품이 “옷소매 붉은 끝동”, “녹두꽃”, “역적”, “왕이 된 남자”, “장영실”, “징비록” 등 20여 편 정도 됩니다.
“조선시대 점과 점쟁이”

예로부터 무당을 궐 안에 두고 나라의 길흉을 예언케 하였으나 점쟁이는 예언자로 전문적 직업인으로 민간에 생겼다. 점을 치는 종류는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생사의 존망을 점치는 사주점과 앞으로 닥칠 일을 점치는 운수점, 한 해의 운이 좋고 나쁨을 점치는 신수점, 단시점(斷時占), 멸액점(滅厄占), 절초점(折草占)따위가 있다. 또한 점을 치는 것으로는 태주가 하는 신점(神占)과 주로 여자 점쟁이가 쌀을 뿌려 점치는 쌀점, 동전을 던져서 점치는 돈점, 새가 물어온 점괘로 점치는 새점, 산통점(算筒占), 역점(易占), 오행점(五行占), 육효점(六爻占), 팔괘(八卦占), 구궁점(九宮)따위가 있다.

옛날 점치는 일을 직업으로 삼는 맹인들은 골목을 돌아다니며 “문복(問卜, 점쟁이에게 길흉을 물음)이요!” 하면서 점을 치고자 하는 사람을 찾아다녔고 자기 집에 ‘점’ 또는 ‘점집’이라 쓴 깃발을 달아놓기도 하였다. 이들은 주역(周易)을 바탕으로 이름 짓기와 관상, 이름, 감정 따위를 보았으며 때때로 액운을 막기 위한 부적을 쓰기도 하였다. 조선시대 중기(中期) 때 민간에 보급된 대표적인 토정비결(土亭秘訣, 이지함 저술)은 생년월일시를 숫자로 풀이해서 그 해의 운수를 달마다 보는 정초의 풍습이 되었다.

“용한 맹인 점쟁이 심군”

맹인점술가
(출처: 서울역사박물관 아카이브)
최흥원, 역중일기, 1763-01-06 ~

1763년 1월 6일. 신미년 새해가 된 지도 며칠이 지났다. 어제는 인근에 사는 김용여가 일부러 사람을 보내어 편지를 전하였는데, 새해가 되었으니 신년 운수를 보지 않겠냐는 내용이었다. 그의 편지에는 맹인 점장이 심옥의 이야기가 적혀 있었는데, 평소 그가 아주 영험하고 뛰어나단 소문이 인근에 자자하다고 한다. 엊그제 김용여가 사는 마을에 왔길래 자신도 점을 한 번 쳐보았는데 맞추지 못하는 것이 없다는 것이었다. 데려다가 점을 한 번 쳐볼 만하니 최흥원에게도 한 번 권한다는 내용이었다. 최흥원은 이 편지를 보고는 둘째 아우를 보내어 그 심옥이란 점쟁이를 데려오게 했다.

오늘 그가 점을 쳐보니, 점괘가 아주 불길하게 나왔다. 심옥은 이것저것을 물어보더니 대뜸 아내 묘소의 이장을 권하는 것이었다. 최흥원은 예전에도 아내 묘의 풍수가 좋지 못하다는 이야기를 들은 터라 심옥의 이야기를 그냥 넘겨들을 수가 없었다. 또 그에게 아픈 아이의 사주를 적어주고 앞으로의 운명을 물어보았더니, 그는 매우 길한 점괘가 나왔다고 알려주었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최흥원은 내친김에 심옥에게 집안사람들의 운명을 두루두루 물어보았다. 매년 새해가 되면 운수를 점치기는 하나, 정확하게 들어맞은 적은 없었다. 막상 심옥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 역시 특별히 용하다는 느낌이 들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 자뿐 아니라 모두가 아내의 이장을 권하니, 그것은 한 번 고려해 볼 만한 것 같았다.

“과거를 꿰뚫어보는 맹인 점술가 ‘김여추’”

권문해, 초간일기,
1584-03-09 ~ 1584-03-15

1584년 3월, 권문해는 추운 겨울을 지나 어서 봄을 만나고 싶었다. 그러나 3월 9일, 바라본 소백산에는 겨울처럼 눈이 내려온 산이 다 하얗게 되었다. 더욱이 연일 서리가 내려 초목의 싹이 대부분 시들어 죽어가는 걸 보니 마음까지도 메마르는 듯하였다. 그러던 중 예천군 성주 류세무와 경상북도 선산부백(善山府伯) 류덕수(柳德粹)가 경상북도 의성군의 대곡사(大谷寺)에 만나기를 청하였다.

3월 14일, 권문해는 집을 나서 대곡사로 향했고 그곳에서 3일을 머무르며 류세무와 류덕수와 이야기를 나누며 여유로운 시간을 보냈다.

3월 15일, 이야기 중 경상북도 선산군의 부백 류덕수에게 자신의 고을에 맹인 점쟁이 김여추(金汝秋)에 대해서 듣게 된다. 앞을 못 보는 맹인이지만 그 누굴 만나도 그가 살아온 과거를 귀신같이 맞춘다는 것이다. 권문해와 류세무는 명경수(明鏡數) 김여추의 이야기에 시간 가는 줄 몰랐다.

김여추의 이야기를 한참 듣던 류세무는 율시 한 수를 쓰는데,
화와 복은 다 이미 정해진 것 禍福皆前定
꽃 피고 시드는 것은 각기 때가 있다네 榮枯各有時
정원의 꽃은 일찍 떨어져 버리지만 花落園中早
산골짝 옆 소나무는 오래도록 산다네 松生澗畔遲
현묘한 이치 원래 수가 있는 것이니 玄機元有數
조물주가 어찌 사사로움을 용납하리오 造物豈容私
모름지기 반계(磻溪) 늙은이를 알아야 할거니 須識磻溪叟
끝내 임금의 스승이 되었네 終爲帝者師

대곡사에 모인 권문해와 류세무, 류덕수는 앞 못 보는 맹인 점쟁이 이야기를 통해 세상의 이치를 논하는 이야기로 밤새는 줄 몰랐다.

“자신의 수명을 점쳤던 점괘가 생각나다”

점괘패 (출처: 국립민속박물관) 오희문, 쇄미록, 미상

1593년 3월, 해가 바뀌자마자 100여 일을 앓았던 오희문은 최근에야 밥을 먹고, 지팡이에 의지하여 운신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 사이 사람들 사이에서는 오희문이 병으로 죽었단 소문도 돌았고, 이로 인해 아들에게는 위문편지가 날아오기도 하였다. 병이 너무나 심하여 오희문 스스로도 이제 곧 죽는구나 생각했던 순간들이 많았는데, 이제 이렇게 다시 살 수 있게 되니 감회가 새로웠다.

문득 15년 전의 일이 생각났다. 그때 오희문은 양지현 농촌에 머물고 있었는데, 죽산에 사는 맹인 김자순이란 자가 점을 잘 친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리하여 그를 불러다가 자신의 운명을 점치게 하였는데, 그때 김자순이 이렇게 이야기하였다. “나이 54세, 그러니까 임진년에 큰 횡액이 있고, 이것을 지나면 70살 넘게 살 수 있다” 그때 오희문은 재미 삼아 친 점이라 특별히 신뢰하지 않고 있었는데, 과연 임진년에 난리가 터져 거의 죽을 뻔하게 되었다. 비록 몸의 병은 해를 넘겨 생겼지만, 김자순이란 자가 이야기한 점괘와 신기하게 맞아떨어진 것이 아닌가! 오희문은 새삼 점쟁이 맹인의 신통함에 감탄하였다.

“풍증(風症)걸린 덕원, 괴상한 말을 늘어놓다”

김령, 계암일록,
1623-05-05 ~ 1624-01-20

1623년 5월 5일, 이직(以直)이 안타까운 소식을 가지고 김령의 집을 방문하였다. 이덕원(李德遠)이 지난 밤 풍증(風症, 미친 증세)이 발병하여 정처없이 계상(溪上)·분천(汾川 : 오늘날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분천리)·부포(浮浦 : 오늘날 경상북도 안동시 예안면 부포리) 등지를 돌아다녔다는 것이다. 김령은 그가 가련하고 애석하여 마음을 가눌 길이 없었다. 김령은 이직이 돌아간 뒤 탁청정에 갔다가 제군들을 만나 냇가 길에서 모였는데, 이때 덕원의 병이 위급하다는 전갈을 받고 여희와 이실이 온계(溫溪)로 급히 갔다. 흥이 싹 가셔서 기쁘지 않았다. 탄식스럽고도 탄식스러웠다.

6월 2일, 비 내리는 아침, 김령은 덕원을 만나러 탁청정으로 나아갔다. 그의 언행을 보니 병은 차도가 없었다. 덕원은 괴상한 말들을 계속 늘어놓았다. 가련하고도 탄식스러웠다. 종종 정상인 것도 같으면서, 말하는 것이나 몸을 움직이는 것이 보통 사람과 크게 달랐다.

덕원의 병은 나아지는가 싶더니, 1624년 1월, 다시 발병하였다. 또 이렇게 고된 병에 걸리다니 안타깝고 애석함이 모두 지극하였다.

닫기
닫기
관련목록
시기 동일시기 이야기소재 장소 출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