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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야의 사건일지

가야금 줄의 비밀

포천현 예방 조맹석이 교방(敎坊)의 악공들을 불러 모았다. 포천현에는 악공이 여섯이 있었다. 이들은 녹색 옷을 입고 있었는데, 그 중 한사람만 머리에 복두(幞頭)가 아닌 녹색 두건을 쓰고, 허리에는 검은 오정대(烏鞓帶) 대신 붉은 두석홍정대(豆錫紅鞓帶)를 띠고 있었다. 이런 복식 차이를 떠나 그는 지팡이로 좌우를 짚어가며 사람들을 따라왔으므로 관현맹인(管絃盲人)이라는 것을 금방 알 수 있었다. 관현맹인은 눈이 보이지 않는 시각장애인으로 음악을 하는 악공을 가리키는 말이다.


관현맹인 복장(출처: 『국악원논문집』 16, 부록)



조 예방이 헛기침을 한번 한 뒤에 입을 열었다.

“본래 악공들의 정기 시험을 치러야 하는데, 그동안 공사가 다망하여 미처 시험을 보지 못하였다. 오늘 너희를 부른 것은 그 시험을 치기 위함이니 너무 걱정하지 말고 자기 실력을 선보이면 될 것이다.”

관현맹인 고유현이 손을 들고 말했다. 보이지 않는 눈이었지만 갈색의 깊은 빛은 마치 사람의 마음을 꿰뚫어볼 수 있는 것처럼 보였다. 단정하게 수염을 정돈한 모양을 보면 그가 혼자 얼굴 단장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믿기 어려울 정도였다.

“시험이라면 당악기를 봅니까, 향악기를 봅니까?”

당악기는 제례 음악을 할 때 사용하는 중국 악기이고 향악기는 조선의 고유한 음악을 연주할 때 사용하는 조선 악기이다.

“향악기를 볼 것이다. 그래, 말을 한 김에 관현맹인 고유현, 너부터 시작하자. 대청으로 올라오거라.”

관청 마루에 가야금이 놓여 있었다. 고유현이 올라와 가야금 앞에 앉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사또 따님께서는 무슨 일로 함께 하시는 건가요?”

조 예방이 흠칫 놀라 숨을 들이켰다. 오달현 현감의 딸 산비는 대청 병풍 뒤에 있어서 보이지가 않았는데, 고유현이 대뜸 눈치를 챈 것이다.

“그걸… 어찌 알았나?”

“아가씨의 숨소리도 들리고 분 냄새도 나는데 어찌 모르겠습니까?”

눈이 보이지 않으면 다른 감각이 발달한다고 하더니 정말 귀신같네 하고 조 예방은 속으로 생각했다.

“흠흠, 아가씨께서 음악에 관심이 깊으셔서 오늘 시험을 한번 보고 싶다고 해서 특별히 모셨네. 병풍 뒤에 계시니 보이진 않네. 그러니 걱정하지 말고 시험에 임하도록.”

“알겠습니다. 무슨 곡을 연주하면 되는지요?”

“향악기 시험에는 여민락(與民樂) 본령(本令)을 연주하면 되네만 그건 너무 시간이 오래 걸리니까 뭐든 자신 있는 곡으로 한번 연주해보게나.”


『속악원보 지(俗樂源譜 智)』 1881년(영조 18) 작자미상의 악보로,
여민락(與民樂)과 보허자(步虛子)의 관보(管譜)와 현보(絃譜)가 수록된 악보(출처: 국립국악원)



여민락은 세종이 만든 곡으로 궁중 행사에 사용되는 것으로 매우 느리고 장중한 음악이다. 궁중 행사에 사용되는 음악인만큼 나라에 소속된 악공이라면 당연히 탈 줄 알아야 하지만, 장악원 소속의 악공이 아니라 지방 관청 교방의 악공이 굳이 그걸 할 필요는 없었다.

“알겠습니다. 그럼 한 곡 타보도록 하겠습니다.”

고유현은 가야금을 무릎에 얹고 자세를 잡았다.

“영산회상 중 타령을 연주하겠습니다.”

하지만 첫 음부터 약간 불안한 느낌이었다. 병풍 뒤에 있던 산비가 씩 웃음을 머금었다. 그럴 줄 알았다는 비웃음이었다.

그러나 웬 걸. 연주가 거듭될수록 안정적이 되었고, 어느 틈에 음악에 빠져들고 말았다. 영산회상은 석가모니가 영취산에서 설법한 것을 기리기 위해서 만들어진 불교 음악에서 비롯된 것으로 고아한 높은 품격을 가진 곡이다. 본래 합주로 연주하는 것이지만 고유현의 연주는 마치 모든 악기를 거느린 듯이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힘을 보여주고 있었다. 산비도 어쩐지 놀라운 마음이 들어 저절로 눈물을 한 방울 뚝 떨어뜨리고 말았다.

연주가 끝나자 조 예방은 약간 난처한 얼굴로 병풍 쪽을 바라보았다가 입을 열었다.

“조, 좋은 연주였네. 그런데 분명히 첫 음이 이상했는데… 아니, 자네 그게 무슨 일인가!”

조 예방이 말을 하다 말고 기겁을 한 목소리를 냈다. 심상찮은 조 예방의 반응에 산비가 얼른 일어나 대청으로 나왔다.

“피가…!”

고유현의 녹색 단령(團領)에 붉은 피가 점점이 떨어져있었다. 그뿐이 아니었다. 가야금의 앞부분, 즉 오른손으로 튕기는 쪽은 피바다라고 할 만큼 피가 흥건했다.

“빨리 의녀 행덕이를 불러주세요.”

산비가 누구라 할 것 없이 지시를 내렸다. 조 예방이 다시 통인에게 지시를 내렸다. 동료 악공들이 우르르 대청으로 올라와 고유현의 손가락을 살펴보고 급한대로 옷을 찢어 손가락을 동여맸다.

산비는 가야금을 살펴보았다. 피로 물든 가야금 줄 사이에 반짝이는 뭔가가 있었다.

살짝 손을 대보니 날카로웠다. 연줄에 사금파리를 먹이듯 가야금 줄에 사금파리를 먹여놓은 것이었다. 고유현이 아니었다면, 눈이 보이는 악공이었다면 분명히 줄을 튕기기 전에 알아챘을 것이다.

‘그래서 첫 음이 불안정했구나. 바로 손가락을 베였어. 그런데 왜?’

산비는 고유현 쪽으로 몸을 돌리며 질문을 던졌다.

“첫 음이 불안정했던 게 손가락을 베었기 때문이군요. 왜 연주를 멈추지 않았나요?”

고유현이 담담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소인 같은 사람은 명을 받으면 받잡을 뿐이지요. 연주를 시작한 이상 목에 칼이 들어와도 멈출 수는 없습니다.”

“그런 바보 같은…”

“시험에서 떨어지면 쫓겨날 것이고, 그러면 살아갈 방도가 없는 몸입니다. 보시다시피 앞이 보이지 않으니. 어려서부터 소리가 좋아서 관현맹인이 되었는데 이제 와서 주역을 배워 점을 치리까, 옥추경(玉樞經)을 외워 독경을 하리까? 다른 길이 없으니 죽어라 할밖에요.”


『옥추경(玉樞經)』 조선시대에는 귀신을 쫓고 병을 고칠 때 가장 흔히 독경되었으며, 맹인(盲人)이 외워 읊었음
(출처: 국립민속박물관)



몽수(朦瞍=시각장애인)의 길은 세 가지뿐이었다. 점쟁이, 독경사 그리고 관현맹. 아니 굳이 말하자면 걸인까지 넣을 수 있겠다. 몽수가 적선을 바라 구걸을 하는 것은 창피한 일이 아니었다.

고유현이 한숨을 한번 내쉬고 말했다.

“점은 신기라도 있어야 할 것 아닌가 싶은데, 그렇지 않다면 그저 사람을 속이는 길이 아닐까 싶어 도무지 못하겠고, 독경 역시 그걸로 복이 온다고 믿기가 너무 어려워 도무지 마음이 가지 않더군요. 하지만 소리는 정직하더군요.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여 가슴 속 깊은 감정을 내뱉게 만들어줍니다. 이걸 떠나선 도저히 살아갈 자신이 없습니다. 손가락이 베어지는 게 아니라 잘라져버린다 해도 소인은 이 길에 남고 싶습니다.”

산비는 이마를 짚었다. 사람을 완전히 잘못 봤다. 실제로 보지도 않고 넘겨 짚어버렸던 것이다.

이 일은 산비가 놀라 깬 오늘 새벽에 시작되었다.

가랑이 사이가 척척하여 기분이 나빠 살펴보니 갈색으로 물들어있었다. 피비린내가 확 끼쳤다. 담력도 어지간한 산비였지만 이번에는 저도 모르게 놀라 비명을 지르고 말았다.

“무, 무슨 일이냐?”

아버지 오달현 현감이 놀라서 달려왔는데, 산비가 깜짝 놀라 고함을 질렀다.

“들어오지 마세요!”

“아니, 무슨 일인지를 알아야…”

“의원, 아니 의녀를 불러주세요!”

“의녀? 우리 고을에 의녀가 있던가?”

오 현감이 중얼거리자 근처에 있던 머슴 철근이 고개를 조아리며 말했다.

“교방의 기녀 중에 허 의원 밑에서 의술을 배우는 아이가 있습니다. 그 애라도 불러올깝쇼?”

“어서 불러와라!”

이리하여 한밤중에 자다말고 불려온 예비 의녀 행덕은 산비보다 한 살이 어렸다. 행덕이 마당에 서서 어쩔 줄 몰라하는 오 현감에게 인사를 올렸다.

“부르셨습니까?”

“불렀으니 왔지. 어서 우리 애기 상태를 보아라.”


의녀를 불러 진찰하는 모습(출처: 한국국학진흥원 스토리테마파크)



안채로 간 행덕은 파리한 얼굴의 산비를 보고 어쩔 줄을 몰라했다. 환자가 누군지 알 도리가 없을 지경이었다.

“어디가 안 좋으신지요?”

“피가 나왔어.”

“잠시 살펴보겠습니다.”

행덕은 이불을 젖혀 살펴보더니 얼굴이 빨개지고 말았다.

“뭐냐, 뭔데 그러냐? 빨리 말해라.”

“저, 저…”

행덕은 말을 못하고 머뭇거리다 간신히 입을 떼었다.

“달거리입니다.”

“달거리? 달거리가 뭔데?”

“아, 모르셨군요.”

달거리는 생리를 가리키는 말이다. 산비는 태어났을 때 어머니를 여의었고 철이 든 뒤에는 집안 살림을 혼자 도맡아 했기 때문에 여자의 몸에 일어나는 변화 같은 것은 듣지 못했다. 한양에 있었다면 동무 중에 먼저 생리를 하거나 해서 알 수도 있었을 텐데, 포천에 온 후에는 그런 이야기를 할 동무가 없었다.

자신도 경험이 없는 달거리에 대해서 행덕은 우물쭈물 설명을 하고 급히 생리대인 개짐을 만들었다. 또 바로 허 의원 댁으로 뛰어가 약재 오공칠(蜈蚣七)을 가져왔다. 오공칠을 달여서 산비에게 먹였다.

“이건 무슨 약이냐?”

“피가 좀 덜 나게 하는 약입니다. 꽃잎을 달여서 만든 것이니 걱정 마시고 드십시오.”

“꽃잎? 무슨 꽃인데?”

“개불알꽃입니다.”

그 말에 산비는 먹던 탕약을 뿜을 뻔했다.

“무슨 꽃 이름이 그 모양이냐? 그런 걸 먹어도 되는 거라고?”

“생긴 모양이 좀 그렇게 생겨서…”

행덕이 꽃 이름이 자기 잘못인 양 어쩔 줄을 몰라했다.

“너는 처음 보는 얼굴이구나. 이름이 뭐냐?”

“행덕이라고 합니다.”

“의녀라면 혜민서에서 공부를 하고 온 거냐?”

행덕이 고개를 가로 저었다.

“아닙니다. 그런 복을 타고난 팔자가 아니죠. 그냥 우리 고을 허 의원 댁에서 눈동냥을 하고 있습니다.”

의녀는 본래 혜민서에서 공부를 하고 돌아와야 하는데 모든 고을이 그렇게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사정을 알만 해서 산비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고생이 많구나. 의녀 일을 하다보니 손이 이렇게 거칠어진 것이냐?”

행덕이 진맥을 할 때 그녀의 손가락 끝에 굳은살이 여럿 박인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렇게 손끝이 두꺼워서야 진맥을 제대로 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였다.

“아…”

행덕의 얼굴이 또 빨개졌다.

“이것은 의술 공부 때문이 아니옵고….”

“그럼 무엇 때문이냐?”

“가야금 공부 때문입니다.”

“가야금? 의녀가 가야금은 왜?”

“쇤네는 본래 기생의 딸이라 기녀 일도 배워야하기 때문에…”


기생의 가야금 연주 모습(출처: 국립민속박물관)



의녀 일은 기생이 배우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약방기생이라는 말도 있을 정도였다.

“가야금을 배우느라 이렇게 손가락이 다 망가질 정도가 되었단 말이냐? 선생이 대체 누구냐?”

“아니… 뭐… 가야금을 배우는 게 힘들긴 하지만… 스승님 잘못은 아닙니다.”

“그래, 아니라고 하고. 대체 누구냐?”

“관현맹 고유현입니다.”

교방은 연회를 담당하는 곳으로 악공과 기녀가 모두 여기에 소속되어 있었다. 어린 기녀들은 춤과 노래를 기본으로 할 줄 알아야 했기 때문에 이곳에서 각종 기예를 배우게 된다. 가야금과 같은 악기를 다루는 것도 물론 당연히 배워야 하는 기예였다.

산비는 행덕의 손을 등잔불 곁으로 끌고 가 자세히 살펴보았다. 손가락들이 다 상태가 좋지 않았는데, 그 중에서도 오른손 검지는 찢어졌다 아문 지 얼마 되지 않아 금방이라도 핏물을 떨어뜨릴 것만 같았다.

“한번 고유현 악공을 내가 꼭 봐야겠다.”

이렇게 착하디 착한 아이를 손가락 끝이 갈라지도록 학대하는 눈 먼 인간을 도저히 용서할 수가 없었다. 뭐든 트집을 잡아 요절을 내리라 생각했다.

그렇게 되어 조 예방을 만나 계절마다 치러야 하는 악공 시험을 치르지 않고 있다는 것을 알았고, 그걸 기회로 삼아 트집거리를 잡을 심산이었다. 하지만 이런 사고가 생길 줄은 꿈에도 몰랐다. 산비는 자책감에 가슴을 쳤다.

“부르셨습니까?”

행덕이 달려와 인사를 올렸다.

“그래, 고 악공이 손을 다쳤다. 어서 살펴보도록 해라.”

행덕이 대청으로 올라와 고유현의 손을 살폈다. 이미 말을 들은 터라 붕대와 연고를 준비해왔기에 얼른 처치를 할 수 있었다.

“상처가 깊은 것은 아니어서 금방 아물 것입니다.”

산비가 불길이 타오르는 눈으로 행덕을 바라보며 말했다.

“왜 이런 짓을 한 것이냐?”

“네?”

“왜 가야금 줄에 사금파리를 먹였냐고 묻는 것이다. 이 가야금을 대청으로 가져온 것이 네가 맞으렷다!”

그 말에 행덕이 넙죽 엎드렸다. 부들부들 떨면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고유현이 산비 뒤에서 말했다.

“어린아이의 장난에 너무 노하지 마십시오. 기녀로 살아가기가 쉽지 않으니 저렇게 화를 푸는 날도 있는 법입니다.”

고유현의 말을 듣자 행덕이 울먹이며 말했다.

“줄을 한번만 튕겨도 알 수 있으니 이렇게 다칠 일은 없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잘못했습니다. 잘못했습니다!”

산비는 다시 한번 속으로 가슴을 쳤다. 선대왕(정조)이 말씀하시길 ‘몽수는 보이는 것이 없으니 반드시 사악한 생각이 없다’라고 하였는데, 과연 그 말이 맞았는가 보았다. 고유현은 자기를 해치려고 한 기녀도 감쌀 줄 아는 군자였다.

“네 스승의 얼굴을 보아 너를 용서하겠다. 다시는 이런 짓을 하지 말거라.”

산비의 말은 그 자신에게 하는 말이기도 했다. 다시는 섣부른 판단을 하지 않을 것이었다.




집필자 소개

이문영
이문영
역사, 추리, SF, 판타지를 넘나들며 글쓰기를 하고 있다. 소설 뿐만 아니라 인문서 쪽으로도 출간을 하고 있으며, 청소년 글쓰기 사이트 글틴의 소설게시판지기로도 활동했다. 장르소설 전문 출판사 파란미디어 편집주간으로 있으면서 여전히 활발한 창작활동을 겸하고 있다. 역사추리소설 『신라 탐정 용담』, 어린이 그림책 『색깔을 훔치는 마녀』, 역사동화 『역사 속으로 숑숑』, 어린이 인문서 『그게 정말이야?』, 역사인문서 『만들어진 한국사』를 비롯해서 MMORPG 『무혼』 등 여러 편의 게임 시나리오도 만든 바 있다.
“조선시대 점과 점쟁이”

예로부터 무당을 궐 안에 두고 나라의 길흉을 예언케 하였으나 점쟁이는 예언자로 전문적 직업인으로 민간에 생겼다. 점을 치는 종류는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생사의 존망을 점치는 사주점과 앞으로 닥칠 일을 점치는 운수점, 한 해의 운이 좋고 나쁨을 점치는 신수점, 단시점(斷時占), 멸액점(滅厄占), 절초점(折草占)따위가 있다. 또한 점을 치는 것으로는 태주가 하는 신점(神占)과 주로 여자 점쟁이가 쌀을 뿌려 점치는 쌀점, 동전을 던져서 점치는 돈점, 새가 물어온 점괘로 점치는 새점, 산통점(算筒占), 역점(易占), 오행점(五行占), 육효점(六爻占), 팔괘(八卦占), 구궁점(九宮)따위가 있다.

옛날 점치는 일을 직업으로 삼는 맹인들은 골목을 돌아다니며 “문복(問卜, 점쟁이에게 길흉을 물음)이요!” 하면서 점을 치고자 하는 사람을 찾아다녔고 자기 집에 ‘점’ 또는 ‘점집’이라 쓴 깃발을 달아놓기도 하였다. 이들은 주역(周易)을 바탕으로 이름 짓기와 관상, 이름, 감정 따위를 보았으며 때때로 액운을 막기 위한 부적을 쓰기도 하였다. 조선시대 중기(中期) 때 민간에 보급된 대표적인 토정비결(土亭秘訣, 이지함 저술)은 생년월일시를 숫자로 풀이해서 그 해의 운수를 달마다 보는 정초의 풍습이 되었다.

“용한 맹인 점쟁이 심군”

맹인점술가
(출처: 서울역사박물관 아카이브)
최흥원, 역중일기, 1763-01-06 ~

1763년 1월 6일. 신미년 새해가 된 지도 며칠이 지났다. 어제는 인근에 사는 김용여가 일부러 사람을 보내어 편지를 전하였는데, 새해가 되었으니 신년 운수를 보지 않겠냐는 내용이었다. 그의 편지에는 맹인 점장이 심옥의 이야기가 적혀 있었는데, 평소 그가 아주 영험하고 뛰어나단 소문이 인근에 자자하다고 한다. 엊그제 김용여가 사는 마을에 왔길래 자신도 점을 한 번 쳐보았는데 맞추지 못하는 것이 없다는 것이었다. 데려다가 점을 한 번 쳐볼 만하니 최흥원에게도 한 번 권한다는 내용이었다. 최흥원은 이 편지를 보고는 둘째 아우를 보내어 그 심옥이란 점쟁이를 데려오게 했다.

오늘 그가 점을 쳐보니, 점괘가 아주 불길하게 나왔다. 심옥은 이것저것을 물어보더니 대뜸 아내 묘소의 이장을 권하는 것이었다. 최흥원은 예전에도 아내 묘의 풍수가 좋지 못하다는 이야기를 들은 터라 심옥의 이야기를 그냥 넘겨들을 수가 없었다. 또 그에게 아픈 아이의 사주를 적어주고 앞으로의 운명을 물어보았더니, 그는 매우 길한 점괘가 나왔다고 알려주었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최흥원은 내친김에 심옥에게 집안사람들의 운명을 두루두루 물어보았다. 매년 새해가 되면 운수를 점치기는 하나, 정확하게 들어맞은 적은 없었다. 막상 심옥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 역시 특별히 용하다는 느낌이 들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 자뿐 아니라 모두가 아내의 이장을 권하니, 그것은 한 번 고려해 볼 만한 것 같았다.

“과거를 꿰뚫어보는 맹인 점술가 ‘김여추’”

권문해, 초간일기,
1584-03-09 ~ 1584-03-15

1584년 3월, 권문해는 추운 겨울을 지나 어서 봄을 만나고 싶었다. 그러나 3월 9일, 바라본 소백산에는 겨울처럼 눈이 내려온 산이 다 하얗게 되었다. 더욱이 연일 서리가 내려 초목의 싹이 대부분 시들어 죽어가는 걸 보니 마음까지도 메마르는 듯하였다. 그러던 중 예천군 성주 류세무와 경상북도 선산부백(善山府伯) 류덕수(柳德粹)가 경상북도 의성군의 대곡사(大谷寺)에 만나기를 청하였다.

3월 14일, 권문해는 집을 나서 대곡사로 향했고 그곳에서 3일을 머무르며 류세무와 류덕수와 이야기를 나누며 여유로운 시간을 보냈다.

3월 15일, 이야기 중 경상북도 선산군의 부백 류덕수에게 자신의 고을에 맹인 점쟁이 김여추(金汝秋)에 대해서 듣게 된다. 앞을 못 보는 맹인이지만 그 누굴 만나도 그가 살아온 과거를 귀신같이 맞춘다는 것이다. 권문해와 류세무는 명경수(明鏡數) 김여추의 이야기에 시간 가는 줄 몰랐다.

김여추의 이야기를 한참 듣던 류세무는 율시 한 수를 쓰는데,
화와 복은 다 이미 정해진 것 禍福皆前定
꽃 피고 시드는 것은 각기 때가 있다네 榮枯各有時
정원의 꽃은 일찍 떨어져 버리지만 花落園中早
산골짝 옆 소나무는 오래도록 산다네 松生澗畔遲
현묘한 이치 원래 수가 있는 것이니 玄機元有數
조물주가 어찌 사사로움을 용납하리오 造物豈容私
모름지기 반계(磻溪) 늙은이를 알아야 할거니 須識磻溪叟
끝내 임금의 스승이 되었네 終爲帝者師

대곡사에 모인 권문해와 류세무, 류덕수는 앞 못 보는 맹인 점쟁이 이야기를 통해 세상의 이치를 논하는 이야기로 밤새는 줄 몰랐다.

“자신의 수명을 점쳤던 점괘가 생각나다”

점괘패 (출처: 국립민속박물관) 오희문, 쇄미록, 미상

1593년 3월, 해가 바뀌자마자 100여 일을 앓았던 오희문은 최근에야 밥을 먹고, 지팡이에 의지하여 운신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 사이 사람들 사이에서는 오희문이 병으로 죽었단 소문도 돌았고, 이로 인해 아들에게는 위문편지가 날아오기도 하였다. 병이 너무나 심하여 오희문 스스로도 이제 곧 죽는구나 생각했던 순간들이 많았는데, 이제 이렇게 다시 살 수 있게 되니 감회가 새로웠다.

문득 15년 전의 일이 생각났다. 그때 오희문은 양지현 농촌에 머물고 있었는데, 죽산에 사는 맹인 김자순이란 자가 점을 잘 친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리하여 그를 불러다가 자신의 운명을 점치게 하였는데, 그때 김자순이 이렇게 이야기하였다. “나이 54세, 그러니까 임진년에 큰 횡액이 있고, 이것을 지나면 70살 넘게 살 수 있다” 그때 오희문은 재미 삼아 친 점이라 특별히 신뢰하지 않고 있었는데, 과연 임진년에 난리가 터져 거의 죽을 뻔하게 되었다. 비록 몸의 병은 해를 넘겨 생겼지만, 김자순이란 자가 이야기한 점괘와 신기하게 맞아떨어진 것이 아닌가! 오희문은 새삼 점쟁이 맹인의 신통함에 감탄하였다.

“풍증(風症)걸린 덕원, 괴상한 말을 늘어놓다”

김령, 계암일록,
1623-05-05 ~ 1624-01-20

1623년 5월 5일, 이직(以直)이 안타까운 소식을 가지고 김령의 집을 방문하였다. 이덕원(李德遠)이 지난 밤 풍증(風症, 미친 증세)이 발병하여 정처없이 계상(溪上)·분천(汾川 : 오늘날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분천리)·부포(浮浦 : 오늘날 경상북도 안동시 예안면 부포리) 등지를 돌아다녔다는 것이다. 김령은 그가 가련하고 애석하여 마음을 가눌 길이 없었다. 김령은 이직이 돌아간 뒤 탁청정에 갔다가 제군들을 만나 냇가 길에서 모였는데, 이때 덕원의 병이 위급하다는 전갈을 받고 여희와 이실이 온계(溫溪)로 급히 갔다. 흥이 싹 가셔서 기쁘지 않았다. 탄식스럽고도 탄식스러웠다.

6월 2일, 비 내리는 아침, 김령은 덕원을 만나러 탁청정으로 나아갔다. 그의 언행을 보니 병은 차도가 없었다. 덕원은 괴상한 말들을 계속 늘어놓았다. 가련하고도 탄식스러웠다. 종종 정상인 것도 같으면서, 말하는 것이나 몸을 움직이는 것이 보통 사람과 크게 달랐다.

덕원의 병은 나아지는가 싶더니, 1624년 1월, 다시 발병하였다. 또 이렇게 고된 병에 걸리다니 안타깝고 애석함이 모두 지극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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