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독자 여러분. 다가오는 6월 4일은 전국동시지방선거가 있는 날입니다. 특히 이번 지방선거에서는 본 선거에 앞서 이틀 동안 사전투표를 실시하였습니다. 이번 사전투표는 통합선거인명부를 통해 전국 어디서나 자신의 지역 선거구의 투표용지를 발급받아 투표에 참여할 수 있는 제도로 IT기술과 정보통신기술을 적용한 세계최초의 선거시스템이라고 합니다. 무엇보다 이러한 첨단 기술의 도입을 통해 국민들의 정치 참여 의지가 견고해지고, 보다 높은 투표율이 기록되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이번 6월의 ‘선인의 일기, 한편의 영화를 만나다’에서는 조선시대에 백성들에게 선정을 베푼 고을 수령과 영화 속에서 자신의 고향을 지키기 위해 싸웠던 미국의 상원의원을 만나보고, 과연 시대를 떠나 관직을 가진 사람은 어떻게 행동해야 옳은가? 에 대해 생각해보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부디 이번 6월 4일 선거에서는 국민을 섬기는 관리들이 선출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야기를 시작하겠습니다.
조선 말기의 학자인 임재(臨齋) 서찬규(徐贊奎? 1825-1905)는 생원시 합격을 제외하고, 과거에는 연연하지 않은 선비였다고 합니다. 고고한 인품을 지닌 그는 지방 관찰사와 암행어사 등의 추천으로 여러 번 관직을 내렸으나 모두 사양하고 나아가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고향에 수동재(守東齋)를 짓고 학문을 쌓고 후학을 양성하는 일에 힘을 쏟았지요. 서찬규가 지은 임재일기(臨齋日記)는 그의 나이 21세인 을사년(1845)부터 37세인 신유년(1861) 5월 20일까지 17년간의 일기를 적은 것이라고 합니다. 임재일기 374페이지, 1852년 2월 22일에 적힌 일기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은 내용이 적혀있습니다.
1852년 2월 22일, 홍직필 선생의 사위인 진사 민경호가 선생을 모시고 앉았다. 오곡 어른의 정치력 이야기가 나오자 선생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그의 재량을 알지 못하는 것은 아니나, 실은 헤아리기 어려운 바가 있다. 이 읍에 거주할 때에 어떠한 덕정(?政)을 행하여 백성에게 이러한 믿음을 얻어서 떠난 뒤에 생각함이 더욱 간절하며, 시흥(始興)으로 옮길 때 과천(果川) 백성들이 길을 막고 눈물을 흘리기를 갓난아기를 잃은 것 같이하니, 과연 그가 백성에게 선정(善政)이 있었는가. 내가 평소에 그의 삼가고 성실함을 허여하였을 뿐인데, 지금 이와 같이 순량(循良)하게 될 줄은 생각지 못하였다.”
위의 이야기를 잠시 쉽게 정리하자면 이러합니다. 문장과 글씨가 뛰어난 조선 후기의 학자로 <매산집>의 저자인 문경 홍직필은 오곡 홍일순을 양자로 두었습니다. 어느 날, 그는 사위인 민경호와 홍일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던 중, 그가 과천현감으로 임명되어 고향을 떠날 때, 사람들이 무척 서운해 하였고, 역시나 과천현감에서 시흥현령으로 전임되었을 때에는 과천 백성들이 길을 막고 갓난아기를 잃은 것같이 슬피 울었다는 이야기를 해주며 평소 성실한 홍일순이 이처럼 어질게 백성을 다스릴 줄 몰랐다고, 칭찬을 하였던 것입니다. 이 이야기를 통해 홍일순은 후세에 귀감이 될 만큼 백성들을 위해 선정을 베푼 관리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조선시대 후기, 선정의 표상이 된 홍일순이 있었다면, 미국에는 젊은 보이스카웃 단장이 선정의 표상이라 할 수 있습니다. 바로, 프랑크 카프라 감독의 영화 ‘스미스씨 워싱톤에 가다’의 주인공 제퍼슨 스미스가 바로 그 주인공입니다.
1939년에 제작된, ‘스미스씨, 워싱톤에 가다’ [Mr. Smith Goes To Washington ]는 1989년 9월에 미국 역사상 최 초로 ‘미국 필름문화재’로 선정된 25편의 영화 중 한 편으 로, 현재 미국의회도서관 내 국립필름등기소에 등록되어 영원한 미국 문화의 유산이 된 작품입니다. ‘스미스씨, 워싱 톤에 가다’는 루이스 R. 포스터의 소설을 토대로 하여 프랭 크 카프라 감독이 연출한 작품입니다. 프랭크 카프라 감독 은 〈어느 날 밤에 생긴 일〉(1934), 〈디즈씨 도시에 가다〉 (1936), 〈우리 집의 낙원〉(1938)으로 아카데미 감독상을 세 번 받은 거장 감독이지요.
‘스미스씨 워싱톤에 가다’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습니다.
잭슨시의 주지사는 자신의 주 상원의원이 임기 중에 사망하자 후임 상원의원을 물색합니다. 이에 주 상원의원이던 조셉 페인과 그의 후원자인 짐 테일러는 이권이 걸려 있는 댐 건설을 반대하지 않을 나약한 인물로 뽑으라고 주지사에게 압력을 넣습니다.
고민 끝에 주지사는 소년단 지도자 제퍼슨 스미스를 상원의원으로 지명합니다. 정치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는 무지한 인물을 허수아비로 선출한 것이죠. 조용한 신념자인 스미스는 아무것도 못할 것이라는 기자들의 조롱에 맞서 법안을 제출하기로 결심한다. 내용은 고향 마을에 소년들을 위한 캠프를 만들겠다는 것입니다. 비서인 손더스의 도움으로 법안을 완성하지만 캠프의 위치가 문제가 됩니다. 바로 조셉 페인이 추진 중인 댐 공사 현장이 그곳이었기 때문입니다. 뒤늦게 사실을 알게 된 페인과 테일러는 스미스를 회유하지만, 스미스는 테일러에게 포섭된 페인에게 크게 실망합니다. 페인은 스미스가 댐 공사 현장 인근에 토지를 소유하고 있다고 거짓 발표를 하고, 스미스는 제명 위기에 처하게 됩니다.
고향으로 돌아가겠다는 스미스에게 비서인 손더스의 격려를 통해 용기를 얻은 스미스는 24시간 필리버스터를 감행합니다. 필리버스터란, 의회에서 매우 긴 시간동안 의사진행발언을 하여, 자신의 주장을 알리는 정당한 행위입니다.
댐 공사 저지와 결백을 증명하기 위한 장장 24시간의 의회 발언을 시작한 스미스는 시간이 지날수록 지쳐가고, 목은 쉬어 목소리를 낼 수 없을 정도가 되고 맙니다. 그러나 포기를 하지 않죠. 결국, 스미스는 급기야 의사당 안에서 쓰러지고, 24시간 동안 이어졌던 그의 발언은 막을 내립니다. 쓰러진 스미스를 본 조 페인은 그 동안의 극심한 갈등과 양심의 가책을 견디지 못하고, 결국 자신의 거짓을 만천하에 자백하며 댐 건설 계획은 협잡이라고 고백합니다. 이에 참관인들은 승리한 스미스에 환호하고, 자유의 종이 울리는 가운데 영화는 끝이 납니다. 카프라 감독의 재능이 유감없이 발휘된 이 영화는 관객에게 커다란 감동과 재미를 안겨줍니다.
상상하건데, 스미스가 조선에 귀화하였다면, 아마도 홍일순처럼 사람들에게 칭송받고, 그가 떠날 때 이별에 눈물짓는 백성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이번 6월 4일 지방선거 전에 웹진 독자들께서 홍일순의 이야기와 영화 ‘스미스씨, 워싱톤에 가다’를 찾아보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좋은 인물에 반드시 투표권을 행사하여, 이후의 백성들이 편한 나라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스미스가 상원연단에서 열변을 토하는 대사를 마지막으로 6월 ‘선인의 일기, 한편의 영화를 만나다’를 마무리하겠습니다.
"정부는 생명과 자유와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구성된 것입니다. 그 사명을 다하지 못한다면, 주권자인 국민은 정부를 교체할 권리가 있습니다. 저는 늘 독립선언문의 정신을 존중하고 있습니다. 지구상에 인간의 기본적인 권리를 부정하는 세력이 있다면 마땅히 응징되어야 합니다. 진실에는 타협이 없습니다. 제가 발언대에 오른 것도 바로 그것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냉철한 이성에 호소합니다. 위대한 원칙은 변할 수 없고, 어떤 것에도 결코 흔들리지 않습니다."
1590년 새해가 밝았으나 대구지역민들의 삶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흉년으로 먹을 것이 부족하여 굶주린 사람들이 늘어갔다.
1712년 2월 24일 청나라에서 총관 목극등(穆克登)을 파견하여 백두산 경계를 조사하려 한다는 외교문서를 보냈다.
1752년 2월 18일 사공(沙工)과 격군(格軍) 등 15명은 진주에서 구휼미를 싣고 함경도로 가던 중에 풍랑을 만나 난파되는 사고가 났다.
399년 전 기생에게 빠져 고을민의 삶을 돌보지 않는 어리석고 무능한 관리가 있었다.
1751년 경상도 흥해군(현재 포항시 북구지역)은 수령의 부녀자 성추행 사건으로 떠들썩하였다.
622년 5월 풍기군수 이잠(李?)의 부임 소식에 지역의 선비와 마을 사람들이 근심하기 시작하였다.
경상감사 정조(鄭造)가 봉화에 사는 그의 딸을 만나러 간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그러자 온 고을의 수령들은 분주해지기 시작했고…
| 시기 | 동일시기 이야기소재 | 장소 | 출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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