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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대별 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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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기 스토리

  • 한겨울 서원마을을 위협하는 병마의 입김 1621년 1월 4일, 맑은 겨울날이었다. 김령은 느지막이 도산서원으로 갔다. 밤이 깊어진 것도 깨닫지 못한 채 서원에 이르렀더니, 이미 여러 사람이 와 있었다. 서원 아래 마을에서 설 전 부터 조금 불안한 징후가 있었는데, 돌림병의 조짐이었다. 그렇지만 서원의 큰 행사가 이미 임박하여 이를 취소할 수는 없었다.20일이 지나도 돌림병은 그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서원 마을에 앓아눕는 사람들이 이어졌다. 향사를 지내기가 어렵게 생겼다. 보리씨를 나누어주는 일도 머지않았는데, 김령은 서원의 여러 가지 일이 우려되었다.한 달 후, 결국 돌림병의 징후로 향사는 중단되었고, 관례대로 제관의 임명을 위해 서원에 모인 사람들은 술자리를 갖고, 느지막이 선관과 집사를 선출하였다. 밖으로 나아가 술을 마시려고 했으나 날씨가 흐리고 음산하여 오래 있을 수는 없었다.

  • 100명의 사람과 500마리의 말, 세자 일행이 압록강을 건너다 1644년 3월 16일, 소현세자(昭顯世子)와 세자빈께서 묘시(卯時:오전 5시〜7시)에 의주(義州)를 출발하여 압록강 가에 행차를 멈추고 중강(中江)을 건너 삼강(三江) 건너편 구련성(九連城) 근처의 막사에 도착해 묵으셨다. 재신과 의관이, 또 세자시강원(世子侍講院)에서 아침에 소현세자께 문안을 드리니 알았다고 답하셨다. 애초에는 18일이 강을 건너기 좋은 날이라고 해서 그 날 건너려고 했는데, 청나라 장수가 행차를 서둘러서 오늘 의주를 출발하게 되었다. 바다에서 대포 소리가 났다는 보고가 있었다. 만에 하나 걱정스러운 사태가 발생할 것에 대비해서 병마절도사가 몇 명의 포수를 거느리고 소현세자를 모시고 왔다. 재신이 이 일에 대해 인조대왕께 보고서를 보냈다. 감사와 의주 부윤 홍탁(洪琢)도 역시 소현세자를 모시고 왔다. 소현세자와 세자빈의 음식을 준비하는 관리로 영변 부사 김형(金瀅)을, 민간의 말을 빌려 쓰는 일을 준비하는 관리로 맹산 현감 이완(李浣)을 임시로 정해 각각 그 일을 맡겼다. 음악을 연주하거나 깃발을 드는 등 의장대(儀仗隊)의 인원 모두는 뒤쳐졌다. 압록강을 건넌 수는 사람이 거의 1, 000명에 이르고 역관의 말이 80여 필, 민간에서 빌린 말이 400여 필이었다. 재신과 의관이, 또 세자시강원에서 저녁에 소현세자께 문안을 드리니 알았다고 답하셨다.

  • 좀처럼 낫지 않는 폐병, 각종 보약과 지인들의 병문안 김령은 1606년부터 1607년 하반기까지 폐질환을 앓는다.1606년 7월 20일 용궁(경상북도 예천)에서 동당시를 치르고 예안으로 돌아가는 25일부터 비가 많이 와서 어렵게 집으로 돌아가게 된다. 8월 4일 오후에 날씨가 추워지고 몸이 편치 않더니 6일부터 몹시 아프더니 8일에 김봉길, 평보 형 및 사수 형제, 이지 형제, 이실 등과 술을 마시고 바람을 쐬고는 몸이 더욱 상해서 심하게 아프기 시작한다. 10월 30일경에는 천식 증세가 나타난다.지인들이 병문안을 오고, 진피, 생강, 오미자, 꿩, 산수유 등의 각종 약재와 한약을 보내준다. 김령은 계속해서 죽력, 보중익기탕, 보중탕, 이진탕, 팔미환, 익위승양탕, 현토단고본환, 활담탕 등을 복용한다. 병이 낫기 전까지 각종 제사에 참여하지 못해 아내가 지내고, 대문밖 출입을 하지 못한다.1607년 1월 3일에는 갑자기 과식을 한 것같이 배가 더부룩하고 답답하며 가래침과 기침도 나왔다. 결국 가래를 뱉으니 피가 섞여 나왔다. 28일에는 콧물과 가래침이 여전히 나오고 구들이 차가워서인지 대변이 묽어지더니 밤에는 내리 설사를 했다.병은 더욱 악화되어 3월 2일에는 약을 물어보기 위해서 영천(榮川)에 사람을 보냈다. 병이 든 뒤로 손바닥과 발바닥에서 나는 열이 불과 같고, 오줌이 붉고 등골도 땅기고 귀에 시끄러운 소리가 들리는 것이 하루도 그렇지 않은 날이 없었다. 담이 결리는 증세는 조금도 줄어들지 않고 원기(元氣)도 소모되고 몸이 고달팠다. 이러한 증세 때문에 기운이 위로 치솟아 숨이 가팔라지고 우려를 자아내게 하여 몸이 좋지 않은 것 같았다. 어깨의 통증도 그치지 않으니 근심스럽고 염려되는 마음이 만 가지나 된다.4월 13일에는 가슴 속이 더부룩하여 고통스러웠다. 소금 끓인 물을 큰 대접으로 1대접 마시고 가래를 조금 토해 냈지만 몸만 고달플 뿐 소용이 없었다.5월 18일에는 가슴 속이 답답하게 막히는 것이 마치 물체 덩어리가 휘저으면서 올라오는 것 같았는데 한참 있으니 곧 진정되었다.6월 11일, 새벽에 몽정(夢精)을 했다. 염려되고 염려된다. 저녁에 뒤뜰로 나가니 담기(痰氣)가 더부룩하게 차서 올라 왔다.윤6월 7일, 어제 저녁부터 치통 증세가 있었는데 오후에 다시 증세가 시작되었다. 살구씨를 구워 물고 있으니 잠시 통증이 멎는 것 같았으나 가슴 속에 담기(痰氣)가 꽉 찼다. 내일 영천에 사람을 보내기 때문에 편지를 쓰는데, 갑자기 오한과 열이 나고 몸이 오싹한 것이 아주 불편했다. 밤새도록 괴롭게 시달렸다. 지극히 걱정되고 걱정된다.7월 19일, 재재기와 콧물이 그치지 않아 자못 괴롭다. 핫옷(솜옷)에다 겹옷을 덧입었다. 오시(오전11시~오후1시)쯤 재채기와 콧물이 더욱 심해져 잠시도 멈추지 않았다. 가슴 속도 불쾌했다. 밤에 다시 재재기와 콧물이 나오고 이를 틈타 가슴 속에서 천식이 발작하여 먼저 목구멍이 막히고 호흡이 몹시 민망해져 거의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가슴 속이 답답하고 먹먹하여 고통이 극심한데 자리에 누우니 코가 막히고 가슴 속이 더부룩하며 가래 꿀꺽거리는 소리가 밤새도록 지속되고 호흡이 곤란하여 잠을 잘 수 없었다. 몹시 고민되고 피곤하다.7월 28일, 김령은 밥을 먹은 뒤 용보가 돌아가고 피곤하여 자다가 저물녘에 일어나 점심을 먹었다. 조금 있다가 배가 불편하여 뒷간에 가서 내리 설사를 했다. 배가 칼로 내젖는 듯하여 참을 수 없었다. 대개 아침에 소고기 일여덟 점을 먹고, 밥 먹을 때 또 선지를 먹고, 다시 편육을 먹었기 때문일 것이다. 큰 병을 앓고 난 뒤라 기운이 손상되고 위가 약해진 탓에 곽란(癨亂)을 만나고 설사를 여러 번 하고나니 한기가 들고 떨리며 바로 현기증이 나는 것이 거의 수습을 할 수 없을 지경이었다. 마음과 기운이 아주 괴롭고 피곤하고 눈앞이 급하여 가래가 더 생기는 것은 생각할 겨를도 없어서 양미수(粱米水)를 많이 마셨으나 토할 수 없었다. 급하게 서숙을 불러 와서 살펴주도록 부탁했다. 판사·생원 두 형 및 대이, 덕유(德裕) 등이 모두 왔다. 밤에 두세 차례 설사를 했다.9월 20일, 병의 증세가 조금 덜하다. 예제(禰祭)를 처음에는 오늘로 정했다가 병이 낫질 않아 더 몸을 조리하면 직접 지낼 수 있을 것 같아 내일로 물렸다. 하지만 21일에는 병으로 아직도 몸이 고달파 제사를 지낼 수 없어서 집사람을 시켜 대신 지내게 했는데, 몹시 마음이 편치 못하다. 아침에 음복을 나누어 보냈다.이후 질병은 완화되었고 1609년 8월 17일, 병을 앓은 뒤 처음 내성에 갔다.

오늘의 일기

폐단을 일으키는 탐관오리의 대문 앞에 익명으로 날아든 투서

http://www.ugyo.net/yk/ilki/imageViewer/imageViewer.jsp?B_SUJI_ID=KSAC_M_D00501100&B_BOOK_ID=KSAC_T_D00501100_001&B_KWON_ID=001&B_STYLE_ID=001&B_KISA_ID=00000 김령(金坽), 계암일록(溪巖日錄) 1624-01-24 ~

1624년 1월 24일, 오후 늦게 지인들이 김령을 방문하였다. 술을 서너 잔 주고받으며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선유사 김중청(金中淸)의 일이 불거졌다는 소식을 들었다. 전해지는 바로는, 봉화(奉化)의 어떤 사람이 김중청이 폐단을 일으킨 일로 익명으로 서장을 써서, 하나는 관아에 투서하고, 하나는 관아의 문에 걸어두었으며, 또 하나는 김중청 집의 대문에 붙였다는 것이다. 선유사란 재해나 병란이 일어난 지역의 민심을 무마하고 주민을 구제하기 위해 파견하는 관리이다. 그런데, 김중청은 직책에 걸맞지 않게 사사로운 이익만을 챙기며 가는 곳마다 폐단을 일으켰다가, 이러한 상황에 이르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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