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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국학진흥원
선인들의 일기장에서 최고의 스토리를 찾아라!
다른 사람의 일기장을 훔쳐보는 일처럼 흥미진진한 일은 없을 것입니다.
조선시대 선비들의 일기에서 찾아낸 흥미로운 스토리들로 가득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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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대별 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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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기 스토리

  • 시아버지의 원통함을 풀고자 투장된 무덤을 파헤친 며느리에 대한 평가 1806년 5월 25일, 임천서원 중건 공사현장이 있는 마을에 살면서 총괄 책임을 맡고 있던 도감(都監) 김호운(金浩運)은 뜻밖의 소식을 들었다. 만음에 사는 옥대규(玉大圭)가 옥모씨의 말을 전해주었다.“나천에 사는 조원열의 며느리가 투장된 무덤 3기를 파헤쳤던 일은 참으로 효도와 정열로부터 우러난 진실한 마음이었지 않습니까! 그런데 관청에서는 오히려 사건의 본질을 조사하지도 않고, 무덤을 파헤치는 일반 사건들과 동일하게 판결하였습니다. 억울한 심정에 그 며느리가 몸소 관청에 나아가 여러 날 슬피 호소하였지만 고을 원님의 마음을 돌리지 못하였다고 합니다. 어찌 불쌍하고 측은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니 임천서당 회원들과 사림이 마땅히 한결같은 목소리로 감영에 상소를 해야 합니다.”

  • 탐욕스러운 풍기군수, 백성의 삶을 손아귀에 움켜쥐다 풍기군수(豊基郡守) 이잠(李埁). 그는 타고나길 어리석고 비루하였다. 대북(大北)파에 붙어 아첨하며, 대북이 하고자 하는 일에는 항상 팔을 휘두르며 나서서 참여하였다. 군수가 되고나서는 부정하게 재물을 거둔 일이 천만의 말로도 형용하기가 어려울 지경이었다. 민간의 장정을 징발하여 자신의 집을 짓고, 백성들이 세금으로 내는 무명베를 공공연히 그의 집으로 거두어간 것이 몇 번이나 되는지 알 수도 없다. 게다가 관부(官府)의 온갖 물건들을 민간에서 거두어들여 일일이 그의 수중에 움켜쥐었다. 이런 염치없고 양심 없는 작자가 수령이 되어 앉아있으니, 백성들이 어찌 곤궁해지지 않을 수 있겠는가. 김령은 통탄스러웠다. 가까운 경내에 찾아보려 해도 이토록 흉악한 자는 없었다.

  • 조선시대의 디자이너, 철학에 기초하여 옷을 짓다 1849년 6월 15일, 안동의 신재기(申在箕)[자는 범여(範汝)]씨가 서찬규를 찾아와서 위문하고 제복(祭服)을 만들었다.1853년 1월 19일, 안동의 신재기 씨가 내방하였다.1854년 2월 24일, 춘당대에 국왕이 친림하는 인일제를 설하여 시제(詩題)에 내었는데 근래에 없던 것이었다. 과거에 응시한 후에 곧 노량진에 가서 선생의 제사상에 조문을 드리고 곧바로 성균관에 들어갔다. 구정로(자는 선) 씨가 남촌에 와 있다고 들었다. 경백과 함께 가서 위로 하였다. 오후 늦게야 반으로 돌아왔다. 안동의 신범여 씨, 원북의 재원(자는 치효) 족 씨, 우성오씨 형제 등 모두가 찾아와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2월 27일, 이날은 정시가 있는 날이었다. 춘당대에 들어가서 의관이 자꾸 젖었지만 시험을 보고 나왔다. 박해수(자는 백현) 씨, 신범여 씨, 진사 성진교, 구경백, 우성오, 이치옥, 박화중 씨 등이 찾아와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5월 18일, 신범여 씨가 내방하였다.1857년 5월 16일, 송 공이 양곡의 한공한(자는 계응) 씨를 찾아가는데, 나도 따라가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주고받는 말이 심의를 만드는 문제에 이르자, 송 공이 속임구변의 설을 이야기하는데 나는 알지 못하는 이야기가 있었다. 모난 옷깃에 포의 무늬를 사용하지 않는다는 말은 생각해볼 만한 부분이었으며, 굽은 소매를 단다는 말은 특별히 이런 마름방식이 있었다. 이 부분에 대해서 논의 할 바가 많았지만 여행 중이라 좀 어수선하여 상세하게 다 살펴보지 못한 것이 안타까웠다. 저녁이 되어 말을 달려서 읍 안으로 돌아왔는데 양곡 한씨 어른도 와 있어서 함께 잤다. 송 공의 경주에 관한 절구 한 편이 있다는 것을 들었다. 1857년 윤5월 7일, 신범여 씨가 내방했다. 심의 한 벌을 함께 만들었다. 1857년 6월 13일, 조모님의 제사인데 집에 걱정거리가 있는 까닭으로 술과 과일만 간단하게 차렸다. 신범여 씨가 내방하였다.1859년 7월 16일, 안동의 신범여 씨가 내방하여 함께 구암서원에 가서 유숙하였다. 7월 17일, 신범여 씨가 작별하고 떠났다.

오늘의 일기

은비녀와 흰밥을 이용해 시험하니 독살은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http://www.ugyo.net/yk/ilki/imageViewer/imageViewer.jsp?B_SUJI_ID=KSAC_M_D00500285&B_BOOK_ID=KSAC_T_D00500285_001&B_KWON_ID=&B_STYLE_ID=&B_KISA_ID= 조재호(趙載浩), 영영일기(嶺營日記) 1751-06-19 ~

1751년 6월 19일, 검시결과 김한평(金漢平)과 김동학(金東鶴) 두 사람 모두 시험으로 은비녀를 사용하니 비녀의 색깔이 변하지 않았다. 또한 흰밥 한 덩어리를 입 안에 넣었다가 도로 꺼내어 닭에게 먹였는데 닭이 또한 죽지 않았다. 이것으로 보아 독살은 아니라는 것이 밝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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