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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인들의 일기장에서 최고의 스토리를 찾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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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기 스토리

  • 36세 선비 김령의 과거시험기 (7) 순위를 정하는 마지막 시험 1612년 9월 4일, 긴 여정이었다. 과거시험의 마지막 절차인 전시(殿試)가 있는 날이었다. 김령은 새벽에 대궐의 뜰로 나아갔다. 어제(御題) 책문(策問)의 제목은 <사기(史記)>였다. 시험을 마치고 나오니 해가 아직도 높이 있었다. 순서를 정하는 시험이었으므로 김령은 온힘을 다 써서 짓지는 않고 그저 구색만 맞추었을 뿐이다. 다음날 저녁 때 방목이 나왔는데, 김령은 회시 합격 때의 등수와 현저히 차이가 나는 낮은 등급의 평가를 받게 되었다.

  • 정성스러운 3년상, 어버이의 빈소에 올리지 않은 음식은 입에 대지 않는다 1608년 11월 28일, 임 형의 이야기가 내성의 참봉 이문규와 수군 홍동년의 효행에 미쳤다.이 참봉은 효성스러워 아침저녁으로 어버이 가묘에 평상시와 같이 밥상을 올렸는데, 퇴도(退陶, 이황) 선생이 ‘지나친 예’라고 말했으나, 이것은 귀한 일이다.김령은 일찍이 이문규의 효행은 들었으나 홍동년의 일은 처음 듣는다.홍동년은 생전에 효성스럽게 어버이를 모셨는데 돌아가시자 3년상을 지내는 동안 비록 보잘것없는 음식일지라도 어버이 빈소에 올리지 않고는 자기 입에 넣지 않았다고 한다.하루는 그의 어버이 묘소에 성묘하러 가서 개암나무 열매를 따다가 절하고 올렸는데, 중이 지나가기에 불러 나누어 먹자고 하니, 그가 웃으면서 갔다고 한다. 이것은 비록 사소한 일이나 역시 그의 지성스러운 효심이 독실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국상에도 반드시 3년 동안 고기를 먹지 않는다고 했다.

  • 36세 선비 김령의 과거시험기 (5) 35번째 생일 선물 - 과거 급제 소식을 듣다 1612년 8월 10일, 김령은 1577년의 이 날, 서울의 주자동에서 태어났던 사실을 회고하며, 감회가 새로웠다. 35번째 생일을 맞은 이 날, 그는 다시 서울에 머무르고 있으며, 바로 일주일 전 과거에 급제했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다.일주일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 1612년 8월 2일 늦은 오후, 김령의 종 청산이가 관인 너댓 명과 함께 김령의 과거 급제 소식을 안고 왔다. 김령은 이 소식에 영광스럽고 감격하였으나, 이내 부모님이 그가 출세하는 것을 보지 못하고 돌아가신 것이 한스러웠다.종 청산이를 따라온 관비의 무리들과 아이들이 오십여 명이나 되었는데, 김령은 그들에게 쌀을 몇 되씩 나누어 주며, 합격턱을 내었다. 방목(榜目)을 보니, 김령은 6등으로 급제하였다. 장원(壯元)은 이민구(李敏求)였으며, 합격자 중 영남사람은 열 명이었다.김령은 과거 급제 소식을 듣고 매우 분주해졌다. 우선 노비 애상을 고향 집으로 보내어 합격축하의식인 방방(放榜)을 준비해야했다. 방방연 때 입을 옷과 여러 가지 치장들을 준비해야했고, 그밖에 처리해야할 일이 많았다. 관인이 와서, 방방할 때에 겉에 입는 도포는 모두 당나라에서 제작된 것으로 마련해야한다고 일러주었다.한편, 선임 관리들이 새로 과거 급제한 후배들을 침희(侵戱)하는 것은 오래된 풍습이다. 이 침희는 합격자가 발표된 날부터 하루도 거르는 날이 없었다. 김령은 자신의 병든 약골로 견딜 수 없을까 두려워서 고향으로 내려갔다고 거짓으로 둘러대고, 성균관 출입을 하지 않았다. 들리는 소문으로, 성균관에서 계속 선후배들이 모임을 갖는데, 김령의 고을에서 함께 급제한 사람들은 모두 선배들로부터 곤욕을 당하였다고 했다.

오늘의 일기

온화한 겨울날의 신행(新行), 신부가 가마타고 오고, 손님들은 즐거움에 취하다

http://diary.ugyo.net/viewer/view?#node?itemId=DY&cate=img&depth=3&upPath=&dataId=ACKS_DY_00501100_0010_000_0000 김령(金坽), 계암일록(溪巖日錄) 1621-01-28 ~ 1621-01-30

1621년 1월 28일, 김령은 눈보라로 돌아올 수가 없어 하룻밤을 머문 지인의 집에서 아침부터 술잔을 또 기울였다. 그리고는 지인의 집을 나섰는데, 돌아오는 길에 또 다른 지인 이실의 집에 들렀다. 다음날이 신행(新行) 날이었으므로, 여러 도구들을 준비하느라 꽤 요란스러웠다.1월 29일, 마을의 여러 사람들이 모두 모인 가운데, 느즈막이 신행이 이르렀다. 정시형(鄭時亨) 외 여러 사람이 신부를 이끌고 왔다. 김령은 주인과 함께 손님을 맞았다. 그 다음날, 손님들이 간 뒤에는 마을의 여러 친족들이 이실의 집에 가서 안팎의 청에 자리를 마련하여 모였다. 날씨가 온화하고 따뜻하여 매우 조용하였다. 사람들은 밤이 깊도록 번갈아 술을 돌리며 자리를 뜨지 않았다. 주인의 정이 간절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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