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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국학진흥원
선인들의 일기장에서 최고의 스토리를 찾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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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선비들의 일기에서 찾아낸 흥미로운 스토리들로 가득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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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대별 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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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기 스토리

  • 유생의 인적사항을 기록한 명부, 청금안에 이름을 올리다 1846년 10월 27일, 서찬규청금안에 이름을 올렸다. 신석룡은 쓰지 않았다. 날이 저물어 파하고 돌아왔다.1854년 11월 4일, 연거의 족형과 묘동의 박해규(자는 정오)가 청금안에 처음으로 이름을 올리게 되었다. 서찬규도 그 모임에 갔다.

  • 이제 우리 늙었으니 다시 헤어질 날도 없으리라 - 술과 안주를 가지고 관아로 찾아가 파직된 군수를 위로하고, 시를 짓다 1612년 3월 26일, 택룡은 고을 군수가 파직된 소식을 듣고 위로하고 싶었다. 그래서 명금이 편에 내일 문안 인사드리겠다는 편지를 보냈더니, 답장이 왔다.
    택룡은 다음 날 저녁 무렵이 되어서야 관아로 찾아가 군수를 직접 만났다. 준비해 간 술과 안주를 대접하며, 군수의 아우인 강환(姜絙)도 함께 앉아 이야기를 나누었다. 분위기가 무르익자 군수가 이별시[전별시(餞別詩)]를 요청했다. 택룡은 주희(朱熹)가 훌륭한 친구와 헤어질 때 써주는 이별시로 인용하곤 했다는 심약(沈約)의 시를 곧장 써 주었다.
    平生少年日 소년 시절에는 헤어질 때分手易前期 훗날 다시 만날 것을 쉽게 기약했지及爾同衰暮 이제 우리 모두 늙었으니非復別離時 다시 헤어질 날도 없으리라勿言一尊酒 한 동이 술 물리치지 말게나明日難重持 내일이면 다시 함께 술잔 잡기도 어려울지니夢中不識路 꿈속에서 친구 찾아가다 길을 잃으니何以慰相思 어찌하면 친구 그리는 내 마음 달랠 수 있을까 그러자 군수가 조그만 판자를 만들게 해서 택룡에게 글을 써달라고 하였다. 택룡은 발문[발미(跋尾)]를 따로 써 주면서, 뒷날 추억거리가 될 것이라 생각하였다.

  • 은어(銀魚)를 진상하라 1587년 8월 1일, 대구부사 권문해의 움직임이 분주하다. 올해도 어김없이 공납(貢納)해야 할 진상품을 챙기느라 바쁘다. 1584년 대구부사로 부임한 이후 올해로 4년째 매년 해오는 일이지만 공납일이 다가오면 늘 걱정과 근심이 생긴다. 특히 공납품 중에 하나인 ‘은어(銀魚)’를 챙기는 일은 쉽지 않았다. 지난해에는 은어가 한 마리도 없고 민간에서도 거두지 못하여 진상하는데 애를 먹었다. 결국 상주에서 올라온 은어(銀魚)와 식염(食鹽) 그리고 목면과 필을 겨우 챙겨 진상할 수 있었다.1588년 6월 9일, 올해도 역시 은어가 문제였다. 진상할 은어(銀魚)를 잡지 못하였다. 마음이 급해진 권문해는 밀양, 청도 등으로 절간(折簡)을 보내었고 어렵게 구하였다. 매년 권문해에게 은어를 진상하는 일은 걱정과 근심거리가 되었다.

오늘의 일기

말을 사서 사냥에 참여한 의주기생 운향

미상, 계산기정(薊山記程) 1803-11-22 ~

명의 조정에 가서 이듬해의 책력을 받아오는 관원의 역관이 강을 건너왔다. 수본(手本)이 있었으니, 그것은 연경에 들어가서 견문한 일이었다. 그 대략은, “농내국(農耐國)은 본래 안남국(安南國)의 속국이었는데 그 군장(君長)인 원복영(院福映)이 안남을 쳐서 멸망시키고 그 땅을 합병한 뒤 사신을 보내서 월남국(越南國 베트남)으로 봉해 주기를 청했다. 또 하남(河南)과 산동(山東)은 9월의 큰비로 황하(黃河)의 둑 여러 군데가 무너졌고 황하에 근접한 수십 개의 주현(州縣)은 거의 산과 언덕이 수몰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10월 이후 수세가 좀 누그러졌는데도 평지의 물의 높이가 아직도 한두 자나 된다. 이부 상서(吏部尙書) 유권지(劉權之)와 병부 시랑(兵部侍郞) 나언보(那彦寶)를 특파하여 급히 달려 그곳에 가서 황하 복구 공사를 해내도록 하였다.”는 것이었다.우리 사신일행이 열흘 동안 의주에 지체한 것은 오로지 짐이 갖춰지지 않기 때문이었다. 이제 방물(方物)은 고쳐 싸고 상품도 다 모였기 때문에 내일 압록강을 건너가기로 정한 것이다. 일행은 침착하기를 약속하고 장비와 복장을 고쳤으나 와글와글 시끄러울 뿐 마음을 안정시킨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의주 기생으로 이름이 운향(雲香)이라고 하는 자가 있는데, 용모와 자태가 풍만하고 훤칠하여 장부의 기상이 있다. 듣건대, 앞서 의주 부윤이 여러 기생들을 데리고 위화도(威化島)에서 사냥을 하려고 하였는데 운향은 개연히 말을 빌릴 사람이 없음을 개탄하더니 가진 재산을 다 털어서 돈 100냥을 내어 좋은 말 한 필을 사 가지고 타고 달려 나갔다. 모든 부중의 사람들이 지금까지도 혀를 차며 대단하게 여겼다. 경암(絅菴)추양(秋陽)이 다 이 일을 두고 시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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