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영화 <명량>으로 돌아온 이순신에 이어 최근 드라마 <징비록>으로 찾아온 역사인물이 있습니다. 서애 류성룡입니다. 이순신만큼이나 우리에게 친숙한 역사인물이지요. 이 둘에게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423년 전, 이순신과 류성룡은 임진왜란이라는 전쟁의 시대에 백성이 버틸 수 있도록 적과 싸웠으며, 믿고 따를 수 있도록 책임을 다했다는 것입니다. 비극의 순간에도 믿고 따를 수 있는 리더만 있다면 그 존재만으로도 백성들은 살아갈 수 있을 테니까요. 조선의 위기를 책임지려 했던 그들이 새삼 주목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를 KBS 대하드라마 <징비록>을 기획한 김형일 책임프로듀서를 만나 이야기 나누어 보았습니다. (대담 : 최희수 편집장)
1. 한 인터뷰에서 "징비록은 정도전이 만든 나라가 어떻게 위기에 처했는지를 그리게 될 것"이라고 하셨다. '징비록'은 '정도전'과 함께 기획되었던 것인가? 징비록을 기획하게 된 이유는? 방송국의 속성상 드라마의 기획은 사전에 하는 것이 관례입니다. 특히 대하드라마와 같이 장기적인 경우에는 미리 준비하지 않으면 제작 자체가 굉장히 어렵기 때문에 사전에 기획이 되었다고 보시면 됩니다. 사실 KBS 정통 사극으로서의 대하드라마가 갖는 정체성은 다른 퓨전 사극과는 달리 역사를 올바로 전달해야 한다는 부담과 무거운 주제의식 등이 한계로 다가옵니다. 하지만 정도전의 성공에서 보여지 듯 극의 전개가 시청자들과 호흡을 함께 할 수 있다면 얼마든지 무거운 주제의식도 메시지가 잘 전달될 수 있다고 봅니다. 정도전의 주제의식이 조선왕조 500년이라는 역사에서 국가의 기틀이 어떻게 마련되었고 누가 그것을 기획하고 추진했는가에 있었다면, 징비록은 그렇게 국가의 기반이 마련되고 큰 위기 없이 전기를 보낸 조선이 급작스럽게 임진왜란이라는 역사상 최대의 참변을 겪게 된 원인, 그리고 국난을 극복하는 과정을 입체적으로 보여주어야 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제까지 현장지휘자로서의 이순신이 있었다면, 전체 국정을 총괄 지휘했던 류성룡을 중심으로 전체적인 시각에서 조망해야 할 필요가 있겠다고 느껴 징비록을 기획했습니다.
징비록은 말 그대로 과거의 잘못을 징계하고, 훗날을 대비한다는 것입니다. 임진왜란 후 불과 몇십년 뒤에 다시 병자호란이라는 참화를 겪어야 했던 조선의 역사를 제대로 이해하는 것이 오늘날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도 역사가 남긴 교훈을 알아야 하는 점을 깨닫게 해주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대하드라마가 해야할 일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2. '징비록'에서는 류성룡과 선조의 갈등구조가 매우 중요할 텐데... 류성룡에 김상중, 선조에 김태우를 캐스팅한 이유가 있는가? 김상중의 류성룡과 김태우의 선조가 어떻게 그려지길 바라는지? 배우 캐스팅할 때 가장 큰 난점은 불멸의 이순신이 갖는 배우들의 이미지가 아직까지도 그대로 남아있다는 것입니다. 15년전의 드라마에 출연했던 배우들이 당시 맡았던 배역들에 대한 이미지가 시청자들에게 각인되어 있다는 것이죠. 예를 들어 당시 류성룡을 연기했던 이재룡씨나, 윤두수 역의 정동환씨, 이순신 역의 김명민씨, 선조 역의 최철호씨 같은 경우입니다. 그러나 징비록이 기존의 이순신 중심의 임진왜란 시각에서 탈피해서 당시 국제정세와 국내정세, 그리고 전쟁의 국면들을 종합적으로 그려야 하기 때문에 기존의 배역 이미지를 탈피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온라인상에서 이순신에 아직도 김명민을 캐스팅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가 돌고 있는 것만 보아도 그렇습니다.
KBS 대하드라마<징비록>의 류성룡(김상중 분)과 선조(김태우 분)
더욱이 류성룡은 온화하고, 온정적이고, 타협의 대가 같은 이미지가 있지만, 반면에 국정 전반에 걸쳐서 치밀하게 개혁정책을 추진할 수 있는 카리스마와 집요한 추진력이 있었습니다. 그걸 그려내야 하는 배우가 적격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아울러 선조의 경우에도 우유부단하고, 비겁하고, 자신의 안위를 위해 백성을 저버리는 무능한 군주와 같은 이미지가 있지만, 그 이면에는 최초 방계 출신 임금으로서 약점을 왕권의 확립을 통해 해결하고자 했던 임금, 당파간의 갈등을 활용해 자신의 입지를 굳힐 수 있었던 임금으로서의 이미지를 그릴 수 있는 배우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것이 두 배우를 캐스팅한 이유입니다.
3. 이순신의 임진왜란과 달리 류성룡의 임진왜란에서 보여주고 싶은 것은? 말 그대로 임진왜란에 대한 기존 대중들의 인식은 철저하게 이순신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고 봅니다. 그것은 이순신이라는 위대한 인물이 남긴 승전의 역사이기도 하고, 또한 영웅이 필요한 이 시대의 자화상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임진왜란은 그 자체가 한일 전쟁이 아니고 동북아 전체를 아우르는 역사적 사건이었죠. 임진왜란 이후 명나라와 청나라, 조선과 일본이 입힌 영향들을 보면 잘 알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임진왜란을 극복할 수 있었던 이유 가운데 이순신이라는 인물의 활약 또한 분명히 있습니다. 이순신을 폄하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 밖에도 숱하게 많은 이유들이 있다는 겁니다. 예를 들어 의병들이 없었다면?, 명나라의 원조가 없었다면? 등등. 즉 임진왜란이라는 사건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전체적으로 조망하는 입장에서도 바라봐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 이 드라마의 기획의도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전체적으로 정치, 경제, 군사, 외교의 문제를 아울렀던 인물을 중심으로 볼 필요가 있고, 그 인물이 바로 징비록의 저자인 류성룡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즉 류성룡의 임진왜란은 어느 한 부문에서의 임진왜란이 아니라 당시 국정 전체에 걸친 임진왜란이라고 보면 될 것 같습니다.
<평양성 탈환도(平壤城 奪還圖)> 8폭 병풍, 96.7×329.5㎝, 한남대박물관 소장
4. 2000년대 이후 kbs 대하사극은 〈태조왕건〉(2000), 〈명성황후〉(2001), 〈불멸의 이순신〉(2004),〈대조영〉(2006),〈천추태후〉(2009), 〈광개토대왕〉(2011), <정도전> (2014), <징비록>(2015) 등 역사 인물을 중심으로 제작되었다. <징비록> 이후의 작품은 <장영실>로 알고 있다. kbs 대하드라마의 역사 인물을 중심으로 정통사극 방식을 지향하는 것으로 보인다. kbs 사극의 제작 방향과 목표는 무엇인가? 역사학자들이 역사 연구를 할 때에도 당시대에 영향력이 컸던 인물이나 사건들에 주목하는 것과 같은 이유라고 생각하면 된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KBS 대하드라마가 갖는 정체성은 역사학이 지향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다만, 드라마이기 때문에 완전히 다큐멘터리식의 프로그램을 제작할 수는 없다. 그렇기 때문에 시청자들이 흥미를 느낄만한 역사적 인물들을 소재로 하는 것이 가장 잘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역사라는 것도 결국 인간이 만들어가는 것이고, 어떤 역사적 사건의 중심에는 핵심 역할을 한 인물이 있기 마련이다. 그렇기 때문에 인물 중심의 드라마를 기획하는 것이다.
5. 다양한 역사 사료가 번역되고, 창작 소재로 활용하기 위해 다양한 형태의 DB 구축이 이루어지고 있다. 최근에는 징비록처럼 개인의 기록 자료가 크게 주목되는데, 일기류 등 개인의 기록 자료가 드라마나 문화산업에서 어떤 방식으로 활용될 수 있을까? 징비록 제작 준비단계에서 안동 한국국학진흥원의 스토리 테마파크 이야기를 들었다. 도세순의 용사일기와 같은 내용이나, 정탁의 피란행록과 같이 임진왜란 당시에 자신이 겪었던 일들에 대해서 자신의 입장에서 서술한 글들이 사실 많은 도움이 된다. 물론 징비록이나 임진왜란, 그리고 당시 정치, 경제, 국방에 관한 여러 가지 학자들의 연구서나 논문들이 주종을 이루지만, 이들에게서 쉽게 볼 수 없는 내용들을 미시적 관점에서 찾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드라마를 제작하는 입장에서 본다면 다양한 소재들이 많은 것은 좋지만, 그 자체로서의 이야기 완결성을 지니는 것이 좋다. 징비록이 가장 대표적인 사례이다. 임진왜란의 배경부터 임진왜란의 종결시점까지 완결적으로 서술되어 있다. 이런 자료들이야 말로 문화콘텐츠를 기획하고 제작하는 입장에서 보면 가장 훌륭한 소재가 될 수 있다.
시기 | 동일시기 이야기소재 | 장소 | 출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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