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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형 슈퍼 히어로

역사를 밝혀 줄 창작의 빛,
2019 전통문화 창작 콘퍼런스

역사와 콘텐츠가 맺은 만남의 장


역사는 과거로부터 이어져 현재까지 진행 중인 실존하는 신화다. 그리고 그 실존의 증명은 구전에서 기록으로 전해져 오늘날의 콘텐츠로 발전해왔다. 그렇기에 수많은 창작자들이 역사라는 신화에 관심을 가지고 그것을 기반으로 작품을 만들어 나가는 것은 필연적인 셈이다. 그런 점에 있어서 지난 8년간 역사전문가와 콘텐츠창작자들이 한 자리에 모여 역사콘텐츠 창작의 다양한 가능성을 모색해온 ‘전통문화 창작 콘퍼런스’는 그 의미가 더욱 남다르다.

지난 10월 5일 토요일, 국립중앙박물관 대강당에서 개최된 ‘2019 전통문화 창작 콘퍼런스’는 ‘히어로들의 빛과 어둠, 한국형 슈퍼히어로 탐색’이라는 주제로 새로운 만남의 장을 열었다. 강연은 총 두 세션으로 나뉘어 각각 ‘빛의 깊이’와 ‘어둠의 무게’라는 주제로 한국형 히어로들과 그들을 막아서는 빌런에 대해 다뤄졌다. 한국적인 것과 글로벌화의 결합이라 볼 수 있는 이번 주제는 ‘마블’과 ‘DC’의 세계적인 성공으로 히어로에 익숙해진 사람들의 관심을 모으기 충분했다.



설레는 마음을 안고 도착한 현장에서 제일 먼저 만난 것은 스탬프 투어 형식으로 진행되는 9개의 홍보 부스들이었다. 홍보 부스에는 콘퍼런스를 주관하는 ‘국사편찬위원회’, ‘규장각한국학연구원’, ‘동북아역사재단’, ‘한국고전번역원’, ‘한국국학진흥원’, ‘한국콘텐츠진흥원’, ‘한국학중앙연구원’과 콘퍼런스 발표자들의 작품을 전시한 ‘아작출판사’와 ‘D&C MEDIA’가 참여했다. 청중들이 현장에서 역사와 콘텐츠를 다루는 관계자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직접 체험해볼 수 있는 뜻깊은 자리였다.



강당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단연 눈에 띈 것은 객석을 가득 채운 청중들의 모습이었다. 다양한 분야에서 모인 사람들을 보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전통문화를 기반으로 한 창작콘텐츠에 목말라하고 있는지 엿볼 수 있었다. ‘전통문화 창작 콘퍼런스’가 가진 상징성과 필요성을 체감할 수 있었다. 그 열정을 담은 박수 소리와 함께 ‘2019 전통문화 창작 콘퍼런스’의 막이 올랐다.



한국에서 피어나는 히어로들


“한국에도 히어로 콘텐츠가 있었나?” 처음 콘퍼런스의 주제를 본 청중들이라면 한 번쯤 이런 의문을 가졌을 것이다. 미국 하면 떠오르는 히어로는 누가 있을까? 라는 질문을 던졌을 때, 우리는 마블의 캡틴 아메리카를 떠올리기까지 많은 시간을 할애할 필요가 없다. 만화와 애니메이션, 드라마, 영화 등 각종 콘텐츠들을 통해 노출된 할리우드의 히어로는 이미 우리들의 또 다른 일상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한국 하면 떠오르는 히어로는 누가 있을까? 라는 질문이 던져졌을 때, 우리는 얼마만큼의 시간을 거쳐 그 답을 내놓을 수 있을까.


영화 ‘부산행’, ‘염력’의 제작사, 영화사레드피터 이동하 대표


‘영화사레드피터’의 이동하 대표는 히어로의 어원을 통해 한국의 콘텐츠 역사를 되짚어보며 ‘한국형 히어로’의 가능성을 제시했다. 그리스의 대영웅 헤라클레스부터 슈퍼맨 그리고 오늘날의 아이언맨에 이르기까지 사람들이 열광하는 콘텐츠 속 히어로들에게는 크게 3가지의 공통점이 존재한다. 인간을 뛰어넘는 능력, 거대한 숙명과 악당 그리고 영웅들의 인간적인 모습이 바로 그 조건이다. 그리고 이 공통분모는 사회의 이념과 지배 질서와 맞서는 조선의 소설 홍길동전, 전우치전과 이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한국 콘텐츠들 속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이동하 대표는 홍길동전과 전우치전을 시작으로 오늘날의 영화 <부산행>, <염력>에 이르기까지 각종 매체 속에서 한국형 히어로들은 꾸준히 존재해왔다는 사실을 전했다. 시대와 모습은 달라졌지만, 오늘날 우리들과 똑같은 소시민들이 좀비 떼처럼 밀려드는 현실의 역경과 마주하며 고민하고 맞서 싸우며 희망을 전하는 모습이야말로 할리우드와는 또 다른 한국형 히어로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었다고 말이다.


드라마 ‘신의 퀴즈’, ‘굿닥터’, ‘열혈사제’의 박재범 작가


그렇다면 한국에는 언제부터 이 소시민 히어로들이 등장한 것일까? 국내 최초 시즌제 메디컬 범죄 수사물 드라마 <신의 퀴즈>를 집필한 박재범 작가는 한국형 히어로의 변천사 과정을 드라마의 역사로 설명해주었다. 드라마는 다양한 매체들 중에서도 시대와 사회의 영향을 가장 실시간으로 담아낼 수밖에 없는 콘텐츠다. 때문에 정권이 엄격했던 시대에는 정권을 잡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 사극의 주인공들을 히어로로서 전면에 내세웠다. 그로 인해 힘으로 정변을 일궈내는 사극 드라마가 흥행을 하고 태조 이성계, 이순신 장군과 같은 역사적 인물들이 대중들의 정통 히어로로 자리를 잡았다. 그러나 시대가 흐르면서 방송 심의 규제가 풀려나고 이전까지 마이너 감정으로 치부되던 협객물들이 대두되기 시작했다. 규제로 인해 만화로만 공유되던 ‘일지매’와 ‘각시탈’이 일반인들이 사회 부패를 때려잡는 소시민 히어로의 시초로서 조금씩 대중 매체에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 것이다. 이후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흥행과 함께 세계적인 흐름이 바뀌면서 사람들은 형사, 법의관, 의사와 같은 실체가 있는 존재들을 내세우고 현실의 우리들이 풀지 못한 공분을 해결해주는 소시민 히어로들을 탄생시키기에 이르렀다.


한국형 SF소설 ‘진화신화’, ‘저 이승의 선지자’의 김보영 작가


현재 보편적인 히어로 상의 정의는 세계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는 서구의 거대 콘텐츠 영향권 아래 있다. 삼국유사를 기반으로 둔 SF 단편소설 <진화신화>와 한국 신화를 기반으로 둔 SF 장편소설 <저 이승의 선지자>를 집필한 김보영 작가는 서구의 히어로 콘텐츠의 발전 경위는 그들이 신화를 잃은 나라이기 때문이라 말했다. 앞서 히어로의 기원을 발표한 이동하 대표는 슈퍼 히어로즈라는 단어가 서구의 마블 코믹스와 DC 코믹스가 공동으로 소유한 상표의 이름이라 소개한 바 있다. 김보영 작가는 미국에는 신화가 없기에 스타워즈가 그들의 건국 신화를 대체한다는 현지의 무용담을 전했다.

신화를 잃었기에 스스로 창작해 신화를 만들어가는 것이 곧 새로운 신화로 이어지는 것이라면 이는 곧 창작이 신화의 일부가 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 신화가 되는 창작을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 김보영 작가는 그 방법 중 하나로 과학을 소개했다. 신화와 과학. 어떻게 보면 정반대의 영역이라 볼 수 있는 조합이지만 신화가 상상의 영역이라면 인류가 비행기를 만들어 하늘을 날아다니는 현대 과학 또한 사람이 하늘을 난다는 상상 속 신화의 그것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과학을 기반으로 현대 사회가 구축되어가듯 신화 속에도 그들만이 살아가는 세계관이라는 것이 존재한다. 김보영 작가는 여기서 동양과 서양의 가치관 차이가 명확히 드러난다고 말한다. 때문에 우리가 서구의 방식에 구애되지 않고 우리만의 한국적 히어로를 만드는 데 있어 우리들의 가치관이 기록된 역사와 그것을 기반으로 한 변용이 가지는 의미는 더욱 빛날 수밖에 없을 것이라 했다.


히어로를 빛내는 빌런의 어둠


빛은 그것과 상반되는 어둠이 존재해야 비로소 성립될 수 있다. 히어로 또한 마찬가지다. 사람들이 히어로를 필요로 하는 것은 자신들이 해결할 수 없는 것을 이뤄주는 해결사의 필요성에서 기인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해결할 수 없는 것은 시대를 불문하고 언제나 다양한 모습으로 인류의 역사와 함께 해왔다. 차별과 전쟁, 질병과 재해 등 인류는 언제나 거대한 장벽 앞에서 이 모든 것들을 해결해줄 해결사를 필요로 했다. 그 해결사로 소환된 것이 바로 히어로다. 때문에 히어로가 존재하기 위해선 그들이 맞서 싸워야 할 존재 또한 필연적으로 따를 수밖에 없다. 세션 2는 바로 맞서 싸워야 할 존재, 빌런에 대한 강연이다.


Session 2. 어둠의 무게 : 한국형 슈퍼 히어로 탐색


게임 시나리오 작가이자 판타지 소설 <갑각 나비>, 공포 소설 <괴담갑>을 집필한 오트슨 작가는 한국 히어로 시장의 근황을 전하며 한국형 히어로들의 서사를 제한시키는 현실의 빌런들에 대해 소개했다. 현재 슈퍼히어로의 정의를 세운 마블과 DC의 역사는 80년에 이른다. 세계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거대 시장으로 그들이 자리 잡을 수 있었던 가장 큰 요인 중 하나는 이들이 히어로 콘텐츠에 쏟아 부은 남다른 역사가 크게 작용하고 있는 셈이다. 그렇다면 한국의 상황은 어떨까? 오트슨 작가는 서구와 달리 아직 한국에서는 히어로의 콘텐츠와 역사가 부족하다고 말한다. 히어로를 전문적으로 기획하는 출판사와 제작사 또한 존재하지 않으며 그로 인해 한국 고유의 히어로 서사가 정착되지 못하고, 성공사례가 적은 상황에서 이미 완성형인 해외의 히어로들과 경쟁해야만 하는 현실에 안타까워했다. 문화적 인식의 차이로 인해 히어로 콘텐츠가 국한된 상태로 향유되고 있는 지점들을 원인으로 뽑았다.


웹소설 ‘슈퍼’, ‘좀비묵시록82-08’ 박스오피스 작가


그렇다면 창작의 관점에서는 어떨까? 동덕여자대학교 교수이자 네이버 웹소설 <갬블링 1945>와 <화이트아웃>을 연재 중인 박스오피스 작가는 한국의 전래서사와 역사에서 영웅의 요소를 차용하여 히어로로 변형시키는 작업은 유의미한 시도지만 그것이 결코 쉽지는 않다고 말했다. 대중적인 캐릭터의 부족과 캐릭터의 트레이드마크 부재로 인해 사람들에게 기대감을 줄 수 없다는 것을 근본적인 문제로 보았다. 설령 전통의 영웅을 재창작해도 누구와 어떠한 이유로 싸우는 것인지 그 뒷받침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으면 히어로의 매력을 되려 반감시키게 될 것이라 우려했다. 맞서 싸울 존재와 그 이유가 없다면 사람들에게 히어로는 그저 힘만 센 혹은 조금 특별한 무언가를 지닌 사람에 불과하다. 때문에 히어로에게 있어 빌런은 반드시 필요할 수밖에 없다. 히어로는 사람들의 욕망을 대변하고 대행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박스오피스 작가는 히어로와 맞서는 빌런은 시대와 사회가 느끼는 아픔과 공포의 상징으로 대변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거기서 사람들은 익숙한 우리 사회의 모습을 보고 히어로 세계관에 깊이 공감하고 소통할 수 있게 된다고 전했다. 끝없는 경쟁 속에서 보상이 약속되지 않은 노력에 지친 오늘날의 현대인들은 더 이상 누군가를 위해 희생하는 영웅을 꿈꾸지도, 칭송하지도 않는다. 히어로는 우리들의 심리를 대변하는 존재가 되었기 때문이다. 때문에 박스오피스 작가는 오늘날의 히어로는 어떤 형태, 어떤 성격의 어둠과 싸우느냐에 따라 통상적인 히어로와 다른 모습을 지녀도 각광받을 수 있게 되었다고 언급했다.



청중들의 열렬한 환호와 박수 속에서 ‘2019 전통문화 창작 콘퍼런스’가 무사히 막을 내렸다. 2017년 ‘제3회 스토리테마파크 창작콘텐츠 공모전’에 참가하면서 알게 된 전통문화 창작 콘퍼런스는 올해로 3번째 방문이었다. 역사 콘텐츠의 소비자로서, 또한 창작자로서 전통문화 창작 콘퍼런스를 방문할 때마다 역사가 보여주는 무궁무진한 창작의 가능성에 대해 많은 아이디어들을 적고 또 생각하게 된다. 이 자리가 있기까지 고생하신 관계자분들에게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싶다.




글 이서형
이서형
한양여자대학교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했으며, 제3회 스토리테마파크 창작콘텐츠 공모전에서 우수상을 수상한 후, 스토리창작집단 글시울에서 다양한 창작 활동을 해왔다. 현재 제작사 허바허바 픽처스에서 시나리오를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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