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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판에 새긴 이름, 편액

서리를 밟다-조상에 대한 추모의 현장
이상루 履霜樓

새벽에 눈을 뜨면 서리가 내리는 계절이다. 보일러도 켜고, 털이 긴 후리스도 꺼내놓는다. 날이 추워지면 나이든 아버지는 뭐하실까 생각해 본다. 어린 시절, 젊은 아버지는 우리의 영웅이었다. 서릿발에 떨어지는 낙엽처럼, 꼬마가 어른으로 성장하자, 영웅은 늙고 병들어 사라진다. 사라진 부모, 늙고 힘없어진 부모에 대한 끝없이 죄송한 마음

우리 조상들은 부모, 조상에 대한 한결같은 마음을 꼿꼿이 나무에 새겼다. 그리고 그 공간을 대대로 자손들과 미래의 사람들과 나눈다.


이상루, 출처 : 안동관광


안동김씨 태장재사의 부속건물, 이상루履霜樓는 돌아가신 조상을 그리워한다는 의미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예기』 「제의(祭義)」에 “가을에 서리와 이슬이 내리면 군자가 이것을 밟아 보고 반드시 슬픈 마음이 생기나니, 이는 날이 추워서 그런 것이 아니다. 또 봄에 비와 이슬이 내려 땅이 축축해지면 군자가 이것을 밟아 보고 반드시 두려운 마음이 있게 되니, 돌아가신 부모님을 뵐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이다.〔霜露旣降 君子履之 必有悽愴之心 非其寒之謂也 春雨露旣濡 君子履之 必有怵惕之心 如將見之〕”라고 한 데서 인용하였다. ‘서리를 밟는다[履霜]’는 것은 앞으로 닥칠 추운 계절을 맞이하여 돌아가신 부모님이나 조상에 대한 사무치는 그리움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말이다.

가을이 깊어가는 이른 아침의 이상루 전경


재사는 후손들이 조상의 묘소를 지키고 묘제(墓制)를 받들기 위해 산소 아래나 가까운 곳에 지은 건물로, 재실(齋室), 재궁(齋宮), 재각(齋閣)이라고도 부른다. 경북 안동 지역의 재사는 다른 지역에 비해 그 수가 많고, 규모가 크다. 이러한 특징은 무엇보다도 혈연공동체를 중시하는 문화적 역량과 환경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재사의 명칭도 영모(永慕), 영사(永思), 경모(敬慕), 경모(景慕), 우모(寓募), 추원(追遠), 추모(追慕), 우경(寓敬), 모선(慕先) 등 다양하며, 모두 부모님과 조상의 은덕을 추모하는 의미가 내재되어 있다.

안동김씨 묘소에 오르는 길


태장재사는 안동김씨 시조인 김선평(金宣平)의 묘소를 지키고 제사를 받들기 위한 재사(齋舍)이다. 김선평은 안동부사였으며, 권행, 장정필과 함께 안동의 유력 사족이었다. 통일신라 말기 고려 왕권의 군대와 후백제 견훤의 군대가 신라의 주도권을 두고 전투를 벌이는데, 안동 지배층이 누구를 지지하느냐에 따라서 전투의 향배가 결정되었다. 김선평은 고려의 태조 왕권을 도와 견훤을 무찌르는 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

1981년 4월 25일 태장재사는 경상북도 민속문화재 제26호로 지정되었다. 김선평의 단소를 설립한 이후인 1707년(숙종 33)경 작은 집을 지었다가 1749년(영조 25)에 재사로 확장, 1750년(영조 26)에 건축되었다. 1793년(정조 17) 지금의 위치에 터를 닦고 28칸을 중건하였다. 그러나 사헌부지평 김양근이 승려의 집을 철거하고 지금의 위치에 터를 닦아 1793년(정조 17)에 28칸으로 중건하고 익실과 문루를 옮겨지었다. 1913년 4월 주사를 확장하여 10칸으로 중건하였고, 1960년 풍수해가 나자 보수하였다. 현재 일(ㅡ)자형의 누건물인 이상루, □자집 형태의 태장재사, 관리사인 ㄷ자집 형태인 고직사가 남아 있다. 이 3동을 통틀어 태장재사라고 부르며, 모두 목조기와집이다.


영화 ‘광해’ 속 이상루, 출처 :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 2012


태장재사는 규모가 크고 각 공간이 용도에 따라 적절하게 구분되어 있다. 재사는 간결한 건물로, 제수를 준비하는 유사실과 전사청, 참제원실이 있다. 이상루는 묘제 후에 음복례와 문중회의를 여는 장소로 사용되는데, 정면 7칸, 측면 2칸의 건물이다. 누는 이익공식의 팔작지붕 건물로 매년 음력 10월 10일에 묘제를 지내며, 안동김씨 종중에서 관리한다.

이상루의 편액, 반듯하고 공간을 꽉찬 글씨가 성실하고 기품있는 효자를 표현하는 듯 하다.


길에서 입구까지 16계단을 오르면, 중앙의 처마 밑에 ‘이상루(履霜樓)’가 새겨진 현판이 있다. 2층 누마루에는 밖으로 쪽마루를 돌리고 난간을 달았다. 태장재사의 정문을 통과하여 5단 계단을 올라가면 안마당이다. 양쪽으로 태장재사 이상루에 오르는 계단이 있다. 한단의 돌계단 위에 4단의 나무 계단이 만들어져 있다. 이상루의 안마당 쪽 들보 사이에는 커다란 북과 북채가 매달려 있다.


이상루, 출처 : 안동고택 이상루 (김·태·사)


이상루에는 많은 현판들이 있으며, 큰 북이 매달려있다. 이곳에서 영화 '광해'를 촬영했다.


태장재사의 이상루는 부모에 대한 깊은 효심과 조상에 대한 은덕을 기리는 것이 조선시대 일상 영웅의 미덕이었음을 보여주는 공간이다. 찬 서리 위에서 조상을 기리지 못해 아쉬워하는 마음, 그 효자는 또 효자를 낳고, 한국형 일상 영웅의 서사는 계절처럼 되풀이된다. 태장재사, 이상루의 음력 10월 10일처럼...


묘소에서 내려오는 길에 보이는 이상루와 고목의 뿌리. 남겨져있는 것들을 통해 선인들의 시간을 헤아려본다.





          :   유교넷, 네이버지식백과

          :   권진호

          :   김효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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