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로 세 번째인 ‘전통 기록문화 활용 영화 시나리오 공모전’에서 박광수 작가님의 〈붉은 안개〉가 대상으로 선정되었습니다. 1597년 남원성 무관인 이강은 어린 아들이 함께 피난 가자고 애원하지만, 백성을 구하려고 싸우다가 아내와 아들이 처참하게 죽고 포로로 잡히면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그럼 작가님과의 인터뷰를 통해 〈붉은 안개〉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살펴보겠습니다.
깃털과 짐승 가죽을 뒤집어쓴 500명의 왜군,
야만의 나라에서 처음 보는 기이한 무기들로 무장한 귀신같은 적들이 추격해 온다.
“한 명도 빠짐없이! 모두 함께 반드시 돌아간다!”
전통 기록문화 활용 영화 시나리오 시상식(출처: 한국국학진흥원)
처음 시나리오의 화두를 생각하고 집필하기 시작한 지 벌써 6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그동안 많은 원고가 나왔고 수정과 보완을 반복했습니다.
그 반복의 시간 동안 제 마음도 〈붉은 안개〉에 대한 확신과 회의감이 수없이 교차했었는데, 이번 수상으로 그간의 갈등이 해소된 거 같습니다.
무엇보다 감사한 것은 스스로에 대한 작은 믿음이 생겼다는 점입니다.
지난 2년간 코로나19 팬데믹이 극성을 부리던 기간에도 저는 늘 꿈을 꾸었습니다. 이 시나리오가 제작되어 스크린 앞에 앉아 관객으로서 〈붉은 안개〉를 보는 꿈입니다.
그 바람이 이루어지기를 소망합니다.
오랜 시간 역사 자료를 찾는 데 도움을 준 친구 이병석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그리고 작품을 선택해 주신 여러 심사위원님께 깊게 깊게 감사드립니다.
오래전 도서관에서 여러 역사 서적들을 둘러보며 읽을 만한 책을 찾고 있었는데, 이 책의 부제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책 제목은 낯설었는데 부제 “조선 선비 왜국의 포로가 되다”라는 글귀가 호기심을 일으켰습니다. 그로 인해 읽게 되었고 집필 계기가 되었습니다.
당시 일본에 노예로 끌려간 우리 백성들의 처참한 삶이 작품에 깊게 담겨야 그들의 탈출에 대한 절박함도 형성되기에, 먼저 『간양록』의 주인공 강항 선생의 포로 생활을 세세히 읽고 그 후에는 많은 자료와 논문들을 참조하였습니다.
강항, 김찬순 옮김, 『간양록 : 조선 선비 왜국 포로가 되다』, 보리, 2006.
『간양록』 (출처: 국립중앙박물관)
임진왜란 당시 나가사키 항구의 풍경과 상황 자료를 찾기 위해 여러 문헌을 찾아보았지만 별 소득이 없었습니다.
그렇게 답답한 마음으로 계속 자료 찾기에 몰두하던 중 우연히 ‘남만병풍(南蠻屛風)’이라는 그림 파일을 찾게 되었습니다. 병풍에 그려진 당시 노예시장의 풍경이 생동감 넘치게 여러 그림으로 그려져 있었습니다. 이를 작품에 묘사하였습니다.
당시 조선 백성들의 몸값에 관한 자료는 「피로인(被虜人) 그들은 왜 고국으로 돌아가지 못했는가」라는 논문을 참조하였습니다. 이 논문을 읽으며 조선 백성들이 너무나 헐값에 팔려나가 세계 노예시장의 판도를 바꾸었다 하니 지금 다시 생각해도 참 마음이 저려옵니다.
‘나가사키에서 팔려나간 일본·조선인들...그리고 끝나지 않은 ‘거대한 비극’’(출처: 경향신문, 2019.10.13.)
긴 세월 동안 이 작품을 쓰다 보니 모든 캐릭터에 다 애착이 가고 정이 들었습니다
.
그래도 그중 한 명을 선택해야 한다면 신국영입니다. 등장하는 많은 캐릭터들은 강제로 일본에 끌려왔지만 신국영은 아내와 딸을 찾기 위해 스스로 포로가 되어 일본으로 끌려왔고, 탈출 시 자신의 목숨을 걸고 딸 여진을 지켜내는 아버지의 마음이 저에겐 깊게 담깁니다.
저의 상상입니다. 노예가 된 이강의 삶을 여러 경우의 수를 두고 고민하였었는데, 결국 무관의 특성에 맞는 격투사로 정하게 되었습니다.
무기나 진법에 대한 관심은 전혀 없었습니다. 이 작품의 주인공을 무관으로 설정하면서 너무나 힘든, 무기와 진법에 대한 자료 연구가 시작되었습니다.
무척이나 많은 자료를 참조하였기에 모두 열거할 수 없지만, 가장 많이 도움이 된 것은 『무기와 방어구 (일본편)』 라는 책입니다.
도다 도세이, 『무기와 방어구 (일본편)』, 들녘, 2004.
이강은 분명 작품 속에서 영웅의 모습을 담고 있습니다. 함께 하는 백성 단 한 명도 놓치지 않고 고향 땅으로 돌아가게 하려는 지도자입니다.
그러나 제가 생각하는 이강의 영웅성은 우리 국민 모두가 이미 마음에 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려울 때, 삶이 너무 버거울 때, 자신과 같은 어려운 처지에 놓인 사람들을 위로하고 함께 하는 우리 국민의 따스함은 이미 이강과 같은 것이라 생각합니다.
가상 캐스팅에 대한 물음은 참 어렵네요. 솔직한 마음은 이 작품을 읽고 마음에 뜨거움이 담긴 연기자께서 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처음 이 작품을 쓰기 시작하면서 거의 4년 동안 제목을 10번은 넘게 바꿨습니다.
그러다가 최종적으로 『붉은 안개』로 정한 것은 삼보 앞도 보이지 않은 붉은 안개 속에서의 전투 장면이 가장 인상에 남았기 때문입니다.
모든 전투 장면에는 전쟁 소음이 당연히 따르기 마련이지요.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소리 없는 전쟁이 얼마나 공포스러울까?’ 하는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그래서 소리를 내면 죽을 수밖에 없는 침묵의 전투가 펼쳐지는 붉은 안개 전투가 가장 인상에 남습니다.
의병들과 경군 및 일본군 사이의 교전(출처: 한국국학진흥원 스토리테마파크)
많은 전투 장면이 등장하지만, 이 작품은 사랑입니다.
서로가 서로를 위해 희생하는 사랑의 글입니다.
제 마음에 큰 울림으로 다가오는 화두를 찾는다는 것은 매우 힘든 일입니다.
현재는 여러 서적과 정보를 담아 가는 과정에 있습니다.
단지 오래전, 제가 이 작품을 쓰기 전에 탈고한 『길』이라는 시나리오가 있습니다.
이 작품을 다시 꺼내 수정할 생각입니다.
박광수 작가
지금까지 〈붉은 안개〉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살펴보았습니다. 작가님의 바램처럼 〈붉은 안개〉가 제작되어 스크린으로 관람하는 날이 오길 바라며 박광수 작가님과의 인터뷰를 마칩니다.
시기 | 동일시기 이야기소재 | 장소 | 출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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