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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 이슈
영화 〈탄생〉 박흥식 감독 인터뷰

전통소재를 활용한 K-콘텐츠는 다양한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영상매체를 통해 제작된 K-콘텐츠는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흥행에 성공하기도 했습니다. 특히 11월 30일에 개봉한 영화 〈탄생〉은 바티칸 교황청에서 시사회를 개최하기도 하면서 세계의 주목을 받았는데요. 한국 최초의 신부인 김대건 신부의 일대기를 그린 〈탄생〉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한국 최초의 신부라는 모습뿐 아니라 김대건 신부의 마카오 유학, 불란서 극동함대 사령관 세실의 에리곤호 승선, 아편전쟁, 동서 만주를 통한 육상 입국로 개척, 라파엘호 서해 횡단, 백령도를 통한 해상 입국로 개척 등 김대건 신부의 생애에서 주요한 모험 장면을 그리고 있다는 점도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특히 영화 〈탄생〉은 한국국학진흥원과 관련 분야 연구자들에게 자문을 받아 철저한 고증을 이루어냈다고 하는데요. 그럼 장안의 화제작, 영화 〈탄생〉의 박흥식 감독님에게 영화 제작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보겠습니다.


박흥식 감독(출처: 해럴드pop 2022.11.11)


Q. 영화 〈탄생〉을 기획한 계기가 궁금한데요. 감독님께서는 어떤 계기로 김대건 신부를 주목하게 되었는지요?


2021년이 김대건 신부 탄생 200주년이어서 영화를 만들자는 움직임이 있었고 저에게 각본과 연출 의뢰가 들어왔습니다. 저는 정약용의 조카로 1801년 신유박해 이후 천주교를 이끌던 정하상을 주인공으로 하는 영화의 대본을 쓸까 하고 자료를 공부하던 중이었습니다. 김대건 신부는 25년밖에 살지 않았고 신부가 된 후 체포되어 감옥에 있던 기간을 빼면 사목도 몇 달밖에 하지 못해서 극영화로는 적당하지 않다고 생각하여, 거부하다가 자료를 더 깊이 공부하면서 기해박해와 김대건 신부의 유학 시절을 병치시킨다면 극적인 구성도 가능할 것 같았고 근대를 연 선각자로서의 면모를 제대로 조명한다면 종교영화가 아니라 모두가 의미 있게 볼 수 있는 상업영화로서도 가능성이 있을 것 같아서 최종적으로 맡게 되었습니다.


영화 〈탄생〉 중 김대건 신부(출처: CJ CGV, 레드아이스 엔터테인먼트)


Q. 흔히 우리는 김대건 신부에 대해 한국 최초의 신부이자, 순교자라는 사실 정도만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감독님께서는 “김대건 신부는 서양 근대 문물을 누구보다 앞장서서 받아들인 인물이다. 그는 선각자이자 모험가다. 그리고 순교자다”라고 표현한 것처럼 영화에서는 김대건 신부를 입체적으로 그리고 있는데요. 김대건 신부의 마카오 여정, 동서 만주를 통한 육상 입국로 개척과 같은 김대건 신부의 모험 이야기 등 그의 스펙터클 한 모습은 주로 어떤 자료를 통해 발견하셨나요?


김대건 신부가 부제였던 1845년 조선의 작은 목선을 타고 태풍을 뚫고 상해에 가서 신부 서품도 받고 페레올 주교와 다블뤼 신부를 모시고 돌아오는데요. 제가 자료를 공부하던 초기에, 이것에 대해 어떤 교회사학자가 뭘 몰라서 무모한 행동을 하신 거라고 말해서 깜짝 놀랐는데요. 저는 바다는 모르면 갈 수 없는 곳이라고 생각을 해서 김대건 신부가 항해술을 어디서 배웠는가를 찾다 보니, 김대건 신부가 탔던 불란서 군함에 들라마르셔라는 지리학자가 타고 있었고 그가 불란서에서 세계지도를 출판하는 출판사를 가지고 있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당시는 매일 정오에 갑판에서 배의 위도와 경도를 쟀는데 당연히 그것도 지켜보았을 테고, 또 김대건 신부의 편지에서 ‘색안경을 보내 달라’는 문장을 보고 위도를 재기 위해 육분의로 태양을 맨눈으로 보아야 하니 색안경이 필요했을 것이라는 유추를 하게 되어 그런 장면도 영화에 들어가 있습니다. 김대건 신부와 근대를 연결한 것이 내 의도가 지나치게 반영된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하실 수 있으나 영화를 보면 그 근거가 다 보일 것입니다.

외부의 시점으로 조선을 살피는 데는 『악령이 출몰하던 조선의 바다』라는 두툼한 책이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박천홍, 『악령이 출몰하던 조선의 바다』, 현실문화, 2008


Q. 감독님께서는 김대건 신부의 역사적 의미를 제대로 보이기 위해서 철저한 자료 조사와 연구를 거쳤다고 들었습니다. 역사 고증을 위해서 저희 한국국학진흥원의 자문을 받았다고 하셨는데요. 자문 과정이 어떠했는지 궁금합니다.


일단 역사적 인물을 소재로 당시를 재구성하고 그것이 또 우리에게 의미하는 바를 찾아내려면 철저히 사실에 기반해야 하고 작가로서의 상상력을 발휘하더라도 그 근거가 충분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한국국학진흥원 자문위원을 잠시 맡은 적이 있어서였는지 한국국학진흥원에서 추천하신 학자분들과 한국국학진흥원의 연구원분들이 기꺼이 서울까지 와주셔서 공식적인 자문회의를 열어주셨고 많은 도움을 받았고 용기도 얻었습니다. 영화의 ‘도움 주신 분들’ 자막에 모두 이분들 성함이 올라가 있습니다.


Q. 역사 고증을 위해 철저한 자료조사와 전문가로부터의 자문을 받으셨습니다. 그렇지만 모든 내용을 고증해서 영상으로 풀어내기에도 한계가 있을 것 같아요. 역사의 빈 부분, 그러한 간극을 채우기 위해서 어떤 노력을 기울이셨는지요?


오로지 자료밖에 없었습니다. 제가 천주교 신자가 아니어서 오히려 교회사연구소에서 나온 자료들을 더 객관적으로 본 부분이 있는 것 같고, 당시의 조선의 항해술, 당시 중국의 언론 상황, 조선 연안에 나타난 이양선의 항해일지 등 주변부 자료까지 샅샅이 살폈습니다. 대사조차도 창작이 아니라 자료 속에서 찾아냈다고 생각합니다. 상황을 자료에 근거해 잘 재구성하면 감정이입이 되면서 이때 이런 말을 했을 것 같다는 것이 떠오르니까요.


(출처: pixabay)


Q. 이번 질문은 콘텐츠 창작자의 입장에서 역사 소재의 시나리오를 쓸 때, 창작자로서의 고민에 대한 질문입니다. 감독님께서는 창작자로서 구현하고 싶은 내용이 사실과 충돌되는 지점이 있을 것 같습니다. 창작자로서 역사 왜곡에서 벗어날 수 있는 감독님만의 방법이 있을까요?


이 부분은 딱히 기준이 있는 것이 아니어서 제가 스스로 기준을 세워 이 정도면 문제가 없다고 느끼는 선에서 사실을 왜곡한 경우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우리 영화의 많은 등장인물 가운데 청의 국경도시 변문에서 조선으로 잠입하려는 조선인들을 돕는 여성 즈린은 유일하게 가상 인물입니다. 작은 인물들은 통·폐합하기도 했습니다. 적어도 내가 모르면서 왜곡한 것은 없는 것 같고 알면서도 부득이하게 영화적 구성 때문에 작은 사실을 왜곡한 경우는 있습니다. 그러나 가능한 한 진실은 담으려고 애를 쓴 것 같습니다. 자료를 두루 본 덕분에 통상적으로 알려진 사실과 다른 것을 찾은 것도 여럿 있고요. 김대건 신부의 1차 자료를 접하기 전에 영조부터 일제 이전까지의 우리 역사와 천주교의 역사 등 배경지식을 먼저 공부한 것도 전체적인 방향을 잡는 데 도움이 된 것 같습니다.


영화 〈탄생〉에서 즈린 (출처: CJ CGV, 레드아이스 엔터테인먼트)


Q. 영화 〈탄생〉을 통해 김대건 신부를 중심으로 19세기 조선과 주변 국가를 입체적으로 보여주었습니다. 역사 속 인물을 소재로 그 인물이 살던 시대를 보여주는 작업은 수많은 자료를 조사하고, 고증하므로 고된 작업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런 힘든 과정에도 불구하고, 역사 소재를 활용한 콘텐츠들이 많이 생산되고 또 우리나라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도 인기를 끌고 있는데요. 감독님이 생각하는 우리의 역사 소재가 갖는 매력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역사를 소재로 이야기를 만들면 그것이 진짜로 있었던 것이라는 사실 때문에 이야기 자체에 아우라가 생기고 무게도 실려서 유리한 점이 있습니다. 또 제가 발터 벤야민이라는 독일 학자를 좋아하는데요, 그는 ‘매 순간 과거와 현재가 부딪혀야만 미래가 올바로 방향을 잡는다. 그래서 구원은 미래가 아니라 과거에서 온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미래를 위해 우리의 역사를 매번 다각도로 재검토해야 합니다. 우리 역사는 지정학적 위치의 특별함과 그 유구함, 풍부한 기록유산을 갖고 있는 덕분에 여러 매체의 작품으로 잘 형상화만 하면 다른 나라에서도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특별함이 있는 것 같습니다.


발터 벤야민(출처: 문학과지성사)


Q. 김대건 신부의 모험을 다루다 보니, 영화 촬영에서 많은 고민과 어려움이 있으셨다고 생각각합니다. 촬영 현장에서 고증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몸은 힘들었으나 촬영은 즐겁게 했습니다. 다만 이 영화가 조선 사극이자 중국 사극, 심지어 불란서와 영국 사극이 되는 바람에 많은 예산이 필요했고, 또 코로나 때문이기도 했지만 현지의 모습도 과거의 모습으로 남아있지 않아서 대부분 CG의 도움을 받으며 효과적으로 재현하기 위해 애를 써야 했는데 개봉이 한 달도 남지 않은 지금도 한창 CG 작업 중이서 이 부분에 대해 걱정과 기대를 동시에 하고 있습니다.


Q. 감독님께서 진행한 언론 인터뷰를 보니, 이번 영화의 의미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1821년 김대건 신부가 탄생한 해는 콜레라가 창궐했을 시기다. 지금 우리는 코로나19 팬데믹 속에서 살고 있다. ‘어떤 시대를 탄생시켜야 하는가’라는 물음을 찾고 있는 시기, 그 정답을 김대건 신부의 삶 속에서 찾아내겠다” 지금 혼란한 시기는 이전 김대건 신부가 살았던 시대와도 크게 다르지 않다는 말씀인데요. 다시 말해 김대건 신부의 삶에서 우리는 공감과 위로를 얻을 수 있다는 말씀으로도 들립니다. 영화를 보는 사람들에게 김대건 신부의 어떤 모습을 주목해서 보기를 추천하시나요?

저는 특히 김대건 신부가 체포되고 순교하는 과정의 조선 조정 기록을 3번 읽고 날짜를 전부 양력으로 재구성해서 행간을 살피면서 김대건 신부에게 빠져들 수밖에 없었는데요. 신부니까 당연히 전교를 위해 목숨을 바쳤다고 쉽게 생각할 수 있지만, 아편전쟁의 한복판에 있으면서 그리고 조선을 밖에서 객관적으로 보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떠올리면 곧 지금 기울어가는 조선의 백성을 구할 길이 그것밖에 없어서였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습니다. 중국과 조선이 중체서용이니 동도서기니 해서 서양의 과학기술만을 받아들이려고 하다가 실패를 하면서 근대의 연착륙에 실패를 하는데요. 근대는 서양의 제도, 특히 민주주의 그중에서도 평등사상이 퍼지는 것이 가장 중요한 요소였다는 것을 김대건 신부의 모습을 통해 드러내려고 했습니다.


Q. 마지막으로 감독님 차기작에 대한 질문입니다. 이번 영화 이후로 역사 소재를 활용한 영화를 제작한다면, 어떤 인물이나 시대를 다루고 싶으신지 궁금합니다.

조선 근대의 시작을 사건으로는 1876년 강화도조약으로 통상적으로 보는 것 같습니다만 사상사적으로는 주류 이념에서 벗어나 개인이 스스로 생각하는 시기라고 본다면 그 움직임이 정조 말에 가장 활발하게 타올랐는데요. 몇 년 전 한국국학진흥원이 매년 주최하는 ‘전통 기록문화 활용 대학생 콘텐츠 공모전’에 저도 멘토로 참가하면서 이 시기에 대한 공부를 멘티 학생들과 같이 하면서 조선의 근대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2017년 제3회 전통 기록문화 활용 대학생 콘텐츠 공모전에서의 멘토 박흥식 감독과 멘티들


이 작품을 마무리 지으면서 지금은 연작의 느낌으로 대원군의 등장 이전부터 강화도조약까지를 영화로 다루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갑신정변의 주역들을 우리가 개화파라고 하는데 개화파의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면, 오경석, 유홍기, 박규수를 거쳐 이상적, 김정희 그리고 박제가, 박지원 같은 북학파에까지 이르게 되는 것 같습니다. 우리 영화에 김정희의 그림 〈세한도(歲寒圖)〉와 관련하여 알려진 역관 이상적이 비중 있게 등장합니다. 임칙서가 자료를 모으고 위원이 펴낸 〈해국도지((海國圖志))〉라는 책을 한·중·일이 어떻게 받아들였느냐에 따라 한·중·일의 근대가 달라지는데요, 통상 〈해국도지〉는 1845년 동지사 부사였던 권대긍이 들여온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사실은 이상적이 가지고 온 것이라는 것을 찾아내서 영화에도 반영했습니다.


〈해국도지(海國圖志)〉(출처: 국립중앙박물관)


네. 지금까지 영화 〈탄생〉의 박흥식 감독님과 영화 제작의 이모저모를 들어봤습니다. 영화 〈탄생〉은 김대건 신부와 그가 살아간 시대를 철저한 고증을 통해 입체적으로 그려냈습니다. 영화 〈탄생〉의 흥행을 기대하며, 박흥식 감독님과의 인터뷰를 마칩니다.


영화 〈탄생〉 (출처: CJ CGV, 레드아이스 엔터테인먼트)





정  리   :   박나연(한국국학진흥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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