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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다보면 알게 될 것이니

임자헌

이제 3월, 새 학년 새 학기가 시작된다. 학년이 올라간 사람도 감회가 새로울 것이지만 진학을 하게 돼서 처음으로 한 등급 위의 학교 교문을 밟게 된 사람들의 감회는 더욱 남다를 것이다. ‘이제 초등학생이 되었으니, 이제 중학생이 되었으니, 이제 고등학생이 되었으니, 이제 대학생이 되었으니...’로 시작되는 숱한 결심 목록들이 찬란하게 빛나고 있겠지? 성적을 올리고야 말 것이라는 야무진 결심은 그중 단연 으뜸일 것이고... 아마도!

야무진 결심을 증명해내야 하는 첫 시험을 맞이하게 되면 선생님들은 예외 없이 말씀하시곤 한다. “문제 속에 답이 있으니 문제를 열심히 읽어. 잘 모르겠거든 문제만 열심히 읽으면 돼. 그럼 답이 나와.” 그저 반복해서 읽으면 된다고? 도무지 알 수 없는 말. 그럼 100점 못 맞을 사람이 어디 있나? 나는 학창시절 내내 이 말을 절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다가 다 늦게 한문을 배우면서야 ‘아하! 그렇구나!’ 깨닫게 되었다.

우연히 시작하게 된 한문은 특별히 좋지도 않았지만 굳이 싫지도 않아 배워나 두자는 부담 없는 마음으로 공부하기 시작했다. 욕심이 별로 없었기 때문에 나는 눈에 띄지 않는 학생의 길을 선택했다. 눈에 띄면 자꾸 뭔가 기대를 받게 되고 그럼 공부도 자의든 타의든 잘해야 하는 쪽으로 몰려가게 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내 자리는 언제나 뒷자리, 나는 절대 질문하는 법이 없는 조용한 학생이었다.

그러나 삶은 변수의 연속. 시련이 닥쳐왔다. 고전번역원 일반연수원 3학년 때 상임연구원에 진학하려고 마음을 먹으면서 언제나 정규교육만을 부르짖던 내가 다른 기관에서 개설한 서간문(書簡文) 번역 수업을 내발로 찾아가서 등록하는 기적이 일어났다. 상임연구원 시험에 서간문이 나올 수도 있다는데 연수부에는 서간문 수업이 개설 돼 있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그 수업을 찾아가 들어야만 했다. 기적은 내가 다른 기관까지 찾아가서 수업을 듣는 것 하나로 충분했으므로 나는 그곳에서도 사각지대 어딘가에 숨어 수업을 들으며 조용한 학생으로 지냈다. 하지만 갑자기 화장실이 급했던 어느 날 사건이 터지고야 말았다. 수업 끝나고 화장실 들렀다 집으로 향하는데 바깥에 계시던 선생님께 딱 걸린 것이다. 그 선생님은 워낙 한학으로 유명하신 분으로 연수원 교수님이시다가 정년퇴임하신 분이었고 그 당시도 이곳 강의뿐만 아니라 연수원 강의도 여전히 맡고 계신 분이었다. 그러나 워낙 내가 선생님들을 잘 피해 다녔던 터라 나를 알지는 못하셨다.

“아, 선생님, 안녕히 계세요.”
인사를 드리고 매우 자연스러운 모양으로 유유히 그곳을 빠져나가려는데 선생님의 질문이 이어졌다. 아뿔사!
“어, 잠깐! 자네 이름이 뭔가?”
“(헉! 걸렸구나!) 임자헌입니다.”
“자네는 어느 학교에 다니나?”
“학교는 졸업했고, 지금 연수원에 다니고 있습니다.”
“어, 그래? 몇 학년인데?”
“3학년입니다.”
“어, 그럼 한문 좀 하겠구만! 자네 다음 수업 때 번역발표 한 번 해보게. 실력 한 번 보세나! 3학년다운지 어떤지!”
“예? 예...!”

아! 눈물이 앞을 가리는 순간이었다. 연수원 수업은 일주일에 나흘, 그것도 하루 3시간 씩, 그것도 매일 다른 과목으로, 하루에 거의 원문 12~15장씩을 달리는 빡빡한 수업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한문으로 된 글은 뭐든 잘 볼 거라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그렇게 해봤자 낯선 한문 못 읽는다. 서간문은 또 다른 세계다. 서간문 수업 들었을 때 교재를 펼쳐본 순간 내가 깨달았던 것은 단 하나. ‘흰 것은 종이고 검은 것은 글씨구나!’

피아노 배울 때와 비슷했다. 피아노도 몇 년을 쳤다 해도 새로운 악보를 보자마자 그 즉시 바로 연주하기란 불가능하다. 안 배운 사람들은 잘 이해하지 못한다. 몇 년을 쳤는데 왜 악보를 바로 연주하지 못하지? 그러나 그건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 내공은 수년 만에 쌓이는 게 아니다. 모르는 사람이야 몇 년 ‘씩이나’라고 말하지만 그 분야를 아는 사람에게는 ‘고작’ 몇 년일 뿐이다. 이 우물을 채우고 한 수준 뛰어넘는 데까지는 어마어마하게 지리한 시간이 든다. 연수부 3년 간, 나는 소학, 논어, 맹자, 대학, 중용, 시경, 서경, 주역, 고문진보, 춘추, 경국대전, 장자, 통감절요 등을 배웠지만 번역은 꿈도 못 꿀 수준이었다.

나는 그때 당시 자전이 달랑 작은 거 하나밖에 없었는데 그것 가지고는 번역이 절대 불가능했다. 대학 도서관을 찾았다. 그때 처음으로 만나 본 사전의 세계는 방대했다! 중국에서 나온 사전, 일본에서 나온 사전, 한국 한자어사전 뭐 한문 사전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은 죄다 책상에 죽 늘어놓고 내가 번역해야 할 본문을 들입다 파기 시작했다. 번역은 해석과 다르다. 대체적인 뜻만 알아서도 안 되고 넘겨짚어도 안 된다. 글자 하나하나를 다 알아야 하고 단어의 뜻을 알아야하며 다시 용례(用例)를 알아야 한다. 그래서 전체적으로 글이 잘 흘러 막히는 부분이 없게 해야 한다. 흰 건 종이고 검은 건 글씨인 본문 한 장을 놓고 막막하게 사전에 둘러싸여 있자니 눈물이 다 날 지경이었다. 발표 날 망신당할 것을 생각하면 가만있어도 손에 땀이 흘렀다.

모든 글자를 다 찾고 단어를 이렇게도 찾아보고 저렇게도 찾아보고 이렇게도 맞춰보고 저렇게도 맞춰보며 달랑 그 종이 한 장에 쓰인 도무지 알 수 없는 검은 글자들을 몇 번이나 읽어댔는지 모른다. 포기할 순 없으니 달리는 것 외에 길이 없었다. 며칠을 그렇게 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아침 다시 본문을 펴들었는데, 이게 웬일? 글이 보.였.다. 참으로 신기했다. 진심으로 신기했다. 알겠더군! 흰 건 종이고 검은 건 글씨였던 것이 문장이 되어 내 앞에 재탄생한 순간이었다. 결국 해낸 것이었다.

다시 돌아온 수업시간.
“자네, 번역해보게!”
선생님의 명령이 떨어졌다. 나는 내가 준비해간 대로 발표했고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마지막 문장을 마쳤다. 어찌나 땀이 났는지 들고 있던 종이가 축축해졌다. 선생님의 한 마디.
“자네, 번역원 3학년답네. 어디 가서 내 제자라 해도 되겠어! 잘했어!”
아, 그때의 기쁨을 어찌 말로 다 하랴! 바로 이때부터 나는 한문에 있어 조금씩 홀로 서는 걸음을 내딛을 수 있게 되었다.

월천(月川) 조목(趙穆) 선생님이 제자인 김중청(金中淸) 등과 청량산(淸凉山)을 유람하면서 나눈 이야기들을 읽다보니 그 중에 내 눈을 사로잡는 구절이 있었다.
“어려서 독서하실 때 몇 번 읽으시면 외우실 수 있었습니까?”
“열서너 살 이전에는 열 번 읽으면 외우지 못하는 게 없었는데, 열다섯 살 이후부터는 숙독(熟讀)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해서 보통 책들도 거의 모두 백 번 넘게 읽었다.”

외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해하기 위해서 백 번 넘게 읽었단다. 우리네 교육에서 자꾸자꾸 읽어야 하는 이유는 무엇보다 암기를 위해서이다. 암기를 잘 해두어야 시험을 잘 본다고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해를 하고나면 그 가운데 암기는 당연히 따라오는 것이지만 암기가 되었다고 이해가 따라오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이해하지 못한 채 무작정 집어넣은 암기는 시험이 끝남과 동시에 바람과 함께 사라진다. 사라져버린 암기는 나의 배경지식으로 남지 못했기 때문에 새로운 것을 배울 때 그것을 이해할 바탕이 없어서 다시 또 무작정 암기하는 것 외엔 별 수가 없게 된다. 암기의 악순환이다.

불과 시험을 위해 ‘많이 읽으라.’는 당부의 말씀을 선생님들께 들었지만 이제 그 말씀의 가치를 알겠다. 결국은 의미를 전달하고자 하는 것이 언어이기 때문에 모르는 외국어도 시간을 들여서 알 수 있을 때까지 보고 또 보다보면 언젠가 이해하는 순간이 온다. 내가 그 서간문을 결국 읽어낼 수 있었던 것도 그 글은 전달하고자 하는 어떤 내용을 담고 있었으므로 내가 글자를 찾고 단어를 찾는 사이에 어느 샌가 의미로 내게 다가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외국어를 공부할 때 문장을 읽고 책을 읽는 것이 좋은 방법이 되는 이유가 이 때문일 것이다. 자꾸자꾸 읽다보면 어느 순간 그 글이 내포하고 있는 뜻을 이해하게 되고, 알게 된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자니 외국어에 대해서는 이렇게 시간을 들이는 일이 간혹 있기도 하지만 한국어에 대해서는 이렇게 공을 들이는 일이 있나 문득 반성해보게 된다. 한국 사람에게 한국어는 ‘이미 아는 것’이기 때문에 글자를 읽었다고 해서 의미를 이해했다고 종종 착각해버리곤 하는 것 같다. 우리의 독서가 우리말로 씌어져 있는 책에 대해서 100번이 넘어가는 경우가 있던가? 월천 조목 선생님의 글을 읽으며 나의 땀나던 그 옛 추억도 떠올랐지만 그간의 내 독서법에 대해서도 돌아보게 되었다.

한 권의 좋은 책을 그 책의 저 깊은 곳까지 내려가도록 읽고 나면 어느덧 그 책은 내 것이 되어 있다. 제대로 이해한 책은 더 이상 저자만의 것이 아니라 내 것이 된다. 그리고 그렇게 내 것이 된 책은 다른 책을 제대로 깊이 이해하는 밑거름이 되어준다. 그렇게 쌓여가는 나의 깊이는 책을 읽을 때뿐만 아니라 사람을 이해하고 세상을 이해하는 데도 큰 도움이 된다. 사람도 세상도 더 깊게 더 다면적으로 볼 수 있는 시선이 길러진 것을 곧 발견하게 될 것이다. ‘시간’을 들이지 않은 독서는 오독(誤讀)과 난독(亂讀)의 서글픈 경연장일지도 모른다.

맞다. 문제 속에 답이 있다. 열심히 읽고 또 읽으면 답이 나오는 마법이 펼쳐질 것이다. 다만 ‘시간’이라는 댓가를 지불해야 할 것이다. 단순히 외우기만 한다면 1시간이면 끝낼 분량을 며칠씩 씨름해야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지금은 ‘새’ 학년 ‘새’ 학기니까 조금쯤 배짱을 튕겨 봐도 좋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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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소개

임자헌
임자헌
우연히 한국고전번역원 부설 고전번역연수원에 입학하여 고전을 읽고 풀이하는 매력에 빠지게 되었다.
현재 한국고전번역원 번역위원으로 활동하며, <정조실록> 재번역 사업에 참여하고 있다. 국왕의 동정과 국정을 기록한 일기 <일성록>을 번역하였고, 현대여성의 소소한 일상을 고전으로 풀어낸 <맹랑언니의 명랑 고전 탐닉>을 출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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