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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장의 새로운 금기 : 사람

2020년을 대표하는 키워드 중 가장 잊을 수 없는 단어는 ‘코로나19’일 것이다. 1월 말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코로나19의 유행은 12월이 될 때까지 기세가 수그러지지 않고, 지구상의 인류를 각자의 집에 고립시키며 여전히 활개를 치고 있다. 프랑스의 마크롱 대통령도 확진판정을 받아 자가 격리 중이라는 소식이 들려왔으며, 예술의 전당, 방송국, 아이돌, 공연 연습실, 병원까지 사회 곳곳에서 확진자가 쏟아져 나오고 있다. 이는 오랜 기간 코로나 사태에 지치고 무뎌진 개개인의 방역 감각 때문이기도 하고, 환기가 어려운 따뜻한 실내에서 생활을 많이 하게 되는 겨울철 특성이 일조한 것이리라. 최근 국내에서는 하루 최대 1천여 명이 넘는 코로나 확진자가 나오면서, 지금까지 겪었던 팬데믹 사태에서 가장 위험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어느 때보다 빠르게 전 세계에서 백신이 상용화되고 있으며, 내년 겨울이 되면 사태가 진정국면에 들 것으로 예상된다는 점이다.



코로나19는 사회의 다양한 분야에 막강한 피해를 입혔다. 특히 먼저 직격탄을 받은 곳은 여행업, 항공업, 숙박업, 스포츠산업 등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대면이 필수적인 곳이었다. 관객이 있어야 공연이 완성되는 공연업계 역시 마찬가지로 피해가 막심하다. 그러나 이 유래 없는 상황 속에서도 방역지침에 준수하며 다양한 작품들이 꾸준히 무대에 올라가고 있다. 공연의 중심지라고 불리는 영국의 웨스트엔드와 미국의 브로드웨이 공연장이 3월부터 공연장폐쇄조치가 시행되면서 한국의 공연계는 더욱 주목을 받았다.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이 공연되는 곳으로 명성을 날리며, 영국 디지털문화미디어체육부 올리버 다우든 장관이 한국 정부에 공연장 방역지침을 공유해 줄 것을 요청한 것이다. 이를 바탕으로 사회적 거리두기 공연 실험을 하며, 오랜 준비를 해온 영국 공연계는 지난 12월 5일, 웨스트엔드 극장가를 재오픈하며 뮤지컬 <식스>, <레미제라블>콘서트 등을 공연할 수 있었다. 하지만 성탄절을 앞두고 유럽일대에 3차 유행이 직면하자, 영국 정부는 강력한 봉쇄정책을 시행했고, 공연장은 지난 16일부터 또 다시 문을 닫게 되었다.



해외 사례에 비하면, 공연을 지속하고 있는 국내 공연계는 표면적으로 볼 때 좀 더 안정적으로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실상은 큰 위기에 직면해있다. 폐쇄된 장소에서 일정 시간동안 밀집되어야 하는 공연장의 특성상, 제작진과 배우, 관객들의 감염 우려와 안전에 대비해 사회적 거리두기와 방역에 민감하게 대응해야 하기 때문이다. 사회적 거리두기 1단계에서는 마스크착용, 출입자 명단 관리, 환기와 소독 등 기본적인 방역수칙이 의무화되어있다. 1.5단계에서는 다른 일행 간 좌석 띄우기가 필요하며, 2단계에서는 음식섭취금지 및 좌석 한 칸 띄우기, 2.5단계에서는 좌석 두 칸 띄우기, 3단계는 집합금지 조처로 모든 공연장이 일괄적으로 문을 닫게 된다. 사실상 지난 12월 8일부터 시행한 사회적 거리두기 2.5단계에서부터 많은 민간 제작사와 공연장들이 공연을 취소하거나 연기, 일시적 멈춤을 하고 있는 중이다. 국·공립 단체와 공연장들은 이미 2단계부터 서서히 폐쇄조치를 늘리는 곳이 많았다. 그도 그럴 것이 대부분의 공연은 객석의 3분의 1만 채워서는 손익분기점을 넘길 수가 없어 공연을 진행할수록 손해를 보는 구조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급감한 매출과 반비례하는 방역 업무량의 증가. 사회적 거리두기 단계에 따른 탄력적인 좌석 운영의 반복적 안내 및 줄어든 작품 개수 등으로 공연 시장 내부의 위기감과 불안감은 증폭되고 있다. 인류의 역사는 코로나19 이전과 이후로 또 다시 나뉠 것이라고 한다. 코로나 시대의 공연장 역시 그 이전과 같을 수는 없다.



공연장 금기라고 한다면 주로 ‘관크’


코로나19 시대 이전의 공연장 금기라고 한다면 주로 ‘관크’(관객 크리티컬의 약자)라고 불리는 일종의 공연장 관람 예절에 관한 것들이었다. 뒷좌석에 앉은 사람의 시야를 방해하는 모습, 공연 중 몰래 음식을 섭취하거나, 공연을 무단 촬영하는 행위 등이 금기 사항이었다. 또한, 가장 큰 금기는 공연 중 휴대폰으로 통화나 문자, 촬영을 하는 것이었다. 영화 <닥터 스트레인지>의 주인공인 베네딕트 컴버배치가 연극 <햄릿>에 출연했을 당시 공연 중 플래시가 터져서 극이 중단되었고, 공연이 끝난 후 직접 팬들에게 휴대폰과 카메라를 공연 중에 사용하지 말아달라는 당부를 할 정도였다. 그러나 지금은 이런 관크형 금기들 말고, 지키지 않으면 우리의 건강과 안전이 위험해지는 새로운 금기들이 하나 둘 생겨나고 있는 중이다. 사람과 사람이 부대끼며 만들어졌던 금기들이 이제는 기억도 안나는 먼 과거처럼 느껴진다. 코로나 시대의 바뀐 공연 문화와 금기 사항을 만나보자.

공연을 보러가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예매를 해야 한다. 최근 공연하는 작품들의 예매 페이지는 예년에 비해 안내 공지가 두 배 이상으로 늘어났다. 빽빽한 글이 가득 적혀있는 예매창은 끊임없이 스크롤을 내리다 보면 공연예매창인지, 보험 약관인지 헷갈릴 정도다. 예전에는 캐스트별 출연 날짜나 할인 정보 정도만 확인하고 예매를 진행했다면, 이제는 예매 페이지를 그냥 넘겨버리는 일은 금지해야 한다. 코로나19의 상황에 따라 공연 일정이 취소될 수도 있고, 이후 좌석 거리두기로 재오픈될 수 있는 안내가 적혀있기 때문이다. 공연과 기간에 따라 일괄 좌석 취소 후, 재오픈 시 기존 티켓 예매자가 먼저 선예매 할 수 있도록 안내하기도 하고, 또는 좌석 띄어 앉기를 적용해 자신의 예매석이 아닌 떨어진 좌석으로 임의 재배정되기도 한다. 또한 티켓 수령 방법과, 공연장 방문 시 필요한 방역 수칙에 대한 안내도 자세히 기재되어 있다. 상황에 따라 변동사항이 많은 시기인 만큼, 공연 예매 시 예매페이지를 꼼꼼하게 살펴보아야 하는 것이 필수인 시대가 되었다. 그리고 공연이 취소되었더라도 무차별한 항의는 자제하는 것이 좋다. 코로나 사태로 수익은 줄어들었지만, 끊임없이 과로에 시달리고 있는 가엾은 공연근로자들을 조금이라도 배려한다면 말이다.


공연이 취소되었더라도 무차별한 항의는 자제


공연장을 찾는다면, 반드시 마스크를 써야한다, 마스크를 쓰지 않거나, 실내에서 벗는 것은 금지되어 있다. 공연장은 불특정다수가 이용하는 다중이용시설에 속해있어, 중앙방역대책본부 집단시설·다중이용시설 대응 지침에 따라 도서관, 터미널, 장례식장, 기차, 버스, 택시, 의료기관, 박물관, 미술관 등과 같이 취급된다. 이는 객석 뿐만 아니라 로비에도 통용되는 사항이기 때문에, 공연장 건물에 들어간 순간부터 공연이 끝나고 공연장을 나올 때까지, 마스크를 한 몸처럼 여기며 의무적으로 꼭 쓰고 있어야 한다. 또한 병원과 마찬가지로 공연장 출입 시 가장 먼저 하는 것은 발열 체크이다. 혹여 발열이나 기침, 인후통 등 코로나19 증상이 의심된다면 공연장에 가더라도 공연을 볼 수 없다. 공연장마다 출입구에 열 감지 화상카메라를 설치하거나, 비접촉식 체온계로 체온을 확인하고 출입을 통제하기 때문이다. 체온이 37.5도가 넘거나, 체온측정을 거부하면 입장이 제한된다. 예매처를 통해 공연 환불이나 티켓교환이 가능하니, 증상이 있는 자는 공연장보다 검사소로 발길을 우선하길 바란다. 또한 관람일 기준 2주 이내에 코로나19 감염증 환자이거나, 밀접 접촉자와 만난 적이 있는 사람, 보건당국으로부터 자가 격리 안내를 받거나 가족 또는 동거인 중 자가격리 대상자가 있는 사람, 관람일 기준 2주 이내 확진자가 다수 발생한 장소에 다녀온 사람이나 해외 방문이력이 있는 사람은 객석 입장이 불가할 수 있다.

마스크를 쓰고 발열체크를 한 후, 공연장에 무사히 입성했다면 이제는 티켓을 찾을 시간이다. 웨스트엔드나 브로드웨이에서는 디지털 티켓이 일부 상용화되었지만, 국내에서는 공연티켓은 여전히 아날로그적인 종이 티켓으로 통용되고 있다. 최근에 세종문화회관이 디지털 티켓을 도입해 화제가 되기도 했지만, 특별한 디자인의 한정판 티켓이 공연 마케팅으로 활용될 정도로 공연 티켓은 공연장을 방문하는 사람들에게 또 하나의 즐거움을 주는 아이템이다. 티켓을 수령하기 위해서는 티켓 부스에 줄은 서는데, 줄을 설 때는 극장별로 안내원의 안내나, 바닥의 스티커 등을 통해 앞 뒤 사람과의 적당한 거리를 두어야 한다. 조급한 마음에 앞사람과 딱 붙어 서는 것은 금지. 티켓 수령을 포함해, 검표나 객석입장, 화장실을 갈 때에도 권장 거리는 사람사이의 두 팔 간격인 2m임을 잊지 말자.


두 자리 띄어 앉기로 관람석 플렉스


공연 티켓을 받았다면, 이제는 객석으로의 입장이 남았다. 객석 입장 시에는 티켓과 함께 QR코드를 활용한 모바일 문진표를 확인한다. 모바일 문진표를 사용할 수 없을 때는 극장에 비치된 종이 문진표를 현장에서 작성할 수 있다. 온라인 문진표 작성으로 혹여 지연 입장을 하게 된다면 극장이나 제작사에서 이 부분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기 때문에, 조금 여유롭게 공연장에 방문하는 것이 좋겠다. 또한, 좌석 확인 및 티켓 수표 시에는 셀프 수표를 안내하고 수거함에 넣어달라는 공연장 안내원의 부탁을 받을 수 있다. 서로의 안전을 위해 접촉을 줄이기 위한 방법의 일환이다. 드디어 객석에 도착했다면 약간의 고민이 들 수 있다. 함께한 일행과 굳이 좌석 띄어 앉기를 해야 할지에 대한 부분이다. 띄엄띄엄 비어있는 객석에서 일행 정도는 함께 앉아도 되지 않을까 하는 고민이 일순 든다면, 곱게 넣어두자. 오히려 함께한 일행과 자신의 안전을 위해서 한자리 띄어 앉기 또는, 두 자리 띄어 앉기로 관람석 플렉스를 즐겨보길 바란다. 겨울이라 외투나, 가방 등의 짐이 많다면, 옆 사람에 피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 비워둔 좌석에 살포시 두어도 큰 제지는 없다. 또한, 비말 감염의 위험이 있기 때문에 극장 내에서 음식 섭취는 불가하며, 킬링 넘버나 앙코르 때 브라보를 외쳤던 환호 역시 금지된다. 공연 전후 스태프와 배우들과의 만남이 불가하며, 외부 음식이나 선물 반입, 퇴근길 접촉, 사인 및 사진 요청 등 공연 외에 대면을 통해 이루어졌던 행위들도 모두 금기 사항이다. 이렇게 많은 금기 사항이 생겨버렸지만, 여전히 관객들은 이 어려운 시대에 객석을 채워주고 있다. 부디 코로나19가 빨리 종식되어 지금 발걸음을 하는 관객들이 공연장에서 공연을 관람하는 마지막 세대로 역사에 기록되지 않기를 바래본다.




집필자 소개

김효정
설앤컴퍼니 작품개발부서에서 R&D업무로 공연일을 시작하여, 국내 유일 뮤지컬 전문잡지 <더뮤지컬>에서 온라인 콘텐츠를 기획, 제작하였다.
창작뮤지컬 <콩칠팔 새삼륙>, <레드북>, <서울뮤지컬아티스트페스티벌>, <신성일의 프로포즈> 등에서 제작피디를 맡았으며, SK행복나눔재단과 우란문화재단에서 공연 인재 육성 및 교육 프로그램을 담당하였다. 네이버 공연전시 판에 공연 칼럼을 연재 중이다.



“기둥과 들보를 올린 늦은 봄 밤, 조용히 상량제를 지내다”

1805년 4월 24일에 예정된 대로 기둥과 들보를 올렸다. 기둥은 사시(巳時, 9~11시)에 세웠는데 손방(巽方, 동남쪽)에서부터 시작하였다. 기둥을 세우기 시작한 지 12시간이 지난 해시(亥時, 21~23시)가 되서야 들보를 올렸다. 이어서 상량제를 지냈지만, 밤이 너무 깊었기 때문에 인근의 사림이 와서 볼 수 없었다. 비로소 대장장이[冶匠] 2명에게 사당 건립에 필요한 철물을 만들게 하였다. 전후로 10여 일이 되어 철물 만드는 일을 마쳤다.

“역질이 돌아 능동 재사에서 제사를 합설하여 지내다”

1603년 2월 23일, 향시를 보러 현풍에 다녀온 김광계는 도착한 다음날 아침을 먹자마자 재종숙인 김기(金圻)를 뵙기 위해 찾아 갔다. 그런데 동네의 여러 친족들이 모두 애당(崖堂)에 모여 있었다. 김광계는 재종숙을 모시고 동네 친족들과 종일 이야기를 나누었다. 향시를 보러 갔다 온 이야기와 갑자기 퍼진 역질을 걱정 하다 보니 밤이 다 되어갔다. 내성(奈城) 재종숙 김령(金坽)과 숙항인 금발도 밤에 함께 와서 한참 동안 이야기를 나눈 뒤에 밤이 늦어서야 흩어졌다.
다음날 김광계는 증조모 및 조부의 제사를 지내기 위해 능동재사(陵洞齋舍)로 갔다. 원래 선대의 묘는 거인(居仁) 마을에 모셔져 있기 때문에 그곳으로 가서 지내야 했지만, 얼마 전부터 기세를 부리기 시작한 역질 때문에 거인 마을로 갈 수가 없었다. 김광계는 어쩔 수 없이 능동 재사로 가서 재사의 마루에서 증조모와 조부의 제사를 합설하여 지내고 다음날 내려와서 다시 제사를 지냈다.
제사를 지내고나서 김광계는 서둘러 서원으로 향했다. 춘기제사를 준비하는 입재(入齋)를 하기 위해서였다. 입재 의식은 제사 3일 전에 시작하는데, 올해 제사는 2월 29일이라서 26일에는 서원에 들어가야 했다.
3일 동안 서원 경내에 머물면서 경건한 마음으로 정신을 가다듬으며 여러 절차에 따라 예를 올리고, 29일엔 본 의식을 올리고 제사를 마쳤다. 제사를 마친 후 참여했던 사람들은 음복상을 받았다. 3일간의 제사 예식이 모두 끝나자 모든 유생들은 상하유사에게 절을 하고 서원에서 나와 집으로 향했다. 김광계는 음복주를 너무 많이 마셔서 취하여 집으로 돌아왔다.

“역질이 돌아 설날 제사 대신 참배만 올리다”

향1610년 1월 1일, 경술년 새해가 시작됐지만, 김광계의 집안은 마음이 썩 좋지 않았다. 집안에 역질이 돌아 설날 제사를 지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새벽에 김광계는 아우들인 광실, 광보, 광악과 함께 대문 안에서 사당을 바라보며 참배만 하였을 뿐이다.
참배를 마친 사형제는 아침밥을 먹고 집을 나섰다. 집안 어른들을 찾아다니며 새해 인사를 드리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처음 찾아간 김호 재종숙 댁에서 김광계와 형제들은 들어가지도 못하고 돌아서야 했다. 좌수 재종숙 댁의 노비들이 안에 알리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들은 한참 동안 문 밖에서 서 있다가 겨우 사당문 밖에서 참배만 하고 돌아 나왔다.
다음으로 찾아간 곳은 김령 재종숙 댁이었는데, 내성 댁에는 광재, 광업 형제와 광하 형 등 동네 친족 몇 사람이 와 있었다. 곧이어 김지 재종숙도 찾아와서 함께 설술 몇 잔을 나누고 일어나 나왔다.
김광계는 동생들과 광찬 형의 아들인 김확을 만나러 갔다가 아침에 인사를 못 드린 좌수 댁에 다시 찾아갔는데, 그제야 마침내 들어가 세배를 할 수 있었다.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 김광계는 아우들과 함께 노산 재종조부 집을 들렀는데, 동네 친족들이 모두 함께 오고 오직 두세 사람만 오지 않았다.
이야기를 나누다가 내성 재종숙이 김광계의 집으로 가자고 하여 김광계 형제들과 김령 재종숙은 함께 나와 집으로 가던 길에 참봉 댁에 들렀더니 충주 사람 김극방(金克邦)이 김령 재종숙을 만나보려고 와 있었다. 그래서 다 함께 김광계의 집으로 가고, 동네 친족들도 모였지만, 역시 참배만 마치고 모두 모여 앉아 술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김공은 너무 취해 내성 재종숙과 함께 김광계의 집에서 자게 되었다.

“조선시대 망년 의례”

‘망년(忘年)'이라는 말은 “나이(歲)를 잊는다” 또는 “나이 차이를 마음에 두지 않는다”는 뜻으로 쓰였다.
『고려사』 권102 「열전」15 ‘이인로’조에는 ‘망년우(忘年友)’와 ‘망년교(忘年交)’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이인로·이규보·오세재·임춘 등 무신쿠테타 때 살아남은 젊은 문인들은 ‘망년회’라는 모임을 만들었다. 망년회는 나이를 따지지 않고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의 모임이라는 뜻이었다. 이들은 중국의 죽림칠현을 본받았다고 하여 ‘죽림고회(竹林高會)’라고 불리기도 했고, 강남 쪽에 산다고 하여 ‘강좌칠현(江左七賢)’이라고도 하였다. 망년회 회원들은 이의민·최충헌 등 무신들이 권세를 누릴 때, 술과 시로 세월을 한탄했다.
또한 조선 전기의 문인 서거정은 자신의 문집인 『사가집(四佳集)』에 망년회에 관한 두 편의 시를 남기기도 했다. 권14 제12의 「한강루 망년회 석상(漢江樓忘年會席上)」이라는 제목의 시와 권22 제15의 「여섯번째 답장 2수(六和 二首)」라는 제목의 시에서 ‘제천정 위의 망년회(濟川亭上忘年會)’가 바로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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