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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움’의 의미와 즐거움

조성진

   봄, 새로운 배움의 시작

   3월이면 초중고교는 물론, 대학들도 개학을 하고 입학생을 받는다. 꽃이 피고 꽃나비 날아드는 계절에 개학과 입학이 있다는 것은 자못 의미가 깊다. 봄은, 따사로운 햇살 속에 얼음이 녹아 물로 흐르고 굳었던 땅이 풀리면서 생명의 싹을 틔운다. 바야흐로 생명의 향연이 시작할 즈음이니, 봄을 맞는 만물은 으레 기쁘고 들뜨지 않을 수 없다. 개학과 입학을 앞둔 이들의 마음 또한 그럴 것이다. 이처럼 ‘배움[學]’은 생명의 싹을 틔우는 봄처럼 희망의 싹을 틔운다. 배움이 없다면, 인간에게는 문화의 풍요로움도, 물질문명의 발달도 있을 수 없다.사람은 배움을 통해 비로소 만물 속에 자신을 우뚝 세운다.    그래서일까, 공자는 배움을 강조하였고, 몸소 스승이 되어 기꺼이 제자들을 받아들였다. 공자 사상의 핵심이 ‘어짊[仁]’에 있지만, 그는 ‘어짊’ 못지않게 ‘배움’을 종요롭게 여겼다. 『논어』가 “배우고, 그 배운 것을 수시로 익히면(學而時習之)”이란 말로 시작하는 것만 보아도 이를 알 수 있다. ?위령공(衛靈公)? 편에서 공자는 “종일토록 먹지도 자지도 않고 줄곧 생각을 해보아도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으니, 생각한다는 것도 배우는 것만 같지 못했다(吾嘗終日不食, 終夜不寢, 以思無益, 不如學也).”라고, 배움의 중요성을 깨닫기까지 그 자신이 겪었던 실패의 과정을 고백하기도 한다. 다음 인용문에서 잘 드러나듯, 그는 배움을 그 어떤 가치보다 중시하였다. ‘배우기를 좋아해야 함[好學]’을 여섯 번에 걸쳐 강조하고 있다.

   “어짊을 좋아하되 배움을 좋아하지 않으면 어리석어지는 폐단이 있고, 지혜를 좋아하되 배움을 좋아하지 않으면 방탕해진다는 폐단이 있고, 믿음을 좋아하되 배움을 좋아하지 않으면 해가 되는 것이 폐단이고, 정직함을 좋아하되 배움을 좋아하지 않으면 남을 해치게 된다는 것이 폐단이며, 용감함을 좋아하되 배움을 좋아하지 않으면 어지러이 방자하게 굴게 되는 폐단이 있고, 강함을 좋아하되 배움을 좋아하지 않으면 미치광이처럼 된다는 데 폐단이 있다. (好仁不好學, 其蔽也愚, 好知不好學, 其蔽也蕩, 好信不好學, 其蔽也賊, 好直不好學, 其蔽也絞, 好勇不好學, 其蔽也亂, 好剛不好學, 其蔽也狂). (『논어』, ?양화(陽貨)? 편)

   이 글에서 공자는 ‘육언(六言)’과 ‘육폐(六弊)’를 거론하며 아무리 가치 있는 덕목이라도 ‘배움’으로 뒷받침되지 않을 때에는 폐단으로 이어질 수 있음을 경고한다. 이 여섯 폐단은 모두 ‘배움을 좋아하지 아니함(不好學)’에서 비롯한다. 따라서 ‘배움’은, 이념이든 가치든, 우리가 그것을 극단적으로 추구함으로써 폐단에 이르는 것을 막는 구실을 한다.

   ‘배움’의 세 가지 의미

   ‘배움[學]’의 의미를 알자면, ‘學’의 자원(字源)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學’은 갑골문에서 금문(金文), 전서(篆書)에 이르기까지, ‘위로 끌어올리는 두 손’을 나타내는 ‘구(臼)’와 건물을 뜻하는 ‘경(?)’, 그리고 ‘爻(효)’, 이 세 글자가 공통으로 나타난다. ‘子’는 금문에서 처음 보인다. 그런데 ‘爻’를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學’의 의미에 대한 학자들의 견해도 서로 다르게 나타난다.
   첫째는 ‘爻’를 ‘산가지[籌策]’로 보아 ‘學’을 ‘두 손이 산가지를 만지작거리는 모습’, 곧 ‘수를 셈하는 모습’을 나타내고자 한 것으로 해석한다. 둘째는 ‘爻’를 ‘그물[?]’로 보아 이 글자를 ‘두 손으로 그물을 짜는 모습’을 나타낸 것으로 해석한다. 이에 따르면, 그물을 짠다는 것은 이로써 더 복잡한 일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었다는 뜻이 된다. 셋째는 ‘爻’를 ‘어우러져 사귐[交]’으로 보아 가르치는 이의 ‘이끌어주는 두 손’에 의해 ‘배우는 이들[子]’ 사이에 교류가 있게 되었음을 뜻하는 것으로 해석한다.
   그런데 이들 견해는 서로 크게 다른 것 같지만, 가만 보면 저마다 ‘배움’의 서로 다른, 그러나 주요한 측면들을 암시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첫 번째 견해에 따르면, 배움은 사물의 수효를 헤아리는 산술에서 시작되었다고 생각할 수 있다. 먹고사는 데에는 사냥한, 또는 기르는 동물의 마릿수가 중요했을 것이다. 한정된 자원의 효율적 이용과 관리가 주된 관심사였을 것이기 때문이다. 문자 발전사 초기에 나타난 결승(結繩)이나 서계(書契)가 그런 기능을 맡았을 것이다. 이처럼 배움은 생존을 위한 기술이나 지식 습득에서 시작한다. 따라서 실제의 쓰임과 무관할 수 없다. 이는 공자가 ?자로(子路)?편에서, 『시경』의 시를 아무리 많이 외운들 그것이 정치나 외교에서 실제로 보탬이 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고 주장한 것(子曰, 誦詩三百, 授之以政, 不達, 使於四方, 不能專對, 雖多, 亦奚以爲?)과 맥락이 상통한다.
   그러나 배움의 의미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그물을 짜는 것’처럼, 우리는 배움을 통해서 실제적인 개별 지식들을 엮어 보편적이고 관념적인 사고를 완성해 간다. ‘學’이 지닌 두 번째 의미인데, 이는 다름 아닌, 인간이 지닌 추상(抽象) 능력과 연관된다. 이 능력 덕분에 인류는 고도의 기술문명과 고유한 문화를 이룰 수 있었다. 그런데 이 같은 추상적 사유 능력은 논리적 합리성뿐만 아니라, 비판적 성찰을 요구한다. 현실의 문제를 예리하게 인식하고 이를 바탕으로 해결의 실마리를 상상할 수 있는 힘이 있어야 한다. 따라서 참된 배움이란, 단순한 실제적 기술이나 지식에 머물지 않고, 오히려 이에 대한 성찰적 사유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때로는 ‘체제 밖’을 사유해야 하며, 그곳으로의 탈주(脫走)를 감행해야 한다. 이런 맥락에서, 요즘처럼 대학이 그저 기업이 요구하는 지식이나 기술 전수에 초점을 맞추어 ‘취업용 교육’에만 매달리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하긴 대학 스스로가 이미 자본에 상당한 정도로 굴복한 마당에 대학이 성찰적 지성을 기르는 데 교육의 목표를 두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 어쩌면 공허하게 들릴지도 모른다. 그러나 자본에 굴복하고 체제에 순응하는 모습에서 ‘대학(大學)’의 죽음을 예감하는 이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學’의 또 다른 측면으로는 ‘사귐[交]’을 들 수 있다. 이는 ‘배움’이 ‘가르침’을 전제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가르치고 배우며 서로를 기른다[敎學相長]’는 말이 그저 나온 것은 아니다. 가르치는 이와 배우는 이는 가르침과 배움의 과정에서 서로 어울리며 소통한다. 이는 배우는 이들 사이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다시 말해, 동학(同學)들은 스승의 가르침을 함께 따르면서도 서로가 서로를 가르치고 또 서로에게 배운다. 이런 점에서 ‘學’은 이러한 사귐과 소통의 공간, 곧 ‘학교’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배움은 앞선 세대와 뒤선 세대 사이의 대화이자 교류라 할 수 있다. 전통의 계승과 발전은 배움에서 시작한다. 세대와 세대 사이의 단절과 갈등을 걱정하는 사람이라면, 모름지기 ‘배움’이란 말에 담긴 사귐과 소통의 의미를 되새겨야 할 것이다.

   ‘위인지학’에서 ‘위기지학’으로, 다시 위‘인’지학으로!

   그렇다면 이제 어떠한 배움을 추구해야 하는가. 이 얘기를 하기에 앞서, ‘위기지학(爲己之學)’과 ‘위인지학(爲人之學)’을 구분할 필요가 있다. 공자는 『논어』 ?헌문(憲問)? 편에서 이렇게 말했다.

   “옛적에 배우는 사람들은 자신을 위하였지만, 오늘날에 배우려는 사람은 남(의 이목)을 위하고자 한다.(子曰, 古之學者爲己, 今之學者爲人)”

   여기에서 ‘위기(爲己)’란 도덕과 학문을 통해 자신을 수양하는 것을 뜻한다. 그러므로 ‘위기’의 목적은 그 자신이 군자가 되는 데에 있다. 반면 ‘위인(爲人)’이란, 학문 그 자체나 자기수양보다는 남의 이목(耳目)에 더욱 신경 쓴 나머지 자신을 지식으로 치장하는 데 온 힘을 쏟는 것을 가리킨다.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공부가 그렇고, 출세와 이익을 위한 공부가 그렇다. 이른바 ‘스펙 쌓기’에만 몰두하는 요즘 대학생의 모습이 또 그렇다. 이렇게 보면, ‘위인지학’엔 폄하의 뜻이 깔려 있음이 분명하다.
   따라서 새로 배움을 시작하는 이들은 마땅히 ‘위기지학’에 힘써야 한다. 배움을 통해 지식을 쌓으며, 자신과 주변에 대한 성찰을 통해 사람과 세상에 대한 안목을 기르고 통찰력을 가져야 한다. 이로써 지혜와 인품을 고루 갖춘 ‘전인(全人)’으로 자신을 성장시켜 나가야 한다. 이것이 바로 선인들이 힘썼던 배움의 핵심이라 할 수 있다. ‘위인지학’은 우리를 행복하게 하지 못한다. 결국 우리 자신을 소외시킬 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위기지학’만으로는 부족하다. 지금 우리에게는 자기수양에만 정진할 도량(道場)이나 귀거래(歸去來)를 외칠 우리만의 전원(田園)도 따로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우리가 경제적으로 여유롭지 않다거나 따로 시간을 낼 틈이 없어서가 아니다. 그보다는 우리 사는 세상이 사람들 사이의 교류가 긴밀해짐에 따라 그 어느 때보다 좁아져 더 이상 고립된 개인으로서는 살아갈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나의 시공간, 곧 삶은 너와 우리의 삶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물론 우리가 마음 한편으로는 여전히 귀거래의 한가로움과 고독을 갈망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만으로는 우리의 개인적이면서 동시에 사회적인 삶을 온전히 이어갈 수 없다는 것을 우리 스스로가 잘 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위기지학’에 머물지 말고, 더 나아가 이 ‘위인지학’의 의미를 새롭게 할 필요가 있다. 그것은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배움이나 저 혼자만의 이익을 좇기 위한 배움이 아니라, 진정으로 다른 이들을 위하고 살리는 배움으로 거듭나도록 해야 한다. 남을 배려하고 도와주면서 나와 남 모두를 ‘위하는’ 그런 배움이 될 것을 생각해야 한다.
   사실 우리 선조들이 ‘위기지학’을 긍정했다고 해서 그것을 ‘이기적인’ 것으로 오해해서는 안 된다. 전혀 그렇지 않다. 선조들은 ‘자신을 수양하는 것[修己]’과 ‘남을 (이롭게) 다스리는 것[治人]’을 별개로 보지 않았다. ‘수기’와 ‘치인’을 늘 함께 추구하고자 했다. 다만, 오늘날 우리들 현실에서는 ‘爲己’보다는 爲‘人’에 좀 더 초점을 맞추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그래서 나는 ‘남을 위함으로써 나를 위하는 배움’을 爲‘人’之學으로 새로 부르고자 한다.

   배우며 놀고, 놀며 배우고

   그런데 배움의 의미와 목적을 이렇게만 말하고 나면, 이제 막 배움을 시작하는 이들은 혹 극심한 부담감 속에 어쩌면 배움에 대한 두려움부터 가질지도 모른다. 배움이라는 것이 무슨 거창한 목표와 사명을 지닌 것처럼만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배움이 그 자체가 즐거운 일임을 기억한다면, 그러한 부담감도 많이 줄어들지 않을까. 공자가 『논어』 첫머리에서 ‘學而時習之’를 말하고 바로 이어서 “정말 즐겁지 않겠는가(不亦說乎)!”라고 말했던 것은 배움 자체가 정말 즐겁기 때문이지, 성현에게만 즐거운 것은 아닐 것이다.    조선후기 학자인 해은(海隱) 강필효(姜必孝, 1764-1848) 선생이 1842년에 세운 봉강서원은 7가지 규율을 내걸었는데, 여기에 아주 재미있는 대목이 있다.

   여러 사람이 기거하며 학업을 강론할 때 오래도록 함께 하자면 이완하고 긴장하는 방도가 있어야 한다. 혹 좋은 때 길한 날에는 향음주례, 향사례 및 투호례 등의 의례 절차를 행하고, 또한 그 희생, 술, 기물, 폐백의 가짓수와 오르고 내리며 숙이고 드는 예절을 익혀야 한다. 이것들은 모두 학자가 확실하게 익혀서 육예(六藝)에 노닐어야 할 것이다.” (『봉강영당영건일기(鳳岡影堂營建日記)』 규율 7조, 밑줄 글쓴이)

   이 규율은 배움에 나아가는 자세는 물론이고 나날의 생활에 대해서도 매우 엄격하게 규정하고 있는데, 뜻밖에도 ‘노닒’에 대해 얘기하고 있음에 놀라고 한편으로 감탄하게 된다. 여기에는 배움을 오래 이어가려면 ‘긴장’만이 아니라, ‘이완’ 역시 필수라는 인식이 드러나 있다. 위에서 말한 육예(六藝)는 익혀야 할 예법으로서 ‘긴장’과 관련되는 한편, 잠깐 배움을 내려놓은 동안에 즐거이 노닐 만한 거리로서 ‘이완’과 관련된다.    이처럼 우리 선조들은 배움과 놀이를 따로 생각하지 않았다. 배우면서 노닐고, 놀면서 또한 배움을 이어나갔다. 이것이 건축에 오롯이 반영된 것이 이른바 ‘당(堂)’과 ‘정(亭)’의 공존이다. 선조들은 산과 물이 어우러진, 풍광 좋은 곳에 ‘당’과 ‘정’을 함께 짓고 이 두 곳을 오가며 ‘배움’과 ‘쉼’을 아울렀다. 앞엣것이 ‘배움’의 공간이라면, 뒤엣것은 ‘쉼’의 공간이다. 서원 건축을 그 대표적인 예로 들 수 있다.

   이처럼 배움의 공간에 ‘노닐며 쉬는[遊息]’의 공간을 함께 배치한 것은 사실 동아시아의 오랜 전통이기도 했다. 송나라 때의 유명한 문인이자 관인이었던 구양수(歐陽脩, 1007-1072)는 학교가 왕도정치의 근본이라고 주장하며 길주(吉州)에 세워진 학교에 관한 기록을 남기고 있다.

   “학교는 왕도정치의 근본이다. 옛적에 나라를 다스림에 그 번성함과 쇠퇴함은 학교가 흥하고 폐함에서 나타났다...... 학교에는 당연(堂筵)과 재강(齋講)이 있으며, 장서를 보관한 집이 있으며, 손님을 맞는 곳과 노닐며 쉬는 정자가 있었다. (?校,王政之本也. 古者致治之盛衰, ?其?之??..... 學有堂筵齋講, 有藏書之閣, 有賓客之位,有遊息之亭)”

   이 글은 ?길주학기(吉州學記)?에서 인용한 것인데, 학교를 지을 때 배움과 학문 토론의 공간인 ‘당연(堂筵)’과 ‘재강(齋講)’은 물론, 쉬는 공간인 ‘정(亭)’을 함께 두었던 사실을 기록하고 있다. 이를 보면 알 수 있듯이, 동아시아의 전통 속에서 ‘배움’은 ‘쉼’ 또는 ‘놀이’와 결코 떨어져 있던 것이 아니다.
   ‘배움’이란 두 글자만 머리에 떠올리면 가슴이 쿵쾅거리고 마음이 무거우며, 심지어 머리마저 아프기 시작할 사람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이 화사하고 찬란한 계절에, 개학이나 입학을 앞두고 배움을 새로 시작하는 것에 대한 기대와 두근거림보다는 걱정과 불안이 앞서는 이가 혹이라도 있다면, 놀이와 배움을 넘나들었던 앞선 사람들의 지혜와 여유를 유념하면 좋을 것이다. 놀이와 배움은 서로 다른 둘이 아니라, 뫼비우스의 띠처럼 하나로 이어진 서로 다른 차원일 뿐이다.

스토리테마파크 참고스토리

테마스토리> 학업 태도, 생활 예절, 좋은 날의 예절까지, 봉강서원의 규율을 정하다.

작가소개

조성진 교수
조성진 교수
현재 광주과학기술원 기초교육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다.
서울대학교 국어국문과에서 고전시가를 전공했으며, 한?중 문학비교에도 관심이 많다.
저서로 <만횡청류와 명대 악부민가 비교연구>와 우리 고전문학의 설화와 소설 가운데
‘사랑’을 다룬 작품 11편을 뽑아 해제와 평문을 수록한 <춘향이가 읽은 연애소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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