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 유명 미술품 수장가의 기증과 연계전시로 김홍도(金弘道, 1745~1806 이후)의 〈추성부도(秋聲賦圖)〉가 다시금 학계와 대중의 관심을 한 몸에 받았다. 이 작품은 「추성부(秋聲賦)」의 시의(詩意)를 옮긴 조선시대 작품 중 가장 잘 알려져 있는 예이면서, 동시에 조선 후기를 대표하는 ‘국민화가’ 김홍도가 세상에 남긴 마지막 기년작이다. 그렇다면 「추성부」는 어떠한 내용을 담고 있었기에, 옛사람들은 이를 그림으로도 그려 그 뜻을 되새기고자 했던 것일까.
김홍도, 〈추성부도〉, 1805년, 종이에 수묵담채, 56×214㎝(출처: 국립중앙박물관 이건희컬렉션)
「추성부」는 구양수(歐陽脩, 1007~1072)가 가을밤의 정경을 읊고 인생의 쓸쓸함에 대하여 기록한 부(賦)형식의 문학작품이다. 송대(宋代) 문단의 정점(頂点)에 자리매김 되어 있던 구양수는 「추성부」에서 가을 바람소리를 듣고 일어난 감흥을 동자와의 대화 형식을 빌려 서술하고 있다.
어느 가을날, 구양수는 책을 읽다가 서남쪽에서 들려오는 이상한 소리를 듣는다. 처음에는 바스락바스락 낙엽 지고 쓸쓸한 바람 부는 소리더니 갑자기 물결이 거세게 일고 파도치는 소리같이 변했다. 마치 파도가 밤중에 갑자기 일고 비바람이 몰아치는 것 같은데, 물건에 부딪쳐 쨍그렁 쨍그렁 쇠붙이가 모두 울리는 것 같고, 또 마치 적진으로 나가는 군대가 입에 재갈을 물고 질주하는 듯했다. 구양수는 동자를 불러 이 소리가 무슨 소리인지를 묻는다. 동자는 멀리 나가보더니 “별과 달이 밝게 빛나고 하늘엔 은하수가 걸려 있으며, 사방에는 인적이 없으니 그 소리는 나무 사이에서 나고 있습니다.”라고 답한다.
비로소 구양수는 어느새 가을이 성큼 다가왔음을 느낀다. 가을의 기운은 살이 저미도록 차가워 피부와 뼛속까지 파고들며, 가을의 뜻은 쓸쓸하여 산천이 적막해진다. 풍성한 풀들은 푸르러 무성함을 다투고 아름다운 나무들은 울창하게 우거져 볼만하더니, 풀들은 가을이 스쳐가자 누렇게 변하고 나무는 가을을 만나자 잎이 떨어진다. 이에 자연 현상의 변화와 인간의 삶을 연관시켜 인생의 덧없음을 깨닫는데, 나이 마흔에 쓴 「취옹정기(醉翁亭記)」에서 늙음을 벌써 한탄하였으니, 어느덧 지천명(知天命)의 나이를 훌쩍 넘긴 구양수가 만물이 쇠잔하는 쓸쓸한 계절을 노래하는 이 작품 속에서 어떤 감회에 사로잡혀 있을지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겠다.
동아시아 문화권에서 구양수의 글이 숭앙되고 또 애호되었던 만큼, 이를 이미지로 옮겨내고자 했던 것은 당연한 시도였다. 그리고 이와 같은 문학적 소재가 회화로서 시각화될 때, 한적한 밤의 정적을 깨는 ‘처량하고 애절하며 울부짖는 듯, 떨치고 일어나는 듯한’ 바람의 소리, 뒤이은 구양수와 동자 간의 대화와 교감에 이르는 서사적 경험을 조형적 언어로 온전히 담아낼 수 있는가는 중요한 관건이 되었다. 국내에 현전하는 추성부도 가운데 초기의 작품으로 이해되고 있는 예는 서화합벽집인 《천고최성첩(千古最盛帖)》에 수록되어 있다.
필자미상, 〈추성부〉, 《천고최성첩》, 삼베에 담채, 25.8×32.7㎝(출처: 국립중앙박물관)
1606년 주지번의 조선 방문 시 함께 유입되어 부본이 다수 제작되면서 화제(畫題)로 널리 공유된 것으로 여겨진다. 이후 시간이 흘러 19세기 규장각 화원들의 시험인 녹취재(祿取才)에 인물화계의 화제로 ‘추성부방야독서(秋聲賦方夜讀書)’가 제시되었다는 점은, 이제 추성부도가 조선시대 시의도의 한 장르로 온전히 자리 잡았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김홍도의 1805년 〈추성부도〉는 원전의 내용을 고스란히 화폭에 그려냄은 물론, 화가 자신의 경험과 감정을 구양수의 시의에 투영하고 있다는 점에서 각별한 의의를 지닌다. 김홍도는 좌우로 긴 횡폭 화면의 가운데에 외로운 집 한 채를 그려 넣었다. 풀을 얹은 초가지붕의 검소한 가옥이지만, 마당 구석에는 가산(假山)이라 하여 문인들이 애호했던 괴석이 곳곳에 놓여있고, 두 마리의 학은 고아한 선비의 인격과 삶의 자세를 드러내는 듯하다. 질화로 위에는 다관이 놓여 언제든 차를 마실 준비가 갖추어졌다.
주위로는 인가가 드물고 황량한 바위산과 나무들이 주변을 에워쌌다. 잎이 성근 나무들 사이로 바람이 거친데, 담홍색으로 작은 점들을 찍은 나뭇잎에서 가을이라는 계절은 정체를 드러낸다. 산 너머로는 달이 밝고, 구양수는 둥글게 큰 창을 낸 서옥(書屋)에서 늦도록 책을 읽는 모습이다. 창 너머로 동자에게 무슨 소리가 나는지 물으니, 동자는 저 멀리 나무숲을 가리키며 “소리는 나무 사이에서 납니다[聲在樹間]”라고 대답한다.
김홍도는 화면의 왼쪽 상단에 추성부 전문(全文)을 옮겨 적어, 시서화 일치를 시각적으로 표방했다. 구양수가 처절하고 울부짖고 외치는 듯하다 읊었던 가을의 소리는 화면 전체에 어려있는데, 메말라 갈라진 붓끝으로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그려낸 빠른 필치에서는 격한 슬픔이 느껴지기도 한다. 이 작품이 머금은 쓸쓸하고 헛헛한 감정에 대해 연구자들은 〈추성부도〉가 그려졌을 시기 이미 노년에 접어들은 김홍도의 심적인 상태를 지적하기도 한다.
김홍도를 너무나도 아꼈던 정조(正祖, 재위 1776~1800)는 그림에 대한 것이라면 모두 김홍도에게 물어보라며 생전 무한한 신뢰를 내비치곤 했다. 하지만 정조가 승하하고 난 뒤, 김홍도에게 주어진 특권은 빠르게 거두어졌다. 60세의 김홍도는 제자뻘의 새파란 화원들과 동일한 조건으로 녹취재에 응시해야 하는 곤혹스러운 처지가 되었다. 귀하게 얻은, 아직은 어린 외아들 김양익의 월사금을 걱정해야 할 만큼 경제적으로는 곤궁했으며, 몸과 마음은 노쇠했다.
구양수가 느꼈던 가을날의 탄식, 봄에는 나고 가을에는 열매 맺는 계절이라는 세상의 순리를 김홍도는 이 그림을 그리며 다시 한번 되새겼다. 구양수가 얘기했듯이, 불그스레하던 얼굴이 시든 나무처럼 되어버리고, 새까맣던 머리칼도 허옇게 되는 것은 자연의 당연한 이치인 것이다. 김홍도는 이를 온몸으로 체현했고, 이 작품을 그린 뒤 오래지 않아 어려움 속에서 사망했다.
19세기를 거쳐 20세기에 이르면, 추성부도는 우리 화단에서 더욱 굳건한 화제로 정착했다. 가을을 대표하는 산수화제로 그려지게 되는데, 이 경우 산거형(山居形)으로 표현되는 추림독서도(秋林讀書圖) 계열의 오랜 전통을 따른다. 주로 19세기 이후 제작되면서 시대적 양식에 따라 주로 축형의 좁고 긴 화면으로 구성된다. 따라서 더욱 산중 깊이 은거하고 있는 느낌을 주며, 수목표현이 증가하면서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가지들이 보여주는 가을의 쇠잔한 모습이 강조되었다. 대개 산수형 추성부도는 원경의 주봉과 근경의 가옥, 바람에 흩날리는 나뭇잎, 시간적 배경을 드러내는 보름달과 가옥 내 촛불, 집안에서 독서에 열중하는 구양수와 가을의 감상을 직접적으로 전달하는 동자의 2인 구도로 정형화된다. 또한 근대기에는 사시팔경(四時八景) 이래 산수도병의 오랜 형식인 계절경이 선호되면서, 무릉도원(武陵桃源)이 봄 정경으로 표현되거나, 매화서옥(梅花書屋)이 겨울, 산수가 강조된 산수형의 추성부가 가을의 계절경으로 채택되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의를 지닌다.
안중식, 〈사계산수6폭병〉 중 한 폭, 1910년, 비단에 수묵담채, 145×49㎝ (출처: 개인소장)
동시에 추성부도가 고사인물의 형태로 발전하고 있음에 주목해 볼 수도 있다. 대한제국기 고문(古文) 교육을 위한 중등교육용 한문 교과서인 『고문약선(古文約選)』에는 구양수의 「취옹정기」, 「추성부」, 「육일거사집서(六一居士集序)」, 「붕당론(朋黨論)」이 수록되었다. 이처럼 구양수의 영향력이 국내에 지대하게 미치고 있는 가운데, 이태백, 미불, 예찬 등과 함께 고사인물화의 주인공으로 등장하게 된다. 이때 국내에서 가장 애호되었던 「취옹정기」, 「추성부」 두 작품 가운데, 「취옹정기」에 나타난 ‘여민동락(與民同樂)’의 태수 구양수가 아니라, 가을을 감상하고 그 쓸쓸함을 느끼는 구양수의 모습으로 고사인물도에 출현하게 된 것은, 시의화로 구성되곤 하던 전통적 추성부도의 전통과 가을을 배경으로 하는 계절경으로서의 의미에 기초한 것으로 생각된다.
이에 안중식(安中植, 1861~1919), 조석진(趙錫晉, 1853~1920)을 비롯한 근대기 화가들의 작품에서 인물형의 추성부도는 점차 정형화된 모습을 갖춰간다. 가옥은 한 방향으로 비스듬히 배치되었으며, 건물의 창은 때로는 사각형이고 때로는 둥글지만 인물의 전신을 보여줄 만큼 커다랗다. 벽돌과 섬돌의 표현은 화보식 가옥과 동일하며, 가옥 뒤로는 나부끼는 나무 한두 그루가 배치되고 밝은 가을 달을 묘사해 밤이라는 시간을 드러낸다. 구양수의 복장은 작품마다 동일하며 도식화되었고, 책상 위에 책과 함께 놓인 기물들도 촛대, 찻잔, 벼루 등으로 한정된다. 한편, 동자는 고사인물형의 추성부도에서는 그 위상이 현격히 축소된다. 구양수와 시선이 비끼며 뒷모습만 등장하며 두발이나 복장 표현에서 바람 부는 바깥 정경 경도를 표현해 줄 뿐, 특정한 역할을 수행하지 못한다.
조석진, 〈중국고사도8폭병〉 중 한 폭, 1897년, 종이에 설채, 128×33.5㎝(출처: 개인소장)
주인공 구양수의 묘사에서는 다소간의 차이를 보이지만 한 손으로는 불어오는 가을바람에 촛불이 꺼지지 않도록 막고, 다른 한 손으로 읽고 있던 책의 책장이 넘어가지 않도록 누르며 강한 독서 의지를 드러낸다는 점에서 주목을 요한다. 즉, 고사인물로 부각된 근대기 인물형의 추성부도에서 구양수는 가을의 쓸쓸함을 느끼며 「추성부」의 전체적인 감상을 대표하는 구양수의 모습이 아닌, 독서상으로 초점이 맞추어지며 도상화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시의화로 구성된 추성부도의 전통을 기반으로 하고, 문인 독서도 계절의 영향, ‘가을=독서’는 독서상의 의미까지 모두 결합된 시대적 결과물이라 생각된다. 때로는 조석진의 작품에서처럼 구양수가 신선 갈홍(葛洪), 유해(劉海)와 함께 함께 고사·도석인물병의 한 소재로 구성됨으로써, 축수의 의미를 지닌 신선의 반열에서 길상화되고 있음을 목도할 수도 있다. 즉, 인물형 추성부도의 주인공은 조금 과감하게 얘기하자면 구양수라기보다는 독서인물이며, 때로는 도석인물로서의 성격까지도 지니게 된다.
이처럼 「추성부」와 추성부도는 가을을 묘사한 대표적인 문학, 예술 작품이었다. 구양수가 느꼈던 가을, 김홍도가 생애 마지막 자락에서 묘사한 가을, 그리고 안중식과 조석진이 고사인물형 추성부도에서 읽어내고 싶었던 가을의 의미는 모두 조금씩 달랐다.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할 점은 이들이 모두 사계절과 자연의 신비로운 조화, 대자연의 질서와 변화에 귀를 기울였다는 것이다. 자연을 인간의 삶에 투영해 볼 때 젊음과 늙음의 거부할 수 없는 삶의 섭리를 전달하는 「추성부」, 그리고 이를 체현하면서 시의를 화폭에 옮겼던 추성부도를 통해 지금 이 순간 우리 삶의 자리를 다시 한번 되돌아 볼 수 있는 의미 있는 계절이 되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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