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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고 진했던 비대면 공모전의 기억

코로나바이러스가 발발한 지 벌써 일 년이 다 되어간다. 이제는 외출 전에 마스크를 쓰는 것이 핸드폰을 챙기는 것만큼이나 일상이 되었다. 제6회 스토리테마파크 창작 콘텐츠 공모전이 5월에 시작해 11월에 끝났으니 우리는 거의 반년을 함께해 온 셈이다. 비대면 시대에 걸맞게 우리 팀은 팀원도 비대면으로 구성했다. 팀장이 학교 커뮤니티에서 팀원을 모집했고 나는 스토리 담당으로 합류했다. 작년에 제5회 스토리 테마파크 창작 콘텐츠 공모전에서 대상을 받았던 친구의 팀에 충원될 뻔했다가 대만으로 어학연수를 가면서 활동하지 못해 아쉬웠던 차에 나에게 매우 반가운 기회였다.



코로나바이러스가 예상치 못하게 우리의 계획을 바꾸어 놓기는 했지만 어름사니패 팀 자체에는 소중한 인연을 이어주기도 했다. 디자인 담당 세윤이는 외국에 나가서 활동하려다가 비행기가 취소되어 국내에 남아 우리 팀에 합류했고, 우리 팀의 멘토님이신 이수진 작가님 역시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해 일정이 바뀌어 이 공모전에 멘토로 참가해주셨다. 소중하고 꼭 필요한 두 인연을 제6회 스토리테마파크 창작 콘텐츠 공모전으로 이어준 코로나바이러스가 우리 이번 공모전의 안티팀원이 아닐까 싶을 정도이다.

우리 팀의 팀장 용희는 뮤지컬에 큰 애정을 가지고 우리 팀의 장르를 뮤지컬로 정했고 줄타기라는 신선한 소재와 바우덕이라는 매력적인 인물을 선정해왔다. 1차 기획서가 통과된 후 2차 면접 전에 팀원 모두가 함께 볼 시간이 없어서 각 팀원을 따로 만나 면접을 준비하던 용희의 노고가 기억난다. 2020년 2학기에 18학점을 수강하면서 공모전을 병행하느라 힘들었을 텐데 피칭 날 새벽까지도 PPT 담당 세윤이와 연락하며 끝까지 오퍼레이터로서 준비해준 덕분에 우리가 피칭을 무사히 마무리할 수 있었다. 홍보부스 운영과 피칭 질문에 대해서도 상냥하고 담담하게 답변할 수 있는 우리 팀의 팀장이 용희여서 다행이었다.



우리 팀에서 디자인을 담당한 세윤이는 그동안 공모전에서의 어려움이 무엇이었냐는 물음에 “세상에 어려운 게 얼마나 많은데 이런 건 아무것도 아니지~”라고 의연하게 답했다. 역시 멘토님이 말씀하셨던 것처럼 장군감이다. 세윤이의 대담한 모습은 우리가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커피를 흰옷에 흘려도 별거 아니라며 휴지로 슥슥 닦던 것에서 짐작할 수 있었다. 올해 8월 말부터 일을 다니면서 아침에 출근해 저녁 6시에 퇴근하고 얼마 쉬지 못한 채로 바로 공모전 회의에 참여하는 것이 분명 힘들었을 텐데 자신의 삶을 열심히 사는 세윤이처럼 멋진 사람을 알게 되어 기뻤다.

비유와 상징을 좋아하는 상진 오빠는 우리 팀에서 스토리, 디자인, 피칭 전반에 걸쳐 종횡무진으로 활동했다. 우리 팀의 스토리 전개에서 미처 생각하지 못한 요소들을 섬세하게 잡아내어 우리 팀의 온건함을 담당했고 포스터 디자인에도 직접 진옥의 실루엣을 그렸으며 마지막 피칭까지 맡아 유종의 미를 거두어주었다. 마지막 자축파티에서 케이크에 초를 꽂으며 “뭘 해도 너희보다는 더 해봤다”는 경험자가 우리 팀이어서 다행이었다.



친숙한 지금과는 다르게 처음 팀원들을 만났을 때는 이름 뒤에 ‘님’을 붙이면서 지극히 공손하게 서로를 대했다. 팀장은 반박 의견을 낼 때도 두 손을 사용해서 제스처를 통해 ‘나는 너의 기분을 상하게 할 의도가 없음’을 정성스럽게 드러냈다. 아직 친하지도 않은데 호칭을 가벼이 했다가 프로젝트 진행을 위한 의견 교류에 곡해가 생길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교육캠프 첫날, 치열한 토의를 통해 기존 스토리의 초반부에서 주인공 진옥의 엄마로 시작하는 설정을 버리기로 결정이 났다. 이야기의 방향이 크게 바뀌면서 교육캠프의 마지막 날까지도 우리 팀은 캐릭터 구성에 매진해 스토리는 추상적인 채로 남아있었다.

교육캠프에 다녀온 후, 우리는 거의 매일 만나며 캐릭터 설정과 스토리 전개에 관해 토의해갔다. 팀원 모두가 스토리 진행을 위한 토의에 열정적으로 참여한 덕분에 이야기에 네 명 각자의 다채로운 색이 담겼고 우리는 더 튼튼하고 풍부한 내용의 시놉시스를 만들 수 있었다. 서로 다른 가치관을 가진 네 명 모두를 납득시키며 스토리를 완성했던 덕분인지 최종보고서에 반영된 스토리 구성에 대한 칭찬을 많이 받았다. 피칭까지 마친 뒤풀이에서 들은 이야기인데, 관계자분은 교육캠프 때까지만 해도 우리 팀만 빼고 다 우승 후보라고 생각하셨다고 한다. 졸업 전 2020년 마지막 여름방학을 공모전의 스토리 구성에 전부 투자하면서 나의 현실보다 우리 작품의 주인공인 진옥의 삶을 더 열심히 돌보는 것 같아 혼란스럽기도 했지만,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고생하는 모든 과정에는 즐거움이 배어있었다.

스토리테마파크 공모전에 참가하기 전까지, 스토리는 보통 공동 작업이 아니었다. 초고나 진행 과정에서 주변 사람들의 피드백을 받기는 하더라도 그 의견의 수용과 최종 결정의 주체는 나였다. 하지만 이번 공모전에서는 네 명 모두가 스토리 구성의 주체였고 이야기 상 공존할 수 없는 두 가지 설정에서 의견 대립이 일어날 때마다 ‘아, 이것은 나만의 작품은 아니지’하는 생각이 들어 생경했다. 그렇게 작품의 주인공을 타자화하면서 주인공이 나의 단편적인 부분만으로 이루어진 가상의 추상적 인형이 아니라, 내가 공감하지 못하는 측면을 가진 복합적 인물로 발전해나가는 과정이 흥미로웠다. 내년 공모전에 참가할 예정인 학생들도 이 글을 읽을 텐데, 스토리에 여러 명의 의견이 들어갈수록 그 이야기는 한 사람이 미처 생각하지 못한 부분이 보완되어 더 풍요로워진다는 사실을 주지한다면 이 공모전에 참가해 좋은 성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오프라인 회의를 계속 진행하던 와중에 코로나바이러스의 확산으로 사회적 거리 두기 단계가 상향 조정되면서 우리는 9월부터 회의를 온라인으로 전환했다. 우리 팀원들은 같은 수도권이라도 의정부, 송파, 종로, 마포로 사방에 흩어져 있어 오프라인 회의를 위한 이동 시간이 꽤 걸렸기에 비대면 회의를 통해 이동 시간을 아낄 수 있었다. 각자의 집에서 온라인으로 회의가 이루어지면서 대중교통 막차 시간의 제약도 없어졌으므로 잠이 들기 직전까지도 회의를 지속하며 새벽 네 시가 넘도록 열띤 토의를 진행했다. 처음에는 보이스톡으로 팀원들과 대화를 하고 구글독스로 같이 문서를 보며 이야기를 다듬어 나가는 것이 어색했지만, 온라인 회의를 지속하면서 나중에는 부엌에서 차를 끓이고 다시 방으로 들어가면서도 보이스톡을 통해 토의에 참여하는 등 비대면 회의의 장점을 적극 활용할 수 있었다.



단, 비대면 회의의 경우 구글독스에 눈을 고정하고 목소리만으로 의사소통이 이루어지다 보니 상대의 표정과 같은 비언어적 표현을 고려할 수 없어 자신의 의견 표출이 더 직설적으로 나갈 수 있다. 따라서 다음 공모전 참가자들도 비대면 회의를 진행한다면, 목소리로만 소통하는 상황에서 상대의 비언어적 요소를 고려할 수 없다는 것에 주의해 의견을 전달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물론 이것은 최종보고서 제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을 때 내가 느꼈던 바이다. 우리 팀이 그랬듯이 비단 비대면 회의가 아니더라도 제출 마감이 임박한 상황에서 모두가 이성적으로 토의에 임한다면 이런 사소한 문제는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최종발표가 끝난 후 우리끼리의 자축파티에서 세윤이가 공모전을 회상하며 우리 팀원들같은 사람 유형을 처음 봤었다며 웃었다. 나도 동감한다. 이 공모전이 아니었다면 만나지 못했을 만큼 우리는 각자 다른 환경에서 자라왔고 서로 다른 능력치를 가지고 있었다. 어쩌면 오히려 그 덕분에 우리가 팀 프로젝트에 있어서 각자의 부족한 부분을 서로의 장점으로 보완하며 성공적으로 분업을 해낼 수 있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공모전에 참가한 우리 모두는 작품의 캐릭터 설정을 하나 둘 완성하고 시놉시스의 전개 방향을 수정해가면서 처음 만났던 5월보다 성장했다. 그동안 일어났던 일련의 사건들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자체 합숙 회의를 진행하기 위해 이수진 멘토님이 계신 영월로 가기도 했고, 앉은 자리에서 저녁도 먹지 않은 채 여섯 시간 동안 회의를 하며 목이 말라 1.5 리터 물 두 통을 연달아 마시기도 했다. 피칭준비를 위해 의정부에서 밤늦게 회의를 마치고 새벽에 모두를 집 앞으로 데려다주셨던 이수진 멘토님께 차 안에서 인생 상담을 받기도 했다. 발표 전날에는 세윤이네 회사 건물 라운지에서 새벽까지 피칭을 수정하고 우리의 기획서를 샅샅이 읽으며 질문에 대한 답변 준비를 했던 것도, 발표하기 전에 홍보부스에 놓인 우리 작품의 주인공 진옥에게 다녀온다고 인사를 했던 것도 조각조각 기억으로 남아있다. 이 모든 것들이 스토리테마파크 공모전에 참가하지 않았다면 겪어보지 못했을 소중한 경험이었다.

이 공모전은 다른 공모전과 다르게 순위가 결정된 후 끝나는 게 아니라 순위보다 더 값진 인연과 추억을 나에게 남겨주었다. 최종 발표가 끝나고 다 같이 간 고깃집에서도 공모전이 끝났다는 것이 실감이 나지 않았는데 그 다음 주 토요일에 이수진 멘토님과 자축모임을 가진 후 밤 열두시에도 밝은 강남에서 집에 가는 택시를 다 같이 기다리며 이제 정말 공모전이 끝난 것이 실감났다. 그날 먹은 초코케이크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이 시간에 내가 밖에 있다는 기시감이 그 까닭을 더했는지 설탕에 절인 듯 마음이 달달했고 헤어지기가 아쉬웠다. 진심인데 이수진 멘토님이 간지러워 하실까, 술김이라고 오해받기는 싫은데 하면서 내 마음속에서만 이리저리 돌아다니다가 끝내 삼킨 말은 아무 맛도 나지 않는 숨으로 뱉어졌다.

어름사니의 멘토라서 다행이다! 멘토님의 멘티여서 행운이다! 그날 우리의 톡방처럼, 다행과 행운이 우리의 열심에 밤하늘 별처럼 무수했던 모든 순간들에 감사하며 이상 스토리테마파크 6회 공모전 수기를 마친다.




집필자

하태희
하태희
제6회 스토리테마파크 창작 콘텐츠 공모전에서 최우수상을 받은 ‘어름사니패’ 팀의 팀원 이었습니다. 고려대학교 국어국문학과에 재학 중으로, 팀에서 주로 스토리 제작을 담당했습니다. 고전 소재에 관심이 많아 자교 대학원 국어국문학과 고전소설분과에 진학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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