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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인의 이야기, 무대와 만나다

호랑이도 담배 피던 시절

담배 연기를 퐁퐁 뿜어내는 호랑이


외국인들 사이에서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이 회자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영어권에서는 옛날이야기를 시작할 적에 ‘오래전에…’로 시작하고, 독일어권에서는 ‘오래전 아직 사람들이 무언가를 위해 소원을 빌 적에…’로 운을 띄운다고 한다. 이라크에서는 ‘나는 내 아버지가 들려준 이야기를 기억하고 있다’로 시작하고 모로코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질지 내가 말한 적이 있을 것이다’라고 하며, 폴란드에서는 ‘아주 오래 전 일곱 개의 산과 일곱 개의 숲을 지나…’로 이야기를 시작한다고 한다. 대략 북유럽에서는 이렇게 산 몇 개, 강 몇 개, 숲 몇 개를 지나는 레퍼토리가 흔하다고 한다.

그런데 이렇게 다양한 옛날이야기의 시작에 한국은 뜬금없이 호랑이가 등장한다. 그것도 담뱃대를 물고 담배 연기를 퐁퐁 뿜어내면서. 곰이 쑥과 마늘을 먹고 사람이 된 조상을 둔 한국인들은 호랑이 담배 물던 시절이 전혀 놀라울 일이 아니다. 아마도 쑥과 마늘을 먹다 배고프고 지친 호랑이는 동굴을 뛰어나가 제일 먼저 한 일도 담배를 맛있게 피우고 깊이깊이 연기를 내뿜었을지도 모르겠다. 마을에 내려와 사람과 의형제를 맺기도 하고 은혜도 갚는 커다란 고양이 호랑이와의 연관성을 모르는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는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이라는 관용구는 꽤 신기하고 재밌을 듯싶다. 호랑이가 사람처럼 행동하고 교류를 나누었던 시절을 상징하는 물건은 담배다. 그 당시에 궐련이 있었을 리 없으니 기다란 담뱃대를 물고 줄무늬의 긴 꼬랑지를 이리저리 휘두르며 만족스러운 얼굴로 담배를 피우는 거대 고양이의 모습은 상상만으로도 귀엽다. 물론 상상 속에서지만.


담배 피우는 호랑이




무대 위 담배의 존재


옛날 사람들에게 기호품이 주는 의미란 사뭇 요즘과는 달랐을 것이다. 마치 사치품처럼 기호품도 없다고 해서 못 살 일은 없는 존재다. 하지만 가끔은 사치품보다도 더 큰 돈이 필요할 수도 있다. 기호품은 중독성이 강하다.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기호품은 ‘독특한 향기나 맛이 있어 즐기고 좋아하는 물품. 술, 담배, 커피 따위’를 말한다. 사전이 예시로 제시한 모든 기호품은 사실상 맛보다는 중독성에 더 기대고 있는데다 엄밀히 말하면 담배는 식품 범주 안에는 들어가지 않는다. 많은 사람들이 담배를 구름 과자라는 별명으로 식품 속으로 슬쩍 밀어 넣는 모양새다.


88 디럭스 마일드 담배 모형갑(출처: 대한민국역사박물관)



무대 위에서 담배는 계륵과 같은 존재다. 등장인물을 설명하거나 분위기를 만들기에 담배처럼 쉽고 편안하게 사용될 수 있는 소품도 드물다. 하지만 담배를 무대 위에서 피워 무는 것은 불법이다. 한국에서는 1995년 국민건강증진법이 제정된 후 금연 정책이 확대되기 시작했고 2015년에는 음식점을 포함한 실내 금연이 전면적으로 금지됐다. 2017년 실내 체육시설도 금연 구역으로 지정됐고 2019년에는 유치원과 어린이집 부근 10m도 금연 구역 안으로 들어왔다. 어딘가 순서가 잘못된 것처럼 보이긴 해도 어쨌든 무대 역시 실내 공간이라 당연히 금연 구역이다. 연습실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여전히 무대 위에서는 배우들이 담배를 피우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뮤지컬 〈시카고〉와 〈빌리 엘리어트〉는 가장 대표적인 담배 장면이 등장하는 뮤지컬이다.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에서 담배가 등장하는 장면은 치매에 걸린 주인공의 할머니가 오락가락하면서도 할아버지를 처음 만났던 과거를 회상하는 장면이다. 할머니는 할아버지와 바에서 처음 만났다. 아직 스물도 되지 않았던 젊은 할머니 눈에는 줄담배를 피워대는 할아버지가 그렇게 멋있었다. 그렇게 입에 얇은 궐련을 물고 할아버지는 제비보다 가벼운 춤사위로 할머니를 사로잡았다. 무대 위로 난 창문이 열리고 열리는 창문마다 기억 너머의 할아버지들이 줄줄이 들어와 담배를 물고 연기를 피우며 할머니와 춤을 추었다. 희미한 기억은 담배 연기를 통해 더욱 희미하게 가려지고 할머니의 기억이 사라져 갈 즈음 담배 연기도 기억 속의 할아버지도 창문을 통해 다시 사라진다. 이 장면에서 담배를 빼면 절반 이상을 잃는 것과 같다. 하지만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에서 할아버지 역의 배우들이 피는 것은 진짜 담배가 아니라 사실은 진해거담제를 말은 가짜 담배다.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의 흡연 장면(출처: https://youtu.be/FDM92uzuma8) 더보기


진짜 담배를 피우는 공연은 따로 있다. 뮤지컬 〈시카고〉다. 천재적인 안무가이자 연출가였던 밥 파시의 독특한 안무 세계를 맛볼 수 있는 이 작품에서 남자 댄서들이 밥 파시의 상징 가운데 하나인 보울러 햇을 쓰고 담배를 입에 물고 나온다. 이들이 내뿜는 담배 연기는 진짜다. 모든 공연마다 담배 연기가 나온다는 경고문이 붙어 있기는 하지만 가끔 앞자리 객석에서 기침 소리가 들리기도 한다. 프로덕션 측에서는 원작자가 명시한 대로 담배 브랜드까지 정해져 있다고 하지만 실제로 미국에서 공연할 때는 도시마다 다른 금연 정책에 따라 담배를 피우기도 하고, 손에만 들기도 하며, 금연초나 허브담배로 교체도 한다. 다음 공연에서도 진짜 담배 연기가 피어오를지는 모를 일이다.


뮤지컬 〈시카고〉의 흡연 장면(출처: 신시컴퍼니)



연극 〈레드〉에도 주인공인 로드코가 줄담배를 피워댄다. 우울증 약을 복용하다 자살로 삶을 마친 그에게 있어서 담배란 자기 파괴적인 내면을 드러내는 중요한 소품이다. 한국 뮤지컬 〈영웅〉에도 담배가 등장한다. 여기서 등장하는 담배는 첩보 장면을 연출하며 긴장감을 유발함과 동시에 상남자들의 위험한 임무를 보여주는 수단이기도 하다.


연극 〈레드〉 공연 중 흡연 장면(출처: 신시컴퍼니)



영화 속의 담배와 무대 위의 담배는 다르다. 영화 속의 담배라고 해서 유해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영화 속의 멋진 주인공이 담배를 피운다면, 혹은 주인공이 아니라 악당이라 해도 관객의 눈에 그 담배가 멋져 보여서 집에 가는 길에 나도 담배 한 번 피워보고 싶다고 생각해서 실행에 옮긴다면 사실상 그게 더 해로울 수도 있다. 영향력으로 따지자면 영화가 무대보다 훨씬 큰 파급력이 있지만 무대는 담배를 피우는 배우와 그 앞에 앉은 관객에게 즉각적이고 직접적인 해를 끼친다. 세상 어디도, 다른 어느 순간에도 있을 수 없는 라이브 무대만의 장점이 단 하나 담배 앞에서는 단점으로 부각된다. 사실상 무대 위의 담배는 진짜여도 문제고 가짜여도 문제가 된다. 진짜일 때는 진짜 담배 연기에 담긴 니코틴과 타르 연기의 독성이 건강에 해를 끼치고 가짜 담배일 때는 금연초나 허브 담배 특유의 비릿한 연기 향이 관객에 미치면 관객은 그 순간 무대의 환상으로부터 벗어나 가짜 담배를 피우는 배우를 보게 된다. 공들여 만든 무대 위의 환상과 이입의 순간이 가짜 담배라는 사실을 인식하는 그 자체로써 한 발짝 물러나 보게 되는 상황으로 이끈다.




담배, 무대 위에서 물러나다


담배가 처음 극장에서 금지됐을 때는 술집에서 금지됐을 때와 비견될 정도로 반향이 컸다. 흡연자가 그토록 많기도 했지만 그들에게 있어서 담배 연기가 뿌옇게 피어오른 극장이라는 공간에 대한 절대적인 향수가 존재했기 때문이다. 영화 〈시네마 천국〉을 보면 영화관이 온통 담배 연기로 안개 속이다. 어린이와 임신한 여성들까지 대책 없이 담배 연기에 노출됐다. 흡연권이 함연권에 우선했던 시절의 이야기다.

하지만, 가끔 무대 위의 캐릭터를 위해, 그리고 배경이 과거의 어느 때라면, 담배는 꽤 중요한 소품이 될 수밖에 없는 순간들이 분명히 있다. 그리고 가끔 이런 때 관객이 이의를 제기하기도 한다. 뉴욕에서는 극장 출입문과 공연 프로그램에 관극 주의사항이 적혀 있다. 천둥 번개가 너무 크게 난다거나, 섬광이 비치는 장면이 있다거나 담배를 피우는 장면이 있다는 주의사항을 고지해 놓는다. 심지어 암전이 2분 이상 계속된다며 고지하기도 한다.

오프-브로드웨이의 연극을 보러 갔을 때 주인공이 관객들을 극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무대의 조명을 끄고 어둠 속에서 관객들에게 말을 거는 장면이 있었다. 불이 꺼지자마자 한 관객이 소리를 질렀다. 자신은 어둠을 견디지 못한다면서 이 장면을 불을 켜고 공연하라는 항의였다. 배우가 침착한 목소리로 관객을 달랬지만 관객은 점점 더 화를 내며 소리를 질렀고 주변 관객들은 어둠 속에서 패닉이 올 수 있다는 관객에게 화를 내기 시작했다. 결국 배우는 조명을 다시 켜줄 것을 요청하고 그 관객에게 극장을 떠나라고 요구했다. 그 관객은 자신은 티켓을 샀으니 좌석에 앉아 공연을 볼 권리가 있으니 불을 켜고 공연하라고 요구했다. 그 때 배우가 한 말이 ‘우리는 암전에 대해 공지했고 그걸 견디지 못하는 것은 아쉽지만 당신 책임이다. 당신은 이 공연을 선택하지 말았어야 했다. 다른 관객들의 권리를 위해 나가달라’고 했다. 그 관객은 몇 분을 더 버텼지만 주변 관객들의 항의에 결국 자리를 박차고 나가며 심한 욕설을 퍼부었다. 그 공연은 결국 그 사건으로 기억에 새겨졌다.

한국에서도 비슷한 일이 바로 흡연 장면 때문에 있었다. 배우 이규형이 공연한 이인극 〈도둑맞은 책〉에서 이규형이 담배를 피우자 한 관객이 그의 대사를 끊고 들어왔다. 여자 친구가 천식이 있어 담배 연기를 맡으면 안 되니 담배를 꺼달라는 주문이었다. 객석에서는 탄식이 흘러나왔다. 이 공연 역시 사전에 담배 연기가 나온다는 고지를 했다. 천식이 있는 관객에게는 너무나 안타까운 일이지만 그는 그 자리에 앉아 있어서는 안 됐다.


연극 〈도둑맞은 책〉(출처: (주)문화아이콘)


배우 이규형이 말하는 담배 사건(출처: KBS2 ‘옥탑방의 문제아들’)



담배를 피우는 장면은 앞으로 더욱더 무대에서 보기 힘들어질 게 틀림없다. 하지만 반드시 피우는 장면이 필요하다면 그때는 배우에게도 관객에게도 그리고 무대 안전에도 영향이 없는 안전망이 필요하다. 몇 년 전 예술의 전당에서 화재 사고가 났던 것을 돌이켜 본다면 더욱더 그러하다. 게다가 프로덕션 입장에서도 흡연 장면은 관람 연령을 높여야하기 때문에 득보다 실이 크다.

대부분의 금연법이 있는 나라에서 무대 위 흡연은 원칙적으로 금지되어 있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대부분의 나라처럼 한국 역시 예술적 완성도를 위한 장면에 한해서 허용된다는 예외를 인정하는 편이다. 한국 호랑이가 멸종된 이유는 흡연 때문은 아니겠지만 무대 위 담배는 멸종의 길로 접어들고 있다.




집필자 소개

이수진
뮤지컬 〈지킬앤 하이드〉, 〈그리스〉, 〈넌센스〉, 〈에비타〉 등 번역하고, 뮤지컬 〈신과 함께 가라〉 등을 썼습니다.〈뮤지컬 스토리〉 저자 / 더 뮤지컬 어워드 심사위원 역임 등
“조선시대 담배의 보급”

조선에 담배가 보급된 것은 임진왜란을 전후로 한 시기였다. 담배가 처음 전래될 때는 약재로 인식되어 보급되었다. 술을 깨게 한다든지, 소화가 잘 된다는 말과 함게 담배는 빠르게 전파되었다. 이수광은 「지봉유설」(1614)에서 사람들이 밭에 담배를 많이 심는다고 기록했다. 담배는 시간이 지나면서 약초보다는 기호품으로 애용되었다. 손님을 대접할 때 담배를 권하는 풍습도 생겨났다. 담배의 수요는 급격히 증가하여 남녀노소와 양반, 백성을 가리지 않고 소비하였다. 네덜란드인으로 조선에 표류하였던 하멜은 조선인들이 4, 5세 때부터 담배를 핀다고 기록했다. 담배는 점차 상품작물로 변해갔다. 한성(서울)에서는 담배만을 파는 엽초전이라는 시전이 생겼고 지방에서도 사람들이 모이는 곳에는 담배가 매매되었다. 그러나 담배 보급이 늘어나면서 폐단도 늘었다. 먼저 비옥한 토지에 담배를 많이 심어 다른 작물의 생산량이 떨어졌다. 다음으로는 담배 예절이었다. 남녀노소와 귀천을 막론하고 긴 담뱃대를 물고 서로 담배를 피우게 되자, 예의를 중시하는 유학자들은 이를 용납하기 어려워졌다. 그리하여 담배를 피울 때 지키는 규율을 만들기도 했다. 예를 들면 연장자 앞에서는 피우지 말 것이라든지 양반 앞에서 평민은 피우면 안 된다든지, 평민이나 천민의 담뱃대는 양반의 것보다 길어서는 안 된다는 것 등이었다. 「유가야산록」에는 여행지에서도 담배를 피우는 장면이 나온다. 담배는 여행의 준비물 중 하나였던 것이다. 조선시대에는 담배를 피울 때 많은 준비물이 필요했다. 담뱃대를 비롯하여 담배를 넣어 둘 담배 주머니, 재떨이 등이 필요했다. 물론 양반들이 여행을 할 때는 노비들에게 이를 대신 들고 오게 하였을 것이다.

“담배피우며 시강하다가 귀양 간 시관”

노상추, 노상추일기, 1792-02-18

학례강(學禮講) 시관이 귀양을 갔다. 시강을 할 때 생도들 앞에서 몸을 비스듬히 하고 앉아 관을 비뚤게 쓰고 담배까지 피웠으며 잡스러운 농담도 툭툭 던져댔기 때문이다. 이 이야기는 왕의 귀에도 들어갔다. 왕은 한심해하며 시관 모두를 먼 지방으로 귀양을 보내게 하였다. 또 이런 풍조를 알면서도 감찰해내지 못한 감찰, 사관, 승문원·성균관·교서관의 여러 관원들도 잡아들여 신문하며 혼을 냈다. 당연히 이들 기관의 책임자인 대사성도 불려가 곤욕을 치렀다. 성균관의 재임(齋任)과 동재(東齋)·서재(西齋)의 반수(班首) 역시 모두 그 직무를 정지시켰고, 공무를 집행한 관리들도 추고 당했다. 미리 경계하지 못하고 왕의 귀에 들어 갈까봐 쉬쉬하며 서로 입을 다물고 있었던 죄 때문이었다. 이런 한심스러운 일이 있었음을 노상추는 조보를 읽고 알았다. 마침 생원시가 있는 날이었는데, 아마도 더욱 엄정한 분위기에서 치러질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들 벌벌 떨면서 시험을 보겠구먼! 하며 노상추는 담뱃대에 불을 붙여 일부러 비뚜름하게 물어 보았다.

“담배와 미숫가루, 꿀과 돈 - 상소 준비 과정에 받은 다양한 부조품”

권문해, 초간일기,
1584-03-09 ~ 1584-03-15

1792년 5월 11일, 부조를 받는 길이 한 번 열린 뒤에는 폐단을 막기가 어렵기 때문에 받을 수가 없었다. 포천 현감 홍약호(洪若浩)가 편지로 문안을 하고 남초(南草: 담배) 2근, 미식(米食: 미싯가루) 2되, 꿀 1항아리를 보내주었다. 1792년 5월 20일, 좌의정이 돈 50냥을 보내오고, 채홍리(蔡弘履)가 남초(南草: 담배) 40근을 보내왔다. 5월 24일 안악(安岳)의 이익운(李益運)이 편지로 문안을 하고 돈 20냥과 향초(香草: 담배) 5근을 또 보내왔다.

“양반들은 산수유람 때 무엇을 준비했을까?”

황여일, 유내영산록, 1587-08-06 ~

1587년 8월 6일, 산수유람 중이던 황여일(黃汝一)은 식후에 숙부[황응청(黃應淸)]와 잠시 낮잠을 잤다. 얼마 되지 않아 이 고을의 학자인 김득경(金得鏡)이 달려와 이르니, 이 곳 태수 조정간(趙廷幹)이 가서 보라고 명령했기 때문이었다. 함께 흰 밥에 푸른나물로 식사를 하였는데, 산에서 먹는 맛이라 더욱 좋았다. 술도 서너 잔 했다. 이윽고 노승(老僧)이 짚신을 가지고 나와서 말하였다.

“절의 서쪽 편으로 가면 구름 사이로 돌길이 나 있는데 매우 가파르고 끊어질 듯합니다. 그러나 이 길이 아니면 건너갈 방법이 없습니다.”

곧이어 함께 갈 일행을 선발했다. 이야기를 나눌 승려는 ‘학연(學衍)’이라 하고, 시문(詩文)을 챙기는 이는 ‘덕룡(德龍)’이라 하며, 벼루를 들고 갈 이는 ‘홍원(洪源)’이고, 술시중할 이는 ‘매운(梅雲)’이며, 옷과 양식을 들고 갈 이는 ‘억동(億童)’이었다. 또한 한 승려로 하여금 걸음을 예측해서 날이 저물면 어떤 암자에 이르러 잠잘 수 있는지 살펴보게 했다. 그리고 함께 출발하여, 쉬엄쉬엄 이야기하면서 천천히 걸어갔다.

“합격과 낙방, 희비가 엇갈리는 가운데, 탁족과 술로 마음을 달래다”

김령, 계암일록,
1623-05-05 ~ 1624-01-20

1845년 7월 3일, 낙육재의 여러 벗들이 함께 바람이나 쐬고 오자 하여, 서찬규 일행은 십여 이 술을 가지고 남암(南菴)에 올랐다가 저물어서 돌아왔다. 7월 10일에는 예닐곱 관동들과 함께 신천에서 목욕하고 거북굴에서 바람을 쐬다가 날이 저물어서 돌아왔다. 덕우는 몸이 좋지 않아서 먼저 돌아갔다.

1846년 5월 18일, 국오 족숙을 모시고 여러 친족들과 함께 앞산으로 회포를 풀러 갔다. 동네 어귀에 도착해 자리를 펴고 밥을 내오는 사이에, 서찬규와 태곤(자는 노첨)·재곤(자는 자후), 그리고 몇몇 서당 아이들은 탁족할 곳을 찾아 가파른 바위로 등나무 넝쿨을 잡고 올라가 굽이굽이 물길을 찾아갔다. 마침 한 승려가 갈포 적삼에 송납을 쓰고 인사를 하는데 은암의 중이었다. 어디서 오는지 물으니, 약초를 캐고 돌아가는 길이라고 했다.

물을 따라 걸어가다가 목이 마르면 손으로 떠서 마시고, 더우면 손으로 끼얹어 씻었다. 이렇게 몇 리를 가니 예계암에 이르렀다. 술기운이 막 깨니 배고프다는 생각이 점점 들었는데, 우연히 나무하는 사람을 만나 그의 도시락으로 쾌히 빈 배를 채웠다.

산림에 회포를 붙여 일어났다 누웠다 하다 보니 돌아가는 것을 잊고 있어서, 어느덧 해가 한낮을 지났다. 친구들이 돌아가자 하여, 여러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다시 내려왔다. 하루 종일 바람을 쐬고 시를 읊조리다가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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