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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의 말

시작이 있어 끝이 있다

올해의 마지막인 12월호의 타이틀로 유시유종이라는 간결하면서도 깊이 있는 문장을 받았습니다. 돌이켜 보면 봄의 끝, 여름의 시작이었던 5월에 첫 만남이 있었던 이후 가을의 끝, 겨울의 시작이었던 11월 7일 공모전 발표까지 8팀의 학생들과 멘토들은 끝없이 만나고 또 만났습니다. 만남은 코로나 바이러스의 단계가 격상되면서 온라인으로 옮겨갔어도 마치 숲 속의 새 길을 내듯 거침없이 새 회의방식에 익숙해져 갔습니다. 하긴 유례 없는 온라인 수업을 들어온 학생들이 아니겠습니까. 그 과정을 올해의 마지막 담담에 담담하게 담았습니다만 사실 그 과정과 팀들의 열정은 결코 담담하지 않습니다. 전지구적인 재앙인 코로나로 팬데믹 시대의 공모전이라는 초유의 사태를 맞이했고, 많은 사람들이 2020년은 ‘없는’ 해라고 자조하며 어서 지나가기만을 바라지만 이들에게는 분명히 무언가가 ‘있는’ 해였으니까요.

지난해의 참가팀이었던 이소정 학생은 공모전 현장 스케치를 통해 공모전 당일의 상황을 생생하게 전해주었습니다. 바로 한 해 전, 같은 자리에서 심사를 받는 입장이었던 때와는 많이 달라진 시각, 특히 먼저 길을 걸은 자의 넉넉함이 엿보였습니다.

유원정 학생이 진행한, 대상을 받은 ‘한국다람쥐’팀 인터뷰 역시 경험에서 우러나온 생생한 질문과 진심어린 ‘람쥐쓰’의 답변이 담겨 있었습니다. 자신들이 ‘람쥐쓰’로 불렸듯이 이은정 멘토는 ‘엄마 람쥐’로 불렸다는 사실도 알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사실 ‘한국다람쥐’가 공모전 홍보부스에 보드게임의 프로토타입 실물을 펼쳐놓았을 때 주변 팀들에서는 ‘저건 뭐든 받겠는데!’ 하는 느낌표들이 떠돌았다고 합니다. 게임 멘토가 아니라 인생 멘토를 만났다는 람쥐쓰의 말이 그렇게 예쁠 수가 없습니다.

심사과정에서 가장 큰 기대를 받았던 팀 ’범내려온다‘의 멘토를 맡았던 김희진 감독님의 멘토링 후기는 깊은 울림을 남깁니다. 특히나 팀의 갈등이 최고조에 이르러 멘토가 개입하기 직전 팀원들이 손을 내밀어 원을 그리며 손을 잡고 안정을 찾아가고 까르르 웃으며 순식간에 갈등을 해소하는 모습의 묘사는 큰 감동을 주었습니다. 과연 범상치 않은 호랑이 기운의 팀이었습니다. 교육캠프에서도 가장 큰 목소리를 들려주었던 이 호랑이들과 조용하면서도 흔들리지 않는 김희진 멘토의 케미는 정말 흥미진진했습니다.

최우수상을 받은 팀 ’어름사니‘의 스토리 구성을 맡은 하태희 학생은 참가자의 입장에서 공모전 후기를 남겨주었습니다. 혼자만의 스토리 작업에서 팀 작업을 하며 고집을 내려놓고 서로의 의견을 담아 발전해 나가는 과정의 생경함과 놀라움, 낯설음을 뛰어넘는 즐거움이 담겨 있습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낯설고 서먹했던 네 사람은 절친이 되었습니다.

8팀의 치열했던 반년간의 결과물은 영상으로 만나보는 홍보부스와 피칭으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일반 관객을 받지 못하여 심사위원과 진행요원, 국학진흥원 관계자들과 멘토들 뿐이었지만 홍보부스에 들어간 정성은 놀라울 정도였습니다. 사실 어느 팀이 대상을 받아도 놀랍지 않다는 심사위원장님의 감상은 그저 지나가는 인사치레가 아니었습니다. 조선시대의 절대권력에 도전하는 의녀들의 이야기를 다룬 웹툰 ’맥(脈) : 조선의녀실록‘을 만든 팀 ’삼요소‘는 정말 한약방을 차린 듯 했습니다. 최초로 페스티발을 다룬 팀 ’나래‘의 ’나례 페스티벌 : 명심불망‘은 무겁게 들리는 주제를 발랄하게 담아냈습니다. 게다가 운세까지 점쳐주지 않겠습니까? 발길을 돌릴 수가 없는 홍보부스였습니다. 조선 최초의 여성 남사당패 꼭두쇠가 된 바우덕이를 모델로 한 뮤지컬 ’어름사니 : 보다 더 높이‘를 기획한 팀 ’어름사니패‘는 뮤지컬답게 노랫소리가 흘러나왔습니다. 갖은 소품들을 보니 사당패의 놀이를 직접 보고 싶어집니다. 장애인들이 모여 별동대를 결성해 불의를 물리친다는 내용을 다룬 ’별빛달빛‘의 ’명통 : 불굴의 별동대‘는 그 당시의 조선으로 돌아가 직접 확인해 보고 싶을 정도로 흥미로운 이야기였습니다. ’여우별 : 과거와 현재를 잇는 식당‘ 을 기획한 팀 ’혜윰‘의 홍보부스에서는 모자라는 당도 보충할 수 있었습니다. 게다가 소소한 고민상담은 덤! 보드게임을 출시 직전까지 만들어온 팀 ’한국다람쥐‘의 부스에서는 ’난전일기 - 명량으로 가는 길‘을 직접 시연할 수 있습니다. 가죽으로 만들어진 게임 패키지를 둘둘 말아 쥐면 마치 임진왜란의 전령사라도 된 듯 한 기분이 듭니다. 그러고 보니 모든 팀이 표제어와 부제를 달고 있습니다. 아마도 이것은 최근의 경향인가 봅니다.

2020년을 우리는 함께 버텼습니다. 어쩌면 2021년도 버텨야 할지 모릅니다. 얼마나 오래 버텨야 할지도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서로 손을 내민다면 어떻게든 버틸 수 있지 않을까요. 제6회 스토리테마파크 창작 콘텐츠 공모전은 독특하게도 끈적끈적한 소통이 활발했습니다. 같은 팀만이 아니라 주변의 다른 팀과도 돈독한 우정을 쌓았습니다. 거리를 두라는 사회의 요구에 대한 그들만의 극복 방식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참가한 모든 팀들이 ‘인연’이라는 다시 없는 큰 상을 안고 사회로 뚜벅뚜벅 걸어나가기를 응원합니다.




편집자 소개

글 : 이수진
이수진
뮤지컬 <지킬앤 하이드>, <그리스>, <넌센스>, <에비타> 등 번역하고, 뮤지컬 <신과 함께 가라> 등을 썼습니다.
<뮤지컬 스토리> 저자 / 더 뮤지컬 어워드 심사위원 역임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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