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입니다. 수고로운 여름이 지나고 새로운 계절이 우리를 맞습니다. 우리에게 가을을 전해주는 것은 무엇보다 산과 들의 나무들입니다. 푸르렀던 초록을 뒤로하고 서로 다른 색으로 물들어갑니다. 여름은 초록색이 지배하는 시간입니다. 여기에는 오직 초록만이 존재하고 초록만이 세상을 다스립니다. 그러나 이제 초록이 물러가면 여러 색들이 자신을 뽐내며 경쟁하는 시간이 도래합니다. 가을의 단풍을 가까이서 들여다보면 거기에 같은 색은 사실 하나도 없습니다. 조금씩 다른 아주 조금씩 다른 여러 색들의 풍요로운 잔치, 그것이 우리가 맞이하는 가을의 장면입니다.
여러 색들의 평화로운 잔치, 가을에 우리는 그것을 즐깁니다. 우리 조상들 또한 산과 들에서 푸르름이 물러가고 아름답고 다채로운 색들의 향연이 벌어지면, 이 가을을 즐기러 집과 일터를 떠났습니다. 오래전 가을은 어떤 모습으로 다가왔을까요? 그리고 우리는 그 가을을 어떤 모습으로 맞이했을까요? 이번 웹진 “담談”은 “가을을 즐기는 방법”이라는 제목 아래 우리 조상들이 산과 들을 가득 채웠던 계절 가을을 어떻게 보냈는지 알아보았습니다.
고태규 선생님은 “조선 시대 사대부의 가을날 지리산 유람”이라는 글을 통해서 조선 시대에도 많은 사랑을 받았던 지리산에 얽힌 유람기를 들려주고 있습니다. 김종직, 양대박, 박여랑 등의 기록을 통해 나타난 조상들의 풍류가 손에 잡힐 듯 흥미롭게 그려집니다. 김소연 선생님은 조상들의 그림을 살피는 글에 “가을의 소리를 듣다”라는 제목을 붙여주셨습니다. 이 글은 가을을 노래하는 탁월한 문학작품인 구양수의 “추성부(秋聲賦)”에 대해서 김홍도를 비롯한 화가들이 어떻게 시각적 형상화에 도전했는가를 살피고 있습니다. 소리가 글이 되고, 글이 그림이 되고 그림이 다시 우리의 마음이 되는 예술적 여정이 인상적입니다.
서은경 선생님은 가야산을 오르며 단풍을 즐기던 정구의 이야기를 그려주셨습니다. 그는 우연히 옆을 지나던 한 승려가 “금년 단풍은 예전만 못하다”라고 하는 이야기를 듣고, 여러 색의 단풍을 있는 그대로 즐기는 것으로 충분할 뿐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단풍을 즐기는 진정한 풍류의 멋입니다.
이수진 선생님은 현대 창극 “나무, 물고기, 달”을 소개해 주고 계십니다. “행복도 잠깐, 불행도 잠깐, 지나가면 그뿐이라.”는 노래로 마지막을 장식하는 이 창극은 이 쓸쓸한 가을에 너무도 어울리는 작품이 아닐 수 없습니다. 특별히 좋은 작품 추천해 주신 선생님께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이문영 선생님은 중양절 “등고회”를 앞두고 일어난 도난 사건에 얽힌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풀어주셨습니다. 이야기가 마무리되는 재치 있는 결말은 독자 여러분들께서 직접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이번 호의 “나무판에 새긴 이름, 편액”은 김상용의 생애와 그의 공간이었던 “청풍각”에 관련된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선택이 모여 인생이 되고 인생이 모여 역사가 됩니다. 역사의 거대한 흐름 속에서 자신만의 선택에 용감했던 이야기는 언제나 우리에게 엄중한 감동을 안겨줍니다.
자연은 가을에 가장 아름답습니다. 다채로운 색으로 자신의 개성들을 뽐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가을은 여행의 계절입니다. 우리는 아름다운 자연으로 찾아가 거기서 우리 본래의 심성을 기억해 내고 또 이를 가다듬게 됩니다.
그러니 진짜 가을을 즐기는 방법은 삶에 대한 사색입니다. 가을에 우리는 자연의 일부인 우리의 본성에 대해서 우리의 삶에 대하여 명료한 인식에 직면하게 됩니다. 저 반짝거리는 그 초록빛이 사라져가듯이 우리의 인생도 조금씩 빛나는 색을 잃고 맙니다. 그러나 거기에 단순한 상실과 부재만이 있지 않습니다. 싱그럽고 기운찬 푸른빛이 사라진 자리에는 부드럽고 개성적이며 조화를 꿈꾸는 여러 색들이 자리 잡게 됩니다. 각자의 색이 있고 각자의 꿈이 있으며 각자의 길이 있습니다. 물론 언젠가는 그 아름다운 빛도 스러지겠지만 말입니다.
그래서 이번 호의 주제가 “가을을 즐기는 방법”이지만, 그것은 또한 “가을을 생각하는 방법”이라고 할 수 있고, 이는 결국 “삶을 생각하는 방법”일 겁니다. 가을 덕분에 우리는 삶에 대해서 다시 생각합니다. 앞에서 말씀드렸던 구양수가 지은 “추성부”의 일부를 같이 읽으며 가을과 삶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 봅니다.
“슬프다! 초목은 감정이 없건만 때가 되니 바람에 날리어 떨어지도다. 사람은 동물 중에서도 영혼이 있는 존재이다. 온갖 근심이 마음에 느껴지고 만사가 그 육체를 수고롭게 하니, 마음속에 움직임이 있으면 반드시 그 정신이 흔들리게 된다.
하물며 그 힘이 미치지 못하는 것까지 생각하고 그 지혜로는 할 수 없는 것까지 근심하게 되어서는, 마땅히 홍안이 어느새 마른 나무같이 시들어 버리고 까맣던 머리가 백발이 되어 버리는 것도 당연하다 할 수 있다.
금석 같은 바탕도 아니면서 어찌하여 초목과 더불어 번영을 다투려 하는가? 생각건대 누가 저들을 죽이고 해하고 있는가? 또한 어찌 가을의 소리를 한탄하는가?”
시기 | 동일시기 이야기소재 | 장소 | 출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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