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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이가 행복할 수 있을까?

우연히 한 진화생물학자의 인터뷰를 본 적이 있습니다. ‘대한민국에서 아이를 낳는 사람은 이상한 겁니다’라는 다소 과격한(?) 제목의 인터뷰였습니다. 내용은 이렇습니다. 저출산 현상은 진화생물학적 시선에서 보면 지극히 당연한 진화적 적응 현상이라는 겁니다. 주변에 먹을 게 없고, 숨을 곳이 없는데 새끼를 낳아 주체 못 하는 그런 동물은 진화 과정에서 살아남기 대단히 힘들기 때문입니다. 한국 사회는 급속도로 발전하며 사회적으로 통용된 일반화된 기준치가 과도하게 높아졌고, 그런 사회에서 결혼하고 자식을 낳아 기르는 것에 두려움을 느끼고 의문을 제기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해석이었습니다. 아이가 태어나 행복하게 성장할 수 있는 좋은 양육과 교육에 대한 사회적 시스템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며, 담談 115호를 준비했습니다. 다산다사(多産多死)의 시대인 조선의 출산 문화를 들여다보고, 현대 사회의 초저출산 문제에 대한 해답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박희진 선생님은 〈조선의 출산 조절기제와 문화〉를 통해 조선 시대에는 어떤 사회적, 문화적 맥락에서 출산이 장려되거나 혹은 제한되었는지 쉬운 언어로 세밀하게 담아주셨습니다. 18세기 종법 질서가 강화되면서 아들을 낳아 가계를 이어야 한다는 의무가 여성에게 지워지며 아들을 바라는 다양한 문화적 행위가 만들어졌고, 유교 중심 사회에서 여성의 주체성이 제한되며 재혼 금지를 비롯해 폐쇄적인 성(性)인식으로 출산율이 급격히 낮아졌다는 사실을 다양한 기록자료를 통해 흥미롭게 전해주셨습니다.

안귀주 선생님은 〈박물관 소장유물에 나타난 전통 배냇저고리의 미학〉을 제목으로 배냇저고리에 담긴 문화적 상징 코드를 재미있게 풀어주셨습니다. 영아 사망률이 높았던 조선시대, 세상에 태어나 가장 처음 입는 배냇저고리는 아기가 건강하게 자라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이 담긴 옷입니다. 그러나 그 간절한 마음과 다르게 옷은 느슨하고 곱지 않은 바느질로 만들거나, 때론 우스꽝스러운 형태로 만들기도 했다는데요. 그 이유를 안귀주 선생님은 ‘해학’의 정서로 이야기합니다.

서은경 작가님은 1765년 2월 22일 역중일기의 기록을 〈배내옷 긴 끈 사연〉의 웹툰으로 담아주셨습니다. 출산일이 다가오자 태어날 아이를 위해 무명의 배냇저고리를 준비하고, 아버지를 위해 비단으로 수의를 짓는 딸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그려주셨습니다.

이수진 작가님은 출산과 아이의 죽음을 겪는 여성의 이야기 다룬 영화 〈그녀의 조각들〉을 통해, 우리 사회에서 출산과 양육을 여전히 ‘여성의 일’이라는 제한적인 시선에 대해 답답함과 안타까움을 담아주셨습니다. 이 영화는 30여 분의 출산 장면을 통해 실제로 생명이 세상 밖으로 나오는 일과 낳는 일의 의미를, 또 아이를 잃고 난 후의 엄마 마사가 혼자 감당하는 수많은 감정을 섬세하게 담고 있다고 합니다. ‘아이를 낳았다’라는 의미를 새삼 생각해 보게 합니다.

이문영 작가님의 ‘산비’는 이번 호에서도 명석한 수사력으로 태어나자마자 사라진 아이를 찾아냅니다. ‘비야의 9월 호 사건일지’는 〈사라진 아기를 찾아라〉입니다. 인화당 아씨의 출산일, 딸을 낳을 거라고 예언한 당골네 때문에 산모는 열 달을 힘겨워했건만, 떡 하니 아들을 낳았습니다. 그런데, 이 아이가 감쪽같이 사라지며 이야기는 흥미진진하게 펼쳐집니다.

이번 호 편액 이야기는 〈대대손손 이어질 화락(和樂), 화수당(花樹堂)〉입니다. 안동시 풍산읍 오미리 풍산김씨 문중의 화합 공간으로 사용되었던 건물 편액으로 ‘화수당’은 꽃과 나무가 가지를 치며 무성하듯 자식이 많고 문중이 번성하기를 바라는 마음에 담고 있습니다. 추사 김정희 초서체로 쓴 편액이라고 하니, 직접 편액 감상을 해보시면 어떨까 합니다.

무더운 여름을 지나, 가을이 다가옵니다.
많은 것들이 예측하기 어렵고,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에 그래도 계절은 제시간에 바뀌고, 익숙한 속도로 다가옵니다.
그 자연스러움에 새삼 고마움을 느낍니다.




편집자 소개

김민옥
경성대학교 글로컬문화학부 조교수.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낙안읍성의 역사문화자원과 문화콘텐츠 개발에 관해 박사논문을 썼다. 주요 연구 분야는 역사 공간의 장소성과 스토리텔링, 타문화 이해와 소통을 위한 지역문화콘텐츠 개발이다. 공저로 『영화 춘향전과 한옥』, 『정보혁명』 등이 있고, 「아우서호퍼의 전쟁일기 맥락지식 분석과 스토리테마파크에서의 전유 가능성」, 「글로벌 콘텐츠화를 위한 전통의 복원과 시각적 재현: 영화 〔춘향뎐〕을 중심으로」, 「타문화 이해와 소통 과정을 통한 로컬 지식의 상호작용적 확장: 베른슈토르프의 부탄 영상물을 중심으로」 등의 논문을 썼다.
“조선시대의 출산 풍속”


[출산 준비]

출산은 아내의 친정에서 하는 경우도 있지만, 시집에서 하는 경우가 많다. 내방(주부의 거실) 바닥에 짚을 깔고, 아이를 낳을 방문에 창호지를 새로 바른다. 임산부는 검은 치마를 입고 출산을 준비하였으며 시중은 시어머니나 경험이 풍부한 아주머니에게 부탁한다. 산실에는 <삼신상(산신)>을 설치하고, 짚을 깔은 위에 상을 바쳐서 밥과 미역국을 세 그릇씩 바치는데 임산부가 출산 후 처음으로 먹는 식사는 이를 내려서 만든다.
배내옷, 포대기, 기저귀, 솜 등을 마련한다. 배내옷은 바늘로 꿰매며 단추를 달지 않고, 긴 끈을 붙여 가슴에 한 바퀴 돌려 맨다. 단추 대신 긴 끈을 쓰는 것은 아기의 수명이 길어지길 바라기 때문이다. 농촌의 남편은 아내의 산달이 가까워오면 삼으로 왼새끼를 꼬아둔다. 이것을 밧줄처럼 산실에 매어놓아 임산부가 아이를 낳을 때 이것을 잡고 힘을 쓴다.

[탯줄 자르기]

탯줄을 자를 때는 탯줄을 잡고 아기 쪽으로 훑은 다음 배꼽에서 한 뼘쯤 되는 부분을 자르고 그 끝 부분을 실로 잡아매어 깨끗한 솜에 싸서 아기 배 위에 올려놓는다. 태는 흔히 가위로 자르지만 여아가 태어났을 때는 동생이 남아이길 바라는 뜻으로 소독한 낫이나 식칼을 쓴다. 태는 짚이나 종이에 싸서 삼신상 아래에 두지만, 이를 귀하게 여기는 집에서는 일진에 맞추어 좋은 방위에 놓아둔다. 태는 보통 사흘이 지나기 전이나 사흘째 되는 날 태우거나 항아리에 담아 명당자리에 묻는다.

[금줄 치기]

아기가 태어나면 부정한 사람의 출입을 막기 위해 1주일 또는 3주일 동안 집의 대문이나 산실, 부엌 입구 등에 금줄을 친다. 남아일 때는 금줄에 붉은 고추와 숯덩이를 끼워두며, 여아일 때는 미역, 솔잎, 종이 따위를 달아준다. 금줄은 반드시 왼새끼로 꼬며 양 끝을 자르지 않는다. 왼새끼는 잡귀를 쫓기 위해서이며, 양 끝을 그대로 두는 것은 아기와 산모의 수명이 끝없이 길기를 바라서다. 도 붉은 고추는 남성의 성기를 상징하며, 붉은 기운도 잡귀를 물리친다고 여겼다. 한편 숯에는 독을 제거한다는 뜻이 담겨있고 여성을 나타내는 빛인 솔잎의 녹색에는 여아가 성장하여 바느질을 잘하라는 기대가 들어 있다.
금줄은 7일, 21일 또는 49일간 걸어 두는데, 이 사이 외부 사람의 출입은 금지되며, 또한 산실에서 물건을 내오는 것도 금지된다. 금줄을 떼고 산실이 개방된 후에 비로소 친척이나 이웃사람들이 축하하러 온다.

“큰 딸이 사내아이를 출산하다”

오희문, 쇄미록, 1596-01-26 ~

1596년 1월 26일, 시집간 큰 딸아이가 어젯밤부터 기운이 불편하고, 출산의 기미가 있어서 즉시 고모 방으로 들어가 거처하도록 하였다. 거기서 종일 머물다가 오늘 밤이 깊은 해시 무렵에 출산을 하였다. 방안에 사내아이의 울음소리가 가득 퍼졌다. 온 집안의 사람들이 모두 몹시 기뻐하였다.

오희문은 그 무렵 정계번, 이기수 등과 한 방에서 자고 있었는데, 해산하였다는 말을 듣고는 즉시 일어나 방에서 나와 하늘을 우러러보니, 시간은 밤 12시경이었고, 정확하게는 해시였다. 사위인 신응구는 한질을 앓아 오래 누워있고 일어나질 못하였는데, 아들을 낳았다는 말을 듣고는 벌떡 일어나 기뻐해 마지않았다. 오희문은 딸이 며느리로서 아내로서 해야 할 큰일을 해냈다는 생각과 동시에 사위가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 뿌듯한 감정이 들었다.

사위의 집은 사내가 귀하였는데, 이렇듯 아들을 낳았으니 앞으로 딸도 시댁에서 더욱 귀한 대접을 받을 수 있을 터였다. 그리하여 감초를 달인 이후 아이에게 먹였다. 딸아이 역시 다른 곳은 무탈하였고, 다만 힘을 너무 쓴 나머지 미역국이 입에 달지 않는다고 하였다. 그러나 이렇게 무사하게 출산한 것이 얼마나 대견한 일인가! 오희문은 크게 내색하지 않았지만, 전란의 와중에도 무사히 아들을 출산한 큰 딸이 무척 기특하였다.

“조선시대의 산후조리”


전근대에는 산후의 산모와 영아 사망률이 매우 높았던 것으로 보인다. 위생과 의약 공급 환경이 낙후되어 있었던 탓이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산모와 영아를 최대한 보호하기 위한 방책은 외부와의 격리였다. 지역과 집안, 그리고 상황마다 달랐지만 대개 산모가 아이를 낳으면 삼칠일(3·7)간 금줄을 드리우고 외부인의 출입을 금하였는데, 산모도 물론 바깥출입을 하지 않도록 하였다. 최소 21일이 지나야 늘어났던 자궁이 제자리를 찾고 몸이 회복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산모는 아이를 낳은 지 사흘 만에 처음으로 목욕을 하는데, 더운물을 수건에 묻혀 몸을 닦아내는 것으로 산후풍을 방지하고자 하였다. 몸에 직접 물을 묻히는 일은 출산 후에 한 달이 지나야 했다. 산후풍을 방지하고자 하는 조치에는 또한 문을 닫고 병풍을 쳐서 바깥바람이 몸에 닿지 않도록 하고, 여름철에도 방에 불을 때는 방법들이 있었다. 산모는 또한 여름에도 두껍고 긴 옷을 입고 버선을 신으며, 부채질하지 않아야 했다. 그 외에도 약쑥 삶은 물로 좌욕을 하고 무거운 것을 들지 않도록 하여 회복을 도왔다.

산모의 몸을 보하기 위해 특별히 탕약을 지어 먹이기도 했지만, 일반적으로는 향신료를 넣지 않은 뜨거운 국과 밥을 먹도록 했다. 그리고 성질이 차다고 여겨지는 메밀 등의 식재료나, 부정한 것으로 간주되는 육류 역시 금해졌다. 또한, 산모의 치아를 위해 딱딱하고 차가운 음식도 피하도록 하였다. 그 외에도 여러 민간 풍습에 따라 금하는 음식 재료들이 있었다.

산모가 산후조리를 하는 동안 가족들도 싸움, 살생 등의 부정한 행위를 피하고, 부정한 행위가 일어나는 장소를 피하는 등 부정을 타지 않기 위한 노력을 하였다.

“아들을 잃었던 달부, 다시 득남하다”

배냇저고리(출처: 국립민속박물관) 김령, 계암일록, 1620-10-13 ~

1620년 10월 13일, 이실의 집에 한달부와 배원선이 찾아왔다. 그 소식을 듣고 김령 또한 이실의 집으로 찾아가 그들을 만났다. 이날의 만남은 한달부의 득남을 축하하기 위한 자리였다. 그는 올해 아들을 한 명 잃었는데, 다행히도 다시 득남하였다. 주인이 술을 따랐고, 김령은 밤이 되어 술에 취한 채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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