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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잡고 가보자, 아수라발발타
-멘토의 소고-

첫 안동


지난 6월. 여름의 초입에서 혹시 좀 지쳐있었던가? 자문해보자면 아무래도 그랬던 것 같다고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손에 잡힐까 하면 빠져나가던 목표들, 조금씩 다른 뉘앙스로 전해 듣던 거절의 말들.

한동안 스스로를 소홀히 했구나 싶어 손 많이 가는 요리를 해 먹고, 해질녘의 한강을 열심히 달리던 즈음 연락을 받았다. 국학진흥원이라는 곳에서 주최하는 스토리테마파크 창작 콘텐츠 공모전의 멘토로 참여해보지 않겠냐는 제안이었다. 일단 멘토라서 부담스럽다고 생각했다. 두 해 전까지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에 열심이었던 시기를 보냈었고, 당분간 가르치는 일은 하지 말자고 결심했던 것에도 이유가 있었다. 대단한 이유는 아니고, 누군가에게 조언을 하는 일에 피로를 느꼈달까. 마음 여린 학생들이 혹여나 상처받진 않을까, 무언가를 단정적으로 생각하게 만들지는 않을까, 단어와 표현을 고심해서 골라야만 했다. 많은 에너지가 들어가는 일이었고 이 때문에 놓치게 되는 다른 일들이 있었다.

아무래도 거절하는 쪽이 맞겠다 생각했다가 궁금증이 일었다. 국학진흥원이라는 곳은 어떤 곳인가. 연락을 해온 분께 질문했고 꽤나 상세한 답변을 들으며 고개를 끄덕이다가 마음에 꽂혀버린 것은 ‘안동’ 이라는 지명이었다. 안동에 갈 기회가 있을 거라고 했다. 가만 생각해보니 나는 여태껏 안동엘 가본 적이 없었다. 안동 간고등어, 안동 소주, 안동 헛제삿밥... 내게 안동은 몇 가지의 음식과 익숙한 이름의 문화재를 떠올리게 하는 곳이어서 마치 가본 적이 없음에도 가본 것과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부끄러운 고백을 하자면, ‘멘토’보다는 ‘안동’이 좋아서 합류하겠노라 결정을 내렸다.

안동은 아름다웠다. 익히 들어 알고 있던 문화재를 방문하고 이와 절묘하게 어우러진 자연을 감상하는 일에는 순수한 즐거움이 있었다. 게다가, 동행했던 국학진흥원 선생님들께서는 적당한 때에 발걸음을 멈추시곤 수백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 이야기를 들려주셨으니 이게 무슨 호사인가 싶었다.

그로부터 한 달여 후 다시 한 번 안동에 가 마침내 네 명의 멘티들을 만났을 때, 내가 이들의 멘토라는 것이 너무나 기뻐 약간 벅차오르기까지 했다.

‘안동’보다도 ‘멘토’라는 사실이 갑작스레 좋아졌단 말이다.


아수라발발타


네 명의 멘티들을 처음 보았을 때의 기억을 떠올려 본다. 멘토들은 자신이 담당하게 될 팀명만 아는 상태로 일종의 무대 인사를 감상할 시간이 있었다. 누가 나의 멘티들일까 강당 끝에 서서 유심히 살펴보던 중, 한 무리의 여학생들이 멀리서부터 눈에 들어왔다. 제각각 개성이 강한 패션, 당당한 걸음걸이, 잠깐 무대 계단을 오르는 와중에도 서로에게 농담을 던지고 크게 웃던 모습, 망설이거나 부끄러워하지 않는 태도.

‘아 내가 저 사람들의 멘토라면 좋겠다’ 라고 생각하던 순간에 그들의 팀명이 눈에 들어왔고, ‘내가 저 사람들의 멘토이구나’를 깨닫게 되었다는 이야기.

유희는 그 뒤로도 짧게 이어졌다. 멘티들이 자신의 팀을 차례대로 방문하는 멘토들을 전부 만난 후, 누가 우리의 멘토인지 맞춰 보는 시간이 있었던 것. 장난기가 있던 멘토분들은 방문하는 멘티들에게 마다 내가 너의 멘토다! 라 주장하며 그럴 듯 한 미끼를 던졌다. 멘티들도 쉽사리 구경만 하고 있진 않았고 도리어 미끼를 던지기도 했다. 내가 우리 멘티 테이블을 방문했을 때 몇 가지 형식적인 질문들을 받았고, 나도 형식적인 질문들 몇 개를 던졌다. 그리 인상적이지 않은 방문이었기 때문에 내심 저들은 내가 멘토인지 알아맞히지 못할 것이라 생각하고 무대로 올랐다. 그리고 잠시 후, 자신이 생각하는 멘토 앞으로 가서 서보라는 진행자의 말에 성큼성큼 계단을 올라와 망설임 없이 내 앞에 선 사람은 나의 멘티가 맞았다. ‘나를 알아봐 주다니 기뻐!’ 의 마음도 있었지만, ‘잘 숨긴다고 숨겼는데 어떻게 맞췄지?’ 라는 의구심도 있었다. 무대를 내려와 “어떻게 나인 줄 알았냐?” 질문했을 때, 그들은 그냥 직감했다고만 했다. 그리고 내가 멘토였으면 하고 바랐다는 말을 해주었는데, 나 역시도 바랐던 바였다고 답하는 것으로 우리는 훌쩍 가까운 멘토 멘티가 되었다.

그 후로 이어진 삼일간의 캠프 동안 크게 웃었던 기억이 대부분이다. 회의를 하다가 웃고, 밥을 먹다가 웃고, 심지어는 노크하다가도 웃었는데, 멘티들은 문을 열어주기 전 암호를 요구했고 그 암호가 ‘아수라발발타’ 였기 때문이다. 문 앞에서 아수라발발타를 외치던 순간에, ‘아, 이런 종류의 원초적인 즐거움은 요즘 내게 멀리 있던 것들이야,’를 느꼈고 당황한 멘티들이 정말 아수라발발타를 외칠 줄은 몰랐다며 문을 열어주었을 때, 기뻤다.


손잡기


멘티들은 문예창작 전공의 같은 학과 학생들이었고 첫인상에서 짐작했던바 대로 각자의 개성이 강했다. 이렇게 제각각 색깔이 뚜렷한 사람들이 하나의 통일된 이야기를 만들어냈다고? 놀랍다라는 것이 글에 대한 첫 느낌이었다.

그들은 웹드라마 형식의 5-6부작 기획안을 뽑아둔 상태였고 영화로의 장르 변경을 고민하는 중이었다. 제법 긴 토론 끝에 영화로 가보자 결론을 내렸고 그 후부턴 길게 이어지는 회의의 연속이었다. 네 명 모두 자신의 뚜렷한 생각이 있으니 진행에 난처한 부분이 있긴 했지만, 넷 중 아무도 의견이 없는 상황에 비하자니 꽤나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가 있었다.

캠프 기간동안 몇 번의 회의를 거치면서, 글을 처음 받아보았을 때의 내 의문은 자연스레 해소되었다. 그 의문은 앞서 언급했듯 ‘이 사람들이 어떻게 통일된 이야기를 만들어냈는가?’ 였는데, 이를 설명하기 위해선 가벼운 장면 묘사가 필요해 보인다.

어느 날, 멘티와 나는 한 테이블에 모여 앉아 주인공의 설정에 대해 토론하던 중이었다. 각자 다른 의견이 있었던 탓에 한 곳으로 좁혀지지 않았는데 나는 섣불리 개입하고 싶지 않았다. 이 과정을 좀 더 관전하고 싶다는 생각이 컸다. 결국 조금씩 오해가 생겼고, 목소리가 격앙되나 싶을 때 즈음, 이젠 내가 관여해야 한다 결심하고 입을 떼려는 순간 재미난 풍경이 벌어졌다. 멘티들이 각자 손에 든 패드와 펜 따위를 내려놓고 서로의 손을 붙잡는 것이었다. 테이블을 둘러싸고 작은 원이 만들어졌다. 이게 무슨 일인가 멘티들의 안색을 살피려는데, 그들은 의미 없는 노래를 부르며 맞잡은 손을 가볍게 흔들었던 것 같다. 슬금슬금 웃음들이 터져나오더니 금세 무언가가 녹아 없어지고 말았다. 아, 이래서 가능했던 거구나?

말하자면, 그들은 그들만의 얼음판 해소법을 지니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 이러지 말고 손을 맞잡아 보자.” 라고 얘기하기까지 그들이 겪었을 숱한 진통들을 생각하니 그 마음들이 참 애틋하고 예뻤다. 이 일 이후로도 여러 번, 그들의 의사소통 방식에 감탄할 때가 많았다. 각자 의도치 않게 말을 끊게 되었을 때는 재빨리 사과했고, 여러 목소리가 섞일 때는 ‘내가 말해도 될까요?’ 물은 후 동의를 구해 이야기를 시작했다. 마음에 들지 않는 의견에 대해서는 뚜렷하게 의사를 표시하며 그 이유를 덧붙여주었고, 훌륭한 의견이라고 생각할 때는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참 절묘하게 균형을 유지하고 있구나, 고개를 끄덕이며 이 아름다운 풍경을 잘 기억해둬야지 생각했다.


여린 마음들


그렇게 치열한 여름을 보내고, 가을이 되었을 때 멘티들은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몇 번의 다툼이 있었고, 팀은 와해 위기를 겪기도 했지만, 그들은 결국 각자의 자리로 돌아왔고 끝까지 맡은 바 책임을 다하겠다고 했다.

어느 팀인들 그러지 않았겠냐만, 그들이 피칭과 이야기만들기, 부스 준비에 쏟는 노력에 고개가 숙여질 정도였다. 너무너무 애쓰진 말아달라고, 조금만 힘을 빼달라고 말하고 싶을 정도였지만 차마 입 밖에 낼 수는 없는 말이었다. 조금 떨어진 곳에 서서, 방향이 틀어지진 않았는지 어디 다친 곳은 없는지 살피며 응원하는 것이 내가 생각한 멘토의 역할이었다.

피칭 당일. 마지막 팀의 발표가 끝났을 때 어떤 팀이 대상을 받더라도 의심의 여지가 없어 보이는 경합이어서 놀라운 동시에 벌써부터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자신은 이 상을 받긴 했지만 대상을 받진 못했어 라고 생각할 학생들의 얼굴들이 그려졌기 때문이다. 지금은 상처이지만 나중에는 자산이 된다, 와 같은 말은 누구나 할 수 있으니까. 그렇다면 마찬가지로 누구나인 나는 무슨 말을 해줄 수 있을까 고민하게 되는 시간.

우리 팀은 장려상을 받았다. 내 눈에 그들은 충분히 대단하고 멋져보였지만, 그들 얼굴에 서린 아쉬움은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 멘티들의 눈물을 보았고, 어깨를 다독이는 것 밖에는 해줄 것이 없어 미안한 마음이었다.

팀이 와해 위기에 놓였을 때, 멘티들에게 보낸 메시지에 그런 말을 남겼다. 어쨌거나 끝까지 가봐야 마주하게 되는 풍경이 있을 거라고. 그것이 달나라든 폐허이든 같이 한번 봐 보자고. 그 말 때문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멘티들은 돌아와 주었고, 나와 함께 끝까지 걸어가 그 풍경을 바라봐주었다. 우리는 이제 또 각자의 길을 가지만, 잠깐이나마 함께 보았던 그 풍경은 쉽사리 잊혀지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노력한 모든 멘토님들, 멘티분들께 감사의 박수를 보낸다.





집필자

김희진
김희진
몇 편의 단편영화를 연출했고 현재 시나리오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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