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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년에 태어나 갑자년을 맞이하다


1624년 12월 4일, 장흥효는 명종대에 태어난 사람이다. 그는 선조를 거쳐 광해군을 지나 인조대를 맞이하고 있다. 그는 일기에 스스로 “갑자년에 태어나 다시 갑자년을 맞이하고 12월 4일에 태어나 다시 12월 4일을 맞이했다”고 기록했다. 어찌 보면 환갑이라는 나이가 마냥 신기했던 모양이다. 갑자년에 태어나 다시 갑자년을 맞이했다는 것은 또 다른 삶을 시작한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하고 또 다른 생명체로 거듭난다는 것을 뜻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늘 자신을 되돌아보는 것을 잊지 않았다. 나이는 들어가지만 오히려 덕은 갈수록 낮아지고 있었다. 수염과 머리카락은 덥수룩해졌으며 사람의 됨됨이는 더욱 볼품이 없었다. 다시 살아가는 갑자년이라고 하지만 어린아이로서의 갑자년과는 사뭇 달랐던 셈이다.

여러 지역 인사들이 그를 찾아왔다. 무려 30여 명에 이르는 사람들이 그의 환갑을 맞아 술을 대접하고 각기 정성을 다했다. 하지만 그는 이제 자신이 보잘것없는 노인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았다. 그는 오히려 그런 자신에게 이렇게 성대하게 맞아주는 것이 더욱 부담스러웠다. 부끄러움만 더해갔다.

자신이 읽은 책에 나오는 사람들은 60세에 60년만큼 교화되지만 지금의 시대에는 60세에 60년만큼 잘못된다고 하면서 차라리 자신을 버리고 관심을 가져주지 않는 것이 더 편하다고 하지만 도리어 자신에게 이렇게 관심과 정성을 주고 있으니 더욱 자신을 부끄럽게 만든다고 생각했다. 그는 오늘은 오늘로 그만두었으면 하는 바람만 있을 뿐이었다.

출전 : 경당일기(敬堂日記)
저자 : 장흥효(張興孝)
주제 : 경사
시기 : 1624-12-04~
장소 : 경상북도 안동시
일기분류 : 생활일기
인물 : 장흥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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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필자 소개

글 그림 | 서은경
서은경
만화가. 1999년 서울문화사 만화잡지공모에 당선되며 본격적인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그간 지은 책으로 『마음으로 느끼는 조선의 명화』, 『소원을 담은 그림, 민화』, 『만화 천로역정』, 『만화 손양원』 등이 있으며, 『그래서 이런 명화가 생겼대요』, 『초등학생을 위한 핵심정리 한국사』 등에 삽화를 그렸다.
● 제5회 스토리테마파크 창작 콘텐츠 공모전 담임멘토
● 제6회 스토리테마파크 창작 콘텐츠 공모전 전문심사위원
● 제7회 전통 기록문화 활용 대학생 콘텐츠 공모전 면접심사위원
“양로연(養老宴)을 열고 비둘기 지팡이를 선물하다”

낙남헌양로연도(落南軒養老宴圖)
(출처: 국립중앙박물관)
권문해, 초간일기, 1588-11-10 ~

1588년 11월 10일, 봄날같이 화창하고 따뜻한 날이다. 이 지역의 어른 70여 명의 노인을 모시고 잔치를 여는 뜻깊은 날, 날씨까지 포근하고 화사하니 이를 준비한 권문해의 마음은 한결 가벼웠다. 관아의 앞뜰에 마련된 양로연(養老宴)에 참여한 남자들은 오른편에 자리하고, 여자들은 왼편에 자리하여 종일 취하고 배불리 먹으면서 춤도 추며 흥겨운 한바탕 잔치가 벌어졌다.

권문해는 비둘기 모양이 새겨진 지팡이 구장(鳩杖)과 수건을 만들어 양로연에 참석한 노인분들에게 나누어주었다.

“장수를 비는 잔치들”

이원기로회계첩(梨園耆老會契帖) (출처: 국립중앙박물관) 장석영, 흑산일록, 1919-08-22

1577년 9월, 금난수의 고모와 고모부 이징(李澄)의 사위 박세현(朴世賢)이 그의 장인과 장모를 위해 온계에서 잔치를 열었다. 금난수로서는 두 해 전 돌아가신 부친이 떠올랐기 때문에 고모, 고모부의 장수를 기뻐하면서도 마음 한구석에서는 서글픈 감정이 솟아오르는 것을 어찌할 수 없었다. 장수를 비는 날인만큼 모두가 받은 상마다 꽃이 꽂혀 있었고, 술동이에는 향기로운 술이 찰랑였다. 잔치에서 여러 자손들이 돌아가며 노부부에게 잔을 올리는 헌수(獻壽)를 하였고, 악사들이 흥겨운 음악을 연주하였다.

그다음 달에는 금난수의 숙부인 금희가 노인회를 열었다. 원래는 봄과 가을마다 나라에서 퇴직한 노 관료들을 위해 베풀어 주는 것이 기로연의 원형이었으나, 사적으로도 노인들이 한데 모여 자신들의 장수를 자축하였다. 노인들의 행사인 만큼 금난수는 이곳에는 참석하지 않았지만, 근처에 머물며 물심양면으로 행사를 도왔다. 숙부를 모시는 것이 아버지를 모시지 못한 데 대한 아쉬움을 달랠 수 있는 방편이기도 했을 것이다.

“갑자년에 태어나 갑자년을 맞이하다”

장흥효, 경당일기, 1624-12-04 ~

1624년 12월 4일, 장흥효는 명종대에 태어난 사람이다. 그는 선조를 거쳐 광해군을 지나 인조대를 맞이하고 있다. 그는 일기에 스스로 “갑자년에 태어나 다시 갑자년을 맞이하고 12월 4일에 태어나 다시 12월 4일을 맞이했다”고 기록했다. 어찌 보면 환갑이라는 나이가 마냥 신기했던 모양이다. 갑자년에 태어나 다시 갑자년을 맞이했다는 것은 또 다른 삶을 시작한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하고 또 다른 생명체로 거듭난다는 것을 뜻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늘 자신을 되돌아보는 것을 잊지 않았다. 나이는 들어가지만 오히려 덕은 갈수록 낮아지고 있었다. 수염과 머리카락은 덥수룩해졌으며 사람의 됨됨이는 더욱 볼품이 없었다. 다시 살아가는 갑자년이라고 하지만 어린아이로서의 갑자년과는 사뭇 달랐던 셈이다.

여러 지역 인사들이 그를 찾아왔다. 무려 30여 명에 이르는 사람들이 그의 환갑을 맞아 술을 대접하고 각기 정성을 다했다. 하지만 그는 이제 자신이 보잘것없는 노인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았다. 그는 오히려 그런 자신에게 이렇게 성대하게 맞아주는 것이 더욱 부담스러웠다. 부끄러움만 더해갔다.

자신이 읽은 책에 나오는 사람들은 60세에 60년만큼 교화되지만 지금의 시대에는 60세에 60년만큼 잘못된다고 하면서 차라리 자신을 버리고 관심을 가져주지 않는 것이 더 편하다고 하지만 도리어 자신에게 이렇게 관심과 정성을 주고 있으니 더욱 자신을 부끄럽게 만든다고 생각했다. 그는 오늘은 오늘로 그만두었으면 하는 바람만 있을 뿐이었다.

“기로소 대신에게 연회를 베풀다”

권상일, 청대일기,
1719-04-16 ~ 1719-04-18

1719년 4월 16일, 숙종은 기로소(耆老所) 대신들에게 잔치를 베풀어 주고자 했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기로소 대신으로 당연히 참여해야 할 영중추부사 이유(李濡)가 대간의 논박을 받아서 궐에 출근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연회에 이유가 빠질 난처한 상황이 된 것이다. 이에 동궁은 여러 번 승지를 보내어 돈독히 타이르고 승지와 함께 출사하기를 권하였다. 결국 동궁의 조처로 숙종이 진행하고자 했던 연회가 개최되었다.

연회는 오전 경현당에서 진행되었다. 숙종은 건강상의 이유로 나오지 못했고 세자만 참석했다. 이날 참석한 기로소 대신은 영중추부사 이유(李濡), 영의정 김창집(金昌集), 판중추부사 김우항(金宇杭), 공조 판서 신임(申銋), 형조 판서 황흠(黃欽) 등이었다. 본래는 전 판서 최규서(崔奎瑞)도 참석해야 했으나 고향인 용인으로 내려간지 오래라 관직을 사양한 상태였다. 다른 승지들이나 시위하는 신하들은 연회에 참석하지 못하게 하여 오로지 장악원 악공등만 참여했다.

오후에 연회가 끝나고 기로소 신하들은 궁궐의 꽃을 가득 꽂고 크게 취하여 부축을 받으면서 나왔다. 연회가 성대하기 진행되었던 모양이다. 그런데 기로소 본청에서 다시 한번 연회의 자리를 마련하자는 명령이 내려왔다. 한번으로는 부족했던 모양이었다. 권상일은 여태껏 있지도 않았던 성대한 자리였다고 평가했다. 숙종은 기로소 신하들에게 ‘경들은 모두 이미 칠십 팔십이 되었으나 다들 변이 없이 건강한데 나는 이제 겨우 육순이나 몸은 병들고 눈은 어두우니 이제 이와 같은 일은 없을 것이다’라고 했다. 기로소 대신들보다 숙종이 10여 세 어렸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게 암시였을까 숙종은 기로소 대신보다 먼저 이듬해에 세상을 떠났다.

“문중 모임을 주관하다”

최흥원 역중일기, 1752-03-17 ~

1752년 3월 17일. 최흥원은 어제부터 문중 모임에 참여하고 있었다. 최흥원이 기거하는 칠곡 마을을 비롯하여 인근 지묘 마을, 해안 마을 등 최씨 일족이 거주하는 동네마다 모두 사람을 보내어 참여하기로 한 모임이었다. 본래 모임을 개최하기로 한 것은 어제였는데, 어제 해안 마을의 일족들이 도착하지 않아 개회가 하루 늦어졌다.

오늘 아침 일찍 해안 마을의 일족 노인이 비로소 도착하였다. 모두 모여 자리에 앉은 이후, 남산에 사는 일족의 아재를 문중의 어른으로 추대하였다. 추대한 어른을 특석에 앉도록 요청한 이후, 임신(壬申)생 이후에 출생한 환갑이 되지 못한 일족들이 모두 어른에게 공경히 절을 올렸다. 앞으로 문중 모임에서는 이 어른이 모든 일을 결정할 어른이었다.

아울러 앞으로 문중 일을 도맡아 할 실무자인 유사도 뽑았다. 성주에 사는 일족의 어른을 유사로 선발하였다. 유사로 선발된 어른은 첫 업무로 문중에 관한 절목을 수정하는 일을 시작하였는데, 하필이면 그 일을 최흥원에게 부탁하였다. 지난 신해년에 만든 완의를 수정하고, 새로 결정된 일을 보충해 달라는 요청이었다. 최흥원은 거듭 사양하였으나 유사 어른의 의사가 공고하여 결국 일을 맡고 말았다. 최흥원은 일을 맡은 이상 문중의 일이니만큼 온 힘을 다하겠노라 대답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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